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보다 큰 성과 얻은 6자회담 남쪽 수석대표 천영우 외교통상부 평화교섭본부장…전력 200만kW 요구에 불능화 얘기까지 나아가…핵 폐기까지 나아갈 의지 분명해보여
▣사회 정인환 기자inhwan@hani.co.kr
▣정리 류이근 기자ryuyigeun@hani.co.kr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천영우 외교통상부 평화교섭본부장(6자회담 남쪽 수석대표)의 얼굴에선 여유가 느껴졌다. “북한이 핵 폐기까지 나갈 의지가 없었다면 이번과 같은 내용에 합의하지는 않았을 것”이란 믿음 때문이다. 그는 “이번 합의는 비핵화란 긴 여정에서 첫걸음을 내딘 것이며, 아직 갈 길이 멀고 험하다”면서도 “초기 조치 이행이 끝나기 전에 모든 핵무기와 핵 프로그램의 완전한 폐기까지 가는 이행계획을 한꺼번에 합의하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2월21일 오후 외교통상부 18층 집무실에서 천 본부장을 만나 2·13 합의의 의미와 향후 전망에 대해 들어봤다.

회담 수석대표로서 감회가 남다를 텐데.
=사실 이 정도로까지 합의가 될 거라고는 기대하지 못했다. 그저 회담에 앞서 북-미가 독일 베를린에서 사흘 동안 머리를 맞대고 양해한 사안을 6자 간 합의하는 정도에서 만족하려고 생각했다. 아무도 예상하지 않았고, 또 기대하지도 않았던 성과다.
정치적인 유인책에 미국의 진정성 믿어
기대보다 큰 성과를 낼 수 있었던 배경은 뭔가?
=북한이 요구 수준을 높인 것이 오히려 협상의 여지를 넓혔다. 북한이 베를린에서 미국에 약속한 영변 핵시설 폐쇄와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 복귀 정도로 6자회담에서 합의하고 그 대가로 1994년 북-미 제네바합의 때처럼 연간 중유 50만t을 달라고 했다면, 이번 회담도 그런 식으로 타결됐을 것이다. 북한은 회담 초기 전력 200만kW를 주면 좋겠다고 요구했다. 이는 중유로 치면 350만t에서 400만t에 해당한다. 협상하는 과정에서 김계관 외무성 부상에게 (내가) “50만t을 주려는 나라도 없지만, 당신들이 그 이상을 받아가려면 유일한 방법은 지금 하겠다는 핵시설 폐쇄와 IAEA 사찰관 복귀에서 한참 더 나아가야 한다. 핵 폐기까지 나아가겠다면 우리가 한번 100만t도 만들어보겠다”고 얘기했다.
핵시설을 폐쇄하거나 불능화하거나, 플루토늄 생산을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북한으로서도 기본적으로 핵 폐기로 갈 자세가 돼 있었기에, 기왕이면 폐쇄에서 한발 진전된 불능화까지 가 더 많이 받는 게 낫지 않았겠나? 사실 북한이 전력 200만kW를 얘기할 때, 모든 것을 빨리 실무그룹에 맡기고 6자회담에선 이 정도에서 마무리하자, 합의할 수 있는 것만 하자는 분위기로 흘러가기도 했다. 어찌 보면 북한이 다른 나라들의 예상을 넘는 좀 과도한 요구를 하고 나온 것이 더 좋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것이다.
문제는 언제나 북-미 간의 뿌리 깊은 ‘불신’이었는데.
=불신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단정하긴 무리일지 모르지만 줄어든 것은 틀림없다. 북한은 핵 폐기까지 나아갈 의지가 분명히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렇지 않다면 ‘더 많이 받고, 더 많이 나가겠다’는 접근을 수용할 수 없다. 핵을 폐기할 생각이 없으면 불능화로 갈 수 없다. 북한이 물질적 보상만 갖고서 그런 결정을 내렸다고 보긴 어렵다. 미국이 제시한 적성국 교역법 적용 면제 논의, 테러지원국 삭제 논의, 방코델타아시아(BDA) 문제 해결 등 여러 정치적 유인책이 없었다면, 중유 200만t을 주고도 거기(불능화)까지 나갈 수 없었을 것이다. 정치적인 유인책을 내놨을 때 북한이 미국의 진정성을 믿게 된 것이고, 그런 게 협상을 할 수 있는 정치적 여건을 만들었다.
