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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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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그들이 다시 왔다

등록 2006-09-22 00:00 수정 2020-05-02 04:24

국방부 포클레인에 하나둘 부숴진 빈집, 평택 싸움은 끝으로 치닫는가… 이제 남은 것은 주민들을 완전히 대추리에서 몰아낼 ‘생가철거’ 작전

▣ 평택 대추리=글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포클레인이 떠나자 주민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지붕 위에서 농성하는 평택 ‘지킴이’들과 마지막까지 실랑이를 벌이던 백승엽 경기 시흥경찰서 서장은 전경들에게 “마을 밖으로 물러나라”고 명령했다. 9월13일 오후 4시, 평택 내리에서 대추리로 접어드는 오솔길 위에 서 있던 황철희씨의 옛집은 가까스로 철거를 면했다. 그 집 지붕에서 밧줄로 온몸을 휘감고 철거에 저항하던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박수를 받으며 마을로 내려왔다.

주민 송재국(69)씨가 만세를 불렀고, 김월순(68)씨가 박수를 쳤다. 조금 뒤 마을회관 앞에서는 장구와 꽹과리 소리도 들려왔다. 지킴이들은 국방부가 부수려던 마을 빈집 12채를 몸을 던져 지켜냈다. 주민들은 “이겼다”고 환호했다.

빈집 12채는 몸을 던져 지켜내

국방부도 이번 작전을 “대성공”이라고 자평했다. 경찰은 대추리와 도두리 주변을 철통같이 둘러싸고 마을로 들어오려던 지킴이들을 몰아냈다. 마을에 남은 것은 60~70대 노인들과 젊은 지킴이 수십 명뿐이었다. 경찰은 작은 시골 마을에 전경 150여 개 중대 1만6천여 명과 철거용역은 450여 명을 투입했다. 경찰은 주민과 지킴이들의 저항을 손쉽게 제압했다. 그들은 애초 부수려고 계획했던 건물 90채 가운데 76채를 허물었다. 박래군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는 “이번 작전은 건물 철거가 목적이 아니라, 주민들의 저항 의지를 꺾으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빈집 철거로 주민들의 저항 의지가 꺾인 것 같지는 않았지만, 소박한 시골마을이 흉물스럽게 망가진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제 남은 것은 주민들이 살고 있는 생가 철거다.

4년 동안 이어진 평택 싸움은 끝을 향해 치닫고 있다. 9월11일, 김영녀(81) 할머니네 집으로 등기 우편물 하나가 배달돼왔다. 우편물에는 천정배 법무부 장관(소송 대리인 법무법인 광장)이 주민들을 집에서 쫓아낼 수 있게 해달라고 법원에 제출한 소장이 담겨 있었다. 그들은 “(주한미군 확장 반대운동이 길어져) 사업이 늦어지면 1년에 1천억원의 예산이 낭비된다”고 썼고, “(그렇게 되면) 주한미군과 밀접한 연계하에 있는 방위 분담체계에도 심각한 문제가 발생해 회복할 수 없는 엄청난 안보 위험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도 적었다.

주민들은 우편물 수령을 거부했고, 평택우체국 집배원 임승유씨는 강금순 아주머니네 집 현관에 “9월12일과 13일 오후 2시에 다시 찾아오겠다”는 메모를 남겼다. 1심 판결은 길어야 한 달쯤 걸릴 것으로 보인다. 다음달 말께 국방부는 포클레인을 이끌고 이번에는 사람이 사는 집을 부수겠다고 덤빌 것 같다.

작전은 극도의 혼란 속에서 진행됐다. 그날 새벽, 전국에서 전경 1만6천여 명이 새벽 어스름을 뚫고 평택 대추리로 몰려들었다. 작전은 오전 7시 노인회관 쪽으로 이어지는 대추리 4반 입구에서 시작됐다. 그것은 콩밭과 배추밭 사이의 돌진이었다. 국방부의 포클레인은 김영녀 할머니의 배추밭과 이정오(70) 할아버지의 콩밭 사이로 난 오솔길을 따라 마을로 난입해 들어왔다. 김 할머니는 8월8일 모판에 씨를 뿌렸고, 싹이 나자 밭으로 옮겨 심었다. 그는 “이것은 올겨울 내내 먹을 김장용 배추”라고 말했다. 그는 평택구치소 수인번호 201번으로 갇혀 있는 김지태 대추리 이장의 고모다. 김 할머니는 이곳에서 태어나 21살 때 천안으로 시집갔다가 다시 고향에 돌아왔다. 남편은 23년 전에 폐암으로 숨졌고, 몇 해 전 풍을 맞아 한쪽 다리를 바닥에 끌고 다닌다. 이정오 할아버지의 콩밭은 경찰의 등쌀에 못쓰게 망가졌다.

