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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법에 분노한 네티즌] 선거법도 ‘이명박 대 반이명박’

등록 2007-11-30 00:00 수정 2020-05-03 04:25

정동영·권영길·문국현·이회창 ‘선거법 개정 찬성’ 이명박 ‘무응답’

▣ 최성진 기자csj@hani.co.kr

선거법은 ‘게임의 룰’과 비슷한 성격을 띤다. 어느 한쪽이 이득을 보면 다른 한쪽은 손해를 봐야 하는 경우가 자주 생긴다. 선거법을 뜯어고치거나, 최소한 단속 기준만이라도 합리적으로 조정해달라고 하는 시민사회와 누리꾼들의 요구에 대한 각 대선 주자들의 입장도 당연히 엇갈린다.

은 11월21일 각 후보 진영에 이메일을 보냈다. 시민사회의 요구에 대한 입장을 밝혀달라는 질의서였다. 결론부터 밝히면 ‘이명박 대 반이명박’ 구도는 선거법 개정에 대한 찬반을 기준으로 하더라도 여전히 유효했다. 정동영·권영길·문국현·이회창 후보는 찬성을, 이명박 후보는 무응답을 택했다.

“‘개장로·땅바기’ 식으로 표현해서야”

우선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와 권영길 민주노동당 후보가 짤막한 답장을 보내왔다. 시민사회와 누리꾼들의 요구에 전적으로 찬성한다는 답변이었다. 문국현 창조한국당 후보는 가장 적극적인 의견을 냈다. 문 후보는 “선관위와 경찰의 무차별 단속은 반인권적이고 반민주적 법 집행”이라고 규정한 뒤 “무분별한 단속과 자의적 법 집행은 즉각 중단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회창 무소속 후보 쪽의 답변에는 고민의 흔적이 묻어 있었다. 이 후보는 “그동안 각 정당이 ‘알바’를 고용해 허위 댓글을 다는 등 여론 조작을 시도하면서 인터넷 공간의 순수성을 오염시킨 것이 규제를 자초했다”면서도 “단순한 의견 개진이나 의사표현조차 선거법 위반으로 규정해 누리꾼의 활동과 국민의 알 권리를 제한하는 선거법의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후보는 가장 문제가 된 선거법 93조에 대해 ‘악법’이라는 표현도 썼다.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는 답변이 없었다. 몇 차례 답변을 요구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무응답으로 처리해도 상관없다”는 것이었다. 다만 이명박 후보 선거대책위원회의 진성호 뉴미디어팀장은 과의 전화통화에서 “현행 선거법에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는 요소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왕 만들어진 법이라면 최대한 공정하게 집행돼야 한다”며 “이명박 후보를 ‘개장로’ ‘땅바기’ 등으로 표현하는 식의 댓글 문화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명박 대 반이명박’ 구도가 형성된 이유는 간단하다. ‘이명박’과 ‘이명박이 아닌 후보’들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이다. 최근 선거법과 관련해 문제가 된 게시물의 대부분은 이명박 후보와 관련된 것들이었다.

한나라당이 네이버를 평정했다고?

대표적 사례가 최근 포털 사이트 다음의 아고라 게시판에 올라온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 자녀 위장취업에 대해 국세청은 세무조사하라’는 청원 글이었다. 1만1700명이 서명할 정도로 화제를 모은 이 글은 선거법 위반이라는 선관위의 지적 때문에 돌연 삭제되고 말았다.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블로그에 올라왔던 BBK 사건 해설 동영상도 마찬가지였다.

각종 도덕성 논란에 시달리고 있던 이명박 후보와 한나라당은 선관위의 조치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반면 이 후보에 대한 공세를 강화해야 할 형편인 나머지 네 후보는 누리꾼들을 주눅들게 만드는 선관위와 경찰의 행태가 원망스러울 수밖에 없다.

