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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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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을 향해 존엄을 외치다

등록 2001-03-20 00:00 수정 2020-05-02 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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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 시대, 사파티스타의 현재적 의미… 소수자들이 사회변혁에서 담당해야 할 역할 제시

많은 사람들은 착취와 억압과 전쟁으로 점철된 20세기 대안을 사회주의에서 찾아왔다. 현실의 사회주의들은, 공장에서 단련된 노동자들이 민중을 이끌 것이며, 원주민이나 농민은 분해되어 노동자가 됨으로써만 그들의 소소유자적 계급성을 벗어날 수 있다는 관념을 강화시켰다.

그러나 20세기가 저물기도 전에 지구상의 사회주의들은 붕괴했다. 자본가들과 그 이데올로그들은 이것이 자본주의의 최종적 승리를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역설적인 것은, 사회주의 나라들의 민중도 그것의 붕괴를 기쁨으로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나아가 그 붕괴에 능동적으로 참여했다는 점이다.

사회주의 이후 미완의 과제 탐구

외관상으로 옛소련을 비롯한 여러 사회주의 나라의 민중은 공산당의 불법화와 상품 논리의 대대적 유입을 환영하는 듯이 보였다. 이 모습은, 자본주의는 더이상의 다른 대안이 있을 수 없는 최종적 사회이며 역사는 끝났다는 후쿠야마식 주장에 무게를 실어주었다. 그러나 이 ‘새로운 세계질서’의 첫 장면은 걸프만에서의 전쟁이었으며 그 다음 장면은 발칸에서의 인종청소와 수많은 국지전들이었다.

탈근대가 포스트모더니즘의 나팔을 불면서 이처럼 잔혹한 모습으로 찾아왔을 때, 이를 뒤집는 사건이 멕시코의 가장 후진적인 지역인 치아파스에서,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깊은 밀림 라캉도나에서, 작업복 차림의 현대화된 노동자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검은색 스키마스크를 쓰고 목총을 둘러맸으며 말을 탄 원주민 농민들에 의해 벌어질 줄을 누가 상상이라도 했겠는가?

스스로를 사파타를 따르는 사람들이라고 부르는 이들의 혁명적 봉기는, 마치 원시가 신자유주의적 문명의 발밑을 허물며 치솟아오르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이것은 우리를 노년의 마르크스가 부딪혔던 것과 유사한 문제상황에 던져넣는다.

자본을 넘어설 힘을 줄곧 공장노동자에게서 찾아온 마르크스는 노년에 이르러 자본에 대항하는 러시아의 미르 공동체와 농민의 저항이 사회이행에서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라는 문제에 봉착했다. 사파티스타의 봉기는 제2인터내셔널 이후의 사회주의운동에서 봉쇄되었던 이 미완의 탐구과제를 다시 제기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계급 외에도 인종, 성별, 지역, 종교, 문화 등에 따라 분할의 선이 그어진 현대사회에 맞선 소수자들의 저항이 사회이행에서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라는 문제로 확장시켜놓고 있다.

첫째로 이들의 봉기는 현대 자본주의가 최종적으로 완성된 사회가 아니라 인류에게 단말마적 고통을 안겨주고 있는 낡고 위기에 찬 사회임을 증언한다. 이 위기에서 벗어나려는 자본의 시도는 멕시코 혁명의 성과로서 농민의 토지 이용권을 규정한 연방헌법 27조를 삭제하려는 시도로 나타났다. 원주민들은 이에 대한 무장저항을 선택함으로써 토지로부터 농민의 분리를 영구화하는 이 시도를 어떤 불가항력적 법칙으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했다.

둘째로 이들은 현대사회의 변혁은 공장 노동자들이 중심이 되어 여타 민중을 지도하는 위계적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는 없으며 원주민, 실업자, 여성, 지식인, 노동자, 농민, 빈민, 학생 등 사회의 지배적 공리에 의해 고통을 당하는 소수자들이 자신들의 사회적 존재에서 비롯되는 필요와 욕구를 적극 제기하고 공명대를 찾아 연합함으로써 광범위한 전선을 구축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함을 보여준다.

