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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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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의 종아 울려라

등록 2007-08-17 00:00 수정 2020-05-03 04:25

김경준씨 입국하면 BBK 의혹, 다스 자금 흐름 등 지루한 공방 가리는 수사 이뤄질 듯

▣ 특별취재팀
▣ 사진 이종찬 기자rhee@hani.co.kr

이제 검찰의 손에 달렸다.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예비 후보의 ‘BBK 사건’ 연루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이 후보와 함께 LKe뱅크의 공동대표를 지낸 김경준씨가 과의 인터뷰에서 8월 말 인신보호 청원에 대한 항소를 포기하고, 15일 안에 한국에 들어올 계획이라고 밝혔다. 따라서 이르면 9월 중순 김씨를 서울에서 볼 수 있게 됐다. 물론 그가 마음만 바꿔먹으면 송환은 또다시 법적 절차를 밟아가며 일정 기간 지연될 수 있다. 하지만 법률대리인인 심원섭 변호사는 일관되게 김씨가 9월 중 입국할 계획이라고 밝혀왔다. 게다가 김씨 본인의 입에서 송환 시기를 구체화한 만큼 송환을 다시 지연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한나라당 “면피 수작, 장난치는 것”

검찰은 김씨의 송환 예정 소식에 큰 관심을 보였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한 검찰 관계자는 ‘김씨가 곧 귀국하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전하자, “김씨 본인의 입에서 직접 나온 말이냐?”며 “(그와 관련된 사건이) 기소 중지돼 있어서, 들어오면 수사를 새로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검찰은 최근 이명박 후보와 관련한 고소·고발이 잇따라 제기되자, 2001년 당시 조사 기록을 훑어보고, 참고인 자격으로 투자자 등 몇몇 관련자들을 소환 조사했다. 하지만 김씨가 없는 상황에서 BBK 사건에 대한 본격적인 조사에 착수할 수 없었다. 수사에 별다른 진척도 없었다. 김씨의 송환은 진전 없이 답보 상태인 사건 수사에 활기를 불어넣을 것으로 보인다.

김씨가 인신보호 청원에 대한 항소를 포기하면 곧바로 한국에 통보된다. 홍만표 법무부 홍보관리관은 “송환을 위한 범죄인 인도 청구 절차는 확정판결이 났지만, 김경준씨가 인신보호 청원을 냈다”며 “김씨가 거기에서도 1심에서 패소하고 항소했지만, 보도처럼 항소를 포기하고 곧 돌아오겠다면 법무부에 통보될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 내 신중한 분위기도 감지된다. 앞서 말한 검찰 관계자는 “애기를 낳기도 전에 기저귀를 장만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김씨가 들어오면 수사의 변수가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진짜 들어오는 거냐”고 미심쩍어했다.

이명박 후보 캠프에선 여전히 김씨의 송환 가능성을 낮게 봤다. 또 김씨가 철저한 계산 아래 송환설을 흘리고 있다고 해석했다. 이 캠프 대변인인 박형준 한나라당 의원은 “MB(이명박)를 정치적으로 협박해서 면피하겠다는 수작”이라며 “미국에서 돌아온다는 것도 전혀 확정된 게 아니다. 장난치는 것”이라고 말했다.

BBK 사건과 관련해 이명박과 김경준 두 사람의 진술이 엇갈리는 만큼 어느 한쪽은 분명 거짓말을 하고 있다. 물론 둘 다 거짓말을 섞어가면서 말했을 수도 있다. 김경준씨의 송환은 누가 됐든 그 ‘거짓의 싸움’에서 승자와 패자로 나뉠 것이다. 이 후보 쪽은 자신감을 보였다. 부동산 투기 의혹 등을 받아온 이명박 후보의 처남 김재정씨 쪽 김용철 변호사는 “들어와도 상관없다. 우린 자신 있다”고 말했다.

