물난리 후 식량난에 시달리는 북녘 동포들, 국제사회는 심각성 경고하는데 정부는 요지부동
▣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쌀밥을 먹다가 식량이 부족해지면 옥수수와 쌀을 반반씩 섞어 먹는다. 그러다 옥수수밥을 3끼 먹게 되고, 더 어려워지면 2끼로 줄인다. 상황이 계속 나빠지면 옥수수죽을 먹기 시작한다. 그마저 떨어지면 풀죽으로 끼니를 때우기에 이른다. 영양실조가 심각하게 번지는 건 이즈음이다. 옥수수겨로 만든 묵지가루로 죽을 쑤는 게 그 다음 차례다. 이쯤 되면 서서히 굶어죽는다는 말이 나온다. 영양실조로 면역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거친 음식을 먹다 보니, 주로 소화불량이나 배변불량, 장파열 등으로 인해 시름시름 앓다가 죽게 된다. 논의 벼뿌리를 말려서 갈아 죽을 쑤거나 산으로 가 소나무 껍질을 벗겨 죽을 쑤는 게 그 다음 단계다. 1990년대 중반 북한에서 굶어죽는 이들이 급격히 늘어난 과정은 대체로 이렇게 흘러갔다.”
“옥수수죽에서 풀죽 단계로 넘어가”
사단법인 ‘좋은벗들’ 이사장 법륜 스님은 지난 5월2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출판문화회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지금 북한의 식량 사정은 옥수수죽을 먹는 단계를 넘어 풀죽을 먹는 단계로 다가서고 있다”고 덧붙였다. ‘제2의 고난의 행군’이 다가오고 있다는 얘기다.
언제부턴가 해마다 이맘때면 ‘굶주리는 북녘 동포를 돕자’는 말이 나온다. 벌써 몇 년째 “올해가 고비”라느니 “대량 아사 사태가 재발될 수 있다”는 말이 되풀이돼왔다. 그래서다. 조금씩 무뎌졌다. 이를테면 “배고픈 건 다 아는 얘기고, 그보다 조금 더 배가 고플 수 있다”는 말 정도로 여기게 됐다. 올 초 ‘북한 식량난’ 얘기가 다시 나올 때도 그런 느낌이었다. 그래, 올해 북한 식량 사정은 예년에 비해 얼마나 더 나쁜 걸까?
‘아프가니스탄·방글라데시·차드·소말리아·수단·짐바브웨.’ 지난해 12월 세계식량계획(WFP)은 이들 6개 나라를 2008년 한 해 동안 지구촌이 지원을 집중해야 할 ‘7대 핵심국가’로 꼽았다. 나머지 한 나라는, 북한이었다. WFP는 지난 4월16일 자료를 내어 “북한의 식량난이 올해 ‘인도적 재난’으로 번질 수 있다”고 새삼 경고했다. 이 단체 토니 밴버리 아시아 담당국장은 성명에서 “지난해 8월 물난리로 북한의 식량 생산량이 급격이 떨어졌음이 확인됐다”며 “북한의 식량 상황은 계속해서 나빠지고 있으며, 끔찍한 비극을 막기 위해 외부의 지원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밴버리 국장은 “현 상황이 이어질 경우 650만여 명의 북한 주민이 식량난에 시달리게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장 피에르 마르게리 WFP 평양사무소장은 ‘곡물가격 폭등’에 주목한다. 그는 같은 자료에서 “실질 곡물가격이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올해 북한 주민들은 예년보다 훨씬 심각하고 광범위한 굶주림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WFP가 내놓은 통계치를 보면, 지난해 4월 1kg에 700~900원 수준이던 장마당 쌀값이 올 4월 2천원 이상까지 폭등했다. 주식이나 다름없는 옥수수값도 1년 전 kg당 350원가량 하던 것이 600원 이상으로 치솟았다. 이는 “2004년 이래 가장 비싼 가격”이란 게 WFP의 지적이다.
