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설립부터 재재반박까지… 명함·정관·하나은행 계약서 등 증거 나와, 앞으로 자금 흐름 밝혀져야
▣ 특별취재팀
▣ 사진 이종찬 기자rhee@hani.co.kr
국회 국정감사를 계기로 다시 불붙고 있는 ‘BBK 사건’ 의혹은 복잡하게 꼬인 실타래 같다.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후보를 중심으로 한 이 의혹 드라마에는 김경준(한때 이명박 후보의 동업자·미국 LA 구치소 수감), 에리카 김(김경준의 누나로 이명박과 친분 관계), 김백준(이명박 측근), 이상은(이명박 큰형), 김재정(이명박 처남), 이진영(이명박 비서 출신) 등 숱한 주·조연급 인물들이 등장한다.
주가조작에 동원된 LKe뱅크, BBK 계좌
일반인들에겐 낯선 사이버 금융회사와 역외펀드, 페이퍼컴퍼니 따위가 거론되는 것은 드라마의 복잡성을 더한다. 유력 대선 후보와 연관된 사안이라 금방 ‘정치적 쟁점’으로 불거지고, 잇단 의혹 제기와 반박에 이은 재반박, 재재반박이 꼬리를 문다. 확인된 사실과 미확인된 주장이 서로 얽히고설키면서, 사실과 주장을 가려내기 쉽지 않은 혼돈지경이다.
정치적 공방 요소를 최대한 배제하고 사건을 건조하게 재구성하면 대략 이렇다.
‘미국 국적자인 김경준은 1999년 4월 BBK투자자문(주)을 설립해 그해 11월 금융감독원에 투자자문업으로 등록한다. 투자자문업 등록에 즈음해 개설한 2개의 역외펀드 MAF(Plc·공개주식회사), MAF(Ltd·유한회사)에 국내 투자자들의 자금 645억원을 끌어들였다. 실적은 그리 좋지 못했던지 투자 유치금을 제때 돌려주지 못하고 BBK투자자문은 문서 위·변조로 투자자문업 등록을 취소당한다.
고전하던 김경준은 2001년 4월 2개 역외펀드의 자금 일부로 국내 창업투자 회사인 뉴비전캐피탈(주)을 인수한 뒤 상호를 (주)옵셔널벤처스코리아로 바꾸고 대표로 취임했다. 김경준은 옵셔널벤처스코리아가 외국인들의 투자를 받았다는 소문을 퍼뜨려 주가를 400%까지 끌어올렸다는 혐의로 2002년 4월 금감원에 의해 검찰에 고발당한다. 이 사건과 관련해 소액투자자 5200여 명이 600억원대의 손실을 입었다. 김경준은 그에 앞서 2001년 12월 미국으로 도피했다. 도피 과정에서 옵셔널벤처스코리아 자금 384억원을 횡령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이런 혐의에 대해 김경준은 이명박 후보가 주도한 것이라고 부인하고 있으며, 이 후보 쪽은 김경준의 책임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논란의 핵심은 이 후보가 옵셔널벤처스코리아 주가조작에 관여돼 있느냐 없느냐이다. 이 논란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주가조작이 이뤄진 시기(2000년 12월~2002년 1월)에 동원된 수십 개 계좌 가운데 한 줄기는 ‘BBK 계좌’, 또 하나의 줄기는 ‘LKe뱅크 계좌’이다. LKe뱅크 계좌를 통한 주가조작 부분은 상대적으로 덜 복잡하다. 이명박 후보 쪽에서 주가조작은 김경준의 단독 범행이며 이 후보는 몰랐다고 주장할 뿐, LKe뱅크의 공동 대표였다는 사실 자체는 인정한다. 회사 계좌가 주가조작에 동원된 사실을 대표이사 회장이던 그가 몰랐을 리 없다는, 주가조작 연루 의혹을 온전히 떨치지 못하는 배경이다. 이 대목은 668호(2007년 7월17일치)에서 이미 다룬 바 있다.
