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경선 앞둔 영남 시민 여론조사…오차범위 내에서 이 후보 역전, 대세론 굳어지나
▣ 글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은 한나라당의 대선 후보 경선 선거일(8월19일)을 보름 남짓 앞두고 한나라당 지지세가 강한 영남 민심을 들여다봤다. 한나라당 경선은 대의원·당원·국민·여론조사를 각각 20%·30%·30%·20%(100% 투표할 경우 16만1296표) 반영한다. 선거인단과 여론조사의 표본 집단은 지역별 인구비례에 따르기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몰려 사는 수도권이 경선 결과를 좌우한다.
지난 조사에 비해 확연히 달라
그럼에도 굳이 영남을 들여다본 이유는 이렇다. 영남, 특히 대구와 경북은 역대 대선과 한나라당(전신인 신한국당과 민정당을 포함해) 경선에서 누구를 대통령 후보로 선택할지, 그리고 실제 대선에서 누구에게 표를 던질지 고민해본 적이 별로 없다.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그들이 고민할 필요도 없이 대통령이나 곧 대통령이 될 후보가 결정돼 있었다. 역대 두 차례의 선거에서도 그저 대세를 따라가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르다. 한나라당 대선 후보로 누구를 골라야 ‘잃어버린 10년’을 되풀이하지 않을지 고민한다. 5년 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당시 광주의 민심이 부산 출신의 노무현을 선택해 판을 정리시켰듯이, ‘누구’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광주만큼은 아니더라도 영남과 그 정치적 중심인 대구의 선택을 들춰보는 것은 한나라당의 경선 전망을 살피는 데 유의미하다고 볼 수 있다.
또 하나는 실제 한나라당 경선 판도를 예측하는 데 영남 민심의 향방은 중요한 포인트다. 최근 주요 언론에 보도된 한나라당 경선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박근혜 후보가 영남과 충청권에서, 이명박 후보는 그 나머지 지역, 특히 수도권에서 우위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박 후보는 영남의 우세를 발판 삼아 수도권까지 ‘동남풍’을 불어올리려 했고, 이 후보는 대세론으로 ‘한나라당의 고향’에서도 확고한 우위를 점하고 싶어했다. 이번 조사는 양쪽 진영의 중간 성적을 보여주는 성격을 띤다.
이 8월2일 리서치플러스(대표 임상렬)에 맡겨 영남의 19살 이상 남녀 700명을 상대로 전화 면접 방식으로 조사(오차한계는 95% 신뢰 수준에서 ±3.7%포인트)한 결과, 한나라당의 대선 후보로 이명박 후보를 꼽은 응답자가 323명(46.2%)으로 박근혜 후보를 꼽은 응답자(301명·43.0%)보다 많았다. 이 후보가 오차 범위 내에서 박 후보를 앞선 것이다. 양 진영은 경선 여론조사 때 어떻게 물을 것인지, 즉 선호도(이명박 진영 선호)를 물을 것인지 지지도(박근혜 진영 선호)를 물을 것인지를 놓고 힘겨루기를 했는데, 참고로 이번 조사에서는 ‘한나라당의 차기 대통령 후보로 누가 가장 적임자라고 생각하는지’를 물었다. 굳이 따지면 선호도 물음에 가깝다.
이번 조사는 -리서치플러스의 7월21일 조사와 확연히 비견된다. 당시에는 전국 19살 이상 1천 명을 조사했는데 이 중 영남권 270명(대구·경북+부산·울산·경남)만을 대상으로 좁혀보면 이명박:박근혜의 비율은 34.8:49.9였다. 대구·경북(106명)이 36.4:53.6, 부산·울산·경남(164명)이 33.7:47.5로 나타났다. 물론 표본의 크기가 달라 직접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비슷한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면 같은 질문에 비슷하게 오르거나 내려야 할 텐데 이 후보가 영남 전체로 볼 경우 11.4%포인트 오르는 동안 박 후보는 6.9%포인트가 빠졌다. 두 조사 결과를 종합해보면, 최소한 박 후보가 영남에서 확고한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말할 수 없게 된 셈이다.
