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단을 위한 사실 정보도 이뤄지지 않는 상황, 6월 대통령 서명 전까지 행정부를 견제할 수단은 전혀 없는가
▣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통상 업무를 전담하는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이하 통상본부)에 관료사회 안팎의 눈길이 쏠려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타결을 앞뒤로 나타난 분위기다. 예전의 통상 조약과 달리 FTA의 포괄 범위가 경제·사회 전반으로 넓어지면서 외교부 내 한 부문 이상의 존재감으로 부각돼 있다.
협정문 공개를 둘러싸고 벌어진 블랙코미디
사회·경제 이슈를 주도하는 통상교섭본부의 존재감은 규모의 확대로 반영되고 있다. 출범 첫해인 1998명 97명으로 시작한 통상본부의 인력 규모는 지난해 말 195명으로 배 이상 늘었다. 같은 기간 외교부 본부(재외공관 제외)의 인력 규모는 595명에서 641명으로 7%가량 늘어나는 데 그쳤다. 통상본부의 인력 증가세가 두드러진 것은 한-칠레 FTA가 발효된 2004년부터였다.
외무고시가 아닌 행정고시 출신들이 외교부에 배치되는 사례가 뚜렷해진 것도 이즈음이었다. 행정자치부에 정보공개를 청구해 받은 자료를 보면, 통상본부 출범 첫해인 1998년 이후 2003년까지는 행정고시(기술고시 포함) 출신들이 외교부에 지원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외무고시 출신들이 득세하는 조직이라 꺼렸음직하다. 1999년 기술직 1명을 포함한 3명, 2000년 2명의 행정고시 합격자가 외교부에 배치됐을 뿐 그 뒤 2003년까지는 1명도 없었다. 해마다 4~6명에 이르는 행정고시 출신들이 외교부에 지원해 통상본부에 배치된 것은 2004년부터였다. 한-미 FTA에 이어 주요 FTA가 줄줄이 예정된 데 따른 권력 강화의 흐름을 반영한 것이었을까?
통상본부의 부각은 행정부 안에 머물지 않고 국회와 맞닥뜨리는 대목에서도 다른 부처들과는 사뭇 달라 보인다. 한-미 FTA 협정문 공개를 둘러싸고 벌어진 한 편의 블랙코미디는 국회의 견제권 저 멀리 떨어져 있는 통상본부의 존재를 새삼 실감케 했다.
한-미 FTA 찬성파 의원에게 협정문을 보여준 사실이 뒤늦게 탄로난 걸 빌미로 4월20일부터 시작된 협정문 공개는 국회 본관 236실에서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와 한미FTA특위 위원들에만 허용됐다. 컴퓨터 모니터로만 볼 수 있도록 했고, 필사 행위는 금지됐다. 애초 약속과 달리 협정문 전체가 공개된 것도 아니었다. A4용지 기준으로 1천 쪽 안팎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진 협정문 중에서 이번에 모니터로 제한 공개된 분량은 600쪽 안팎이었다고 한다. 협정문의 실체를 파악하는 데 관건인 관세 양허안, 서비스·투자 유보안, 품목별 원산지기준 등은 빠졌다.
사실상 비공개나 마찬가지인 이런 방식에 반발해 통외통위는 열람을 즉각 거부했고, 특위 소속 의원들도 보좌관만 비공개 열람실로 일부 들여보냈을 뿐 직접 열람은 거부하고 있다. 영문으로 된 방대한 보고서를 전문가 한 명 대동하지 않고 열람하는 건 아무런 실익도 없고 덤터기를 쓰는 빌미만 제공한다는 염려 때문이다. 모니터로 협정문을 열람한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실의 임수강 보좌관은 “23일부터 이틀 동안 각 2시간 정도 봤는데, 영어로 돼 있는데다 분량이 방대해 내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다”고 답답해했다. 행정부 쪽의 버티기에 국회가 대응할 수단은 아무것도 없다.
서명 전까지 넋놓은 ‘대내 협상’
협상 타결 직후인 4월 초부터 30개 안팎의 민간자문위원회 소속 700여 명의 전문가들에게 협정문을 공개해 평가·검증 작업을 벌이고 있는 미국 쪽과는 대조적인 한국의 통상 당국에 대해 나중에 있을지 모를 ‘책임 추궁’을 피하기 위한 것이란 의혹이 일고 있다. 4월2일에 이뤄진 타결문에 수정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거나, 미국 쪽으로 유리한 방향으로 지금도 사실상 협상이 이뤄지고 있다는 따위의 소문이다. 통상본부의 공언대로 5월20일께면 협정문 전체가 공개될 예정임을 감안할 때 지금 같은 ‘밀실·비밀주의’ 행태는 납득하기 힘들다는 점에서 제기되는 의문이다.