창업 뒤 복귀 인터뷰
LKe뱅크와 달리 BBK투자자문을 둘러싸고는 이명박 후보와 관련이 있느냐 없느냐는 기초사실 자체가 논란거리다. BBK는 조세회피 지역에 역외펀드인 MAF를 설립한 통로이다. 더욱이 미국에 설립한 페이퍼컴퍼니(서류상 회사) ‘AM파파스’를 통한 돈세탁 고리로 이어진다는 의혹을 낳고 있어 관련성 자체가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 이 후보 처지에선, LKe뱅크와 맺은 관련성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아주 고약한 사안이다. 사실, BBK 사건을 둘러싼 공방의 핵심은 결국 이명박 후보와 BBK가 어떤 관련을 맺고 있었느냐는 점이다. 이명박 후보를 상대로 제기되는 새로운 의혹은 모두 BBK 관련성을 보여주는 물증을 제시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게 그 때문이다.
흥미로운 점은, BBK와 이명박 후보의 관련성을 보여주는 정황은 이미 많이 제시돼 있다는 사실이다. ‘이명박 대표이사 회장’과 ‘BBK투자자문’이 나란히 적혀 있는 명함과, BBK투자자문의 이명박 의결권을 명시한 정관이 남아 있으며, 을 비롯한 많은 언론매체에서 이를 확보하고 있다. BBK투자자문을 자매회사로 소개한 LKe뱅크 브로슈어(홍보 소책자)의 존재도 웬만큼 알려져 있다. 여기에도 이명박 후보는 대표이사 회장의 직함을 달고 김경준 대표이사 사장과 나란히 등장한다. LKe뱅크와 BBK투자자문을 창업해 증권사 대표로 복귀한 것으로 소개된 인터뷰 기사( 2000년 10월16일치, 2001년 3월호 등)도 여럿 있다.
이런 정황 증거들에 대해 이 후보 쪽은 부인으로 일관해왔다. 정관과 명함은 위조되거나 사용된 적이 없는 것이고, 언론 인터뷰 기사는 오보라고 주장해왔다. 브로슈어의 존재에 대해선 가짜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고, 좀 다른 뉘앙스의 발언도 있어 아직 분명치 않다.
가 입수해 10월26일치에 보도한 MAF 펀드(Ltd) 소개 브로슈어는 이명박과 BBK투자자문의 관련성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새로운 물증으로 여겨진다. 이는 이 이미 보도한 ‘LKe뱅크코리아’의 브로슈어와는 다른 것이다. MAF 펀드를 독립된 회사로 소개한 이 브로슈어에 이명박은 회장으로 소개돼 있으며 김경준은 사장으로 올라 있다. 또 BBK투자자문은 ‘MAF 펀드의 관리·운용’을 맡는 구실로 돼 있다. 이 회장·김 사장은 MAF 펀드 브로슈어의 소개글에서 “MAF 펀드는 1999년 10월에 설립된 한국 최초의 시장위험 중립형 펀드로서 설립 이후 코스피(KOSPI) 지수를 59.86%포인트나 상회하는 수익을 올렸다”고 자랑하고 있다. 브로슈어 발간 시기는 MAF 펀드를 설립한 지 1년 뒤인 2000년 10월로 찍혀 있다. ‘이명박 회장’을 내건 펀드가 개설돼 1년 동안 시장에서 수백억원에 이르는 돈을 끌어들이고 있는 동안, 이명박 후보 자신은 아무것도 몰랐다고 할 수 있을까?
