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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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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상사 해우소의 개운함을 아는가

등록 2007-07-06 00:00 수정 2020-05-03 04:25

지리산 자락에서 만난 실상사에서 머릿속과 뱃속을 깨끗이 비우다

▣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이른 새벽 목탁 소리에 잠깐 깼을 뿐 오랜만에 참으로 달게 잔 잠이었다. 머릿속으로 시냇물이 졸졸 흘러가는 듯한 이런 명징한 기운을 느껴본 게 얼마 만인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하다. 전날 지리산 종주 코스의 일부인 성삼재에서 노고단, 반야봉, 삼도봉을 거쳐 뱀사골 입구에 이르는 동안 17km가량 걸은데다 밤 11시도 되지 않은 시각에 잠자리에 들었기 때문이리라.

1박3일의 일정을 끝내고 다시 서울로 돌아가야 하는 6월3일이라는 날짜만 어렴풋이 떠올랐을 뿐 시각을 도통 알 수 없었다. 아무런 세간도 없이 텅 빈 요사채(절방) 벽에 시계가 있을 리 만무하다. 내게 시각을 알려주는 유일한 물건, 휴대전화는 진작 완전방전 상태였다.

‘큰 일’보려 앉으니 밀려오는 지·리·산

전날 뱀사골 입구에서 차를 얻어타고 오는 동안 꾸벅꾸벅 조는 바람에 숙소인 절에 도착해서도 제대로 살펴보지 못했다는 생각에 입구로 나가보았다. 전날도 느낀 바이나, 깊은 산중에 들어앉은 고즈넉한 여느 절들과 달리 너른 들판 가운데 마을의 일부로 자리잡은 게 특이하고 인상적이다. 입구 표지판에는 ‘실상사’라는 굵은 글씨 아래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 입석리 50번지’라고 적힌 주소와 함께 절 소개가 이어진다. “신라 흥덕왕 3년(828년) 증각대사가 9산선문의 하나인 실상산문을 개산하면서 창건했다. 통일신라 시대 작품으로 국보 10호인 백장암 3층석탑과 보물 11점을 포함해….”

한적한 기운을 즐기며 마을로 산책을 나가려는 찰나, 아랫배 쪽에서 묵직하게 ‘소식’이 전해져왔다. 절간에 들어서자마자 왼쪽에 자리잡은 해우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전날 ‘작은 일’을 몇 차례 치르면서 봐둔 터였지만, ‘큰 일’보는 몇몇 공간의 문높이는 가슴께에서 지나가는 길에 훤히 들여다보인다. 바지춤을 내리고 쪼그려 앉으면 들판 너머 저 멀리 병풍처럼 산이 둘러선다. 지·리·산이다. 흐린 날씨여서 또렷하게 보이진 않았는데, 천왕봉 쪽이란 얘기를 나중에 들었다.

해우소 안에는 ‘일을 본 뒤 한 바가지씩 뿌려달라’는 안내판 아래로 톱밥을 넣은 큰 통이 자리잡고 있다. 톱밥은 똥의 냄새를 줄이고 거름으로 잘 발효되게 하기 위함이다. 도시에서 태어나 수세식 화장실만 써본 이들은 질겁하며 코를 감싸쥘지 모르겠지만, 해우소 앞에 설치된 안내판의 글귀는 정겨움을 더한다. “쌀과 온갖 채소들은 똥·오줌의 또 다른 모습입니다. 농토와 쌀로 순환되지 못하는 수세식 화장실은 겉으로는 깨끗해 보이지만 우리가 식수로 사용하는 하천과 강물을 오염시키는 중요한 원인 중 하나입니다.”

머리에 이어 뱃속까지 비운 가벼운 걸음으로 경내를 거닐다가 뒤편에서 아주 인상적인 장면을 보았다. 절을 둘러친 돌담이 자동차가 오갈 정도만큼 툭 터져 마을 길로 이어지고 있었다. 들판에 자리잡은 절의 특이한 위치와 함께, 속세의 고민을 나눠지려는 상징으로 내겐 느껴졌다. 마을과 절을 잇는 통로 때문에 절 뒤편 돌담의 군데군데 허물어진 자리마저 정겨워 보였다.