오동석 아주대 교수(법학)는 “영어로 (한-미 FTA) 협상이 진행되고, 협정문도 영어로만 돼 있다면 법적으로 논란의 여지가 많다”며 “협정문의 표현 하나하나가 파급 효과를 띠는 것이기 때문에 분야별 전문가가 개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협상이 끝났다면 (전모를) 드러내지 못할 이유가 없다. 지금까지도 협정문을 공개하지 않는다는 것은 (국회의) 통제를 받지 않겠다는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통상독재’라는 말이 그래서 나오는 것 아닌가?” 오 교수는 “국회가 비준 동의안 처리라는 법적 권한을 행사하려면 판단을 위한 사실과 정보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도 했다.
한-미 FTA 협상에서 독주해온 행정부에 대해 국회가 넋을 놓고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건 이번만이 아니다. 지난해 2월 공청회를 열려다 무산된 바로 다음날 협상 개시를 선언하는 행정부의 일방적인 처사에 대해 국회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한-칠레 FTA 발효 뒤 대통령 훈령으로 만든 ‘FTA 체결 절차 규정’(2004. 6)에 반드시 공청회를 거치도록 돼 있는 조항은 있으나 마나다. 통상절차법 제정 작업을 주도적으로 추진해온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실은 이 조항을 근거로 법원에 통상 당국을 제소하려다가 변호사의 자문을 받은 뒤 씁쓸하게 손을 떼야 했다. 대통령 훈령은 국민을 대상으로 한 게 아닌데다 처벌 규정이 없어 제소의 실익이 없다는 것이었다.
앞으로 남은 한-미 FTA 일정에서도 국회가 손댈 데는 없다. 5월 들어 협정문이 전면 공개된 뒤 국회 특위나 통위통위, 또 몇몇 상임위를 중심으로 행정부를 상대로 한 질의 응답이 오가는 게 예상될 뿐이다. 6월 말로 예정된 한-미 FTA 협정문에 두 나라 대표가 정식 서명할 때까지 한국 의회는 지켜만 봐야 한다. 헌법 규정에 따라 통상 협상권을 쥐고 있는 미국 의회가 대통령 ‘서명 전’에 (협정문 서명에 대한) 승인권을 행사하는 것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지점이다. 헌법이란 제도적인 차이에 따른 것이라곤 해도 ‘협상 개시 직전’이나 ‘과정’뿐 아니라 ‘협상 뒤’에까지 한국 국회의 역할은 철저히 차단돼 있다. 통상 당국은 다른 나라와 벌이는 협상을 타결하는 ‘대외 협상’의 실적 쌓기에만 신경쓸 뿐 국내 이해당사자들을 설득시키는 ‘대내 협상’에는 아무런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온다.
과거 3년 58건 통상법 처리를 보라
국회는 협정문 비준안에 대한 동의권을 행사하는 식으로 가부만 표시할 뿐이다. 다른 법률안이라면 국회가 내용을 고치는 게 가능하지만, 한-미 FTA 협정문 비준안 처리 때는 국제 조약이라는 이유로 수정할 권리를 갖지 못한다. 거꾸로 한-미 FTA에 따라 뜯어고쳐야 할 국내법은 정부가 인정한 것만 해도 20~30개에 이른다. 100개를 훨씬 웃돈다는 얘기도 있다. 이행 법안을 만들어 기존 국내법과 상충하는 문제를 해소하는 미국과 정반대다. 입법권은 국회에 있다는 헌법 40조가 무색해진다. 통상 정책에 3권 분립의 민주주의가 휘둘리고 있다는 한탄이 나오는 대목이다.
국회가 비준안을 잘 따져 거부하면 되는 것 아니냐는 원론적 질문은 무익하고 비현실적이다. 국회가 지난 3년(17대 국회) 동안 59건의 조약 및 협정 비준안을 처리하면서 행정부를 견제·감시하는 입법부로서 의미 있는 움직임을 보인 적은 한 차례도 없다. 한-미 FTA 비준 동의안 처리는 ‘거수기’ ‘통법부’라는 오명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60번째 사례로 기록될지 모른다.
오동석 교수는 “(한-미 FTA 협상) 타결 내용 전체가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사례에 비춰볼 때 주권 침해라 할 정도로 입법·사법권을 비롯해 국가 전반에 효력을 끼치는 조약인데도 이를 통제할 헌법 시스템은 작동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헌법에 국회가 일부 통제하는 규정(비준안 동의)이 있긴 해도 현실적으로 부결되는 사례가 없는 관행이 이어지고 있다. 1987년 헌법 등장 이후에도 군사·외교·통상에 대해 어떻게 민주적으로 통제할 것인지를 제대로 고민하지 못했다. 국가 전반에 효력을 미치는 한-미 FTA에서는 뭔가 달라야 한다.”
