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과 협상 없다” 원칙 되풀이…필요에 따라 협상하고 보상한 사례 수도 없어
▣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폭력에 굴복해선 안 된다. 폭력을 앞세운 주장을 받아들여서도 안 된다. ‘원칙’의 문제다. 나쁜 행동에 대한 보상은 또 다른 나쁜 행동을 부추길 뿐이다. ‘테러리스트와 협상은 없다’는 주장의 논거는 이렇게 간단명료하다. 하지만 현실은 간단하지도, 명료하지도 않은 법이다.
흔히 “테러리스트와 협상을 하는 것은 테러에 합법성을 부여하는 짓”이라거나, “평화적 수단으로 문제를 풀려는 이들의 노력을 깎아내리는 짓”이라고 말한다. “테러리스트와 섣불리 협상에 나서는 건 테러를 뿌리 뽑기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을 허망하게 만드는 일”이라고, “좋지 않은 선례를 남겨 앞으로 테러 위협에 더 취약해지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도 말한다. 문제는 다시 현실이다. 간단하지도, 명료하지도 않은 현실 말이다.
원칙과 각국 정부의 실제 행동 사이
1991년 2월7일 영국 총리 관저인 ‘다우닝가 10번지’에 박격포탄이 날아들었다. 사상 초유의 사태였다. ‘아일랜드 공화군’(IRA)이 발사한 포탄이 날아든 것은 이날 오전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 당시 관저에선 존 메이저 총리를 비롯한 외교·안보 관련 장관들이 걸프전 전략을 논의하고 있었다. 내각 주요 구성원을 겨냥한 암살 기도와 다름없었다. 그럼에도 영국 정부는 아일랜드 공화군과의 막후 협상 채널을 놓지 않았다.
1987년 6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한 대형 슈퍼마켓에서 차량 폭탄공격이 벌어졌다. 21명의 무고한 인명이 스러졌다. ‘바스크 조국과 해방’(ETA)은 당시 사건을 ‘실수’라고 주장했다. 그로부터 불과 6개월여 만에 스페인 정부는 ‘조국과 해방’ 쪽과 평화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테러리스트와는 절대 타협할 수 없다’는 선언과 각국 정부의 실제 행동 사이에는 이렇게 일정한 간극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에 납치된 한국인 인질 사태가 장기화하고 있다.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간 대통령은 “인질 석방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지만, 협상단 대표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자리에서 물러날 정도로 협상은 지지부진하다. 뒤늦게 한국 정부가 직접 협상에 나서곤 있지만, 탈레반 쪽의 애초 요구를 충족시키기엔 역부족이다. 집권 초기부터 ‘카불 시장’이란 비아냥을 들어온 카르자이 대통령을 움직이기 위해선 아프간 정부의 최대 후원자인 미국이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미국은 한국 정부, 아프간 정부와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 납치 사건이 벌어진 곳이 아프간 영토라는 점을 기억하기 바란다. 아프간 정부는 납치 피해자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리처드 바우처 미 국무부 남·중앙아시아 담당 차관보는 8월2일 오전 이렇게 말했다. 사흘 앞으로 다가온 카르자이 대통령의 워싱턴 방문에 대해 설명을 하는 자리였다. 바우처 차관보는 이날 “한국인 납치 사건은 아프간이나 미국, 한국이 아니라 탈레반이 저지른 일”이라며 “인질 석방을 위해 모든 압력을 탈레반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원론적으로 지당한 얘기다.
콜롬비아 무장반군세력과 협상
탈레반의 요구사항인 ‘포로 교환’ 가능성에 대해서도 단호했다. 그는 “포로 교환은 납치를 부추길 뿐이니, 우리의 태도는 분명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테러범과 협상이나 타협이 있을 수 없다는 원칙을 좀더 유연하게 적용하기를 희망하는 한국 정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미국의 정책과 원칙은 잘 알려져 있으니 이를 부연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이어 “군사적인 방법을 제외하고 탈레반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압력 수단이 있느냐”는 질문에 “여러 가지 수단이 있으며, 군사적 압력도 그중 하나”라고 말했다. 그는 ‘원칙’을 말했을 테지만, 듣는 처지에선 아찔할 수밖에 없는 발언이다. ‘동맹’의 이름으로 아프간으로, 이라크로 달려갔던 노무현 정부가 처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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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우처 차관보의 ‘단호한’ 태도와 달리 미국이 테러리스트와 협상에 나선 사례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테러와의 전쟁’을 시작한 조지 부시 행정부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부시 행정부 초기인 지난 2003년 6월 콜롬비아 언론들은 미국이 마약밀매를 주도해온 현지 무장반군세력(AUC)과 협상을 벌였다는 보도를 일제히 내놨다. 콜롬비아 수도 보고타 주재 미 대사관 핵심 인사들이 반군 지도자들과 만나 포괄적인 사면협상을 벌였다는 게다. ‘테러와의 전쟁’의 쌍둥이 격인 ‘마약과의 전쟁’을 위한 협상이었다.
