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사퇴·탈당 소동의 한가운데, 문희상 전 의장은 어떻게 보는가…“지금은 깃발 들고 모일 때, 당청이 티격태격하다 탈당해선 안돼”
▣진행=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정리= 최은주 기자 flowerpig@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t@hani.co.kr
여권의 당청 갈등이 예사롭지 않다. 11월28일 노무현 대통령이 사퇴 및 탈당 가능성을 시사하는 발언을 한 뒤 곧바로 문희상 전 열린우리당 의장과의 인터뷰를 잡았다. 인터뷰는 12월1일 이뤄졌다. 그사이 열린우리당과 청와대는 다시 주워담기 힘든 설전을 시시각각 주고받았다. 노무현 대통령은 11월30일 “나는 신당을 반대한다. 말이 신당이지 지역당을 만들자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열린우리당의 최고책임자인 김근태 의장은 바로 다음날 “통합신당을 지역당으로 비난하는 것은 제2의 대연정 발언이다.
대연정을 추진하며 ‘한나라당이 선거법 개정에 동의하면 권력을 통째로 넘겨도 좋다’는 발언이 우리 국민에게 모욕감을 주고 지지층을 와해시킨 일을 기억해야 한다”고 대통령을 직접 비판했다. 청와대가 다시 발끈했다. 이병완 비서실장이 나서 “개개인의 정치적 입지를 위해 대통령을 흔들고 차별화하는 전략은 과거에도 그랬고 정치사에서 성공한 적도 없고 성공할 수도 없는 구조”라며 김 의장을 공격했다.
싸움의 끝은 어디일까? 문희상 전 의장은 “당청 소통에 문제가 생겨서 티격태격하다가 (대통령이) 탈당하는 것은 비상식적”이라며 냉각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당과 청와대가 냉각기 가져야
노무현 대통령이 어제 “나는 신당을 반대한다. 말이 신당이지 다시 지역당을 만들자는 거다. 당을 지킬 것”이라고 밝혔다. 이 발언을 놓고 당내에서 격앙된 목소리들이 터져나오고 있는데?
=(예민한 듯) 그건 말하고 싶지 않은데….
어제 발언과 달리 11월28일엔 “만일 당적을 포기해야 되는 상황까지 몰리면 임기 중에 당적을 포기하는 네 번째 대통령이 될 것”이라며 탈당 가능성을 시사했다. 대통령의 탈당을 어떻게 보나?
=탈당 가능성은 전적으로 대통령 마음먹기에 달렸다. 따라서 왈가왈부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대통령이 탈당한다고 하면 두 가지 경우로 상정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얘기해서, 대통령이 집권당의 당원 자격을 내놓는 것은 공정한 선거 관리와 중립 내각의 필요성을 강조하다가 야권이 강력하게 요청했을 때 했다. 여야가 정치적으로 아우러져서, 그런 계기가 만들어져서 할 수 있다.
여권 내에서 보이는 행태가 불쾌해서 할 수도 있는데, 그런 경우는 바람직하지 않다. 국민적 공감대 없이 탈당한다면 무책임한 것이다. 최소한 당원들한테 배신이지. 대통령 입장에서 보더라도 당적을 버리면 지지기반을 잃기 때문에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그걸 각오하고 하는 것인데, 여당 내에서 소통에 문제가 생겨서 티격태격하다가 탈당하는 것은 안 된다. 이번 경우가 반드시 그렇다고 얘기할 수 없지만, 그런 면이 좀 있기 때문에 (당과 청와대가) 냉각기를 가져야 한다. 대선 정국도 아닌데 벌써부터 탈당 얘기가 나온다면, 그것도 당청 관계로 인해 그런 것이라면 비상식적인 것이다.
당은 대통령을 버리고 가고 싶어한다.
=대선 정국과 관련해 얘기하자면 노무현 대통령은 개인이 아니다. 영남 개혁세력을 배제하고는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할 수 없다. 개혁세력이 두 번 집권했는데 바로 김대중·노무현 정권이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의 탄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바로 비호남 개혁세력이었다. 호남과 충청도는 거의 100%를 지지했다. 그런데도 겨우 아슬아슬하게 집권할 수 있었던 것은 영남 개혁세력이 있어서다. 국민의 정부 등장 때는 이인제라는 변수가 있어서 영남 개혁세력과 영남 기득권 세력의 상당 부분을 가져갔다. 참여정부 때는 노무현 스스로가 그만큼의 표를 가져왔다. 영남 개혁세력을 배제하면 내년 대선은 해보나 마나 한 게임이 된다. 그래서 다음 정권 재창출의 뜻이 없고, 다음 국회의원이 되고 싶은 사람들은 빨리 대통령을 제치고 나가고 싶을지 모르겠지만, 그건 정도가 아니다.
