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공대 사건은 지극히 미국적 문제, 이익집단과 정치권의 결탁으로 규제정책은 전혀 전진이 없어
▣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괴물 같은 짓을 저지를 만한 사람은 원래 전혀 괴물 같아 보이지 않는 법이다.”
시사주간지 은 4월18일 인터넷판에서 버지니아주 총기난사 사건의 용의자 조승희씨가 사건에 사용한 총기를 구입한 로어노크 무기상을 찾았다. 사건 발생 장소인 버지니아공과대학에서 약 50km 떨어진 문제의 상점의 주인인 존 바켈(58)은 과의 인터뷰에서 “지난 3월 초 조씨가 총기를 사러 왔을 때 쉽게 만날 수 있는 말쑥한 젊은이라고 여겼다”며 “사고파는 과정에서 기억에 남을 만한 일이라곤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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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에서 멕시코 음식 먹기 같은 총기 구입
로어노크 무기상 직원들의 말을 종합하면, 조씨는 무기 구입에 앞서 버지니아주 운전면허증과 주소지가 인쇄돼 있는 수표책, 그리고 미국 영주권자임을 확인할 수 있는 이민서류 등을 신분확인용으로 제시했다. 진열된 총기 가운데 ‘글록 19’ 반자동 권총을 고른 그는 자신의 신용카드로 대금 535달러를 결제했다. 그사이 판매직원은 버지니아주 경찰당국 컴퓨터망에 접속해 조씨의 신원을 조회했다. 확인 작업을 거쳐 조씨가 새로 산 권총을 들고 유유히 사라지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10분이 걸리지 않았다. 인터넷 매체 가 “버지니아주에서 총기를 합법적으로 손에 넣는 것은 멕시코에서 멕시코 음식을 먹는 것만큼이나 쉬운 일”이라고 표현한 것도 무리는 아닌 게다.
지난 4월16일 오전 7시5분께 시작돼 9시45분께 막을 내린 버니지아공대 총기난사 사건은 미국 역사상 최악의 학원 유혈사태로 기록된다. 그날의 총질로 조씨를 포함해 33명이 목숨을 잃었고, 29명이 다쳤다. 특히 조씨가 사건 당일 아침 첫 번째 학살극(기숙사)과 두 번째 학살극(강의동) 사이에 우편으로 보낸 것으로 추정되는 성명서와 영상 및 사진 자료가 〈NBC〉를 통해 전파를 타면서, 미국 전역이 경악하고 있다. 범행에 앞서 치밀하게 준비한 영상물에서 섬뜩한 저주의 말을 쏟아낸 조씨는 어느새 ‘광기’의 상징이 돼버렸다. 이번 사건은 단지 조씨 개인의 광적인 일탈이 빚어낸 일회적 비극일 뿐일까?
“에릭과 딜런 같은 순교자처럼….” 조씨는 〈NBC〉에 보낸 ‘성명’에서 1999년 4월20일 발생한 콜럼바인 고등학교 총기난사 사건의 범인들 이름을 언급했다. 콜로라도주의 한적한 소도시 리틀턴에 위치한 콜롬바인 고등학교 학생이던 에릭 해리스와 딜런 클레볼드는 8년 전 그날 오전 11시부터 한 시간 남짓 700여 발의 총탄을 퍼부어 12명의 동료 학생과 1명의 교사를 무참히 살해한 뒤 자살했다. ‘트렌치코트 마피아’로 불렸던 그들은 학교를 자퇴하기 전까지 ‘왕따’의 피해자였고, 철저한 외톨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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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 1.5세대’로 침울한 성격의 소유자였던 조씨가 생전에 고립된 섬처럼 생활했다는 점에 비춰, 참극으로 삶을 마감하기에 앞서 그들의 이름을 입에 올린 것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이민자가 세운 나라임에도 인종 차별이 극심한 게 미국의 현실임을 감안할 때, 조씨 역시 예민한 사춘기 시절 따돌림을 당한 상처에 시달리고 있었을 가능성도 높다. 하지만 그것으로도 평범한 젊은이가 어느 날 갑자기 ‘괴물’로 변해버린 이유를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 결국 해답은 미국 사회 내부에서 찾아져야 한다. 학교 총기난사 사건은 지극히 미국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성인 한 명당 1정 보유
미국 시민단체 ‘총기폭력 방지연합’(CSGV)이 내놓은 자료를 보면, 미국에선 하루 평균 80여 명이 총기 관련 사건·사고로 목숨을 잃는다. 한 해 대략 3만 명 규모다. 좀더 구체적으로 들여다보자. 또 다른 시민단체인 ‘브래디 총기규제 센터’의 자료를 보면, 지난 2000년 미국에선 모두 2만8663명이 총기로 인해 목숨을 잃었다. 이 가운데 자살자가 1만6586명으로 가장 많고, 살인사건 희생자가 1만801명, 기타 의도하지 않은 총기 사고로 인한 사망자가 1276명에 이른다.