특히 ‘반이명박’ 전선의 중심에 있는 정동영, 문국현 후보 쪽에서는 선관위와 경찰의 ‘의도’를 의심하고 있다. 문국현 후보 쪽 핵심관계자는 “선관위가 한나라당의 눈치 보기를 하고 있다”며 “2002년 대선 패배의 원인을 인터넷에 있다고 판단한 한나라당이 지난 5년간 인터넷에서의 개혁 진영 유권자들의 결집을 막기 위해 집요하게 작업을 해왔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한나라당이 전개해온 ‘작업의 증거’로 10월17일 선관위 국정감사에서 나온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의 발언을 지목했다. 당시 정 의원은 “대선을 앞두고 블로그 쪽에서 선거법 위반 사례가 가장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며 “악성 블로거를 없애려면 포털처럼 선거 검증 시스템을 둬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9월에는 전여옥 한나라당 의원이 포털 사이트 네이버를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냈다. 이처럼 선관위와 포털을 향해 한나라당이 유·무형의 압박을 집요하게 진행해왔다는 것이 문국현 후보 쪽 시각이다. 문 후보 선대위의 김갑수 사이버 대변인은 “최근 이명박 후보 쪽 진성호 뉴미디어팀장이 한 ‘(포털 사이트) 네이버는 평정됐다’는 발언은 한나라당이 지속적으로 포털에 압력을 행사해왔다는 또 다른 증거”라고 주장했다.

정동영 후보 쪽의 시각도 다르지 않다. 선거법을 둘러싼 최근의 논란은 선관위가 선거법을 경직되게 해석하는 데 1차적 원인이 있지만, 그 배경에는 한나라당의 영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상경 대통합민주신당 의원은 “아직 처리되지는 않았지만, 한나라당이 지난 8월 내놓은 선거법 개정안을 보면 누리꾼의 의사표현을 포괄적으로 규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며 “선관위로서는 한나라당의 이같은 움직임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손가락질 받는 선관위, 원인은 ‘잣대’

‘반이명박’ 후보들의 주장에 대해 이명박 후보 쪽에서는 정반대의 주장으로 맞서고 있다. 포털 사이트 다음 아고라 게시판에 올라온 이명박 후보 자녀의 위장취업과 관련한 세무조사 청원 글이나 BBK 사건 해설 동영상에는 당연히 선거법 위반의 요소가 있다는 것이 이 후보 쪽의 판단이다. 선관위가 한나라당의 눈치를 본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누가 여당이고 누가 야당이냐’는 논리로 맞서고 있다.

오히려 선관위가 앞서 소개한 몇몇 사례를 제외하면, 비우호적인 자세로 일관했다는 것이 이 후보 쪽의 주장이다. 이 후보 선대위나 팬클럽 등에서 신고하는 민원에 대해서는 ‘일부러’ 처리를 늦게 하는 식으로 범여권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것이다. 경찰이나 검찰도 마찬가지라고 한나라당은 보고 있다.

이 후보 쪽 진성호 뉴미디어팀장은 “이 후보를 비방하는 댓글의 수준을 보면 네거티브 정도가 아니라 인격 모독으로 볼 수밖에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라며 “어차피 대선 전까지 선거법을 개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봤을 때, 적어도 법 적용을 공정하게 하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곤란하게 된 쪽은 ‘이명박 대 반이명박’ 구도의 사이에 낀 선관위다. 양쪽 모두로부터 ‘선관위가 반대쪽의 눈치를 보고 있다’며 손가락질을 받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물론 선관위를 겨냥한 정치권의 손가락질은 오해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 아니면 정치적 공세에 불과한 것일 수도 있다. 아니기를 바라지만, 실제로 선관위가 특정 정치 세력의 눈치를 본 결과일 가능성도 있다.

오해이든 사실이든, 선관위가 손가락질을 받는 원인의 상당 부분은 선관위의 ‘잣대’가 애매모호했기 때문이다. 선거법을 개정하든지 아니면 선거법 위반의 기준을 명쾌하게 제시해달라는 시민사회의 요구에 대해 선관위가 어떻게 대답할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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