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갑에서 칠순까지 포스코의 늙은 건설 노동자들은 왜 반란에 참가했을까… 평소에도 “거지 취급” 서러웠는데 8시간 노동 요구에 일감마저 끊어지자…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포항의 포스코 현장에서 일하는 건설노동자(기계 플랜트·토목·철근 등)들은 포스코를 ‘종철’(포항종합제철)이라고 부른다. 포스코 말고 다른 작업 현장 일은 간단히 ‘바깥일’로 불린다. 그도그럴 것이 이들은 포스코가 새 공장을 짓거나 설비를 교체하고 유지·보수하는 업무에만 대개 20∼30년씩 종사해온 숙련 기능공들이다.
그들은 과연 ‘백기투항’했나
이들 2천여 명이 최근 포스코 본사 점거농성을 9일 만에 끝내고 자진 해산하자 언론들은 일제히 ‘백기투항’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나 그들은 환갑을 이미 넘겼거나 바라보는 ‘늙은 노동자들’이다. 점거농성 초기에 사흘간 참가했던 오광기(50·목공)씨는 “농성 노동자 중에 일흔 넘은 사람도 있었고, 먹을 것이 없자 속이 따갑다고 호소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말했다. 농성장에는 74살 노동자도 끼어 있었다. 9일 동안이나 생수도 먹을 것도 없이 버텨낸 칠순 노동자들이 과연 백기투항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포스코 현장에서는 지난 5월 말부터 포항지역건설노조 노동자들이 하루 8시간 노동을 요구하며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지금까지 아침 7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일을 해왔는데 하루 노동 시간을 아침 8시부터 오후 5시까지(8시간·점심시간 제외)로 해달라는 요구였다. “5월29일부터 8시에 출근하니까 일부 전문 건설업체에서는 0.8부(일당의 80%)만 쳐준다고 하더니, 그 뒤부터는 8시에 출근하는 일꾼은 안 받겠다고 보따리 싸서 집에 가라고 했어요. ‘8시 출근 투쟁’이 확산되면서 현장 여기저기서 8시에 일하러 나온 노동자들이 ‘나한테도 일을 시켜달라’고 하는 풍경이 벌어지기도 했어요.” 오씨는 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오씨는 “회사(전문 건설업체)가 일을 안 시켜줘서 반란이 일어난 것”이라고 했다. 어떤 업체는 하루 8시간 노동을 요구하는 토목노동자 300명을 집단 해고해버렸다. 근로기준법에는 일용직이든 정규직이든 고용 형태와 무관하게 1주를 근무하면 하루 유급(주휴수당)휴일을 주도록 돼 있지만, 건설노동자들한테 주휴수당·월차수당 같은 법정 수당은 희망사항일 뿐이다.
오씨는 이번 점거농성 중 물건(생수·음식물)을 사러 내려왔다가 경찰의 저지에 막혀 다시 못 들어갔다. 오씨가 포스코에서 일하기 시작한 건 1986년부터다. 포스코 일감이 없을 때는 ‘바깥일’도 하는데, 포스코에 파이넥스 공법(용광로 없이 하는 철강 생산) 제철소 건설이 시작되면서 최근 2년은 포스코에서만 일해왔다. “현장에 인력이 많이 필요하지 않게 되면 ‘대마치’(일감이 없어 쉬는 것)로 당분간 집에 있으라고 해요. 출근하고 싶어도 작업 준비가 덜 됐다고 쉬라고 해요. 그 말로 끝이죠. 정작 우리가 일요일에 쉬고 싶을 때는 ‘한창 바쁜데 일 안 나왔다’고 난리예요.”
파업에 돌입한 지 벌써 두 달째다. 일용직 노동자로서 생계가 막막할 수밖에 없다. “이 일이 내 밥줄인데, 버스 차비도 없어서 12km 되는 거리를 자동차 얻어타고 와 집회에 참석해요. 점심 때가 되면 밥 사먹을 돈도 없어 집에 가서 밥 먹고 나와 또 집회에 참가하고 있어요.” 자신을 기다리는 건설현장도 없고, 일자리를 찾아 발품을 팔고 다녀야 한다. 포스코 현장 안에서도 일을 직접 수소문해 고용해줄 업체를 찾아다녀야 하는 신세다. 도급으로 맡은 일이 끝나면 새로운 일거리를 또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오씨는 “일이 다 끝나면, 노동조합 활동하고 8시간 노동 요구한 사람들은 십장이 김씨, 박씨 식으로 이름을 적어놓고 ‘내일부터 나오지 말라’고 한다”고 말했다.
십장의 횡포에 속울음
건설현장 일이라는 게 ‘인맥’ 따라 달라지다 보니 20년 숙련 기능공이어도 받는 일당이 현장마다 다르다. “여기서 10만원 받다가 다른 데로 옮기면서 9만원도 받고…. 목공일이라는 게 하루이틀 배워서 되는 것도 아니고 10년 이상 해야 숙련공이 되는데, 십장과 잘 알고 지내는 사이면 더 많이 받고 안 그러면 아무리 기능이 뛰어나도 주는 대로 받아야 해요.” 건설현장 노동자들은 업체가 공사를 얼마에 따는지 알지도 못하고, 알아도 사실 속만 아프다.
