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땡땡이’ 치고나와 헤엄치고 먹고 자던 한강 수영장의 짜릿한 추억
▣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
럴수럴수 이럴 수가. 근 20년 넘도록 애용했던 ‘최고급 호텔 중 투숙하지 않아도 들어갈 수 있는 국내 유일의’ 서울 남산 타워호텔 야외 수영장이 문을 닫았다. 호텔이 통째로 팔려 리모델링 중인데 앞으로는 럭셔리 회원제로 운영된다고 한다. 바야흐로 수영장도 양극화가 가속되는 것인가. 이제부터 어디서 큰돈 안 들이고 선남들을 구경하란 말이냐.
그 시간엔 ‘아그들’부터 할머니들까지
나쁜 소식은 또 있다. 몸(무게) 되고 얼굴(크기) 되는 관계로, 언제부턴가 선글라스 속에서 눈알 굴리는 것도 ‘거시기’해지던 즈음, 거의 내 집 목욕탕처럼 퍼질러 앉아 이용할수 있던 경기 과천 서울대공원 인근 복돌이 수영장마저 문을 닫았다. 이곳은 내가 알기로 ‘한국인에 딱 맞는 식문화 생활’을 구가할 수 있는 유일한 수영장이었다. 입구에 “고기 구워먹을 수 있습니다”를 써붙여 놨었는데, 그런 강력한 ‘포스’로도, 혹은 그런 ‘포스’ 때문인지 운영이 쉽진 않았나 보다. 최근 몇 년간 이곳을 자주 찾았거나, 혹은 찾지 않았던 가족 단위 삼겹살 애호가들은 크게 반성할 일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날로 물이 좋아지는 도심 속 야외 수영장이 있다. 자고로 진정한 도심 속 수영장이라면 회사에 출근한 뒤 가방 던져놓고 버스와 지하철을 이용해 손쉽게 ‘땡땡이’ 칠 수 있는 접근성을 갖춰야 한다. 평일 오전 서울 한강시민공원 수영장의 한적함은, 상사의 전화가 언제 걸려올지 모른다는 불안과 어우러져 묘한 긴장을 자아낸다.
그날 우리도 그랬다. 기혼, 이혼, 비혼 남녀로 구성된 우리 혼성팀은 저마다 외근을 빙자해 아침나절에 회사를 빠져나와 여의도 수영장에서 ‘접선’했다. 공짜 파라솔 두 개를 붙여놓고 자리를 잡았다. 한강의 6개 야외 수영장에서 파라솔은 먼저 맡는 사람이 임자다. 오자마자 텅 비어 있는 물에 뛰어들어 가로세로 계통 없이 첨벙대다가, 매시 50분에 울리는 휴식시간 안내 음악을 들으며 나와 (그거 잠깐 운동했다고) 아무런 죄책감 없이 먹어댔다(낮은 관목으로 구성된 수영장 주위 울타리는 자장면과 치킨 등 각종 배달음식들을 ‘눈치껏’ 시켜먹기 딱 좋지만, 그러기 시작하면 칼로리 감당 못하니 자제하는 게 좋다). 술을 제외한 음식물 반입이 허용되는 것은 이곳의 큰 매력이다. 한 번쯤 더 물에 들어갔다 나왔던 거 같다. 한 친구는 물속에서는 요가가 잘된다고 까불다가 물을 왕창 먹었다. 등에 문신이 그려진 착한 ‘아그들’ 몇 명이 해맑게 공놀이를 했던가. 영어로 된 주간지를 들고 끊임없이 주위를 살피던 ‘고독한 지식인’으로 보이(고 싶어하)는 아저씨와, 아침부터 손 꼭 잡고 만나 별일도 아닌데 까르르 웃어대는 대학생 커플과, 꽃단장 곱게 하고 앉아 도란도란 얘기하는 할머니들이 있었던가.
우리는 나란히 때 밀어주는 자세로 앉아 오일을 바르고, 만화책과 통속소설을 머리맡에 늘어놓은 다음, 역시 공짜인 비치 의자의 높낮이를 조절했다. 그러고는 그대로 늘어지게 잤다. 가물가물 감기는 눈 아래로 고층빌딩들이 보였다. 저들은 오늘도 어김없이 밀폐된 냉방공기와 스트레스를 마셔대고 있겠지. 시원한 강바람과 첨벙대는 물소리, 자동차의 소음 사이로 달고 깊은 잠을 한숨 자고 나면, 직장인들의 점심시간이다. 이때는 보란 듯이(아니면 보지 말란 듯이) 물속에서 노는 게 좋다. 구름이 끼거나 비가 오는 날이면 더 좋다. 안 그러면 땡볕에 생긴 기미 잡티 주근깨로 겨울까지 고생한다.
늘어지게 자다 깨서 회사로 허둥지둥
그날도 분명 그러려고 했다. 그런데 점심시간을 지나 오후 나절까지 내처 자버렸다. 큰 수건을 둘둘 말고 눕는 게 아니었다. 오후 해가 기울었을 때, 잔뜩 먹고 자서 팅팅 부은 얼굴로 부스스 깨어났다. 아뿔싸. 오일을 너무 바른 탓에 나는 샤워실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몸을 닦는 둥 마는 둥 수영장을 빠져나왔다. 최소한 퇴근 시간 전에는 회사에 돌아와 있어야 하는데. 허둥지둥 버스 정류장으로 내달렸다. 아, 이 쫓기는 인생, 휴가도 부지런해야 떠나고 땡땡이도 부지런해야 치지.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탄핵으로 나갔다 탄핵 앞에 다시 선 최상목…“국정 안정 최선”
물에 빠진 늙은 개를 건져주자 벌어진 일 [아침햇발]
윤석열 “2번, 3번 계엄령 선포하면 되니까 끌어내”…국회 장악 지시
“교수님, 추해지지 마십시오”…‘12·3 내란 옹호’ 선언에 답한 학생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탄핵안 가결…헌정사상 처음
“백령도 통째 날아갈 뻔…권력 지키려 목숨을 수단처럼 쓰다니”
“이재명·우원식·한동훈부터 체포하라” 계엄의 밤 방첩사 단톡방
조갑제 “윤석열 탄핵 사유, 박근혜의 만배…세상이 만만한가”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키운 한덕수, 대체 왜 그랬나
[전문] ‘직무정지’ 한덕수, 끝까지 ‘야당 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