전술 변화에 따른 ‘테러와의 협상’도 눈여겨볼 만하다. 사담 후세인 정권 붕괴 뒤 옛 정권에 충성했다는 이유로 이라크군을 전면 해산시켰던 미국은 저항세력의 공세가 불을 뿜기 시작하면서 아연 태도를 바꾼 바 있다. 2005년 6월 등이 보도한 내용을 보면, 부시 행정부는 수니파 저항세력 일부를 이라크 정치권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막후 협상을 상당한 수준까지 진행시켰다. 당시 이라크 주둔 미군 당국이 협상을 위해 접촉한 무장세력 가운데는 2004년 이탈리아 기자 엔조 발도니를 납치·살해한 것으로 알려진 ‘이슬람 군대’란 단체도 포함돼 있었다.
‘나쁜 행동’에 대해 ‘보상’을 한 사례도 있다. 지난해 8월14일 팔레스타인 땅 가자지구에서 소속 스티브 센타니, 올라프 위그 등 미국인 기자 2명이 취재 도중 무장괴한들에게 납치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납치범들은 이름도 낯선 ‘지하드 여단’이란 신생단체 소속이었다. 당시 범아랍권 신문 는 “부시 행정부가 ‘팔레스타인 민중저항위원회’(PRC) 지도부를 중재자로 내세워 납치범들과 적극적인 협상을 벌였다”고 보도했다. 민중저항위는 미 국무부가 지정한 ‘국제 테러단체’다.
질 캐럴 위해 여성 수감자 풀어줘
인질사태 초기 납치범들은 “미국이 구금하고 있는 모든 무슬림 수감자를 석방하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협상을 통해 밝혀진 인질범들의 실제 요구사항은 좀더 현실적이었다. 당시 이스라엘은 자국군 탱크병 질라드 샬리트 상병이 팔레스타인 무장세력에게 붙들려간 데 대한 보복으로 이집트-팔레스타인 국경지대 라파를 봉쇄하고, 민간인 거주지역을 향해 포격을 퍼붓고 있었다. 납치범들은 미국이 이스라엘에 압력을 행사해 국경 봉쇄를 풀고 포격을 멈추도록 해달라고 요구했다. 협상은 타결됐고 센타니, 위그 두 기자는 납치 13일 만에 무사히 풀려났다. 는 당시 정황을 이렇게 전했다.
“인질로 붙잡혔던 2명의 기자가 풀려난 것은 그들이 이슬람으로 개종했기 때문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하지만 이는 협상 과정을 숨기기 위한 선전에 불과했다. 인질이 풀려난 이유는 부시 행정부가 납치범들의 요구를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인질이 석방된 지 며칠 만에 이스라엘은 하루 몇 시간씩이나마 라파 국경지대 봉쇄를 풀었고, 팔레스타인 주민 거주지역에 대한 포격도 잦아들었다.” 미 국무부는 당시 의 보도에 대한 확인을 요청하는 〈ABC방송〉 등의 질문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올 1월7일 인터뷰 약속 장소로 향하다 이라크 바그다드 한복판에서 납치된 미국인 프리랜서 기자 질 캐럴 사건도 비슷한 맥락에서 볼 수 있다. 미 보스턴에서 발행되는 에 정기적으로 기사를 썼던 캐럴 기자를 납치한 ‘복수여단’이란 이름의 저항세력은 “미군이 구금하고 있는 모든 이라크 여성 수감자의 석방”을 협상조건으로 내걸었다. 인질범이 제시한 협상 시한을 넘기긴 했지만, 이라크 주둔 미군 당국은 여성 수감자 5명을 포함해 모두 419명의 이라크인 수감자를 납치사건 발생 19일 만에 풀어줬다. 당시 미군 당국자는 “구금 조사를 마치고 혐의가 없는 이들을 풀어주는 과정에서 일부 여성 수감자가 포함됐을 뿐 캐럴 기자 납치 사건과는 무관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캐럴 기자는 이라크 여성 수감자 석방 이후에도 두 달여 동안 억류된 끝에 지난 3월30일에야 석방됐다. 이 과정에서 납치범들에게 추가로 몸값 100만달러를 지불한 것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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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간에서도 미국이 적어도 ‘암묵적으로’ 원칙을 꺾은 사례를 찾을 수 있다. 지난 3월5일 남부 헬만드주에서 발생한 이탈리아 일간 의 기자 다니엘레 마스트로자코모 피랍 사건이 대표적이다. 2천 명에 이르는 아프간 주둔 자국군 철군이란 배수진을 치고 막후 협상에 주력한 로마노 프로디 정부의 노력으로, 마스트로자코모 기자는 납치된 지 2주 만인 3월18일 무사히 풀려났다. 그의 석방을 위해 아프간 정부는 5명의 탈레반 수감자를 석방했다.