이에 앞서 유엔 식량농업기구(FAO)가 내놓은 ‘2007년 북한 식량 생산량’ 관련 자료도 우려를 키운다. FAO는 북한 당국이 공개한 통계자료를 기초로 지난해 북한에서 생산된 곡물의 총량이 약 300만t에 불과할 것으로 추정했다. 이는 2006년 대비 25%가량 줄어든 수치로, 여름 가뭄이 극심했던 지난 2001년 이후 최악의 상황이다. 이에 따라 FAO는 “올해 북한의 식량 부족량은 약 165만t에 이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는 지난해보다 식량 부족량이 2배 가까이 늘어난 수치다. 유엔아동기금(UNICEF)은 북한 어린이의 37%가량이 만성적인 영양실조 상태며, 산모 3명 중 1명이 영양실조와 빈혈에 시달리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미국 식량지원은 ‘춘궁기’ 지나서야 도착
‘불능화’ 단계에서 핵시설 신고 문제를 두고 교착상태에서 빠졌던 북핵 문제가 돌파구를 찾은 것은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다. 북한 당국이 핵시설 관련 자료를 내놓으면서 미 정부는 국무부에 딸린 국제개발처(USAID)를 통해 앞으로 1년간 50만t의 식량을 지원하겠다고 지난 5월16일 밝혔다. 미국 정부의 발빠른 지원 약속은 북한 당국이 미국이 정한 기준에 맞게 식량 분배·감시 절차를 받아들였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졌다. 식량 분배·감시 절차 문제로 그동안 여러 차례 외부 지원을 거부하기까지 했던 북한으로선 이례적인 일이다. 그만큼 급하다는 얘기다. 실제로 워싱턴에서 지원 약속이 발표된 지 불과 10여 시간 만에 평양의 은 “미국 정부의 식량 제공은 부족되는 식량 해결에 일정하게 도움이 될 것이며, 두 나라 주민들 사이의 이해와 신뢰 증진에 기여할 것”이란 논평을 내놓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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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시간’이다. 미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의 마커스 놀런드 선임연구원과 스티븐 해거드 캘리포니아주립대 교수는 지난 5월17일 시사주간지 에 기고한 글에서 “미국의 50만t 식량지원도 임박한 북한의 식량위기를 풀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이 지원하는 식량이 ‘제때’ 북한에 도착하기 어려운 탓이다. 미 국내법에 따라 해외 식량지원은 미국산 곡물을 사서 미국 선적의 배에 실어 보내야 한다. 두어 달은 족히 걸리는 일이다. 게다가 65명에 이르는 식량분배 모니터요원을 훈련시키고 배치해야 한다. “미국의 원조식량이 북한 주민들의 손에 쥐어지는 건 일러야 7~8월께”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비축 식량이 바닥을 드러낸 지는 이미 오래다. 장마당에서도 낟알이 사라지고 있다. 평양에서조차 식량배급이 들쑥날쑥이고, 먹을거리가 떨어져 학교에 가는 대신 부모의 손을 잡고 구걸에 나서는 아이들이 늘고 있다. 배고픔을 견디다 못해 탈영하는 병사들까지 나오고 있단다. ‘춘궁기’에 깊숙이 빠져든 게다. 미국의 식량지원이 도착할 때까지 두어 달을 북녘 동포들이 버텨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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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북쪽에서 식량난이 극심한 지역은 지난해 여름 물난리 피해지역과 정확히 일치한다. 수재 복구가 제대로 안 된데다, 곡물가격마저 급등했다. 춘궁기만 넘으면 국제사회의 지원으로 버텨낼 수 있다.” 강영식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사무총장은 “미국의 식량지원 물량이 도착할 때까지 6~7월 춘궁기를 넘기기 위해선 20만t가량의 긴급지원이 필요하다”며 “민간 모금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으니, 정부가 발벗고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통일부 “긴급지원할 정도 아니다”
실제로 ‘긴급지원’은 우리 정부만이 할 수 있다. 식량지원의 양보다 속도가 중요한 시점이기 때문이다. “나진·청진·단천·신포·흥남·원주·해주 등 5천t급 이상 선박의 정박이 가능한 모든 항구를 열어 식량을 최대한 빨리 여러 곳으로 보내야 한다”는 지적은 그래서 나온다. 이미 연결을 마친 경의선을 통해 ‘식량열차’를 운행하는 것은 그 상징성과 의미 또한 클 것이다. 급하다면 트럭을 동원해서라도 실어보내야 한다고 대북 인도 지원 단체들은 입을 모은다.
그럼에도 정부는 요지부동이다. “북쪽의 지원 요청 없이는 먼저 인도적 지원을 하지 않겠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김호년 통일부 대변인은 지난 5월26일 기자들과 만나 “현재로선 (북한의 식량 사정이) 긴급지원을 해야 할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1990년대 중반 대기근 때도 당시 김영삼 정부는 대북 식량지원에 머뭇거렸고, 줄잡아 100만 명이 넘는 북녘 동포들이 차례로 굶어 죽었다. 사이클론이 휩쓸고 간 버마도, 대지진이 강타한 중국도 돕는다. 굶주림에 스러져가는 동포를 보듬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어려울 때 먼저 손을 내밀면 어색해진 관계도 쉬이 회복된다. 그게 바로 실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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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남도 해주 같은 데는 지금 현실적으로 로동자들은 배급이 전혀 없다 말입니다. 주변 농촌들에서는 쓰러지고 굶어죽는 사람들이 나온다 말이에요. 이 사람들 작년부터 분배(배급)를 준 거는 두 달분 내지 석 달분밖에 안 줬다 말입니다. 어떤 리는 한 달분도 안 줬단 얘기지. 그래서 농장원들이 안 나온다 말입니다. 농장원들은 장사 기술이 없으니까 장사를 못하니, 그 전에 있던 걸로 먹다가 지금은 굶어죽는 것도 갔다온 사람들이 눈으로 보고서 말하더라 말이에요. 고저 한 개 리에서 10세대는 넘어 나옵디다. 아들도 죽고, 대체로 쉰 살 벗어진(넘긴) 사람들이 기력이 빠지다 보니 사망되고….”