이민강(67)씨와 김석경(78) 노인이 소리를 지르며 경찰의 방패를 밀어냈지만, 젊은 경찰들의 완력을 당해낼 수 없었다. 이호순(69) 할머니가 여경들에게 사지를 붙들린 채 끌려나갔고, 이를 구하려던 대추리 지킴이 ‘유빈’(25)씨가 경찰에 연행됐다. 시인 박노해의 벽시 ‘봄은 누구에게나 봄이어야 한다’가 적혀 있던 대추리 주민 봉하선씨의 옛집이 허물어졌다. 국방부는 “사람이 사는 집은 부수지 않겠다”던 약속과 달리 주민 김행정(65)씨의 집을 부쉈고, 방효갑씨의 집을 부수려다 주민들의 항의로 작업을 중단했다. 국방부의 포클레인은 A·B·C조로 나눠 마을 곳곳에 자리한 빈집들을 거침없이 부숴나갔다.

안전모와 방패를 버린 철거용역들

이민강씨는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며 가슴을 쳤다. 그는 1969년에 이웃 마을 안중에서 대추리로 이사왔다. 8남매의 둘째로 태어났고, 집안이 가난해 간신히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그는 자기 논 3천 평, 남의 논 1만5천 평을 합쳐 1만8천 평을 농사지었다. 그는 7천만원을 사기당해 농사지으면서 환경미화원으로 8년을 일했고, 5월4일 허물어진 대추초등학교를 만드는 데 쌀 다섯 말을 보탰다. 기자들이 그를 둘러싸고 “보상금을 받아 나갈 마음은 없냐”고 물었다. 그는 “나는 평생 일만 하며 살아온 사람”이라고 답했다.

하루 종일 곳곳에서 쓴웃음을 머금게 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오전 11시40분께 김춘석 국무조정실 주한미군이전대책기획단 부단장은 철거 현장을 배경 삼아 한국방송과 인터뷰를 할 욕심으로 폐허로 변한 대추초등학교 운동장을 찾았다가 주민들에게 봉변을 당했다. 김종일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사무처장이 “무슨 염치로 이곳에 왔냐”고 물었고, 어느새 대추리 주민이 된 시인 서수찬씨는 “저기 매국노가 간다”고 외쳤다. 법률을 집행하는 국가 공무원을 ‘매국노’라 부를 수는 없겠지만, 주택 철거로 상처 입은 주민들에게 그가 조금 더 성의 있는 태도를 보일 수도 있었을 것 같다. 기자들과 주민들에게 둘러싸인 그는 먼산을 바라보며 당나라 선승 같은 표정으로 “하늘이 참 맑다”고 했다.

그 광경을 낄낄대며 구경하던 철거용역 30여 명은 현장을 찾은 경인일보 사진기자와 몸싸움을 벌였다. 그들은 “점심도 안 주고, 일당도 안 준다”며 쓰고 있던 안전모·작업조끼·플라스틱 방패를 버리고 현장을 떠났다. 그들은 ‘삼부경비’라고 적힌 까만색 티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철거용역 업무를 맡은 한양이엠시에서 재하청을 받은 경비업체라고 했다. 주민들의 거듭된 항의에 한 한양이엠시 직원은 “우리도 지시받고 하는 일”이라며 깨진 건물 잔해에 머리를 들이받았다(머리에 피는 흐르지 않았다). 뒤늦게 도착한 국가인권위원회 직원 4명은 “인권위가 모든 현장에 있을 순 없다”고 말했다(그들은 오지 않았어도 좋았을 것 같다). 주민들은 용역들이 버리고 간 안전모와 방패를 주워 “다음번 싸움 때 쓰자”며 마을 창고로 옮겼다. 국방부는 이날 오후 3시까지 지킴이들이 옥상에 올라가 저항한 집을 뺀 건물 철거를 마무리했다.