이 후보의 큰형 상은씨와 김재정씨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다스(옛 대부기공)는 이 후보가 실소유주라는 의혹을 받고 있다. 검찰 수사의 초점도 다스에 모아지고 있다. 이 후보의 ‘BBK 사건’ 연루 의혹뿐만 아니라 도곡동 땅 실소유주 논란, 다스의 실소유주 의혹 등은 모두 다스의 자금 흐름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이 때문에 검찰 관계자는 “김경준이 들어오면 주가조작이나 사기에 대해서 수사가 진행될 텐데, 아무래도 제일 궁금하게 생각하는 건 다스 관련 부분”이라며 “자연스럽게 (다스 관련) 돈 문제에 대한 수사가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새로운 금융기법 익히려 BBK 설립”

김경준씨는 과의 인터뷰에서 이 후보가 BBK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주장에 대해 “예전엔 BBK를 자기가 창업했다고 기자들에게 얘기해놓고 요새는 딴소리를 한다”고 말했다. 실제 여러 차례 언론 등을 통해 언급됐지만, 이 후보는 2000년 10월13일 e뱅크증권중개의 증권업 예비허가를 받아낸 직후에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BBK와 자신의 관련성을 여러 차례 되풀이해 말했다. e뱅크증권중개의 설립 당시 이명박은 사장, 김경준은 이사로 등재됐다. 같은 해 10월16일치 와의 인터뷰에서 “올 초 이미 새로운 금융상품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LKe뱅크와 자산관리회사인 BBK를 창업한 바 있다. …BBK를 통해 이미 외국인 큰손들을 확보해둔 상태다”라고 밝혔다. 또 이듬해 2월 3월호에선 이렇게 말한다. “나는 어차피 정치방학이 2~3년 갈 것으로 보고 그 기간에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심각하게 고민했습니다. 새로운 금융기법을 내가 익혀야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를 경험한 사람으로서 지난해 초에 벌써 BBK라는 투자자문회사를 설립해 펀드를 묻고 있는 상태입니다.” 이후 이 시장은 이같은 인터뷰 내용을 부인하고 있다. 당시 언론 인터뷰 내용은 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김경준씨의 말을 뒷받침한다.

BBK 사건 관련 의혹은 이명박에겐 혹이다. 좀처럼 떨어지지 않고 있다. 이 후보가 검증청문회에서 밝힌 내용과 김경준씨의 말은 180도 다른 부분이 많다. 가장 대표적인 게 바로 BBK 투자자금을 이 후보가 유치했다는 김씨의 주장이다. 이 후보는 청문회에서 BBK에 자신이 장학재단 감사로 있는 곳의 투자를 소개한 것 외엔 모두 자신과 관련이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김경준씨는 에 삼성생명과 심텍 등 BBK 투자자 14명의 돈을 이 후보가 끌어왔다는 정반대의 얘기를 하고 있다. 검찰 수사가 시작된다면 당사자들의 협조가 전제돼야 하겠지만,의외로 당사자가 한둘이 아니어서 비교적 쉽게 어느 쪽의 말이 참인지 거짓인지 밝혀낼 수 있는 부분이다.

검찰과 금감원은 2001년 말 김경준씨가 미국으로 건너간 탓도 있지만 BBK 사건을 제대로 수사하지 못했다. 이 후보는 검증청문회에서 금감원이나 검찰에서 BBK 사건이 자신과 관련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말했지만, 미국에서 진행 중인 김경준과 이명박의 소송 과정에서 확인된 많은 한국 및 미국 검찰 기록 등에선 이명박씨의 관련성에 대한 조사나 수사는 처음부터 배제돼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후보의 BBK 사건 연루 의혹을 꾸준히 제기해온 박영선 의원실은 “검찰은 김씨가 384억원을 횡령했다면서도, 제대로 계좌 추적도 하지 않았고 횡령했다는 돈이 어디로 갔는지도 철저하게 조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씨는 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은 384억원을 횡령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은 실제 미국 법정에서 일정 부분 받아들여졌고, 검찰이 범죄인인도 청구에서 횡령했다고 하는 384억원 중 250억여원은 BBK의 국내 투자자들에게 송금됐다.

혹을 뗄까, 탈출구 될까

김씨의 송환은 평행선을 달리는 지루한 진실 공방을 끝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대통령직에 도전하는 이 후보에게 혹을 뗄 수 있는 기회가 될지, 사기꾼으로 몰린 김경준씨에게 탈출구가 될는지는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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