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행정부-의회-이익단체-축산업자 똘똘 뭉쳐 협상에 압력 행사
▣ 최성진 기자csj@hani.co.kr
[미국산 쇠고기 파문]
한-미 쇠고기 협상에서 이명박 정부가 오역 파동 등 아마추어리즘의 진수를 보여줬다면, 미국은 정반대였다. 특히 카길과 타이슨푸드 등 미국의 초국적 농축산기업이 조지 부시 행정부나 미 의회의 극소수 핵심 인사를 움직여 자신들의 입장을 완벽하게 관철해내는 과정을 주목할 만하다. ‘부시 행정부-미 의회-미국축산육우협회(NCBA) 등 이익단체-축산업자’로 이어지는 ‘쇠고기 커넥션’에 우리 정부는 속수무책이었다.
‘쇠고기 커넥션’의 핵심 연결고리는 이른바 ‘회전문’(revolving door) 인사다. 대형 축산업자가 버젓이 부시 행정부의 고위직을 맡고, 여기서 물러나면 다시 축산 관련 이익단체 임원으로 옮겨가는 식이다. 이번 한-미 쇠고기 협상의 막후에서 활발하게 활동한 척 램버트 미 농무부 차관보와 칼로스 구티에레스 상무장관이 대표적이다.
핵심 연결고리, 회전문 인사
램버트 차관보는 한-미 쇠고기 협상 과정에서 우리 정부를 지속적으로 압박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2006년 9월에는 주미 한국대사관에 보내는 서한을 통해 쇠고기 수입 조건을 완화해달라며 ‘생떼’를 썼던 사실이 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의 폭로로 드러나기도 했다. 그는 NCBA에서 15년 이상 카길과 타이슨푸드 등 거대 축산기업의 이해를 적극적으로 대변해왔던 인물이다. 미국의 대표적 축산지대(이른바 비프 벨트·beef belt)로 꼽히는 캔자스주 출신이기도 하다.
5월15일 서울을 방문한 구티에레스 상무장관도 주목 대상이다. 쇠고기 재협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잔뜩 높아진 시점에 한국을 찾은 그는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쇠고기) 재협상이 필요하다고 보지 않는다”며 못박았다. 그는 국내에도 잘 알려진 미국의 대형 농축산기업 켈로그에서 최고경영자(CEO)를 지냈다.
윤병선 건국대 교수(경제학)는 “미 정부가 축산기업의 이해를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이유는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을 확신하기 때문이 아니다”라며 “이는 회전문 인사로 불리는 미 정부와 산업계의 유착이 그만큼 뿌리 깊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부시 행정부뿐 아니라 미 의회에도 축산기업의 이익을 적극적으로 대변하는 인물들이 있다. 미 의회에 미치는 이들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대표적인 인물이 미국 민주당의 맥스 보커스 상원의원이다.
상원 재무위원장을 맡고 있는 보커스 의원은 2007년 5월 국제수역사무국(OIE)이 미국을 ‘광우병 위험통제국’으로 판정하자마자, “한국이 미국산 쇠고기에 대해 시장을 완전히 개방하지 않으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합의문을 상원에 상정하지 않을 것”이라며 우리 정부를 압박했다. 2006년 12월 제5차 한-미 FTA 장소를 자신의 고향인 몬태나주 빅스카이로 결정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한 인물도 그였다. 우리 쪽 협상단 앞에서 한국말로 “맛있습니다”를 연발하며 천연덕스럽게 몬태나산 쇠고기를 씹던 그의 사진은 국내 언론에도 많이 소개됐다.
몬태나는 앞서 소개한 캔자스와 텍사스, 캘리포니아, 사우스다코타, 아이오와 등과 함께 미국의 대표적 ‘비프 벨트’로 꼽히는 지역이다. 이들 비프 벨트의 경제권은 카길과 타이슨푸드 등 초국적 농축산기업이 실질적으로 장악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비프 벨트 출신 정치인들
2006년 8월 노무현 당시 대통령에게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즉각 재개하지 않을 경우 한-미 FTA가 무산될 것이라는 ‘경고’ 서한을 보냈던 민주당의 톰 하킨(아이오와) 등 31명의 상원의원 가운데 상당수가 비프 벨트 출신이었다. 하킨 의원은 현재 상원 농업위원장을 맡고 있다. 최근까지 연일 미국산 쇠고기 전면 개방을 강조하고 있는 공화당의 중진 샘 브라운백 상원의원(캔자스)도 역시 비프 벨트의 이해를 앞장서 대변하고 있다.
