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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가 노동자들 기 살린다?

등록 2006-08-24 00:00 수정 2020-05-03 04:24

자진해산 뒤에도 강도 높은 투쟁을 벌이는 포항 건설 노동자들… 빠져나갈 구멍 없이 몰아붙이는 정부와 포스코의 서툰 대응이 문제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포항 지역 건설 일용직 노동자들이 하루 8시간 근무, 토요 유급 휴무 등을 요구하며 생계를 포기한 채 파업에 나선 지 벌써 50일이 훌쩍 넘었다. 지난 7월21일 포항 포스코 본사에서 자진 해산한 뒤 포항 지역 건설노동자들은 서울과 포항을 번갈아 오가며 집회·시위를 열고 있다. 1차 상경투쟁 때는 5명, 2차 상경 때는 60명, 3차 상경 때는 100명, 4차 상경 때는 400명, 그리고 지난 8월17일 5차 상경 때는 1200명이 버스를 타고 서울로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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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볕 무더위 속에서 평균 쉰 살을 넘은 고령 노동자들이 지친 몸을 이끌고 2박3일, 3박4일의 상경투쟁을 지속하고 있다. 집결 대오도 흐트러지지 않는 등 투쟁 동력이 좀체 꺼지지 않는 모습이다.

구속 조합원 68명, 사태는 악화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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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과 포항 집회 때마다 부상자가 속출하고 수백 명이 한꺼번에 연행되고 있다. 포스코 본사 점거 당시 동료 조합원들에게 도시락을 전달하려고 거리집회에 나섰던 하중근씨가 시위 과정에서 큰 부상을 입고 숨진 지도 보름이 지났다. 8월9일 포항 집회 때는 또 다른 조합원인 최상수씨가 경찰의 진압 과정에서 부상을 입고 지금 생사의 갈림길에 있다. 지난 7월19일 집회에서는 임산부가 아기를 유산하는 일까지 터졌다. 구속된 조합원만 63명이다. 1990년 현대중공업 골리앗 농성(당시 32명 구속) 때보다 더 많은 구속자 수다. 정부 일각에서 이번 파업을 “노사 문제가 아니라 치안 문제”로 볼 정도로 사태는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다.

7월28일에는 50여 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포항지역 건설노조 파업의 올바른 해결과 건설노동자의 노동권 보장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가 발족했다. 공대위는 △실질적 사용자인 포스코가 해결에 직접 나설 것 △하중근씨 사망과 관련해 경찰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고 있다. 한쪽에서 이지경 포항지역 건설노조 위원장을 비롯한 구속 노동자 58명은 현재 옥중 단식 투쟁을 벌이고 있는 중이다. 노조 쪽은 “정부가 포스코 점거농성을 자진 해산하면 선처하고 교섭을 주선하겠다고 애초에 약속했는데도, 휴짓조각처럼 내팽개치고 유례없이 58명의 구속을 강행했다”며 “포스코의 강경 일변도 대응도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포스코는 포항지역 건설노조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 제기를 검토 중인데, 소송액은 20억원 안팎이 될 것으로 알려진다.

파업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파업 반대’ 시위까지 열리고 있다. 8월18일 포항종합운동장에서는 이례적으로 파업 중단을 촉구하는 ‘범시민 궐기대회’가 열렸다. 포항상공회의소 등은 이날 집회에서 “파업과 집회로 교통 대란이 빚어지고 상인들은 장사가 안 되는 등 포항 지역 경제가 큰 피해를 보고 있다”며 파업 중단을 촉구했다. 반면 노조 쪽은 이를 ‘관제 집회’로 규정하고 있다. 건설산업노조연맹 최명선 부장은 “집회가 시민사회단체 이름으로 열리고 있지만 참가자들 중에 포스코 직원이나 포스코 현장의 전문건설업체 사장들의 얼굴이 여럿 보였다”며 “이들이 ‘시민’이란 허울 좋은 이름을 뒤집어쓰고 파업 중단 요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8월12일 제21차 마라톤 교섭에서는 잠정 합의안이 마련돼 극적 타결 일보 직전까지 가기도 했다. 그러나 노동조합이 전문건설업체 쪽의 최종안을 수용하지 않기로 하면서 협상은 결렬됐고, 교착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당시 노사는 △평균 5.2% 임금 인상(기계플랜트 하루 일당 5천원 인상, 토목철근 하루 일당 3천원 인상) △토요근무 할증 강화(오후 3시까지 근무시 하루 일당 지급, 오후 5시까지 근무시 1.5배 지급) △토목철근 하루 8시간 근무(단, 휴게시간은 제외) 등에 대한 잠정 합의안을 도출했다. 그러나 주요 쟁점이던 주5일제 실시 및 토요 유급 휴무와 관련해서는 별다른 진척을 보지 못했다. 노동조합 쪽은 “토목노동자들의 경우 몇 가지 진전된 안이 제시되었지만 토요 유급 휴일은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기계플랜트 노동자들의 경우 단협에 보장된 ‘조합원 우선 채용’ 조항과 관련해 예전보다 더욱 후퇴한 안을 전문건설업체 쪽이 제시해 최종안이 결렬되고 말았다”고 말했다. 60여 명에 달하는 구속자와 손해배상·가압류 문제가 명확하게 정리되지 않은 것도 협상이 결렬된 원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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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년의 전통과 힘을 가진 노조