삶의 존엄성 재정의

사파티스타민족해방군 부사령관인 마르코스는 “피착취계급의 통일”과 “여러 계급의 통일”이라는 두 전선의 병행적 구축이 가능하다는 말로써 이러한 생각을 표현했으며 사파타스타들은 원주민회의, 사파티스타민족해방군(EZLN: 원주민회의의 군사조직), 사파티스타민족해방전선(FZLN: 사파티스타 정치조직), 그리고 민족민주회의(CND: 사파티스타를 지지하는 시민단체 연합조직으로 사파티스타도 그 일부) 등 다층위적인 투쟁체들의 병행적 구축을 통해 이것을 실천했다.

셋째로 사파티스타는 기술문명에 대한 새로운 태도를 제시했다. 그들은 기술문명이 무릎꿇고 찬미되어야 할 것(포스트모더니즘)도, 비난되고 폐지되어야 할 것(원시주의)도 아니며 오직 삶과 해방의 이익을 위해 가공되어야 할 것임을 보여주었다.

그들은 봉기 첫날부터 멕시코 정부에 대한 선전포고를, 그리고 자신들이 싸움에 나서게 된 이유를 초현대적 테크놀로지인 인터넷을 이용해 전세계 사람들에게 알렸고 그들로부터 지지와 공명을 이끌어냈다.

그리하여 그들은 원주민으로서의 자신들의 오래된 정체성을 새롭게 구성된 사이버스페이스와 결합시키는 데 성공함으로써 신자유주의적 배제정책에 의해 강제된 말살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마르코스는 자신들의 전쟁을 ‘말들의 전쟁’이라고 부름으로써 치아파스 봉기가 획득한 투쟁의 지적, 문화적, 윤리적 성격을 정의했다.

투쟁의 이 새로운 성격으로 말미암아 내전은 양쪽의 물리적 무장력에만 국한되지 않는 지적-윤리적 역관계에 의해 규정되었다. 미국의 지원을 받는 초현대식 무기로 무장한 멕시코 정부군이 원시적 무기로 무장한 사파티스타와 7년에 걸친 전쟁을 치러야 했고 마침내 수도 멕시코시티로의 진입을 허용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은 투쟁력을 구성하는 이 복잡한 차원들을 떠나서는 이해하기 힘든 것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이들이 혁명을 정치적-경제적 수준보다 훨씬 깊은 삶의 존엄성이라는 존재론적 수준에서 재정의한 것이다. 이것은 국가권력 장악이라는 혁명의 전통적 목표에 대한 단호한 거부를 통해 드러났다. 그것은, 인류의 공동체적 결속을 위한 혁명이 국가라는 형태를 통해서는 이루어질 수 없다는 인식에 기초한다.

‘거울 속의 나’를 거부하며

이것은 1871년의 파리 코뮌 혁명을 통해 새로운 혁명은 기존의 국가를 접수해서 사용할 수 없음을 깨달은 마르크스의 발견과 상통하는 것이면서도, 제2인터내셔널 이후의 전통적 혁명관에 묶인 사람들로 하여금 사파티스타 운동을 ‘무장한 개량주의’라고 비난하게 만드는 지점이기도 하다.

파리 코뮌 이후 사파티스타가 인류에게 제기하는 가장 중요한 사상적-정치적 혁신인 국가권력 장악 거부의 이 정치학 위에서 이들은 각 개인들, 집단들, 계급들이 자신들의 존엄을 주장하고 그것의 침해에 저항하며 존엄의 확장을 위해 노력할 것을 주장하는데 이 노력이 그들이 말하는 자치(autonomy)의 진정한 의미이다.

마르코스는 에서 자치가 일체의 거울놀이의 중단을 통해 비로소 달성될 수 있음을 시적으로 표현한다. 그에 따르면 자치는 제도혁명당(PRI: 세비요 대통령 당시 집권당)-국민행동당(PAN: 소수당으로 비센데 폭스 대통령의 현 집권당)의 신자유주의나 민주혁명당(PRD: 사회민주주의 지향성을 가진 야당)의 민중주의-사회주의와 같은 대의정치적 거울들 속에 비친 나를 쳐다보며 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삶의 행진을 시작하는 것이다.

멕시코시티로의 3000km에 달하는 대장정(사파투어)은 이 삶의 행진의 한 국면이다. 승리와 위기를 동시에 함축하고 있는 이 행진은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인류의 존엄의 행진이다. 이런 의미에서 사파티스타와는 다른 조건에서 제기되는 삶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이 땅의 소수자들의 투쟁도 실제로는 그 행진의 일부라고 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의 광풍 속에서도 삶의 지구적 대장정의 밑그림은 이렇게 조금씩 그려지고 있다.

조정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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