실상사 갈까? 아내는 반색, 애들은 심드렁

내 평생 처음으로 절에서 묵어보게 된(템플스테이) 건 우연찮게 시작됐다. 5월 어느 날 편집장의 제안이 실마리였다. 박원순 변호사가 이끄는 ‘아름다운 가게’ 사람들의 지리산행 일정에 뜻만 있으면 참가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듣자마자 바로 마음을 정한 건 지리산이어서였다. 1988년 11월 처음 지리산에 갔을 때 운 좋게 ‘천왕봉 일출’을 본 강렬한 인상에 끌려 그 뒤 몇 번 더 정상에 오르긴 했어도 지리산은 늘 가고 싶은 산 1순위였다.

6월1일 밤 11쯤 서울 안국동 ‘아름다운 가게’ 본부에서 출발해 이튿날 새벽 4시께 전남 구례군 성삼재에 도착할 때까지 실상사는 별로 염두에 두지 않았던 터였다. 노고단에서 떡국으로 아침을 먹고 산길을 걸어 뱀사골 산장에 도착할 때까지 실상사는 그저 하룻밤 묵어가는 숙소였을 뿐이다. 실상사에 오기까지 이번 여행의 백미는 반야봉이라고 생각했다. 종주 코스에서 조금 벗어나 있어 등산객이 지나치는 수가 많은 반야봉에는 이제 막 피기 시작한 철쭉과 아담한 주목들이 자태를 뽐내며 ‘웅장한 지리산’을 ‘예쁜 지리산’으로 바꿔놓고 있었다.

반야봉이 지리산에 대한 애정을 깊게 했다면, 실상사는 앞으로 맞게 될 휴가의 코스와 행태를 바꾸게 될 듯싶었다. 집으로 돌아온 뒤 실상사로 가족여행을 한번 가자고 했더니 아내는 반색했고, 아이들은 심드렁해했다. 하긴, 올여름 실상사에서 다시 묵기는 힘들어졌다. 한 번 더 가볼까 싶어 연락을 해보았더니 요사채 공사 탓에 7월 중순부터 10월까지는 묵을 수 없다고 한다. 물론, 절은 언제든지 구경할 수 있고 인근 마을에 민박집도 많다. 단잠 뒤의 공복감에서 밀려오는 아련한 행복감이 벌써 그립다. ‘지리산을 마주 보며’ ‘쪼그려 앉아’ ‘근심’을 푸는 일도….

▶주변 관광거리:

실상사에서 걸어서 30분 정도 걸리는 곳에 의 무대인 백장계곡이 있다. 가족 단위로 쉬기에 적당한 곳이다. 걸어서 30~40분 정도 걸리는 곳의 약수암은 산책 코스로 알맞다. 차를 타고 남원으로 나가면 의 무대인 광한루, 최명희 소설 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마을에 조성해놓은 ‘혼불문학관’도 구경할 수 있다. *남원시청 문화진흥계 063-620-6162, 남원시 종합관광안내센터 063-620-6175, 632-1330



방에서 나올 땐 ‘나’를 깨고 나오라

며칠간 선방 문 잠가놓고 오직 자신과 기싸움을 해야 하는 ‘무문관 체험’

▣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내 안의 너는 누구냐? 세상과의 인연을 잠시 끊는 휴가, 온통 침묵으로 채운 휴가. 산속 절에서 생활하는 불교계 ‘템플스테이’ 프로그램 가운데 아예 며칠간 선방 문을 잠가놓고 오직 자신과 기싸움을 하는 체험마당이 있다.



