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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개혁 ‘대타협’ 이뤄질까

등록 2006-09-22 00:00 수정 2020-05-02 04:24

저출산·고령화 대책 연석회의에서 국민연금 개혁을 공식 의제로 채택… 법적 구속력은 없으나 사회적 합의로 위기 돌파의 큰 틀 마련할 계획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정부와 정치권에서 지지부진하게 전개돼온 ‘연금 개혁’ 논의가 다시 불붙을 전망이다. ‘저출산·고령화 대책 연석회의’(공동의장 한명숙 국무총리)는 9월13일 본회의를 열고 국민연금 개혁을 공식 의제로 채택했다. 다수의 이해관계자가 실질적으로 참여하는 ‘사회협약’ 방식의 연금 개혁안을 내놓기로 한 것이다.

한명숙 총리는 “연석회의는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연금을 다루기에 좋은 사회적 대타협의 틀”이라며 “이 논의가 국회에서 연금을 조기에 처리하도록 촉구하는 구실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해당사자들 견해차, 험난한 고비

연석회의 참여자들은 현행 연금 제도가 사회경제적 환경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어 국민들 사이에 개혁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연석회의가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 연금의 사회적·재정적 안정성을 함께 해결하기로 했다. 연석회의 쪽은 “연금 재정 불안정성의 가장 큰 원인이 저출산과 빠른 고령화”라면서 “이미 지난 6월에 체결된 ‘저출산·고령화 문제 해결을 위한 사회협약’에도 연금 개혁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있다”고 설명했다. 당시 사회협약은 ‘연석회의 주체들은 △사각지대 해소 △지속가능성 제고 △형평성 제고의 3원칙하에 공적 연금 제도의 개혁 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사회적 대화의 장을 마련하고 조속한 합의를 위해 노력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앞으로 논의할 공적 연금에는 국민·군인·공무원·사학연금의 4대 연금이 모두 포함된다. 연석회의는 일주일에 한 번씩 실무협의회를 중심으로 연금 개혁 의제를 논의해 합의가 이뤄지면 사회 협약문 형식의 합의문을 발표하기로 했다. 또 내년 초까지 4대 연금 개혁에 대한 사회협약을 체결한다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이에 따라 연금 개혁 논의는 앞으로 여야 등 국회의 연금 관련 법안 제·개정 작업과, 연석회의의 사회적 협약 도출의 두 갈래로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강기정 의원 등 보건복지위 소속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이른 시일 안에 국민연금 개정안과 기초노령연금 제정안을 마련해 이달 중순께 관련 법안을 정기국회에 상정할 예정이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은 연금 개혁 방향에서 근본적인 입장 차이를 보이고 있다.

물론 연석회의가 연금 개혁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할 경우 정당이 주도하는 방식보다 더 쉽게 수용될 수 있다. 그러나 연석회의에 참가하고 있는 이해당사자들이 각각 연금 개혁 해법을 둘러싸고 상당한 견해 차이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대타협을 도출하기까지는 험난한 고비를 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저출산·고령화대책 연석회의 정명철 정책팀장은 “연금 개혁안에 대한 각 정당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상황인데, 따라서 결론에 이르려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며 “구체적인 숫자에까지 합의안이 도출되지는 못하더라도 큰 틀의 방향 등은 연석회의에서 사회협약으로 잡아줘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연금 개혁의 실질적인 당사자는 국회다. 연석회의에서 합의안을 이끌어내더라도 국회와 정부가 어떻게 수용할 것인지가 쟁점이 될 수 있다. 연석회의에서 도출한 사회협약이 법적 구속력을 갖는 건 아니다. 정명철 팀장은 “연석회의에 참여하는 각계 37명의 주체들 가운데 한두 명이 최종 합의안에 서명을 안 한다고 해서 제재를 받는 것도 아니고, 37명 중 일부가 합의하지 않는 의제도 있을 수 있다”며 “만장일치가 안 될 경우 36명만 합의하고 1명은 빼고 갈 수도 있고, 특정 사안은 1명의 다른 의견을 끝에 붙여 사회적 합의안을 발표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연석회의 주체들은 사회적 합의 정신에 따라 각자 합의문에 정한 역할분담 내용을 충실히 이행하면 된다. 6월에 체결된 사회협약에서 정부는 보육 공공성 강화를 위해 국공립 보육시설을 보육아동 기준 30% 이상으로 확충하기로 했다. 그러나 29%만 확충했다고 해서 제재를 받는 것도 아니다. 합의문을 보면, 연석회의 참여 주체들이 ‘∼하기로 노력한다’는 선언이 대부분이다.