비프 벨트와 정치의 상관관계를 말할 때 빠질 수 없는 인물이 바로 텍사스 출신인 부시 대통령이다. 2000년과 2004년 대선에서 그는 이 지역에서 대부분 상대 후보에게 크게 앞섰다. 특히 2000년 대선에서 이 지역 축산업자들이 기부한 470만달러의 선거자금 가운데 79%가 그에게 쏠렸다. 2004년 대선 때는 80%를 부시 대통령이 가져갔다.
미국 공영방송 〈PBS〉의 스티브 존슨 프로듀서는 이란 프로그램에서 “미국 의회의 입법 과정에서 카길 등 축산기업이 보여주는 정치적 파워는 막강하다”며 “자신들의 이익에 직접적 영향을 줄 수 있는 몇몇 핵심 의원들을 대상으로 선거자금을 제공하는 등의 방식으로 로비가 집중되고 있다”고 말했다.
카길이나 타이슨푸드 등 초국적 농축산기업과 정치인들을 맺어주는 세력은 NCBA와 미국식육협회(AMI), 미국육류수출협회(USMEF) 등 이익단체다. 명칭이 ‘협회’일 뿐이지, 이들의 주된 업무는 부시 행정부나 미 의회, 더 나아가 수출 대상국에 압력을 행사하는 역할이다. 한-미 쇠고기 협상 과정에서도 이들은 막후에서 협상을 조율하거나 우리 정부를 전면에서 압박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줬다.
2007년 3월 한-미 FTA 막바지 협상에서 이들의 영향력이 그대로 드러났다. 미국 쪽 협상단과 함께 들어온 사람은 패트릭 보일 AMI 회장과 제임스 호지스 AMI 재단 대표였다. 당시 미국 협상단은 우리 쪽이 협상안을 제시하면 바로 옆방에 대기하고 있던 이들에게 달려가서 내용을 함께 분석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보일 회장은 AMI 회장을 맡기 직전까지 미 농무부와 무역대표부(USTR) 고위직을 두루 거쳤고, 축산기업 출신인 호지스 대표 역시 농무부 식품안전 분야에서 일했다.
카길과 타이슨푸드 등 축산기업이 주 회원으로 참여하는 NCBA도 막강한 로비력을 지니고 있다. 2007년 3월 이 협회는 미국 워싱턴에서 개최한 연례총회에 부시 대통령과 요한슨 당시 농무장관을 불렀다. 이 자리에서 부시 대통령은 한국의 쇠고기 시장을 반드시 열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일개 ‘협회’가 미국 대통령과 농무장관을 한자리에 불러 자신들의 이익을 관철해낸 것이다. 지난 2월15일 이명박 대통령 취임식장에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나타났던 앤디 그로세타가 바로 NCBA 회장이다.
이들의 로비력이나 정보력이 한국 정부보다 ‘윗길’이라는 사실은 최근 서갑원 통합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자료를 통해 극명하게 드러났다. 2월28일치 NCBA 홈페이지에 따르면, 그로세타 회장은 이미 이때 이명박 대통령이 4월에 미국을 방문할 것이라는 소식을 알리고 있다. 국내에서는 대외비 사항이었던 대통령의 외국 방문 일정이 한갓 외국의 로비단체 홈페이지에 버젓이 실린 것이다.
앤디 그로세타는 왜 취임식에 왔나
이 단체 홈페이지에는 한국이 조만간 미국산 쇠고기 개방폭을 확대할 것이라는 그로세타 회장의 발언도 소개돼 있다. 야당 일각에서 한-미 사이에 쇠고기 개방 이면 합의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면 합의 목적이 아니었다면 외국의 이익단체 임원이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경위도 설명되지 않는다.
한-미 FTA 특별위원회 위원 자격으로 2007년 7월 미국 워싱턴을 방문했던 한 의원은 “어디에 가서 누구를 만나든, 축산기업 및 관련 단체 로비스트들이 어떻게 알았는지 자연스럽게 합석을 청해서 미국산 쇠고기에 대해 로비를 펼치곤 했다”며 “이들의 로비력과 정보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고 전했다.