대화를 해도 안된다면 무능한 사람들
거꾸로 ‘도로 민주당’이 될까봐 민주당 세력을 배제하자고 하는 것도 반대다. 집권하려면 정계 개편에서 대통령과 더불어 가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영남 개혁) 세력이 중요하다는 거다.
대통령이 신당을 퇴행적 지역당이라고 규정짓는 데서 당의 불만이 크다.
=지역당으로 도로 돌아간다는 의미에는 나도 동감이다. 도로 민주당에 반대한다. 통합의 의미가 없다. 그런 의미라면 대통령 말이 틀린 말이 아니지. 그러나 만약 대통령의 말이 민주당을 배제하고 가자는 뜻이라면, 난 반대다.
통합신당이든 재창당이든 정계 개편에서 중요한 것은 명분과 그릇을 담아낼 ‘깃발’이라고 말해왔는데?
=다음 대선은 개혁세력·민주세력 등 어떤 의미를 갖다붙여도 좋지만, 지난 10년을 만들었던 세력들이 다시 옛날로 돌아가려는 반개혁·반평화·수구·권위주의 세력과의 마지막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 그래서 대선은 굉장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를 만들었던 세력들이 하나가 되어도 부족하다.
지난 10년간 그들이 극성을 떨고 있다. 봐라. 어느 적 사람인데 YS와 JP가 만나서, 지금 뚱딴지 같은 소리를 하고 있냐? 그뿐이 아니라 뉴라이트의 ‘교과서 포럼’이 4·19는 운동이고 5·16은 쿠데타가 아닌 혁명이라고 하는 역사를 한번 생각해봐라. 저들이 더 공고해졌고, 전에는 역사의 흐름이 흘러갈 때 숨어들었는데, 이제는 너무나 당당해졌다. (그들이 집권하면) 나 같은 경우, 내 인생을 설명할 수가 없다. 내 젊은 청춘을 다 그렇게 (민주화 운동 등에) 보냈는데 자식들한테 뭐라고 설명하겠나? 역사가 뒤집어 지는 건데…
여권에서조차 ‘한나라당이 집권해도 나라 안 망한다’고 하는 이들이 있지 않나?
=정당의 목표가 뭔지도, 왜 정치를 하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다. 역사의식이 없는 사람들이지. 역사가 어떻게 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그런 얘기를 할 수 있겠어. 한나라당이 집권한들 뭐가 달라지겠냐고 하면, 한나라당으로 가면 될 거 아니냐.
당내에서 대통령은 ‘정권 재창출에 관심이 없는 분’이란 얘기들도 공공연하게 나돈다.
=비상식적인 얘기다. 국민은 의식을 안 하는지 몰라도 대통령은 항상 역사를 의식하고 역사와 대화한다. 그런 면에서 대한민국에서 첫째가는 사람이다. 대통령이 다음 정권에 나는 관심이 하나도 없다고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당과 청와대의 관계가 극도로 불안정한 상황으로 달려가고 있다고 지적했는데.
=당이 살길이 있으면 원하는 대로 그 길을 찾아가면 된다. 당청이 일사불란해야 할 필요는 없다. 당정 분리도 그런 의미에서다. 그러나 지금은 당청 관계가 막나가고 있다. 지금은 감정을 서로 극도로 긴장시켰다고나 할까? 비상식적으로 서로 이야기하고 있다. 대통령이 12월3일 해외 순방 다녀와서 서로 만나면 굳이 정책뿐 아니라, 정계 개편 얘기도 터놓고 하면 된다. 그래도 제일 닮은 게 당청 아니야? 한나라당보다 닮았을 거 아니냐. 당청이 대화가 안 된다는 게 말이 되냐? 당청이 고건보다, 민주당보다 더 닮았을 거 아니냐? 대화를 해서 그것(화해)을 못해낸다고 하면 그건 무책임한 게 아니라 무능한 사람들이다.