현재 미국 사회에 ‘깔려 있는’ 총기는 대략 2억 정으로 추정된다. 이 가운데 6500만 정가량이 권총이다. 미국 성인 한 명당 1정 이상의 권총을 소유하고 있는 꼴이다. 지난 2000년 미국에서 각종 총기 사건으로 사망한 19살 이하 청소년과 어린이는 모두 3365명이다. 하루 평균 9명이 목숨을 잃은 셈이다. 미국에서 총기 사고로 인한 15살 이하 어린이 사망자 규모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치의 12배를 넘는다. 또 15~34살 흑인 남성 사망 원인의 1위, 15~24살 히스패닉계 남성 사망 원인의 2위도 다름 아닌 총기 사고다.
이로 인해 미국 사회가 치르고 있는 비용도 만만찮다. 듀크대 필립 쿡 교수와 조지타운대 젠스 루드비그 교수는 지난 2002년 2월 함께 펴낸 이란 책에서 총기 관련 사건·사고로 인해 미국이 치르는 사회적 비용이 연간 1천억달러를 넘어설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인터넷 대안매체 가 4월18일치 워싱턴발 기사에서 “9·11 동시테러 희생자는 3천 명이지만, 한 해 총기 관련 사건·사고로 목숨을 잃은 이들은 그 10배에 이르는 3만여 명”이라며 “테러 근절을 위한 노력의 10배를 총기 규제에 쏟아붓지 않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지적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럼에도 현재 미 연방정부 차원에서 개인의 총기 소유를 규제할 만한 법규는 사실상 전무한 상태다. 1994년 살상용 총기와 대형 탄창 사용 규제 등의 내용을 담은 규제법안이 마련됐지만, 미 의회는 지난 2004년 이 법안의 효력 만료 시점에서 이를 연장하지 않았다. 이런 분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2005년 공화당의 주도로 통과된 총기 제조사 배상책임 면제 법안이다. 흡연 때문에 폐암 등 각종 질병에 걸린 이들이나 그 가족이 대형 담배업체를 상대로 소송을 내면서 유해물품 제조사 책임의 범위에 대한 논란이 미국 사회에서 확산됐다. 당연히 총기업계에 비상이 걸렸고, 이들의 강력한 로비에 힘입어 통과된 것이 이 법안이다. 총기 사고의 희생자나 그 유가족이 총기 제작업체, 판매업체, 중개상이나 수입상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할 수 없도록 하는 게 법안의 뼈대다. 이 법안이 통과된 배후에 미국에서 가장 강력한 로비단체인 전미총기협회(NRA·이하 총기협회)가 있다는 점은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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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기협회 호의적 10여 년 새 8% 상승
1871년 뉴욕에서 설립된 총기협회는 현재 430만 명의 회원을 자랑하는 거대 조직이다. 전미은퇴자협회(AARP)와 유대인 로비단체인 미국이스라엘공공문제위원회(AIPAC) 등과 함께 미국 3대 압력단체로 꼽히는 이 단체는 역대 대통령 선거 때마다 막대한 선거자금과 강력한 로비력을 동원해 총기 규제에 소극적인 공화당 후보를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왔다. 총기협회는 총기를 소유하는 것이 미국민의 ‘헌법적 권리’라고 강조한다. 미 수정헌법 제2조가 모든 국민에게 총기 소유와 휴대의 권리를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게다. 하지만 이는 “수정헌법 2조가 만들어질 당시의 역사적 맥락을 무시한 의도적 왜곡”이란 게 총기 규제론자들의 반론이다.
