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질적 주연은 대통합민주신당 ‘찬성·기권’ 21표… 국민행동 “앞으로 평화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말라”
▣ 류이근 기자ryuyigeun@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또 연장됐다. 이제 네 번째다. 정청래 대통합민주신당 의원은 힘겹게 목발을 짚고 국회 본회의장 표결에 참여했다. 그도 반대표를 던졌지만 막아낼 순 없었다.
2008년 새해를 사흘 앞둔 지난 12월28일. ‘국군부대의 이라크 파견연장 및 임무종결계획 동의안’은 재석 의원 256명 가운데 찬성 146명, 반대 104명, 기권 6명으로 국회를 통과했다. 이로써 2007년 말까지 철군하겠다는 국회와 정부의 대국민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이날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는 논평을 내어 “대국민 약속이라도 언제든지 파기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정부와 국회 앞에 우리는 깊은 분노와 함께 참담한 심정을 감출 수 없다”며 “국회는 스스로 정부의 거수기에 불과하며 미국의 요구에 한 발짝도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시켜줬다”고 밝혔다.
김명자, 김종률, 박상돈, 변재일, 서재관…
파병 연장 동의안 통과를 숫자로만 보면 주연은 한나라당이다. 고진화 의원만이 반대표를 던졌을 뿐 나머지 참석 의원들은 모두 찬성표였다. 한나라당의 당론은 ‘권고적 찬성’이었다. 하지만 실질적인 주연은 찬성 또는 기권 표를 던진 21명의 신당 의원들이다. 141석을 지닌 신당은 ‘연장동의안 반대’를 당론으로 정했다. 역시 ‘철군’을 당론으로 못박은 민주노동당 의원 9명도 있었다. 연장동의안을 막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막을 수 있었다. 본회의 표결에 앞서 신당의 김효석 원내대표는 “정동영 후보도 대선 기간 동안에 국민들에게 철군을 약속했다. 당론을 유지하기로 결정했으므로, 소신과 다른 의원들도 따라달라”고 말했다.
하지만 김명자, 김종률, 박상돈, 변재일, 서재관, 심재덕, 안영근, 오제세, 유재건, 유필우, 이시종, 정의용, 조경태, 조성태, 채수찬, 홍창선 의원 등 16명은 찬성표를 던졌다. 대부분(16명 중 13명) 2004년 말 열린우리당 내 조직됐던 ‘안개모’(안정적 개혁을 위한 의원모임) 출신들로, 당내 보수파 의원들로 분류된다. 결과적으로 이들은 소속 정당보다 한나라당과 ‘궁합’이 더 잘 맞았다. 파병반대국민행동은 “‘강제적 당론’은 간데없이 소속 의원들은 파병 연장의 충성스러운 거수기 역할을 했다. 전쟁 지원 앞에서 ‘분열’한 통합신당은 당명을 바꾸고, 앞으로 ‘평화’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말라”고 비판했다.
파병 연장 동의안의 통과는 어느 정도 예고됐다. 정부는 국민을 상대로 약속한 2007년 6월까지 자이툰 부대의 임무종결 계획서를 국회에 제출하지 않았다. 대신에 자이툰 부대의 이라크 주둔을 1년 더 연장하는 파병 연장안을 2007년 10월30일 국무회의를 통과시킨 뒤 국회에 제출했다. 이번엔 국회 차례였다. 본회의 표결에 하루 앞서 국회 국방위원회는 2006년 국민과 한 약속을 어기고 동의안을 통과시켰다. 신당의 국방위 소속 위원 중 김명자, 유재건, 안영근, 조성태 의원 등 4명은 두 달 전 이미 정해진 당론과 달리 국방위 표결에 찬성표를 던졌다. 국방위엔 여야가 없었다. 파병안을 놓고 친국방파인지 아닌지의 구분이 있을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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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회의 표결이 있기 전 국방부는 전날 급히 제작한 전단을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 뿌렸다. ‘이라크 파병 연장 동의안 국익 차원에서 반드시 통과되어야 합니다’라는 제목에, “자이툰 장병들이 모래사막 위에 뿌린 씨앗은 한-이라크 경제협력이라는 또 다른 형태로 싹이 트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정부의 대국회 파병 연장 호소였다. 몇 시간 뒤 열린 신당의 의원총회에서 김효석 원내대표는 “지난 10월24일 이라크 철군을 당론으로 결정했는데, 정부가 지난해 말에 연장동의안을 내면서 2007년 말에는 철군하겠다고 국민에게 약속했으므로 그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신당의 ‘이탈표’를 향한 호소였다. 본회의장에서 찬성표를 던진 16명과 기권을 행사한 5명의 신당 의원들은 결국 국방부의 호소에 움직였다.