미국의 쇠고기 커넥션에서 가장 정점에 있는 집단은 물론 카길과 타이슨푸드, 스위프트(표 참조) 등 초국적 농축산 복합기업들이다. 박상표 ‘국민건강을위한수의사연대’ 편집국장은 “카길 투자서비스 사장을 지낸 대니얼 암스튜츠는 1980년대 우루과이라운드에서 미 농업협상단을 직접 이끌었고, 카길의 최고경영자 미세크는 클린턴 정부에서 대통령수출자문단에 임명되기도 했다”며 “이처럼 막강한 영향력을 과시하는 초국적 농축산기업은 미국 정부를 통해 우리 쪽에 다양한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산 쇠고기가 국내에 들어올 경우 수입 쇠고기 시장의 대부분도 카길 등 상위 3개 업체가 점유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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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행정부-의회-이익단체-축산업자’로 이어지는 미국의 ‘쇠고기 커넥션’이 미국 내에서 갖는 영향력은 과연 어느 정도일까? 미 의회가 2002년 입법화한 식품 원산지의무표시제(COOL)가 지난 6년여 동안 표류를 거듭한 과정은 이들의 막강한 힘을 실증해준다.
미 가 지난해 7월 내놓은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미 국민 10명 중 9명이 원산지의무표시제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의 92%가 “매장에서 구매하는 식품의 원산지를 알고 싶다”고 답한 게다. 애초 미 의회가 2002 회계연도 농업부문 예산안(Farm Bill)에서 원산지의무표시제 실행 시점으로 못박은 것은 2004년 9월 말이다. 하지만 석연찮은 이유로 시행 시점이 2006년 9월로 연기되더니, 다시 2008년으로 늦춰졌다. 이유가 뭘까? 미 시민단체 ‘퍼블릭시티즌’은 지난 2005년 9월 펴낸 관련 보고서에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제도 도입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직후부터 축산·육우협회, 월마트, 카길, 타이슨푸드, 아메리칸육류연구소 등 21개 육우·축산단체가 원산지표시제에 반대해 로비를 시작했다. 이들은 2000년부터 2004년까지 적어도 160명의 로비스트를 동원해 약 2920만달러의 자금을 뿌렸다. 당시 로비에 뛰어든 이들 가운데 45%가량은 연방정부 고위직 출신이고, 10명 이상이 농무부나 의회 관련 위원회에서 경력을 쌓았다. 이들 중 3명은 원산지표지제 도입 찬성단체의 로비스트로 활동한 경력도 있다.”
특히 2002년 입법 직전엔 ‘거물급’ 인사들이 대거 로비에 투입됐다. 앤 비너먼·마이크 요한슨 등 2명의 농무장관 아래에서 비서실장을 지낸 미국축산육우협회(NCBA) 사무총장 출신인 데일 무어, 현 농무부 차관보인 NCBA 수석 경제학자 출신의 척 램버트, 농무부 의회담당관을 지낸 메리 워터스 등이 대표적이다. 이 과정에서 막대한 로비자금이 ‘선거기부금’ 명목으로 뿌려지기도 했다. 부시 대통령도 두 차례 대선에서 카길과 샘 케인 비프, 월마트 등에서 상당액의 선거자금을 기부받았다고 퍼블릭시티즌은 지적한다.
원산지표시제가 표류하는 사이 업계는 ‘자발적 원산지표시제’란 카드를 들고 나왔다. 정부의 규제가 아니더라도 필요하다면 업계가 자율적으로 원산지를 표시할 것이란 게다. 이에 발맞추기라도 하듯 미 농무부는 “제도 도입 첫해만 업계가 부담해야 할 추가비용이 39억달러에 이를 것이며, 이후에도 제도 유지를 위해 해마다 4억5800만달러가 소용될 것”이라며 부정적 반응을 내놓은 바 있다.
두 차례나 연기된 원산지의무표시제 시행 시점은 오는 10월1일로 다가왔다. 미 의회는 지난 5월14일 통과시킨 2008 회계연도 농업부문 예산안에서 원산지표시제 시행을 새삼 강조했다. 이번엔 가능할까? 아직은 알 수 없다. 농업부문 예산안 심의가 한창이던 지난 2월 콜린 페터슨 미 하원 농무위원장은 과 한 인터뷰에서 “농무부가 실무적인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에 제도 시행은 일러야 2009년 1월에나 가능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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