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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역을 깬 죄, 그 소송의 역사여

등록 2007-03-23 00:00 수정 2020-05-03 04:24

황태자부터 외고까지 사회적 반향이 클수록 소송의 압박도 강하더라

▣ 김창석 기자 kimcs@hani.co.kr

검사들끼리 하는 우스갯소리로, ‘검사는 피의자를 잘 만나야 한다’는 말이 있다. 범죄사실을 술술 털어놓는 피의자를 만나면 빙산의 일각만 드러난 대형 사건의 전모를 파헤치는 행운을 누리기도 하고, 정치적인 비중이 큰 인물이 피의자로 연루된 사건을 맡았다가 정권이 바뀐 뒤 인사에서 ‘물을 먹는’ 악운을 겪기도 한다. 기자 역시 취재원을 잘 만나야 한다. 요즘처럼 보도 때문에 법적 분쟁을 겪는 경우가 다반사인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기사에 불만을 품고 형사고소를 하거나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취재원이 늘어나는 세태를 탓할 수는 없다. 법적 다툼에 휘말리는 것은 기자들에게도 고역이지만, 전체 사회의 인권의식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얘기도 되기 때문이다. 기자에게 법적 분쟁은 이제 숙명이다.

창간호부터 ‘소통령’을 건드리다

은 어땠을까. 창간호 때부터 이 숙명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1994년 3월24일치 창간호는 ‘김현철은 새 정부 최후의 성역인가’라는 제목의 특집기사를 실었다. ‘성역 없는 비판’의 기치를 내건 로서는 김영삼 문민정부의 막후 실세로서 ‘소통령’이라는 별명이 붙었던 김영삼 당시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의 국정 개입을 좌시할 수 없었던 것이다. 당시 현철씨가 문민정부의 핵심 인사권에 관여하는 것은 물론 이권에 개입하고 있다는 설들이 간간이 불거졌지만, 이를 본격적으로 취재하고 보도하는 언론은 없었다. ‘민자당 총재 자제분’ 또는 ‘현 정권 실세 김씨’. 다른 언론들이 그를 이렇게 부르던 때였다.

창간호 특집기사는 문민정부 출범 뒤 현철씨가 장관 여러 명을 추천했다는 정가의 소문을 비롯한 인사 개입 의혹과 이런 사실의 공개를 막기 위한 여권의 회유와 압력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또 유선방송 사업자 선정 관련 의혹설, 그린벨트 해제 관련 이권개입설, 인사청탁 관련 금품수수설, 파친코업자 관련설 등을 조명했다. 창간호에서 ‘황태자’의 의혹을 햇빛 아래 드러내 보인 이후에도 △제8호 ‘대통령 아들 김현철은 돈을 받았는가’(1994년 5월12일치) △제9호 ‘추적 김현철 인맥과 파워’(1994년 5월19일치) △제102호 ‘박태중 미스터리’(1996년 4월4일치) 등 10여 건을 잇달아 보도했다.

외로운 싸움을 더 힘들게 했던 것은 일련의 기사에 등장하는 관련 인물들과 김씨 자신이 한겨레신문사를 상대로 낸 소송이었다. 유선방송업자 선정 문제와 관련해 장아무개씨가 1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는데, 이 소송은 94년 5월3일 현철씨가 ‘무자격 한약업사 로비의혹’ 사건을 단독 보도한 에 대해 20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한 바로 다음날 제기돼 소송 배경에 의문을 남겼다. 당시 기자로 관련 기사를 잇달아 쓰고 그 뒤에 편집장을 역임한 곽병찬 논설위원은 “2~3주에 한 번씩 재판을 받으러 가는 게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면서 “모두 합해서 30번 이상 불려나갔던 것 같다”고 말했다.

김씨가 한겨레신문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은 ‘권력(기관)에 대한 표현의 자유의 범위’를 결정하는 시금석이 될 수 있는 사건이었다. 당시 1심 재판부였던 서울지방법원 서부지원 제1민사부(재판장 정은환 부장판사)는 “중요 공직자 또는 권력자에 대한 언론보도의 범위는 확대되어야 한다”는 한겨레신문사 쪽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위자료 4억원과 정정보도를 명하는 원고 승소 판결이 내려졌지만, 한겨레 쪽의 강제집행 정지신청이 받아들여져 정정보도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2심 재판이 진행 중이던 97년 박경식씨의 폭로를 계기로 이뤄진 검찰 수사 결과 김씨는 조세포탈과 알선수재 혐의로 구속됐다. 김씨는 결국 이 소송을 취소했고 사건은 종결됐다.

도 3억원 손해배상 소송을

은 333호(2000년 11월16일치)에서 ‘족벌언론 황제, 브레이크가 없다’는 제목의 표지 기사를 썼다. 족벌체제를 확고히 한 채 사적 이익을 위해 기자들까지 동원하는 언론사 사주들의 문제를 고발하는 기사였다. 기사는 당시 김병관 회장이 갑작스럽게 간부회의를 소집해 자신이 회장에서 명예회장으로 물러나겠다고 선언한 장면으로 시작한다. 김 회장은 그 무렵 이른바 ‘고려대 앞 YS 문전박대 촌극’ 사건 과정에서 술에 취한 채 ‘우정출연’한 것 때문에 언론계 안팎에서 입길에 올라 있던 상황이었다.