호감이 가느냐는 질문엔 박근혜 우세
8월2일 조사 결과를 세부 권역별로 보면, 대구(45.2:47.3)와 경북(40.6:46.5)에서 박 후보가 앞섰고 부산(50.4:43.3)·울산(50.5:34.3)·경남(45.2:39:2)에서는 이 후보가 앞섰다. 박 후보는 60살 이상(38.5:55.0) 연령대와 고령층이 많은 농·임·수산업(45.3:54.7), 주부(40.3:47.8)에서 앞섰을 뿐, 나머지 연령층과 직업 계층에서는 열세를 보였다. 이미 확정된 한나라당 경선 선거인단의 연령대별 분포에서 60대 이상이 40.3%를 차지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나마 박 후보는 미세한 우세를 주장할 수 있지만, 그것으로 위안을 삼기에는 갈 길이 너무 바쁘다.
2주가 채 못 되는 기간 동안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조사 외적인 요인을 살펴보면, 7월19일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검증 청문회를 기점으로 이명박 후보에 대한 각종 의혹을 뒷받침할 만한 사실(예를 들어 검찰의 수사 결과)의 공개가 늦춰지면서 검증 국면이 시들해졌고, 아프가니스탄에서 한국인 인질 납치 사건이 발생하면서 관심이 옮겨갔을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고, 다른 원인들이 작용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조사 내에서 원인을 찾자면 영남에서도 ‘이명박 대세론’을 인정하기 시작했다는 징후를 발견할 수 있다.
이번 조사의 응답자들은 ‘누구를 지지하는가와는 상관없이 누가 이번 한나라당 경선에서 이길 것으로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대해 절반 이상(53%)이 이명박 후보를 꼽았다. 박 후보를 꼽은 이는 27.5%여서 거의 절반에 불과했다. 심지어 박 후보가 오차 범위 이내에서 우세를 보이는 대구·경북에서도 47.8%의 응답자가 이 후보가 한나라당의 대선 후보가 될 것이라고 점쳤다. 박 후보를 ‘한나라당 대선 후보의 적임자’라고 응답한 이들 가운데서 박 후보가 경선에서 이길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절반(51.1%)에 그쳤다.
그럼에도 영남 민심의 근저에는 ‘박근혜’가 흐르고 있었다. 은 응답자들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더 던져보았다. ‘경선이나 대선에서의 경쟁력을 떠나 개인적으로 볼 때 누구에게 가장 호감이 가느냐’고 물었다. 누구를 지지하는지, 누구를 대선후보를 선택할지, 누가 될 것으로 보는지와는 다른 답이 나왔다. 누구에게 가장 호감이 가느냐는 질문은, 곧 누구에게 정서적으로 이끌리느냐 혹은 누구에게 더 정이 가느냐는 물음인데 박근혜 후보가 49.8%였고 이명박 후보는 34.9%에 그쳤다. 연령과 지역·계층을 불문하고 ‘박근혜가 좋다’는 응답이 월등히 많았다.
‘대선 후보 선호도’(한나라당의 대통령 후보로 누가 가장 적임자라고 생각하는지)와 ‘인물 호감도’(누구에게 가장 호감이 가는지)를 비교해보면 ‘고민하는 영남 민심’을 읽을 수 있다. 박근혜 후보에게 호감을 느끼는 90%는 한나라당의 대선 후보로 박 후보를 꼽았다. 그런데 이명박 후보에게 호감을 느끼면서 이 후보를 한나라당의 대선 후보로 꼽은 비율은 73.1%에 불과하다. 상당수(18.0%)는 박 후보에게 호감이 가는 층이다. 다시 말해 이번 영남 민심 조사에서 한나라당의 대선 후보로 이명박 후보를 꼽은 이들 10명 가운데 2명가량은 여전히 정서적으로는 박 후보에게 끌리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왜 ‘맘’과 ‘손’이 따로놀까
역대 대선의 경우 영남에서는 이렇게 ‘맘’과 ‘손’이 따로 노는 층이 별로 없었다. 맘이 가는 대로 찍으면 그만이었다.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다. 본선 경쟁력 때문이다. 1998년 대구 달성군 보궐선거 이후 내리 세 번 국회의원을 지냈고 이념이나 노선 면에서도 영남의 보수 색채에 가까운 박근혜 후보가, 전국구와 서울 종로에서 국회의원을 거쳐 서울시장을 지냈고 박 후보에 비해 상대적으로 중도 성향에 가까운 이명박 후보에 비해 끌리지만, ‘인기투표’가 아닌 만큼 전략적인 선택을 하고 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이번 여론조사에서 확인된 ‘고민하는 영남 민심’은, ‘박근혜가 좋기는 하지만 대선을 생각하면 이명박이 돼야 하지 않을까’ 정도가 될 것 같다.