정봉주 의원이 공개한 하나은행 자료에도
나경원 한나라당 대변인은 10월25일 브리핑에서 “(문제의 브로슈어는) 김경준의 불법 행위가 드러나면서 e뱅크증권중개 및 LKe뱅크의 청산 작업에 돌입해 실제로 사용하지 않고 ‘폐기’한 것”이라고 밝혔다. ‘폐기’의 사실 여부도 논란거리이거니와 폐기된 브로슈어라는 해명은 의도와 달리 허점을 남긴다. 거기에 실린 내용(이명박-김경준-BBK 관계, MAF 펀드 설립 사실 및 운영 실적을 담은)을 알고 있었고, 내용 자체를 부인하기 어렵다는 뜻으로 읽힐 수 있다. 이는 이미 제시돼 있는 또 다른 ‘e뱅크코리아’ 브로슈어에 BBK투자자문을 자매회사로 소개하고 있다는 점과 더불어 ‘이명박 후보-BBK 및 MAF’의 밀접한 관계를 뒷받침하는 재료로 여겨진다.
물론, 이 후보와 BBK투자자문의 관계가 뚜렷하게 확정된다고 해도 이를 곧바로 ‘주가조작 관련’으로 몰아갈 수 없다. BBK투자자문과 옵셔널벤처스코리아 주가조작 사이의 관계는, BBK의 계좌가 옵셔널벤처스코리아 주가조작에 동원된 것뿐이며 이 후보와 주가조작 관계를 곧바로 증명하는 건 아니다. 이런 점에서 현재 언론 보도와 통합신당 쪽의 의혹 제기는 한 차원 높은 쪽으로 진전됐다기보다 BBK와 이 후보의 관련성을 보여주는 정황을 좀더 풍성하고 세밀하게 만드는 수준이라고 볼 수 있다. 아직은 논란의 ‘질적 도약’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변화는 있다. 이 후보와 BBK의 관계를 보여주는 정황증거가, (이 후보와 이해충돌을 빚고 있는) 김경준의 발언 같은 이 후보 쪽의 반박에 취약한 근거가 아니라 이 후보 쪽에서 나온 진술이나 문서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이명박 후보의 법률대리인인 김백준씨가 올해 4월 김경준을 상대로 미국 법원에 제출한 6차 수정 소장도 그런 예의 하나다.
이 입수해 확보하고 있는 이 소장에서 김백준 대리인은 “이들 회사(LKe뱅크, BBK투자자문, e뱅크증권중개, MAF)는 법적으로 관련돼 있지 않지만, ‘자발적이고 협력적이고 상호 이익적인’ 관계였다”고 밝힌 대목이 나온다. 또 “LKe뱅크, BBK투자자문이 사무실을 공유했다”는 사실도 적시돼 있다. 이명박 후보와 BBK의 관련성을 스스로 밝히고 있는 셈인 이런 기록은, (이 후보가 회장으로 있던) LKe뱅크의 계좌가 주가조작에 동원됐던 사실과 맞물려 추가 조사의 필요성을 높이고 있다.
국회 정무위 소속 정봉주 의원(통합신당)이 10월28일 공개한 하나은행 쪽의 공식 문서 또한 이명박 후보와 BBK의 관련성을 명백하게 보여준다. 하나은행이 2000년 6월22일 작성한 ‘LKe뱅크 출자 및 업무협정 계약서(안)’를 보면, LKe뱅크가 BBK 투자자문의 주식 100%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명시돼 있다. 하나은행은 당시 LKe뱅크에 5억원을 출자한 바 있으며, 이 후보는 당시 LKe뱅크의 대표였다.
또 하나 달라진 모습은 이 후보와 BBK 관련성을 넘어 자금 흐름과 관련된 의문점이 집중 제기되고 있는 대목이다. 박영선·서혜석 의원 등 통합신당 쪽에서 잇따라 제기하는 의혹에는 BBK투자자문 및 MAF 펀드와, 또 여기에 투자한 회사들과 관련된 자금 흐름 및 돈세탁 의혹에 엮인 내용이 자주 거론되기 시작했다. 이명박 후보를 둘러싼 BBK 논란이 양자 사이의 관련성에서 한발 더 나아가는 분위기다.
