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마살이꾼이 사랑하는 오대산 월정사 전나무 숲~ 두메산골 인제 아침가리 길… 간첩사건의 산물, 오대산 북대산 관통도로를 밟고 열목어가 춤추는 내린천으로
특집/ 여름 휴가지 3선 ③ 오대산
▣ 오대산=글·사진 서재철 녹색연합 국장
길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건설교통부가 닦은 고속도로와 국도부터 첩첩산중의 약초길, 심마니 길까지. 그 크기와 용도에 따라 길의 모습은 다양하다. 사람의 기준으로 볼 때 가장 작은 길은 동물들이 다니는 길일 것이다. 멧돼지, 노루, 너구리, 삵 같은 숲에서 사는 우리 친구들이 다니는 길이다. 고개를 숙이고 잘 살펴보면 땅바닥에 이들이 다닌 흔적을 찾을 수 있다.
100~500년 된 전나무 수백 그루가 만든 장관
산속의 길 가운데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것은 등산로다. 그런데 등산로가 아니면서 오히려 숲의 깊이와 넉넉함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곳이 있다. 계곡이나 하천이 아닌 산을 넘어가는 트레킹 코스 중 가장 손꼽히는 곳이다.
아는 사람만 아는 곳, 역마살의 기운을 감당하지 못해 산천의 외지고 깊은 곳은 두루 섭렵한 발꾼들의 고향 오대산 북대사 넘어 홍천 명개리 거쳐 아침가리로 이어지는 길이다. 백두대간 오대산에서 설악산 아래 점봉산까지 이어지는 길이다. 이틀 걸음으로 부지런히 가야 하는 길이다. 그러나 그 발품값을 족히 할 만하다.
오대산은 잘 알려지지 않은 분단의 현장이다. 오대산국립공원의 북쪽 권역인 홍천군 내면 일대는 전쟁 전까지 북한 땅이었다. 38선이 홍천군 내면 명개리 근처를 지나간 것이다. 그래서 전쟁 전까지 무수한 빨치산이 넘나들었으며 교전도 많았다. 이런 역사의 흔적이 있었기에 지난 1968년 ‘울진·삼척사건’이 터지고 나서 오대산을 관통하는 길을 뚫은 것이다. 대간첩작전을 비롯해 여러 군사활동을 펴기 위해 공사를 시작했다. 생태계에 대한 고려 없이 군 공병대를 동원해 작업을 했다. 자연은 파괴와 훼손에 움츠러들었지만, 세월의 흐름과 함께 너그러이 이 길을 끌어안았고 마침내 공존의 길을 터주었다. 그래서 지금은 숲 속에 묻힌 길이 되었다.
오대산 북대사 관통도로는 개통 뒤 별다른 용도 없이 있다가 80년대 초반에 강원도에서 446번 지방도로로 편입해 지금까지 관리하고 있다. 최근 강원도는 이 지방도로를 영구히 폐쇄하고 오대산국립공원에 되돌려준다고 발표했다. 반가운 일이다. 일반도로의 사용은 중단하고 국립공원 탐방로로 이용하게 된 것이다. 마땅히 그렇게 되었어야 할 일이다.
오대산 북대사를 넘어가는 길은 오대산국립공원의 입구인 월정사 일주문부터 시작된다. 이 길은 출발부터 우리를 무한히 숲으로 빨아들인다. 본전 앞마당까지 펼쳐진 전나무 숲은 백두대간의 대표적인 숲 터널이다. 만약 하늘의 세계가 있다면 이런 길로 오르지 않을까 싶다. 길게는 500년에서 짧게는 100년 정도 된 나무들까지 전나무 수백 그루가 무리를 이루는 곳이 바로 월정사로 들어가는 길이다. 봄부터 여름까지 숲 속으로 햇볕 한줌 비집고 들어오기 어려울 정도로 울창하다. 한 번이라도 걸어본 사람은 이 숲 터널을 잊지 못할 것이다.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숲 터널이 있다면 우리나라에서는 아마도 백두산과 개마고원에 있는 가문비 군락이나 잎갈나무 군락 정도가 아닐까 싶다. 무릇 울창한 산이나 짙은 숲을 보면 한 번 더 오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지만 월정사 전나무 숲은 오고 또 와도 그 푸름과 신선함이 언제나 새롭기만 하다.