이를 달리 해석하면 박 후보는 지지층의 폭은 좁되 지지 강도는 강하고, 이 후보는 지지층의 폭은 넓되 상대적으로 지지 강도가 약하다고도 볼 수 있다. 이는 ‘차선 후보’에 대한 답변에서도 확인됐다.
은 이번 조사에서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가장 낫다고 보는 후보가 선출되지 않는다면 연말 대선에서 누구를 선택하겠는지’를 물었다. 여야의 대선 후보 중 박근혜 후보를 ‘차기 대통령 적임자’로 꼽았던 239명 가운데 박 후보가 한나라당 대선에서 질 경우 이명박 후보를 선택하겠다는 응답자는 42.5%에 그쳤다. 38.0%가 무응답(기권 포함)으로 흘러갔다. 반면, 이명박 후보를 ‘차기 대통령 적임자’로 꼽았던 268명 가운데 이 후보가 한나라당 대선에서 질 경우 박근혜 후보를 선택하겠다는 응답자는 58.5%였다. 무응답(기권 포함)은 22.6%였다. 이런 조사 결과가 대선까지 실제 이어질 가능성은 낮지만,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이후 후보 자신이나 캠프뿐만 아니라 지지층까지도 후유증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특히 박 후보가 경선에서 패할 경우 박 후보 지지층의 상당수는 한동안 갈 곳 몰라 헤맬 수 있다.
이번 영남 민심 여론조사를 지난 7월21일 조사와 비교해보면, 본선 경쟁력을 배경으로 한 이명박 후보의 대세론이 영남 지역에도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고 추정할 수 있지만, 본선 경쟁력의 한 구성요소라고 볼 수 있는 검증 문제에서는 이 후보에 대해 불안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조사에서 ‘이명박 후보는 의혹이 많아 낙마할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과 ‘박근혜 후보는 검증이 본격화되면 낙마할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 가운데 어느 주장에 공감하는지를 물었다. 전자에 40.0%가, 후자에 26.8%가 공감했다. 이 후보 지지층의 25.4%도 이 후보의 낙마 가능성을 우려했다. 경선 선거일 이전에 이 후보에 관한 새로운 의혹이 제기되거나 이미 제기됐던 의혹이 검찰 조사나 언론에 의해 사실로 확인될 경우, 즉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는 주요 이유 가운데 하나인 본선 경쟁력에 대한 불안감이 커질 경우에는 이탈할 가능성이 있다.
그런 탓인지 검증을 둘러싼 한나라당 내부 갈등에 대해 우려하는 견해가 약간 우세했다. ‘검증을 하더라도 지나친 갈등은 피해야 한다’는 의견이 50.5%로, ‘갈등이 다소 있더라도 검증은 철저히 해야 한다’는 의견(47.3%)보다 많았다. 이명박 지지층에서는 ‘갈등을 피하자’가 60.4%였고, 박근혜 지지층에서는 ‘그래도 검증은 철저히’가 55.7%였다.
전략적 선택을 해야 하는 낯선 경험
임상렬 리서치플러스 대표는 “본격적인 검증 공방이 벌어지면서 대구·경북과 부산·울산·경남 등 영남에서 박근혜 후보의 상승세가 이어지고 역전이 되기도 했지만 8월2일 조사 결과를 보면 검증이 소강 국면을 맞으면서 다시 이명박 대세론이 빠른 속도로 복구되는 양상을 띠고 있다”며 “영남 유권자들은 선거의 틀을 벗어나서 보면 ‘정치인 박근혜’를 좋아하지만 대선을 고려해 전략적 선택을 해야 하는 낯선 경험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다른 지역에 비해 한나라당 지지도가 강한 지역임에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을 위한 여론조사에 응하겠느냐’는 질문에 ‘응하겠다’는 응답자가 65.2%(반드시 29.0+가급적 36.2)였고 ‘응할 생각이 없다’고 답한 이들은 34.5%(별로 26.3+전혀 8.3)로 나타났다.
이번 조사에서 여야 대선 후보 전체를 대상으로 한 선호도 조사(차기 대통령으로 누가 가장 낫다고 생각하는지)에서는 한나라당의 이명박 후보(38.4%)와 박근혜 후보(34.4%)가 오차 범위 이내에서 선두를 다퉜고, ‘범여권’과 민주노동당 후보군의 선호도는 손학규(3.2%)·권영길(1.8%)·한명숙(1.3%)·이해찬(1.1%) 후보 순으로 나타나 전국 단위의 여론조사와는 차이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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