수정헌법 2조는 느슨한 주정부의 연합체적 성격이던 미국이 영국의 식민지배에서 벗어나 강력한 연방제 국가로 이행해가는 과정에서 만들어졌다. 폭압적 연방정부 출현을 우려했던 미국 건국세력들은 주정부의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해 각 주정부가 보유하고 있는 자체 민병대를 연방국가 참여 이후에도 유지할 수 있도록 했다. 외부 세력은 물론, 연방정부에 대항해서도 주정부가 억지력을 지닐 수 있도록 한 셈이다. 미 대법원이 1939년 ‘미합중국 대밀러’ 사건에서 “수정헌법 2조는 개인의 무기 소유권을 인정한 것이 아니라, 잘 조직된 민병대를 유지할 수 있는 주정부의 권리를 인정한 것”이라는 판결을 내린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대법원은 그동안 여러 차례 총기 규제 관련법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린 바 있지만, 수정헌법 2조에 근거해 판결을 내린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었다.
하지만 현실은 판이하다. 총기협회를 비롯한 각종 이익집단의 치밀한 전략과 정치권의 이해타산이 맞물리면서 총기 규제정책은 한 치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선명한 법적 논리를 손쉽게 뛰어넘는 총기 소유에 대한 미국인 특유의 ‘집착’은 이런 정치공학의 결과물일 뿐이다. 그럼에도 그 ‘신화’의 힘은 강력해 보인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퓨리서치센터가 지난 4월3일 내놓은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최근 10여 년 새 총기협회에 대한 미국인들의 이미지는 꾸준히 좋아진 반면 총기 규제 조치에 대한 인식은 반대로 나빠지는 추세다.
조사 결과를 구체적으로 보면, 1995년 조사 당시 총기협회에 호의적이란 답변은 44%였으나, 올해 조사에선 52%가 호의적이라고 답했다. 1999년 콜럼바인 고교 총기난사 사건을 겪었음에도 긍정적인 답변이 10여 년 새 8%포인트 상승한 것이다. 반면 강력한 총기 규제법 도입에 찬성한다는 의견은 주춤하는 모양새다. 1990년 9월에 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78%가 총기 규제 강화에 찬성한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지난해 10월 조사에선 응답자의 56%만이 찬성 의견을 내놨다. ‘집안에 총기를 두는 게 안전에 도움이 된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지난 2000년 조사에선 “그렇다”는 답변이 35%였지만, 2004년과 2006년 조사에선 각각 42%와 47%로 높아졌다. 버지니아공대 총기난사 사건 직전인 4월13~15일 총기협회가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에서 제136차 연차총회를 성대히 열고, 총기 규제 입법 움직임을 강력히 비난하고 나선 것도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범행 동기가 무엇이든 간에…
“버지니아의 아름다운 대학 캠퍼스에서 총기를 난사한 (조씨의) 범행 동기가 무엇이었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정치인들과 전문가들이 언론에 나와 이번 사건에 대해 떠들어대는 말에도 귀기울일 필요가 없다. 이런 일은 과거에도 익히 봐왔고, 그 이후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총기 규제법이 강력해지기엔 총기협회가 너무도 많은 선거자금을 대고 있고, 거느리고 있는 로비스트도 많기 때문이다.” 칼럼니스트 조지프 팔레모는 사건 발생 직후 인터넷 매체 에 올린 글에서 “총기협회가 민주·공화 양당의 목줄을 죄고 있는 상황이 바뀌지 않는 한, 자살 유혈극의 근본적 원인을 해결할 순 없다”며 “범행 동기가 무엇이든 간에 총기를 쉽게 구할 수 없었다면 중간고사 준비에 분주할 32명의 젊은이가 목숨을 잃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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