이 가운데는 당시 헬만드주를 근거지로 탈레반군 사령관으로 활동하던 물라 다둘라의 친동생 만수르 다둘라도 포함돼 있었다. 이때 석방된 만수르 다둘라는 지난 5월 자신의 형이 나토군과 교전 중 전사한 뒤 그 뒤를 이어 탈레반군을 이끌고 있다. 다둘라 형제가 탈레반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에 비춰, 아프간 정부가 미국의 ‘청신호’ 없이 단독으로 그의 석방을 결정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는 당시 마크 헬러 이스라엘 국가안보연구소장의 말을 따 “인질 석방을 위한 포로 교환을 한 뒤에는 으레 ‘되풀이해선 안 되는 실수였다’는 비판이 나오지만, 인질 사태가 재연되면 다시 포로 교환이 이뤄지기 마련”이라며 “딱 부러진 이론적 근거가 있는 것도 아니며, 그저 사안에 따라 각국 정부가 그때그때 대응책을 결정하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누가 극단주의자고 누가 온건파인가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은 이라크 침공에 앞서 지난 2002년 “죽음이 유일한 목적인 자들과 협상은 무의미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하지만 맞닥뜨린 테러리스트가 협상이 불가능한 극단주의자인지, 대화가 통할 만한 온건파인지에 대한 평가는 그야말로 상대적일 수밖에 없다. 영국 런던대 킹스칼리지에 딸린 국방연구센터(CDS) 피터 뉴먼 소장은 외교안보 전문지 의 지난 1·2월호에 기고한 ‘테러리스트와 협상하기’란 제목의 글에서 이렇게 썼다.
“아일랜드 공화군이나 바스크 조국과 해방 등의 단체가 알카에다에 비해 ‘합리적’이라고 느끼는 이유는 그들이 기반한 민족주의나 분리독립 운동이 서구 정치사상사에서 익숙한 개념이기 때문이다. 서독의 적군파나 이탈리아의 붉은여단 등 1970~80년대를 떠들썩하게 했던 극좌파를 정치적 이유에 따른 테러단체라고 규정하는 것도 마르크시즘이 익숙한 사상체계였기 때문이다. 이슬람 제국을 부활시키겠다는 알카에다의 목표는, 이를테면 대중의 의사와 무관하게 서독을 자기들 식의 마르크시즘에 기반한 노동자 공화국으로 만들겠다는 적군파의 주장과 마찬가지로 터무니없는 일이었다. 둘 사이의 차이점이 있다면 알카에다가 내세운 이데올로기가 여전히 (서구인들에게) 합리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태로 남아 있다는 점일 게다.”
동맹의 그늘, 동맹의 현실
아프간 피랍 사태가 벌어진 지 만 2주를 맞은 지난 8월1일 서울 광화문 주한 미 대사관을 찾은 납치 피해자 가족은 이렇게 호소했다. “…세상에 어느 부모가 눈앞에서 사랑하는 자식이 죽어가는데 가만히 앉아만 있을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종교, 이념, 국가 문제도 아닙니다. 가족들의 소중한 생명이 걸린 것입니다. 제발 도와주십시오. 우리 가족들을 살려주십시오….”
‘김선일-윤장호-배형규-심성민.’ 아프간에서, 이라크에서 애꿎은 목숨이 스러져간 것은 ‘동맹의 그늘’이다. 아직 21명의 생때같은 목숨이 탈레반의 손아귀에 붙들려 있다. 애달픈 부모의 호소에도 ‘테러와는 타협 없다’는 원칙론만 되뇌는 게 ‘동맹의 현실’이다. 그러니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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