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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는 게 뭐가 나쁘냐?

등록 2007-07-20 00:00 수정 2020-05-03 04:25

일본 젊은이들이 야스쿠니신사에 호의적인 이유는 본질을 잘 모르기 때문인가

▣ 도쿄=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모리 기쿠코(30)는 한국 문제에 관심이 많은 일본인이다. 2005년 2월부터 2년 정도 한국에 머물면서 한국어를 공부했다. 한국과 친해지게 된 계기는 특별히 없다. “그전에는 요코하마시에서 경찰로 일했어요. 그때 공무원들에게 어학을 가르치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거기서 우연히 한국어를 택하게 된 거죠.” 모리는 2년 동안 한국에 머물면서 평택 대추리 주민들의 모습을 찍던 프리랜서 다큐멘터리 감독 나카이 신스케(40)씨의 통역 일을 맡게 된다. 그는 도쿄에서 JR선으로 한 시간 반 정도 떨어진 토치키현에서 한국계 회사에 다니고 있다. 모리는 한국의 과거사 문제와 일본의 전후 책임에 대해서는 공감하는 편이지만 야스쿠니신사의 문제는 “잘 모른다”고 말했다.

출발점을 바꾸면 생각도 달라져[%%IMAGE4%%]

왜 모를까. 그는 “일단 관심이 별로 없고, 역사 수업에서도 안 나온 것 같다”고 말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봤다. 비슷한 반응이었다. “전쟁과 직접 관계가 있는 할아버지나 할머니들만 관심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도 예전에 견줘 관심을 갖는 사람들의 수가 늘었다고 하지만, 구체적인 것은 아니다. “뭐라고 할까, 그냥 야스쿠니신사 문제가 어떻게 될까 하는 정도의 흥미라면 맞을 것 같네요.” 모리는 “이제 좀 깊게 생각해야 한다는 마음은 있지만, 결론이 안 나온다”고 말했다. “다른 나라 일이라면 쉽게 말할 수 있지만, 가해자 입장이니까 아무래도 조심스럽기도 하고요.”

다카하시 데쓰야 도쿄대학원 종합문화연구과 교수도 비슷한 분석을 내놨다. “유감스럽지만 일본에서는 야스쿠니신사를 제대로 알고 있는 젊은이들이 별로 없습니다.” 우익 성향의 책들을 먼저 접했기 때문인지 학생들의 반응은 다소 썰렁한 편이다. 수업 중에 신사 얘기가 나오면 “총리가 기도하는 게 뭐가 나쁘냐”거나 “중국이나 한국이 반발하는 모습을 보면 이상하다”는 반응이 많다고 한다.

다카하시 교수는 “젊은이들이 야스쿠니신사에 대해 호의적인 의견을 갖는 것은 신사의 본질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야스쿠니신사는 전쟁에서 죽은 사람들을 단순히 추모하는 시설이 아닙니다. 그것은 천황을 위해 싸우다 죽은 사람들을 모시는 시설이죠.” 그 때문에 야스쿠니신사에는 천황에 반대해 싸운 사이고 다카모리(일본의 마지막 사무라이로 추앙받고 있는 세이난전쟁의 지도자) 같은 사람들은 합사되지 않았다. 전쟁의 진짜 피해자라 할 수 있는 원자폭탄 폭격과 오키나와전 사망자들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미군이 오면 큰 고통을 받고 죽는다”는 일본군의 가르침을 받아 동굴 속에서 집단 강제사한 오키나와인들은 ‘천황을 위해’ 옥쇄한 대가로 합사 대상이 된다. 그는 “야스쿠니는 일본의 전사자를 추모하는 시설이 아니라, 전쟁터로 떠나는 병사들의 사기를 고무하는 시설”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출발점을 바꾸면 생각도 달라집니다. 학생들도 납득하는 편입니다.”

야스쿠니신사에서 적군과 아군을 가리지 않고 전쟁 피해자들을 추모하는 시설은 따로 있다. 야스쿠니신사를 여러 번 찾았던 사람도 잘 알지 못하는 이 시설의 이름은 친레샤(鎭靈社)다. 이 시설은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가 이어질 때마다 단골로 등장하는 배전(拜殿)의 오른쪽 울타리 건너편에 숨겨진 듯 자리잡고 있다. 즈지 미노루 ‘야스쿠니참배위헌소송의모임’ 사무국장은 2007년 6월 펴낸 에서 “친레샤는 1853년부터 전쟁에서 죽은 사람, 죽인 사람, 죽이라는 명령을 내린 사람을 똑같이 추모하고 있다”고 말했다. 즈지는 “친레샤는 천황을 위해 죽은 사람만 모시는 야스쿠니신사의 정신과 어긋나기 때문에 신사는 이 시설이 있다는 것을 일반인들에게 숨기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래서 친레샤에는 신사의 영역과 바깥 세상을 구분하는 도리이(신사의 영역과 바깥 세상을 구분하는 문)가 없다.