평택으로 옮겨오는 주한미군의 성격 변화와 미국에 대한 대한민국 정부의 굴욕적인 협상 태도를 둘러싼 수많은 논쟁에도, ‘평택 싸움’을 지금까지 끌고 온 것은 자기 삶의 터전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농민들의 고집이 아니었나 싶다. 평택 지역 향토사학자 김해규(평택 한광중 교사)씨는 “1951년 미군 K-6 부대(캠프 험프리)가 옛 일본 해군 302부대 자리에 주둔하면서 마을의 고난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미군 불도저에 맨몸으로 밀려난 주민들은 마을 야산에 토막집과 천막집을 짓고 지금의 대추리를 일궈냈다. 대한민국 정부가 미국에 넘겨준 대추리·도두리 285만 평은 18세기 초만 해도 곤지나루(昆地津)라 불리던 나루터가 있던 갯마을이었다. 주민들은 필사적인 노력으로 갯벌에 둑을 쌓아 한 뼘씩 농토를 넓혔다. 그 시절 국가는 농민들에게 멀었고, 뚝을 허물고 밀려오는 바닷물은 가깝고 잔인했다. 1973년 아산만 방조제가 만들어진 뒤, 척박한 들은 옥토로 거듭났다. 2005년 12월5일 처음 이곳을 찾았을 때 여의도 3배가 넘는 크기의 들판을 지나 안성천 너머로 저무는 노을을 보며, 가슴이 터질 듯한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동요인 삽화작가 이동진씨의 의 고향은 이곳 평택이다.

착한 포클레인을 바랄 것인가

농민들이 옥토로 만들었던 갯벌은 머잖아 주민들과 상관없는 미군부대 터로 바뀔 것 같다. “내 땅에서 죽고 싶다”는 노인들의 피끓는 호소에도, 줄어든 주한미군들의 수만큼 기지 규모를 축소하면 안 되겠냐는 시민단체들의 외침에도 정부의 태도는 바뀌지 않고 있다.

이제 국방부는 법원의 집달관을 앞세워 주민들을 몰아낸 뒤, 그들이 살던 집을 부수고 말 것이다. 국가가 ‘공익’이라는 이름으로 자국민의 인권을 침해할 수 있는 한계는 어디까지인지, 철조망 속에 갇힌 평택의 너른 들판은 우리에게 묻고 있다. 남은 소원이 있다면, 그들의 포클레인들이 지금보다 조금만 더 인도적이었으면 하는 것뿐이다. 평택미군기지확장저지 범국민대책위원회는 “9월24일 4차 평화대행진에서 미군기지 이전을 반대하는 시민들의 결집된 힘을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들이운다] 애들 운동회도 못 가게 해?

다닥다닥 붙어있는 옆집들 헐면 우리 집이 뭐가 되냐고

최진례(62)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 183

경찰과 용역이 마을의 집들을 부수러 온 날, 주민들은 온몸을 던져 방패에 맞서고 철거를 막았다. 최진례 아주머니도 몸뚱이 하나로 거대한 공권력에 맞섰다.

저것들이 우리 고추밭을 밟았잖아.