통상 협상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행정부에 대한 적절한 제어가 이뤄지지 않는 1차적 책임을 국회 쪽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협상에 국회가 간여할 수단이 없다는 ‘제도적 불비’ 탓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국회의 의지와 역량의 미흡에서 비롯됐다는 비판은 FTA 찬반 진영을 불문하고 넓게 퍼져 있다. 국회에 한미FTA특위가 꾸려진 게 협상 개시를 선언한 지 5개월 뒤인 지난해 7월이었다는 사실은 국회의 무능과 불감증을 반영하는 여러 사례 가운데 하나다.
최근 통상 협정은 주권 영역을 건드리는데…
물론 행정부 쪽의 독주에 국회가 완전히 손을 놓고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권영길 의원 주도로 지난해 2월 ‘통상 협정의 체결 절차에 관한 법안’(통상절차법안)이 제출돼 있다. 통상 협상 과정에서 국회에 정기적으로 보고하는 것을 의무화하고, 민간자문기구 구성과 참여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내용이다. 행정부의 독주를 국회가 제어하고, 이해당사자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통로를 확보해 사회적 갈등과 그에 따른 비용을 줄이자는 취지다. 권 의원 쪽의 통상절차법안 제출 뒤 이상경·송영길 열린우리당 의원 대표 발의의 통상절차법안이 잇따라 국회에 제출됐다. 하지만 그뿐이다. 처리는 요원하고 심의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통상 정책에 대한 국회의 무심함을 보여주는 사례를 하나 더 보태고 있을 뿐이다.
조성대 한신대 교수(법학)는 통상절차법 제정의 필요성과 함께 헌법을 적극적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조약의 체결·비준에 동의권을 가진다’고 돼 있는 헌법 60조 1항이 지금까지 축소 해석돼왔고, 이는 잘못이라는 것이다. 비준안에 대한 동의권뿐 아니라 협정문에 대한 대통령 서명(체결) 이전에 미리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의 요지다. 조 교수는 “전통적인 의미의 통상 협정은 관세·비관세 장벽을 낮추는 것이었지만, 요즘은 투자·서비스 부문처럼 주권 영역에서 다뤄졌던 게 국제적인 영역에서 다뤄지고 있다”며 “조약의 결과에 따라 국민 개개인들이 영향을 받기 때문에 체결 전에 검증을 받는 국회의 권한이 강화돼야 한다”고 말한다. 통상절차법안이나 헌법의 해석 문제가 한-미 FTA와 얽혀 현실적이고 유의미한 논란으로 이어질지 여부는 5월 중 공개될 협정문의 ‘실체’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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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결 자체에 대한 비준’ 동의권이냐, ‘체결과(and) 비준’ 각각에 대한 동의권인가?
헌법 제60조 1항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처럼 ‘국가나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조약의 체결·비준에 대해 국회는 동의권을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체결·비준’으로 표현된 부분을 두고 한 덩어리로 봐야 하는 것인지, 서로 다른 별개의 법률적 행위로 구분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란은 헌법학계의 묵은 숙제로 남아 있다.
외교통상부 쪽에서 주장하듯 한 덩어리로 보아 ‘체결 자체에 대한 비준’으로 볼 경우 국회의 권한은 최소한으로 축소돼 대통령 서명 뒤 동의권만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반면, 체결과 비준을 별개로 볼 경우 대통령 서명 전에도 국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얘기가 된다. 또 협상 전이나 과정에서도 국회 쪽에 정보를 충분히 제공해야 한다.
헌법 통설은 체결과 비준을 법률적으로 서로 다른 행위로 여기고 있다. 허영의 (2005) 172쪽에는 “헌법 73조가 체결, 비준을 구분해서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이 경우(60조 1항)의 ‘체결’은 그것을 좁은 의미로 해석해서 전권대표의 지명·파견, 조약 내용에 대한 기본 방침 지시 등의 뜻으로 보아야 할 것”이라고 돼 있다. 제헌헌법에 의회는 ‘비준 동의권’을 갖는다고 돼 있다가 1962년 5차 개정 헌법 때 ‘체결·비준 동의권’을 갖는다로 바뀌었던 역사적 맥락에서 보더라도 둘은 서로 다른 법률적 행위로 풀이된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외국과 맺는 조약에 국회는 최종 단계에서 승인권만을 행사해온 관례에 따라 체결에 대한 동의권은 없는 것처럼 여겨져왔다.
‘체결·비준’의 해석을 둘러싼 논란은 헌법재판소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는 거대 이슈이기도 하다. 민주노동당 소속 9명을 비롯한 국회의원 23명이 지난해 9월 “정부가 한-미 FTA 협상 체결 과정에서 헌법에 명시된 국회의 조약 체결에 관한 동의를 받지 않은 채 협상을 진행하는 것과 협정문 초안 및 1, 2차 협상 결과 등 일체의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행위는 명백한 위헌”이라며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했기 때문이다. 아직 공개변론조차 시작되지 않은 터여서 한-미 FTA 협상 일정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는 미지수이나, 이 권한쟁의심판은 행정부와 국회의 헌법적 관계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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