역으로 북한의 진정성에 대한 미국의 신뢰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
=나아졌다고 생각한다. 북한이 최소한 60일을 못박아 IAEA 사찰단이 들어오는 것까지 수용하지 않았나. 그 다음 단계로 ‘여기까지 나아가겠다’는 약속은 함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어길 생각을 갖고 그런 약속을 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5개국과 하는 약속이다. 그 나라들 중에는 북한이 약속을 어겼을 때 유엔 안보리에서 제재 조처를 취하는 데 중심적 역할을 할 수 있는 상임이사국 세 나라가 들어가 있다. 그런 면에서 양자 협의와 다자간 합의는 기본적으로 차이가 있다. 미국이 북한을 얼마나 믿는지에 대해 정확히 판단할 순 없지만, 북한이 기본적으로 이 약속을 지킬 거라는 최소한의 믿음이 없었으면 합의는 이뤄질 수 없다.

지원과 불능화가 연동된 ‘마일리지 시스템’
다른 나라들이 북한에 중유 100만t 지원을 수용한 것은, 연간 100만t씩 무한정 주는 게 아니라 북한이 핵의 불능화 단계로 가면 100만t을 주는 것으로 철저히 연동돼 있었기 때문이다. ‘마일리지 시스템’을 도입한 게 다른 나라 입장에서 그만큼 받기 쉬웠던 것이다. 북한은 마지막까지도 연간 100만t을 달라고 요구했다. 우리는 수용하지 않았다. 늦게 가면 그만큼 적게 받고, 빨리 갈수록 많이 받는 것이다. 불능화까지 가는 대가로 중유 100만t이라면, 북한이 시간을 끌면서 우리가 연간 50만t씩 제공하는 것보다 훨씬 유리한 것이다. 그런 걸 다른 나라에 설명하고 다녔다. 그 정도라면 미국 협상단도 얼마든지 반대파를 설득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 과정에서 북한이 요구하는 수준의 양과 우리가 수용할 수 있는 어떤 공감대가 만들어진 것이다.
불능화가 이른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은 아니라는 지적도 있는데.
=보는 관점에 따라 판단은 다를 수 있다. 불능화는 사용 불가능한 수준이자, 불가역적인 게다. 북한이 핵 폐기까지 가지 않을 거라고 미리 생각하는 사람들은 불능화가 폐기 단계에 가깝기보다 폐쇄에 가깝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이 핵 폐기로 갈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불능화가 폐기에 가깝다고 생각할 수 있다. 불능화든 폐쇄든 폐기든, 근본 목적은 플루토늄 추가 생산을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불능화는 폐기 직전에 이뤄지는 것으로, 폐기에 가깝다고 본다.
북한은 불능화를 ‘임시 가동 중지’라고 발표했는데.
=북한이 국내적으로 뭐라 설명하든 간에 중요한 것은 합의문에 뭐라고 쓰여 있느냐다. 불능화가 핵시설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란 점엔 이견이 없다. 어떻게 사용하지 못하게 하느냐는 기술적인 문제는 앞으로 실무그룹에서 전문가들이 논의할 것이다. 쉽게 사용할 수 있게 만들어놓고서 불능화라고 한다면, 그건 불능화가 아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불능화는 핵심 부품을 사용하지 못하게 만드는 거다.
이번 합의에 따른 북한 핵 프로그램 목록 작성 과정에서 논란이 있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목록 작성 협의를 60일 이전에 하게 돼 있다. 60일 이후, 불능화하기 전 완전한 신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신고서 제출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정직하고 성실한 신고서 제출이 더 중요하다. 뭐 하나가 누락되거나 불완전한 신고이거나, 정직하지 않은 신고서는 제출하지 않느니만 못하다. 따라서 뭐가 정직하고 성실한 신고냐에 대한 사전 협의가 있어야 한다.