기사는 에 이어 와 에서 이뤄지고 있는 사주지배 체제의 실태를 사례와 함께 보여준다. 족벌언론 체제의 가장 큰 폐해라고 할 수 있는 ‘보도와 편집에 대한 사주의 강한 입김’은 어떤 구조를 통해 관철되는지, 특히 사주가 공적인 이익보다 사적인 이익을 추구할 때 그 폐해는 어떻게 증폭되는지를 다뤘다.

이 기사가 나간 뒤 는 3억원의 손해배상과 정정보도를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당시 기사를 썼던 조계완 기자는 “이 기사는 주로 해당 언론사의 기자 등 내부 관계자와 청와대 고위 관계자 등을 중심으로 취재가 이뤄져 재판 과정에서 이들의 법정 증언을 이끌어내기가 어려웠다”고 회고했다. 기사가 진실이라고 믿을 만하다는 점을 입증할 책임을 언론사 쪽에 지운 언론소송의 구조 때문이었다. 결국 2년 동안 이어지던 재판은 당사자들 사이의 임의조정으로 종결됐다. 은 437호에 쪽의 반론보도문을 한 면에 걸쳐 실었다.

흑금성, 한영외고, 시사저널…

사회적 반향이 큰 이슈일수록 와 이 함께 보도를 할 때가 많기 때문에 두 지면에 실린 기사가 함께 소송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98년 안기부의 전 대북특수공작원 ‘흑금성’이 북한을 오가며 야당 대선 후보 진영에 침투해 빼낸 정보를 북에 건네주고 안기부의 대선공작에 관여하는 등 이중간첩 행위를 한 의혹이 있다고 보도한 기사도 이 경우에 해당한다. 해당 기사들은 1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이 났고, 1심 재판이 진행 중이던 2002년 당사자 사이의 조정으로 소송이 취소됐다. 지난해 외고 유학반의 파행 운영 실태를 고발한 와 (631호 ‘유학반은 치외법권인가’) 기사 역시 해당 학교의 학부모 등이 제기한 민사소송 1심이 진행 중이다.

또 다른 현재진행형 법적 분쟁으로는 고경태 전 편집장이 사태와 관련해 쓴 ‘만리재에서’ 칼럼(616호)과 이후 관련 기사 등에 대해 금창태 사장이 제기한 민사소송과 형사고소 사건이 있다. 형사고소 사건은 검찰 조사 이후 약식기소 결정이 났다가 쪽에서 정식 재판을 청구해 현재 1심이 진행 중이며, 1억5천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한 민사소송도 1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삼성그룹 관련 기사 삭제로 촉발된 이번 재판은 편집권의 범위와 성격, 언론사 경영진과 편집권의 관계, 편집인과 편집국장의 관계 등과 관련한 사회적 논의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소송 그 뒤, 기자에겐 무슨 일이?

출석하랴 판결 걱정하랴 여러모로 위축되다 뜻밖에 쉽게 해결되기도

기자가 자신이 쓴 기사 때문에 법적 분쟁의 당사자가 되는 경우는 여러 가지다. 먼저, 형사재판의 피의자가 될 수 있다. 보통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 또는 고발되어 수사기관의 조사를 받은 뒤 기소 여부가 가려진다. 형사사건은 민사소송보다 명예훼손을 인정하는 범위가 좁기는 하지만, 기소될 경우 법원에서 이뤄지는 형사재판의 피의자가 되어 검사와 법정 다툼을 벌여야 한다.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수 있지만, 형사사건에서는 피의자가 일일이 출석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대부분 ‘손해배상 청구소송’이라는 이름으로 이뤄지는 민사사건의 경우에는 재판을 전적으로 도맡아 진행하는 변호사가 선임되고 나면, 기자는 재판 진행 과정에서 내용적인 협조를 하면 된다. 간혹 인쇄된 매체를 시중에 팔지 말아달라고 요청하는 ‘판매·배포금지 가처분신청’을 내는 인사들도 있다.

법적 분쟁의 당사자가 되면 기자는 여러모로 위축된다. 특히 민사소송의 경우에는 재판 진행 내내 회사에 금전적인 손실을 입히게 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사라지지 않는다. 권력과 돈을 가진 취재원들이 언론중재위원회를 거치지 않고 바로 검찰이나 법원에 달려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기자들의 이런 심리를 은근히 악용하는 셈이다.

법적 분쟁이 해결되는 방식도 여러 가지다. 재판의 핵심 쟁점을 정확히 파악한 뒤 변호사와 함께 재판을 치밀하게 진행해 법 논리에서 우위를 선점하면서 재판에 승리하는 경우도 있지만, 뜻하지 않는 계기로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경우도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 차남 현철씨 사건처럼 성역을 파헤치는 기사에서는 시간이 흘러가면서 의혹이 사실로 밝혀져 결과적으로 법적 분쟁까지 해결되는 경우가 많다. 정치인들이 제기한 소송은 특정한 정치적 계기가 마련되면 의외로 쉽게 풀리기도 한다. 언론과 지속적인 적대관계를 유지할 수 없는 속사정이 있는 것이다. 법적 분쟁에 많이 휘말려본 기자들이 소송에 걸려도 전전긍긍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보도와 관련한 법적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지면서 언론사들마다 소속 기자들을 상대로 명예훼손의 기본 법리 등을 교육하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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