대장놈이 밟고 지랄하더라니까. 저놈의 새끼, 애들이 밟아도 지가 말려야지, 지가 밟고 지랄이야. 막 싸우다 어디로 굴렀는데 된장이 있었나봐. 아휴, 몸에서 냄새나는 것 봐.
오늘 아침에 손자는 학교 차가 못 들어와서 학교 가는 데 고생했지. 한참을 막다가 경찰놈들이 태워다주더라고. 아휴 참, 기가 막혀. 손녀는 아예 유치원 보내지도 않았어. 5월4일에는 애들 운동회인데 그것도 안 보내더라니까. 야, 개새끼야, 애들 1년에 한 번 운동회인데, 너도 손자 있고 자식 있을 거 아니여. 욕하고 싸우고 아휴, 이게 뭐하는 짓이여. 학교 못 가게 하는 게 말이 되냐고. 결국 보내줬지. 어젯밤에는 잠이 안 와서 중간에 계속 깼지. 아휴, 잠이 오냐고. 3시 반에 일어났어. 아침에 사이렌 울리는데 가슴이 벌렁벌렁하더라고.
이 심정을 어디다 말을 혀. 우리 집 옆에 다닥다닥 있는 집들, 그거 헐면 우리 집이 뭐가 되냐고. 끝나고 할 수도 있는 거 아니여. 제대로 주민들이랑 이야기를 하고 나서 뭘 하든지 해야지. 왜 지금 이 지랄 하냐고. 주민들 말 한번 들으려 하지 않고. 노무현 내가 뜯어 먹을 거야. 진짜 못된 노릇이지. 뜯어 먹어도 시원찮지. 억울하고 분해서 뭘 해도 안 풀려.
언젠가 폭격장 있는 데서 기자회견 하고 몸싸움했잖아. 그때 물병 요만한 걸로 물 먹고 경찰들 때렸어. 그걸로 소환장 날아와 경찰서에서 조사받고 왔잖아. 그걸로 30만원 벌금 나왔어. 그게 말이 되냐고. 나쁜 새끼들. 뭐 난 잘못한 거 없으니까 그냥 갔다 왔지. 경찰서 조사받으러 갈 때 도두2리 이장이랑 같이 받았어. 그이가 내 초등학교 동창이여. 계성초등학교. 동창생들끼리 조사받으러 갔다고 동네 사람들이 한참 웃었지. 아휴, 이게 뭐하는 짓이여.
계양에서 살다가 여기 시집왔어. 서울로 이사 갔다 다시 왔어. 그렇게 온 지 33년 됐어. 남의 농사 지어서 자식들 학교 보내고 장가보내고 여지까지 살아왔어. 이렇게 편안하게 살아. 그런데 지금에 와서 이 지랄하니. 여기서 쫓겨나면 어디 가서 땅을 사냐고. 돈이 있어야 땅을 사지.
열심히 싸워야지. 그런데 속수무책이지. 바라보면 답답하고. 나는 끝까지 가는 겨. 쫓겨나면 다 쫓겨나고, 살면 다 같이 살고. 여기까지 왔는데 다 같이 가야지. 경찰서 조사받으러 가서 그랬어, 내가. 당신 생각해보라고. 국방부에서 주는 보상금 찾아봐야 집 사고 자식들 물려주고 그러면 나 뭐 먹고 사느냐고. 내가 어처구니가 없어서. 돈 30만원이 없어서가 아니라 내가 감옥 들어가 산다고 그랬어. 아휴, 정말 그런 심정을 이루 말할 데가 없지.
나 밭에서 키운 거 하나라도 팔아 먹을 줄 모르고 김치 해서 남 퍼주기 바쁜 사람이야. 그렇게 즐겁게 사는 거야. 나는 그렇게 생각해. 짜게는 안 살아봤어. 그런데 그게 올해가 끝이여. 끝이 아니어야 할 텐데. 그래도 오늘 지킴이들이 잘 싸워서 몇몇 집들은 지켜냈잖아. 계속 지켜내야지.




[평화의 땅 지키기]대추리 분위기 좋아요!

매주 에 모금 내역을 보내주는 평화바람의 활동가는 “(9월13일 국방부의 포클레인과 한판 대결을 벌이고 난) 대추리·도두리 분위기는 달리 참 좋다”고 말했습니다. “다들 이 투쟁이 끝났다고 얘기하고, 언론에서도 그러고요. 서울에 갔더니, 서울 분위기도 정말 안 좋더라고요. 거의 패배적인데 여긴 안 그렇습니다. 오히려 대추리 분위기가 더 좋아요.” 농민들은 지난주 봄에 뿌린 벼 수확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국방부의 철조망이 둘러싸지 못한 들판이 누렇게 익어가고 있습니다. “올해에도 농사짓자”던 농민들의 외침이 이뤄진 것일까요?

계좌이체 농협 205021-56-034281, 예금주 문정현
주관 평택미군기지확장저지 범국민대책위원회,
문의 평택 범대위(031-657-8111), 홈페이지 www.antigizi.or.kr,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 159-2 마을회관 2층 (우편번호 451-802)

장은미(5만원) 임석수(3만원) 조성실(2만원) 김지혜(10만원) 이재인(2만원) 정애경(5만원) 임광묵(3만원) 김용훈(5만원) 복자여고1-장(4만1천원) 조병현(20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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