지금은 시대정신의 위기 상황
지금 엄청난 위기다. 한 정파의 위기가 아니다. 시대적 사명과 책임에 대해서 얘기하지 못한다면 대통령 자격이 없는 것이고, 국회의원 자격이 없는 거다. 시대정신의 위기 상황에서 엉뚱한 자들이 국민을 현혹해 집권하고, 엉뚱한 소리를 한다면…. 그때 뭐라고 할 거야? 정권 뺏기고 나면 어떻게 할 거야? 우리가 완전히 무능의 표상이 됐다. 나라를 망친 사람들처럼 됐다. 그게 말이 되냐. 열불이 난다. 그 앞에서 대통령이 따로 있냐? 대통령도 한 배를 탄 공동운명체다. 배가 침몰하고 있는데 거기서 싸워서 이기면 뭐하나. 시대정신을 꿰뚫어보자.
제 세력을 모두 모으자고 하는 것이 통합신당파라고 생각한다. 모두 모여서 대선을 치러야 한다. 대통령도 예외가 아니라고 본다. 그런 점에서 대통령이 통합신당파라고 생각한다. 깃발 아래 그 세력이 고건이든 민주당이든 국민중심당이든 재야단체든 몽땅 모여야 한다.
무능한 정당으로 찍힌 열린우리당으로는 내년 대선이 힘든 것 아니냐? ‘창당 실패론’도 결국 거기서 나오는 것 같은데?
=열린우리당은 실패했다. 선거 때마다 졌다. 이대로는 다음 대선에서 이길 수 없다. 그것은 거짓말이 아닌 진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대정신에 맞춰서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다는 차원에서 모두 힘을 모아야 하고, 그 힘은 통합신당을 향해야 한다.
저잣거리의 정서는 다음 대선은 해보나 마나 한나라당이 집권한다고 얘기한다.
=난 지난 10년의 기적을 믿는다. 10년 전 이맘때를 보자. 김대중 대통령이 대통령이 되리라고 상상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지금보다 더했다. 이 무렵 5년 전 노무현이 대통령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한 명이 없었어. 그래도 지금은 여당이다. 선명한 깃발을 들고 있으면, 혼자 서 있더라도 시대정신을 붙잡고 있으면 광장에 대중들이 모일 것이다. 틀어져 있다가도 대통령 선거 하루 전날, ‘그래도 저들(한나라당)에게 정권을 줄 수 없잖아’ 하면 돌아온다고 본다.
지금은 초조해하고 서두를 때가 아니다. 기다리면 온다. 지금은 깃발을 들 때다. 여러 사람이 모일 때다. 그걸 못 참고 우리끼리 총질하고 서로 싸우고 난리다.
대통령도 이제는 내놓을 게 없는 거다
대통령이 “임기를 다 마치지 않는 첫 번째 대통령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희망도 갖고 있다”고 한 발언을 어떻게 보나?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이라고 할까, 대통령의 정치 행태에서 해석을 해야 한다. 대통령은 정치적 위기 때마다 무엇을 희생할까 생각하면서 극복을 해온 정치 스타일을 갖고 있다. 그것을 나쁘게 얘기하는 사람은 승부수라고 한다. 대통령 입장에서는 결단이다. 2000년 총선에서 종로로 나오면 당선인데 지역주의 타도를 주장하면서 질 게 빤한데도 부산에 내려갔다. 그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야. YS가 90년 3당 합당하면서 같이 가자고 할 때도 ‘역사 앞에서 말이 되느냐’며 가지 않았다.
대통령으로서 이제는 내놓을 게 없는 거야. 대통령이 권리로서 누릴 수 있는 게 대통령직과 여당 당직 두 개밖에 없다. 그것을 포기해서 살아남을 수만 있으면 그렇게라도 하겠다라는 얘기다. 그게 듣기에 따라서는 아주 무책임하게 들릴 수 있다. 왜? 지금 국회의원이 아니라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국회의원 사퇴도 3번이나 한 분이다. 버릴 수 있다면 버리겠다는 거다. 그렇지만 ‘절대 그렇게 얘기하면 안 된다. 대통령 되실 때와 대통령 된 다음에는 대통령직을 갖고 얘기하는 것은 하지 마시라’고 다음에 대통령을 만날 때도 얘기하겠다. 그건 맞지 않다. 헌법상으로도 대통령 임기를 마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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