이름하여 ‘무문관(無門關) 체험’. 동백꽃과 오밤중 보는 별밭이 아름다운 전남 강진군 백련사에서 2년 전부터 개설했다. 무문관은 쳇바퀴 일상에서 자신과의 끈을 놓친 사람들에게 손짓한다. 극도의 자기 집중 속에 섬광처럼 자아를 깨달을 것. 목표는 거창해도 수행법은 단순하다. 작은 골방에 들어간 뒤 밖에서 문을 걸어 잠근다. 그리고 2~3일 말없이 자신을 성찰하는 것이 전부다. 무문관이란 문이 없는 집이란 뜻이다. 열고 나가는 문의 존재를 지워버리고 오직 자신과 만나는 수행의 장소다. 그 이름 자체가 선불교에서 말하는 화두가 된다. 문이 있어야 집인데, 문이 없는 집에 들어갔다 나오려면 자신 앞의 닫힌 화두를 타파해야 한다. 자기를 깨고 나와야 한다는 말이다.
본디 중국 선종에서 비롯된 무문관은 선지식 깊어진 선승들이 자신의 수양을 넓히기 위해 즐겨 행했다. 토굴처럼 주변의 영향을 안 받고 수행에 집중할 수 있는 공간에서 대외 활동 없이 수개월 혹은 수년간 칩거하며 수행한다. 백련사의 무문관 체험은 근기 약한 대중에게 행하는 것이니만큼 1박2일, 2박3일, 4박5일의 일정만 허용한다. 기간은 8월12일부터 11월30일까지. 절 쪽에 신청을 한 뒤 주지스님 등과 홀로 수행할 수 있는 정신 상태인지를 우선 상담한다. 상담을 통과하면, 3만원씩 내고 절 경역 북쪽에 외따로 떨어진 숲 속 선방(이름도 ‘무문관’이다)으로 들어간다. 5~6평짜리 골방 5개가 있다. 건물에 들어간 다음에는 절 쪽에서 문을 자물쇠로 잠가버린다. 하루에 한 번씩 아침 7시10분 공양 구멍으로 그날치 끼니를 받는 것 빼고는 일체 접촉이 끊긴다. 안에서는 말하지 않고 머리로만 생각하되 무얼 하든 자유다.
명상을 권유받는 참여자들은 첫날 대개는 하루 종일 잠만 자며, 이튿날부터 스스로를 두려움 속에 되돌아보게 된다고 한다. 그동안의 삶을 돌이켜보고 앞으로 살 계획을 잡고, 자기 생각에 대한 관찰을 통해 자기에 대한 알음알이를 정립하는 과정이 되는 것이다. 묵언정진할 선방은 1인1실. 각기 화장실, 세면장이 딸렸다. 휴대전화, 책 등 소지품은 절대 갖고 들어갈 수 없다. www.baekryunsa.or.kr, 061-432-0837.



● 절로 떠나고 싶나요

1080배·선무술 체험·염주꿰기 등 사찰별로 다양한 프로그램 준비해

사찰에 머물며 불교 문화를 체험하는 ‘템플스테이’는 보통 이틀 일정으로 짜인다. 사찰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첫쨋날 오후 1시께 방 배정을 받고, 사찰 안내와 예절 교육을 받은 뒤 5시 저녁 공양(식사)에 이어 불교식 예경의식, 다도, 참선 같은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된다. 새벽 4시 기상으로 시작되는 이튿날에는 새벽 예불, 아침 6시 공양에 이어 불교식 체조, 사물놀이 등 사찰별 프로그램이 펼쳐진다.

조계종의 한국불교문화사업단에서 운영하는 템플스테이 사이트(www.templestay.com)에 나와 있는 여름수련회 일정을 보면 길상사(서울), 신륵사(경기 여주), 부석사(충남 서산), 통도사(경남 양산) 등 전국 31개 사찰에서 7~8월 중 집중적으로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이 실시된다. 성인들을 대상으로 상시 운영하는 곳도 많다. 월정사(강원 평창)에서는 사찰 예절과 함께 1080배를 프로그램에 포함시켜 눈길을 끈다. 굴곡사(경북 경주)에서는 판소리를 비롯한 전통문화와 선요가, 선기공, 선무술을 체험할 수있다. 내소사(전북 부안)는 숲 체험놀이, 변산반도 트레킹, 108배 염주꿰기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있다. *한국불교문화사업단 2011-19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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