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의 포괄적 접근’이라는 발표와 달리 발언록은 원칙만 되풀이… 부시 행정부가 당분간 대북 추가 제재를 안 할 거란 예감은 얻어
▣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어째 좀 혼란스럽다. 한-미 정상회담 결과에 대한 해석이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제각각이다. 한쪽에선 두 나라 정상이 대북정책을 놓고 이른바 ‘공동의 포괄적 접근’에 뜻을 같이함으로써 “대북 추가 제재 등 강경 기조로 치닫던 분위기를 돌려세웠다”는 긍정적 평가를 내놓는다.
하지만 산적한 양국 현안이 대북정책을 둘러싼 이견으로 파열음을 내지 않도록 “덕담을 나누는 수준에서 봉합했다”는 인색한 평가도 만만찮다. 어느 쪽이 더 현실에 가까운 것일까?
9·19 공동성명 1주년, 관심 집중됐으나…
“한-미 두나라 정상은 그동안 한-미 양국 고위 실무선에서 6자회담 재개와 9·19 공동성명 이행을 위해 협의한 ‘공동의 포괄적 접근 방안’에 대해 보고받고 관련국과 협의를 구체화해나가는 데 합의했다. 또 이를 구체화하기 위한 실무협의를 이르면 다음주에 열기로 했다.”
송민순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은 9월14일(현지 시각)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 직후 취재진과 만나 이렇게 밝혔다. 송 실장은 “북한을 6자회담으로 복귀시키는 방안과 6자회담이 재개됐을 경우 9·19 공동성명의 이행을 진전시키는 두 가지 목표를 함께 담고 있다”며 “회담 재개를 위해 각국이 취해야 하고 취할 수 있는 조처들을 어떻게 조합할지 6자회담 대표 간 세부 협의를 통해 이 방안을 완성하는 과정을 거쳐 확대해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뭔가 희망적 변화가 임박했음을 내비치는 발언이다.
사실 이번 정상회담은 지난해 베이징의 여름을 뜨겁게 달구며 2라운드까지 이어진 4차 6자회담 결과 나온 ‘9·19 공동성명’ 1주년을 앞두고 열린다는 점에서 준비 기간부터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6자회담 미국 쪽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가 정상회담을 코앞에 둔 지난 9월11일 방한했을 때만 해도 상황은 그리 낙관적이지 못했다.
힐 차관보는 방한에 앞서 일정을 연장하면서까지 중국에 머물며 6자회담 북쪽 수석대표인 김계관 외무성 부상을 기다렸던 것으로 전해졌다. 자기들이 줄기차게 요구해온 양자 접촉 기회를 북한 스스로 저버렸으니, 미국으로선 대북 추가 경제 제재 조치의 명분을 얻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던 건 당연했다. 힐 차관보 자신도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했으나, 북한이 대화에 관심을 보이도록 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문제는 오찬을 겸해 이날 2시간여의 정상회담을 마친 두 나라 정상이 기자들과 만나 내놓은 발언이 송 실장의 말과 달리 ‘원론적인 수준’에 그쳤다는 점이다. 백악관이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한 녹취 자료를 보면,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은 “6자회담을 통해 북한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우리의 의지를 재확인했다”며 기존 ‘원칙’을 되풀이했다. 노무현 대통령도 “6자회담 재개를 위해 함께 노력하자는 데 의견을 같이했으며, 이를 위한 구체적인 조치를 마련하기 위해 양국 실무자들이 긴밀히 협의해나갈 것”이라고만 언급했다.
이어진 질의응답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공통의 포괄적 접근 방안’에 대한 취재진의 질문에 노 대통령은 “현재 실무 차원에서 긴밀히 논의하고 있으며, 결론에 이르진 못했다”며 “대단히 복잡한 문제여서 지금으로선 답변하기 어렵다”며 즉답을 피했다.