2001년 이상은씨 계좌에 입금된 147억원
세간의 주목에서 어느덧 멀어졌지만, 7월19일 한나라당 검증청문회에서 한 검증위원이 이명박 후보에게 흥미로운 질문을 하나 던진 적이 있다. “김경준은 미 법정 항소심에서 다스(이상은씨와 김재정씨가 함께 설립한 회사)의 돈을 (투자)받은 적이 없다고 하고, 다스는 190억원을 줬다(MAF 펀드에 투자)고 한다. 위원회가 ‘계좌’를 들여다보니 김재정씨가 90억원, 이상은씨가 60억원을 (2000년 12월29일) 각각 보험만기로 돈을 빼낸다. 그 돈이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6월(2001년) 이상은씨 조흥은행 계좌로 147억원이 몽땅 입금된다.” BBK투자자문과 이명박 후보 관련 인물·회사 사이의 명쾌하지 않은 자금 흐름의 일단을 보여주는 이 질문에는 답변도, 추가 질문도 이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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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한나라당 후보 쪽에서 BBK투자자문과 무관하다는 주장의 유력한 근거로 드는 것은 금융감독원과 검찰의 조사 결과다. 나경원 한나라당 대변인이 10월23일 현안 관련 브리핑에서 밝혔듯 “2001년 금감원 조사, 2002년 검찰 조사에서 이 후보는 BBK와 아무런 관련이 없음이 확인됐다”는 게 이 후보 쪽의 공식 해명이다.
문제의 금감원 조사는 김경준 대표의 BBK투자자문과, 이명박 회장·김경준 사장의 LKe뱅크의 계좌가 동원된 (주)옵셔널벤처스코리아 주가조작을 대상으로 삼고 있다. 당시 금감원 조사에서 김경준은 옵셔널벤처스코리아 대표로 재직한 2000년 12월부터 2001년 1월 사이에 고가매수 주문 등의 방법으로 시세를 변동시키는(주가조작) 거래를 한 혐의를 받아 검찰에 고발당한다. 이명박 당시 LKe뱅크 회장에 대해선 별도 조처가 내려진 게 없다. 이로써 이 후보와 BBK의 무관함은 판명난 것일까?
금감원의 옵셔널벤처스 주가조작 사건에서 이명박 LKe뱅크 회장은 조사에 포함됐다가 무혐의로 판정받은 게 아니라, 애초 조사대상에서 배제돼 있었다. 이는 미국에서 진행 중인 김경준과 이명박의 소송 과정에서 확인된 많은 한국 및 미국 검찰 기록에 나타나 있다.
이 후보가 당시 주가조작에 계좌가 동원된 회사(LKe뱅크)의 대표이사 회장이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주가조작 및 BBK 관련성은 아직 판단 유보 상태라는 게 사실에 가깝다. 검찰의 조사 역시 금감원 조사에 따른 고발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마찬가지다. 주가조작 사건은 현재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사부에 계류돼 있다. 기소중지 상태인 김경준이 입국하면 이 후보도 검찰 수사 대상에 오를 수 있다. 이 후보 쪽은 “주가조작으로 피해를 입은 피해자가 수천 명인데, 이 후보를 고소하지 않았다”는 점도 무혐의의 근거로 들지만, 피해자의 고소 역시 금감원의 조사를 근거로 삼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BBK 관련 사건에서 이명박 후보가 면죄부를 받은 게 1건 있긴 하다. 2000년 BBK에 50억원을 투자했던 (주)심텍이 이듬해 10월 이명박 후보와 김경준씨를 상대로 낸 고소 사건에서였다. 이 사건에선 돈을 돌려받은 심텍이 도중에 소를 취하해 종결 처리됐다. 이는 이 후보가 BBK와 무관하다는 근거가 아니라, 오히려 BBK와의 관련성을 보여주는 정황증거로 거론돼왔다.
옵셔널벤처스코리아 주가조작 사건에 대한 금감원의 조사와 관련해선, 감사원에 감사를 청구하는 안이 제기돼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다. 올 6월 10명의 국회의원들이 발의한 이 감사 청구안은 “핵심 인물인 김경준에 대한 소환조사도 하지 않은 불완전한 조사였다”며 금감원 조사의 적절성에 대해 감사원의 전반적인 감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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