문제는 사람들이 납득하게 만드는 것

7월4일 야스쿠니신사의 전쟁박물관 류슈칸에서는 태평양전쟁에서 장렬히 전사한 일본 군인들을 찬양하는 영화 를 상영하고 있었다. 평일 한낮이었기 때문에 100석 규모의 조그만 상영관에는 빈자리가 많았다. 노인이 대부분이었지만 젊은이도 하나둘 눈에 띄었다. 대학 2학년생이라는 이토 야스오는 “야스쿠니신사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일본을 위해 힘껏 애쓰다 죽은 사람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옆에서 듣고 있던 고바야시 유키에는 “그래도 사람이 죽는 것은 싫다”고 했다.

한국인과 일본인의 감성적 차이였는지 모르겠지만, 같이 취재를 진행하던 일본 기자 스나미 게스케는 영화를 보며 울고 있었다. 그는 올해 스물아홉 살의 일본 젊은이다. 스나미는 “저렇게 착하고 선량한 사람들이 전쟁터에서 죽었다는 사실이 견디기 힘들게 화가 난다”고 말했다. “그렇게 보면 야스쿠니신사는 진짜 나쁜 시설인 것 같아요. 죽은 사람들을 이용해 전쟁을 미화하고 있잖아요.” 그는 “결국 문제는 야스쿠니신사의 본질을 일본 사람들이 납득하게 만드는 것”이라며 “신사에 맞서 싸워야 할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고 말했다.



“신사의 실체를 깨닫는 게 중요”

강제합사 취하소송을 이끄는 우치다 마사토시 변호사




우치다 마사토시(63) 변호사는 지난 30여 년 동안 일본의 전쟁 책임을 묻기 위한 활동을 지원해온 일본의 대표적인 인권 변호사로 한국인 유족들이 2월26일 야스쿠니신사를 상대로 낸 강제합사 취하소송을 이끌고 있다. 그는 “일본인들이 신사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려는 자세를 갖는 게 승소의 선결 조건”이라고 말했다.
한국인들이 야스쿠니 합사 철회를 요구하며 일본 법원에 소송을 낸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 2001년 첫 소송이 도쿄 지방재판소에서 있었다. 그때 피고는 일본 정부였고, 법원은 “일본 정부는 합사를 강요하지 않았다”는 판단을 내려 패소했다. 그래서 이번엔 야스쿠니신사를 상대로 다시 합사 취하를 요구하는 소송을 냈다. 8월 하순이나 9월 초순에 첫 기일이 잡힐 예정이다.
소송의 취지가 정교분리를 못박은 일본 헌법 20조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있다.
= 야스쿠니신사도 종교 법인의 하나이므로 종교 활동을 할 자유는 있다. 전쟁 전까지 야스쿠니신사는 국가시설이었고, 전후 종교시설이 됐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야스쿠니신사가 국가기관이라고 생각한다. 총리의 참배가 이뤄지고 있고, 후생성은 야스쿠니신사 쪽에 합사자 명단을 전달해왔다. 야스쿠니신사는 일본의 대외 침략을 정신적으로 지지해왔던 기관이다. 그런 기관에서 한국이나 대만 식민지 출신자들을 합사하면 기분이 나쁘다, 그런 것을 하지 마라 하는 문제 제기다. 종교에 대한 개입이 아니다.
손해배상액이 원고 1명당 1엔이던데.
= 원래 손해배상 소송이 아니라 야스쿠니신사의 영새부(靈璽簿) 등에서 사람들의 이름을 빼고, 그런 일을 한 데 대해 일본 정부와 야스쿠니신사의 사죄문을 신문에 내라는 것이다. 그러나 소송을 내려면 손해배상의 모양을 갖춰야 하기에 소송가액을 1엔으로 정했다.
승소 가능성은.
= 야스쿠니신사의 실태를 어디까지 폭로할 수 있을지에 달렸다고 본다. 신사의 가장 큰 문제는 역사 인식이다. 그들은 아시아에 대한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을 성전으로 보고 미화한다. 1995년의 전후 50년 국회 결의나 2005년의 전후 60년 결의에도 명백히 반하는 것이다. 일본의 젊은이들은 야스쿠니신사에 대해 잘 모르지만 실체를 알려주면 누구나 ‘이것이 문제구나’ 하고 느낀다. 신사의 실체를 깨닫고,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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