“불편한 여론 진정시키려 협력 강조”
전시 작전통제권에 대한 질문엔 “이 문제가 정치 쟁점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분명한 입장을 밝힌 부시 대통령도 6자회담과 관련해선 구체적인 답변을 원칙론만 반복했다. 그는 북한의 6자회담 복귀 방안을 묻는 질문에 “무엇보다 김정일이 고립을 택하는 것보다 북한 주민들의 삶을 향상시키는 더 나은 길이 있음을, 동북아의 안정이 그는 물론 궁극적으로 북한 주민들의 이익이 되며, 북한 주민들이 굶주리지 않는 길이라는 점을 이해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또 “그(김정일 국방위원장)가 검증 가능한 방법으로 핵무기를 포기한다면 분명 더 나은 미래가 있을 것이며, 이것이야말로 그동안 우리가 6자회담을 통해 북한 정부에 보낸 메시지”라고 말했다.
토니 스노 백악관 대변인도 이날 오후 열린 정례브리핑에서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 의지’를 거듭 확인했을 뿐, 송 실장이 강조한 ‘공동의 포괄적 접근 방안’에 대해선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외신들의 반응이 뜨겁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은 “두 정상은 북한의 6자회담 복귀라는 공동목표만 강조했지, 북한을 어떻게 다뤄나갈 것인지에 대한 의견을 공개하는 것은 피했다”고 전했고, 등은 “구체적인 성과는 없었다”고 지적했다. 중국과 일본 언론도 ‘견해차’ ‘서먹서먹함’ 등을 강조하는 분위기다.
국내 전문가의 반응도 엇갈리고 있다. 홍현익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은 “일단 미국의 정책이 대북 제재를 일방적으로 강화해가는 추세에서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실무자를 자꾸 만나고, 또 다른 하나의 길을 열어서 대화로 가는 또 하나의 길을 연 게 아닌가 싶다”고 낙관론을 폈다. 긴장 고조와 위기 국면으로 치달을 수 있는 가능성을 이번 회담을 통해 줄였다는 평가다.
반면 조성렬 국제문제조사연구소 기획실장은 “두 정상은 뚜렷한 자기 입장을 드러내기보다, 대외적으로 두 나라 사이에 협력이 잘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대북정책에 대한 이견을 감추기 위한 것인지, 실제로 이견이 없는 것인지는 향후 두 나라 정부가 취하는 조치를 보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조심스런 반응을 보였다.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와 자유무역협정(FTA) 등 현안을 둘러싼 국내외의 불편한 여론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이번 회담에선 한-미 간 협력이 잘되고 있음을 보여주려 한 측면이 강하다는 게다.
‘공동의 포괄적 접근 방안’의 구체적인 내용이 논의 중인(또는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번 정상회담 결과 적어도 세 가지는 유추가 가능하다. 우선 북핵 문제의 외교적·평화적 해결을 위한 우리 정부의 노력을 미국 쪽이 어느 정도 인정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는 한-미 두 나라는 지금과 같은 기조의 대북 정책에 좀더 시간을 투자할 것이란 얘기다. 한국 쪽의 제안을 미국이 받아들인 것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미국이 북-미 양자 접촉에 다시 적극성을 띠고 있는 점도 눈에 띈다. 힐 차관보가 김계관 부상과 베이징 회동을 시도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볼 필요가 있다.
11월까진 대북 압박 자제할 듯
마지막으로 이런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정부가 대북 금육·경제 제재 등 유엔 안보리 결의안 1659호 이행에 동의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미 안보리 결의안에 따라 개별 국가 차원의 금융 제재가 시작된 마당에 정부로선 이런 흐름에 반대할 명분이 없었을 것이다. 노 대통령이 정상회담 뒤 “북핵 문제와는 별개로 미국의 국내법에 의해 진행되는 상황은 또 그것대로 현재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새삼스럽게 또 다른 어떤 제재를 얘기할 단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한 것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이번 정상회담으로 부시 행정부가 당분간 추가적인 대북 제재에 나서지 않을 가능성은 높아졌다. 북핵 문제가 도드라진 안보 현안으로 떠올라 시빗거리가 되는 걸 피하기 위해서라도 11월로 예정된 중간선거까지는 대북 압박 수위를 높이지 않을 것이란 지적도 있다. 하지만 그 이후는 기약하기 어렵다. 때맞춰 한국에선 대통령 선거전이 서서히 달아오를 것이다. 지금으로선 낙관론도 비관론도 성급할 테지만, 갈 길 바쁜 노무현 정부엔 시간이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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