9·19 공동성명은 모든 핵무기와 핵 계획의 포기를 명시하고 있다. 2·13 합의문에 명시되지 않은 고농축우라늄(HEU)도 여기에 포함되나?
=당연하다. 고농축우라늄 문제가 나오기 전에 북한 핵 프로그램은 영어로 단수 취급을 했지만, 그 이후엔 ‘프로그램스’란 복수로 표현한다. 우리가 말하는 핵 프로그램은 플루토늄과 우라늄 농축 두 개를 다 염두에 둔 것이다. 베를린에서도 북-미 간에 합의한 사항에 고농축우라늄 문제가 분명히 들어가 있다. 또 회담 폐막식 직전에 김계관 부상을 만나 “앞으로 합의서 이행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가 고농축우라늄 프로그램에 관한 위협을 규명하는 것”이라고 설명했고, 김 부상도 충분히 납득했다.

고농축우라늄도 핵 폐기 계획에 포함
북-미 관계 정상화 실무그룹 논의를 앞두고 벌써부터 라이스 국무장관이나 네그로폰테 부장관의 방북설이 나오는데.
=너무 앞서가는 얘기다. 앞으로 비핵화 과정이 얼마나 순탄하고 신속하게 이행되고, 북한이 얼마나 비핵화 의무를 이행하느냐에 따라 일어날 수 있는 여러 상황 변수들이 있다. 북한이 확실히 비핵화만 하면 미국은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북한이 비핵화하는 데 얼마나 진지하고 충실하게 임하느냐에 따라 여러 가능성이 열려 있다.
핵 폐기까지 가기 위한 산적한 과제들이 있을 텐데, 앞으로 2·13 합의 같은 게 몇 차례나 더 나와야 한다고 보나?
=이번 합의는 비핵화란 긴 여정에서 첫걸음을 내딘 것이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란 말이 있듯이 첫걸음을 내디딘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고 험하다. 첫 단계로 가는 길보다 그 다음 갈 길이 훨씬 험하고 어렵다. 2·13 합의와 같은 단계가 앞으로 몇 개나 남았는지 모르겠지만, 초기 조치 이행이 끝나기 전에 모든 핵무기와 핵 프로그램의 완전한 폐기까지 가는 이행계획(로드맵)을 한꺼번에 합의하는 게 우리 목표다.
북한이 가지고 있는 것들 중에서 우리가 값을 많이 친 것이 (합의하기) 더 어려울 것이다. 그만큼 많은 값을 쳐줘야 북한도 내놓을 수 있는 것 아니냐. 그걸 하려면 북-미 관계 정상화로만 되는 것이 아니고, 경수로나 전력 지원 등 모든 것을 내놓고 협상해야 한다. 우리가 북한에 내놓을 것도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을 수밖에 없다. 우리도 북한에 초기 단계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훨씬 많은 것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 정치적 유인책도 얘기를 해보자는 식에 그칠 순 없다. 구체적인 결과를 들고 해야 한다. 이를테면 북-미 수교까지 나와야 한다. 미국이 정말 대북 적대정책을 포기했다는 것을 북한이 믿을 수 있는 조치를 내놔야 한다.
북-미 수교 등 구체적인 내용 제시해야
북핵 폐기는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가 마련될 때 완성될 수밖에 없는데.
=한반도 정전상태는 평화체제가 만들어질 때 종식되는 것이다. 선언만 한다고 종식되는 건 아니다. 이번 합의문에 한반도 비핵화와 함께 북-미, 북-일 관계 정상화, 경제·에너지 협력, 동북아 평화·안보체제 관련 실무그룹 등을 명기한 것도 북한에게 핵 없이도 안전하게 살 수 있다는 믿음을 주기 위한 여러 겹의 보장장치다. 북한은 핵무장의 이유로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을 꼽는다. 대북 적대정책이 핵무기의 수요를 창출하고 근본 원인을 제공했다는 게다. 그래서 북한의 위협 인식을 줄이기 위한 장치를 만든 것이다. 북한이 동북아 주류 속에 들어와 안보협력을 하게 되면 서로 적대정책을 취할 가능성도 제도적으로 줄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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