흥미로운 건 포스코 점거농성에서 자진 해산한 뒤에 건설 일용노동자들의 패배감이 강하게 퍼졌고 지도부까지 모두 구속됐는데도 어떻게 노동조합이 빠르게 조직을 재정비하고 더욱 강도 높은 싸움을 벌일 수 있었느냐는 점이다. 포항지역 건설노동조합은 18년의 역사를 가진 노동조합이다. 여러 플랜트 공장들이 들어서 있는 울산·광양·여수에도 포항과 같은 지역 건설노동조합이 구성돼 있다.

그러나 조직력이 가장 강한 곳은 포항지역이다. 최명선 부장은 “18년의 전통과 힘을 가진 노동조합이기 때문에 조합원 중에 예전에 노동조합 간부를 했던 사람들이 꽤 많다. 지도부가 구속되면 이들이 전면에 나서 새로운 지도부를 구성해 공백을 메우고, 상경 시위나 집회 때 비상투쟁 지도부가 또 구속되면 다른 옛 노조간부가 다시 공백을 메우고 있기 때문에 조직력이 살아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노조는 자진 해산 이틀 뒤인 7월23일 임시대의원대회를 열어 비상투쟁본부를 빠르게 구성해 다시 교섭에 나섰다. 최명선 부장은 “일용직 조합원들이라서 어찌 보면 흩어지기 쉬운 사람들이다. 하지만 한번 모여서 싸우기 시작하면 동질감이 폭발적으로 확대되면서 결속력이 높아지는 것이 건설 일용노동자들의 모습”이라고 말했다. 나이 든 노동자들임에도 서울 상경 시위 때마다 집결하는 노동자들의 수가 대폭 늘어나는 게 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물론 조합원마다 일용직으로 당장 생계가 막막한 사람들이고, 그래서 다들 빨리 파업을 끝내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왜 장기 파업을 지속하는 것일까? 파업이 길어질수록 이번 파업에 대한 정부와 포스코·전문건설업체들의 서툰 대응이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커지고 있다. 일자리가 불안하고 포스코 현장 외에는 돌아갈 데가 없는 사람들인데 정부와 포스코 쪽이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주지 않고, 자진 해산 뒤 계속 몰아붙이고만 있다는 얘기다. 결국 벼랑 끝에 몰린 노동자들은 ‘뭉쳐서 돌파하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고 깨닫고, 이는 노동자들을 더욱더 투쟁으로 내몰게 된다. 전문건설업체 사장들이 교섭 테이블에서 “파업에 참가한 조합원들에 대해 고용 때 파업 불참 조합원과 차별을 두지 않겠다”고 말하지만, 조합원들 사이에는 발주자이자 원청인 포스코·포스코건설이 파업 가담자들한테는 일을 주지 않을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 전문건설업체가 차별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더라도 ‘제3자’라고 주장하는 포스코 쪽이 간접적으로 취업을 막을 것이라는 얘기다. 또 포스코가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면 조합원 개인들한테 부담이 떨어지게 되는데, 이런 생존권 문제도 고령의 노동자들을 한데 뭉치게 하고 있다.

대체 인력 투입도 어려워

포항시 김순태 지역경제과장은 “2004년 등 과거에도 포스코 건설현장 노동자들의 집회, 파업이 일어났지만 포스코 본사 점거라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포스코도 쉽게 양보하거나 물러서지 않고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사실 포스코 쪽은 파업 초기부터 이미 “과거의 파업과 협상 관행을 올해는 깨겠다”는 생각을 굳힌 것으로 알려진다. 이번에는 끝까지 물러서지 않고 노조에 본때를 보여주겠다는 식이다. 이는 노동자들의 점거농성 이전부터 포스코가 여러 대책모임을 갖고 강경대응과 노조 무력화에 나섰음을 입증하는 여러 문건들에서 확인된다.

파업이 장기화하고 있지만 포스코 역시 대체인력 투입을 못한 채 파이넥스 공장 건설이 계속 중단돼 고민에 휩싸여 있다. 대체인력을 쓰게 되면 포스코가 실질적 사용자로 등장하는 양상이 된다는 점에서 포스코에도 큰 부담이다. 또 플랜트 공사는 그 특성상 다른 숙련공으로 금방 대체하기도 어렵다. 최명선 부장은 “포스코 쪽이 노동조합 무력화를 포기하지 않는 한 투쟁은 더 가속화될 것이다”며 “포스코는 직접 해결에 나서든지, 아니면 20년 넘게 일한 노동자들을 버리고 외국인력 투입을 검토할지를 놓고 선택해야 할 상황에 곧 직면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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