현재 잔여 병력은 650명
당론과 상관없이 2004년부터 줄곧 파병 연장 동의안에 찬성표를 던져왔던 조성태 의원은 과의 통화에서 파병 연장 이유로 세 가지를 꼽았다. ① 부시 미 대통령이 노무현 대통령한테 파병 연장을 요청한 만큼 한-미 동맹을 고려해 1년 더 연장해야 한다. ② 이라크 총리가 유엔 안보리에 이라크에 파병된 다국적군이 1년 더 주둔해달라고 요청했다. ③ 2006년까지 이라크에 진출한 한국 기업의 재건사업 수주 실적이 7천만~8천만달러에 불과했지만, 2007년엔 3억5천만달러로 급격히 늘어난 만큼 앞으로 파병을 1년 더 연장하게 되면 큰 경제적 실익이 있을 것이다. 그는 “2008년 말 자이툰 부대의 철군도 상황에 따라서 다르고, 그 상황이 어떻게 바뀔진 아무도 모른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20일 600여 명의 자이툰 부대원이 귀국하면서 현재 잔여 병력은 650명으로 줄었다. 국회는 파병을 한시적으로 1년 더 연장하는 조건으로 연장동의안을 다시 통과시켜줬다. 하지만 이젠 누구도 정부와 국회의 2007년 약속이 지켜질 거라고 믿을 수 없게 됐다.
많은 이들이 파병 연장 동의안이 처리될 걸 예상했던 탓일까? 아니면 반대했던 국민이나 정치세력, 시민사회단체들도 이젠 지친 탓일까? 비판의 외침은 크게 들리지 않았다. 언론은 진보, 보수 가릴 것 없이 그들의 목소리를 거의 다루지 않았다. ‘조용한 침묵’이 다수였다. 약속을 저버린 정부와 국회에 대한민국 국민들은 관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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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의 자이툰 파병 및 연장 동의안에 다섯 번 다 ‘반대표’를 던진 국회의원은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힌다. 그중 한 명이 임종석 대통합민주신당 의원이다. 임 의원은 2006년에 이어 지난해에도 대통합민주신당(옛 열린우리당)이 논란 끝에 철군을 당론으로 정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그는 2006년 정부가 자이툰 부대의 임무종결계획서를 지난해 6월까지 제출한 뒤 연말까지 철군한다는 조건부 연장동의안 처리안을 내놓는 등 의회에서 파병 철회에 앞장서왔다. 은 파병연장동의안이 처리된 지난 12월28일 그와 짤막한 전화 인터뷰를 했다.
정부나 국회가 약속과 달리 또 파병 연장 동의안을 처리했다.
=(긴 한숨을 내쉬며) 근본적으로 왜 한국이 미국이나 안보 문제에선 합리적인 상식선에 서 있지 못한지 의문이다. 한국의 대통합민주신당이라면 국제 문제에서 미국 민주당의 입장 정도는 보여야 하는데, 더 오른쪽에 서 있으니 답답하다. 우리 국민이 미국 국민보다 파병 찬성률이 더 높은 것도 그렇고….
2008년엔 철군이 될 거라고 보나.
=정부가 그 약속도 지키지 못할 걸로 본다. 그나마 2007년이 우리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때였다. 2008년엔 미국 대선으로 이라크 파병 문제가 훨씬 더 민감한 정치적 주제로 떠오를 것이다. 몇 번의 파병 연장을 통해서 한-미 동맹을 충분히 고려했고, 평화재건 활동도 했다는 평가를 받고 물러날 수 있었는데 기회를 놓쳤다. 내가 어떻게든 2007년 말에 철군하도록 요구했던 건 이명박 후보가 당선될 가능성이 높아 보였기 때문이다. 이 당선자는 미국이 전쟁 실패를 선언하고 전세계의 비아냥을 들으면서 철군할 때가 돼서야, 같이 철군할 가능성이 높다. 이 당선자는 후보 시절 “자이툰 부대는 기름밭을 깔고 앉아 있다”고 말한 분이다.
파병 연장 동의안에 반대한 이유는?
=국민과의 약속이었다. 정부는 국민과의 약속 파기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지금 철군한다고 하더라도 철군을 완료하려면 3~4개월 걸린다. 몇 달 더 있다가 연말에 철군하는 것과 얼마나 큰 차이가 있나. 그 기간에 주둔해서 얻는 것보다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는 게 훨씬 가치가 크다. 이라크 상황도 전혀 호전되지 않았다. 파병 연장을 찬성하는 쪽에선 자원 개발 참여에 대한 기대감이 큰 거 같은데, 쿠르드 정부와의 관계만을 믿고 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자원을 놓고 쿠르드 정부와 중앙정부가 충돌하고 있다. 이라크 중앙정부가 한국이 쿠르드 정부와 자원 개발을 추진한 걸 놓고 한국에 석유 수출을 중단할 수도 있다고 경고한 걸 흘려들어선 안 된다. 또 파병을 안 한 중국과 프랑스가 이라크 자원 개발에 참여한 것을 보더라도 파병과 자원 개발 참여를 꼭 연관시키는 건 무리다. 지난해부터 한국 업체의 재건 사업 수주액이 크게 늘었다는 얘기도 사실과 다른 통계다. 15건의 수주실적 가운데 12건은 한국국제협력단(KOICA)이 국내 기업에 발주한 거다. 순수한 수주는 거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