고령화 해결 위한 각종 의제 논의

올 1월 출범한 연석회의는 총리와 각 부처 장관급, 노동·농민·여성·종교·시민사회 대표 등 각계에서 37명의 민관 대표가 참여하고 있다. 위원은 국무총리와 각 부처 장관급 등 정부 11명, 전경련 회장 등 경제계 6명, 한국노총 위원장 등 노동 6명, 전농 의장 등 농민 2명, 한국여성단체연합 대표 등 여성 2명, 참여연대 대표 등 시민단체 5명, 천주교 등 종교계 3명, 그리고 학계 2명이다. 공동의장은 정부 쪽 국무총리와 민간 부문 3인으로 구성된다. 연석회의는 저출산, 고령화, 양극화 문제 등 우리 사회의 중요하고 시급한 의제들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 정책 방향을 제시하고 대책의 실행을 논의하는 범국민적 협의기구다.

우리나라의 2005년 합계출산율(한 여성이 평생 동안 낳는 자녀 수)은 1.08명으로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권이다. 현재 인구 규모를 유지하려면 87만 명이 태어나야 하는데 2005년 출생아는 43만8천 명에 그쳤다. 반면 노인 인구 비중은 1960년 2.9%에서 2003년 8.3%로 급증했다. 특히 저출산으로 인해 고령화 속도가 더욱 급속히 진행돼 2050년에는 세계 최고령 국가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 팀장은 “연석회의가 국민연금 개혁을 위한 사회적 합의 도출에 나선 것도 이런 인구 변화에 따른 연금 재정 고갈 위기 때문”이라며 “연금 개혁 논의가 끝나면 양극화 해소, 일자리 창출, 기업 투명성, 조세·재정 개혁 등을 놓고 어떤 것을 후속 논의 과제로 올릴지 검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여성에 대한 제약을 풀어라”


저출산·고령화 대응 국제정책포럼은 무엇을 제안했나

지난 9월13일 ‘저출산·고령화 대응 국제정책포럼’에서 빌렘 아데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아시아 사회보건과장은 “여성 경제활동 참가율이 높은 국가일수록 출산율도 높게 나타나는데, 한국은 여성 경제활동 참가율이 52.5%(OECD 평균 57.1%)로 높은 편인데도 출산율은 OECD 국가 중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다”며 “이는 여성의 경제활동을 제약하는 사회·경제적 조건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국 여성들의 ‘일과 가정 양립’을 방해하는 고용 환경으로 그는 △장시간 노동문화 △여성들이 결혼과 출산을 겪으면서 직장을 떠나야 하는 사회 분위기 △남성 노동자와 여성 노동자의 40%에 이르는 높은 임금 차이(OECD 평균 18%) △33%에 이르는 여성 임시 고용직 비율(OECD 평균 18%) 등을 꼽았다. 그는 “일과 가정의 양립이 가능해지면 출산율을 높일 수 있을 뿐 아니라 고령화로 인한 경제활동인구 감소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날 포럼에서 로랑 코오사 프랑스 고용 및 사회통계합부 부국장은 “프랑스가 출산율 1.9(유럽연합 평균 1.5)를 유지하는 비결은 유럽 국가 최초로 자녀를 둔 가구에 현금수당을 지급하는 등 출산 가정에 대한 재정적 지원 제도를 확충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프랑스의 경우 합계출산율이 1993년 1.65까지 낮아졌으나 그 뒤 다시 증가해 2000년대에 2.0 수준에 근접했다. 이런 높은 출산율은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 증가에 따른 일과 가족생활 간의 양립을 강조하고, 2살 이하 아동의 25%와 3~5살 아동의 95%가 공공보육 수혜를 받고 있기 때문에 유지되고 있다. 프랑스는 또 가족지수(성인 대비 자녀 수에 따른 가구당 소득비율의 가중치를 부여해 산출)에 기초한 조세제도를 실시하고, 셋째아이를 출산하면 휴직기간을 연장해주고 연금수령을 위한 연금납입 기간을 감면해준다. 최근에는 ‘신생아 환영수당’(PAJE)을 도입해 자녀가 3살이 될 때까지 매월 160유로(약 22만원)를 지급하고, 출산보너스로 자녀 1명당 800유로(약 110만원)를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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