오씨는 “예전에 6만원 받을 때가 (실질임금으로 보면) 지금보다 생활이 더 좋았다”며 “다단계 하도급으로 공사가 자꾸 밑으로 내려오다 보니 노임이 계속 떨어지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허명기(54)씨는 2003년부터 줄곧 ‘종철’에서만 목공일을 하고 있다. 1991년부터 건설현장 목공일을 배워 지금은 ‘A급’ 목공으로 실력을 인정받는 기능공이다. 이번 파업 대열에 처음에는 합세했는데 가족들이 아파서 도중에 빠졌다고 한다. “포스코에서 1년에 최대 200일 정도 일해요. 포스코 직원들은 지난해에 5조9천억원을 벌어 특별보너스 잔치도 했지만 우리는 도시락 부식조차 3천원짜리에서 2천500원짜리로 오히려 줄었어요. 그것도 쇳가루와 먼지 수북한 공사현장 이곳저곳에 주저앉아 먹고….” 허씨가 한숨처럼 내뱉었다. “도급 단계에서 중간에 낀 십장과 반장들이 많이 늘어나면 우리 일꾼들은 먹을 게 줄어들어요. 내가 알기로 여기서 도급은 4단계 정도 되는 것 같은데…. 주5일제라고 해도 우리는 일요일도 못 쉬어요. 쉬려 해도 무급이면 어떻게 먹고삽니까? 오후 6시 퇴근이라도 십장이 더 일해달라고 하면 연장수당이고 뭐고 없이 7시까지 일해주기도 해요. 안 그러면 십장이 ‘내일부터 일 나오지 말라’고 하는데, 할 수 없죠.” 허씨는 “언론이 막노동하는 주제에 무슨 파업이고 노동조합이냐는 투로 바라보는 듯한데, 포스코의 막대한 흑자를 누가 벌어다준 겁니까?”라고 되물었다.
비가 와서 공치면, 월급명세서도 따로 없다. “출근한 뒤 8시 반에 비가 내려 공사가 중단되면 공수를 하나도 안 쳐주고, 9시 반이면 0.3부, 오후 3시면 0.7부로 쳐주는 식이에요. 하루 일당 10만원에 한 달에 총 20일을 일했으면 200만원이라고 편지봉투에 손으로 써서 줘요. 일당 10만원마다 세금 1480원을 떼서.” 오씨의 말이다. 기성금(일을 끝낸 물량에 대한 공사대금)을 받으면 십장이 돈뭉치를 집에 들고 가서 편지봉투에 담아서 다음날 개인별로 이름을 불러 사인받고 노임을 주는 식이다.
포항제철소에서 토목 노동자들은 옥외에서 일하는 사람이 많은데, 포항의 샛바람이 워낙 거세게 몰아치기 때문에 10분도 서 있기 힘들 때가 많다. “술 안 마시고 야무지게 일하는 사람도 1년에 여기서 8개월 이상 일하기 힘들어요.” 오씨의 목소리가 점차 격앙됐다. “탈의실 하나 없어서 작업현장에 있는 나무에 못 하나 박아놓고 작업복 걸어놓고 퇴근해요. 저녁에 손 씻을 곳도 없고. 식당은 직원들만 이용하는 곳이고…. 도시락 배달시켜 먹을 때는 의지할 곳 없어서, 거지도 아니고 바깥에서 빗물에 밥 말아먹고… 낮에는 여기저기 쓰러져 쪽잠 자고.” 오씨가 장탄식을 쏟으며 말했다. “안전교육 받을 때 안전화 같은 물품을 지급하고 사인을 받는데, 남이 쓰다 버린 낡은 것을 주고 작업복, 귀마개, 안전모는 주지도 않고…. 포스코에서 지난해 목공 노동자들의 요구로 처음으로 목이 긴 작업 신발을 줬어요.”
다단계 하도급, 노임은 계속 추락
다단계 하도급은 곧 ‘중간 착취’를 뜻한다. 도급단가 계산에서 노동자 일당이 ‘품셈’(인건비)으로 11만7천원이라면 십장(하도급) 체제에서 반장 한 사람이 밑에 도급으로 붙으면 11만원이 되고, 그 밑에 또 팀장이 붙으면 10만원이 되고 결국 A급 일꾼은 9만5천원, B급은 9만원, C급은 8만5천원이 된다. 허씨는 “내가 알기로 목공 일당이 11만8천원인데 십장-반장-팀장 등으로 도급이 내려오면서 나한테는 9만5천원 정도 떨어진다”고 말했다. “목공이든 철근이든 건설현장 일은 언젠가는 이어받아 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혹시 우리 자식들이 하게 될지도 모른다. 30년 넘게 목공일을 해왔는데, 후배가 나중에 건설현장에 들어와서 ‘주5일제도 시행 안 되고, 도대체 우리 선배들은 뭐했습니까?’라고 원망하는 소리는 듣고 싶지 않다.” 오씨의 말이다.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영상] “국민이 바보로 보이나”…30만명 ‘김건희 특검’ 외쳤다
“윤-명태균 녹취에 확신”…전국서 모인 ‘김건희 특검’ 촛불 [현장]
해리스-트럼프, 7개 경합주 1~3%p 오차범위 내 ‘초박빙’
에르메스 상속자 ‘18조 주식’ 사라졌다…누가 가져갔나?
로제 아파트는 게임, 윤수일 아파트는 잠실, ‘난쏘공’ 아파트는?
거리 나온 이재명 “비상식·주술이 국정 흔들어…권력 심판하자” [현장]
노화 척도 ‘한 발 버티기’…60대, 30초는 버텨야
“보이저, 일어나!”…동면하던 ‘보이저 1호’ 43년 만에 깨웠다
이란, 이스라엘 보복하나…최고지도자 “압도적 대응” 경고
구급대원, 주검 옮기다 오열…“맙소사, 내 어머니가 분명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