최근 북한 식량 사정에 대한 내부 증언이 공개됐다. 사단법인 ‘좋은벗들’은 지난 5월26일 서울 종로구 출판문화회관에서 열린 ‘2008년 북한사회 동향보고회’에서 올 들어 북한 내부와 북-중 국경지대에서 채록해온 북녘 동포 3명의 육성 증언 화면을 공개했다. 이미 아사자가 발생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화면 속에서 연방 담배를 피워물던 ‘지방간부’라는 한 남성의 증언은 이렇게 이어졌다.
“제일 굶어죽는 게 많은 곳은 황해도 지역에서 나오고, 함남도 지역에서도 함주, 정평, 사포구역 이쪽에서 굶어죽는 사람들이 나온다 말입니다. 이 상태로 가면 6월 중순, 말쯤 되면 굶어죽었다는 게 노랫소리처럼 나오지요 뭐. …바쁜(힘든) 기가 어느 때 제일 바빠하냐면 햇강냉이가 나와서 강냉이를 먹고 새 강냉이를 말려서 먹을 때 그 전에 제일 바빠한다 말입니다. 보릿고개보다 그때 제일 바빠한다 말입니다. 그때는 모든 식량이 다 떨어질 때라 말입니다.”
‘평양의 한 중간간부’는 차 한 잔을 앞에 놓고 고개를 숙였다. “제2의 고난의 행군이 시작이다는 것은 전반적으로 알려진 것이 사실인데, 근데 뭐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때처럼 아파트 골목골목마다 아이들이 눈만 껌뻑껌뻑 뜨고 있는 그런 판국은 아닙니다. 근데 이미 죽고 하는 것이 지방들마다 한두 명씩 나온다지 않습니까. 이건 사실이고. (정말) 굶어죽었다는 게 아니고 간단한 병에도 그만 이기지 못해서, 결국 먹지 못해서 면역이 약해서 죽은 겁니다.”
평양의 사정은 그나마 나을까? ‘중간간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금년 초부터 평양시만은 배급보장에 대한 국방위원회 명령이라면 어떨는지, 그런 말씀이 3차, 4차에 걸쳐 있었습니다. 안간힘을 써서라도 한두 차는 보장했는데 역시 보장 못하고 있습니다. 그 정도만 봐도 얼마나 낟알이 긴장한가(부족한가) 알 겁니다. …평남도, 황해도, 함흥 정도부터는 정말 한심합니다, 한심합니다. 아마 전 조선 상황이 다 같습니다. 그 형편에 이러냐 저러냐 묻기에 앞서 정말 급합니다. 이것밖에 더 이상 말할 수 없습니다. 그 외에 뭐가 더 필요한가요.” 그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함경북도 온성군 출신의 18살 처녀는 화면 속에서 울먹였다. “대부분 어머니들은 아무래도 제 자식을 진짜 떼간다(데려간다) 하면 다 좋아할 부모들은 없잖습니까. 말로는 그래도, 중국 가서 너네라도 잘살면 바랄 게 없다고 그렇게 말한다 말입니다. 여기서는 살아야 뻔하다 죽을 때까지, 지금보다 더하면 더했지 잘 살 날은 없다. 그래서 가라가라, 그 말을 들으면 서운하죠. 그래도 내가 없으면 집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으로 왔다 말입니다. 그래 왔는데….”
올 3월 그렇게 고향과 부모를 떠났단다. 배가 고파서. 떨리는 목소리는 그는 말을 이었다. “2003년부터는 비배관리(비료·거름) 주었다 말입니다. 2006년까지 비배관리를 주었는데 그때 사정이 조금이 나아졌다 말입니다. 근데 생활이 조금 나섰다는 게 조금이라도 굶은 사람들이 적어지고 도적들이 적어지고. 근데 2007년부터는 비배관리를 안 주었으니까, 그때부터 사람들이 타락하고. 사람들이 딴딴한 시멘트 바닥을 뒤집어서 곽지(갈퀴)로도 뒤져먹고 강냉이도 심어먹고. 그것도 8월이면 이삭이 조금 달린다 말입니다. 그거 그저 갈아서 먹고. 그때는 감자 있으니까, 한 끼 먹는데 다섯 식구면 감자 5알 정도와 이삭 강냉이 하나 넣는다 말입니다. 하나를 갈아서 대패처럼 갈아먹고 그래서 죽 쒀먹고.”
그는 “올해는 그 정도도 없어 엄청 바쁘다”고 했다. “2월 음력설 전부터 식량이 다 떨어졌다”고도 했다. “산에는 사람들이 영 많습니다. 풀 뜯어 먹느라고. 산에 가서 이런 나시(냉이)라든가 돼지들이 먹는 능쟁이(명아주) 풀이 있습니다. 많이 먹으면 돼지들도 설사한다 말입니다. 그런 풀도 다 뜯어먹고 죽도 해먹고 그렇게 쒀먹고 설사병으로 죽는 사람도 있고, 먹지 못해 영양실조로 죽는 사람도 있고….” 그가 떠나온 지 벌써 3개월이다. 상황은 더욱 ‘바빠졌을’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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