7m 폭 도로 옆에 희귀식물 군락지가 있다니
월정사에서 상원사까지는 차가 다녀서 걸어가는 이들의 마음에 짜증이 일기도 하지만, 그래도 좋은 숲길이다. 상원사 입구 주차장부터는 본격적인 숲길이자 차가 거의 다니지 않는 길이다. 4시간 가까이 땀을 흘리고 나면 고갯마루 가까운 곳에 도착한다. 오름길의 처음은 힘들어도 가면 갈수록 오대산의 울창한 숲의 진수를 맛본다. 북대사 관통도로에는 곳곳에 희귀식물이 펼쳐져 있다. 평창과 홍천 경계 지점 못 미처 길가에는 노랑무늬붓꽃이 무리로 펼쳐져 있다. 늦여름인 8월 말이면 금강초롱이 지천으로 흐드러지고, 칼잎용담이 황산벌에서 쓰러져갔던 계백의 병사들이 마지막 치켜들던 칼날처럼 곳곳이 일어나 있다.
노폭이 7m가 넘는 차가 다닐 수 있는 길에서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와 보호대상종인 식물이 군락을 이루는 곳은 오직 이곳뿐이다. 백두대간뿐 아니라 다른 어떤 곳을 가더라도 차가 다니고 사람이 다니는 길가에 이토록 다양한 식물과 나무들이 어우러진 곳이 있었던가. 분비나무와 사스래가 어우러지고 거제수와 피나무가 동침하듯 노니는 숲을 지나가는 길이 과연 어디 있었던가. 북대사 관통도로는 비록 분단의 잔영으로 태어난 길이기는 하지만 자연은 이를 보듬어주었다. 그리고 이 길은 두로봉과 비로봉 사이를 관통하는 오대산을 갈라지게 했지만, 끝내는 오대산이 품어안아 숲 속의 길이 된 것이다. 이렇게 자연은 계속해서 관용과 공존을 보내는데 인간은 끊임없이 이기와 편리함만을 생각한다.
북대사 넘어 내려오는 아름다운 길은 무난하다. 홍천군 내면 명개리의 오대산국립공원 명개리 매표소까지는 약 4시간 걸린다. 여러 곳의 계곡을 만나는데 모두 마음껏 마셔도 좋은 산삼 썩은 물이다. 명개리는 비록 국도변에 있지만 전형적인 두메산골이라 버스가 자주 다니지는 않는다. 명개리로 내려와 다시 아침가리로 접어들려면 세심함이 필요하다. 56번 국도를 따라 내면(창촌) 쪽으로 10km쯤 내려가다가 내면 광원리에서 비포장 길로 접어들어 계속 올라가야 한다. 모르면 주민들에게 물어보는 게 상책이다.
아침가리는 백두대간에서도 가장 두메산골로 꼽히는 곳이다. 강원도 인제군 기린면 방동리 산 20번지. 진오대산 월정사 전나무 숲이 백두대간에서 으뜸으로 울창한 숲 터널이라면, 아침가리 숲 터널은 그 길이와 끝없이 이어지는 듯한 맛에서 으뜸이라 하겠다. 어디를 가도 서너 시간 숲 터널을 만날 수 없다. 하지만 아침가리는 그렇게 숲 터널이 이어졌다.
마치 태백이나 정선의 탄광 지하갱도가 수백m 이어지듯이 숲으로 터널이 펼쳐진 것이다. 신갈나무·졸참나무를 비롯해 거제수·사스래·고로쇠나무·음나무·까치박달·물박달 같은 온갖 나무들이 이 터널의 대열에 줄지어 서 있다. 오대산 아래인 홍천군 내면 광원리 월둔에서 출발해 구룡덕봉 고개를 넘어 아침가리를 거쳐 진동계곡이 내려오는 인제군 기린면 방동리 방동약수 아랫마을까지 걸었다. 오대산 자락이나 점봉산 자락이나 이 일대의 모든 계곡은 내린천에서 다시 만난다. 한마디로 백두대간의 가장 두메에 해당하는 물줄기의 집결지가 바로 내린천이다.
지상낙원 아침가리, 먹구렁이가 하품하는 곳
이 수계에 있는 지역 어디를 가나 열목어를 쉽게 볼 수 있다. 한강 최상류 지역의 1급수에서만 서식하는 금강모치나 어레미도 자주 만난다. 물고기가 살고 있는 곳 더 위쪽은 꼬리치레도롱뇽의 서식지다. 내린천으로 모이는 대부분의 지천 상류 계곡에는 어디나 할 것 없이 꼬리치레도롱뇽이 노닐고 있다. 이것은 이 계곡이 1급수 중에서도 최고라는 얘기다. 우리의 친구 꼬리치레도롱뇽은 여름철에도 수온이 15도 안팎의 차고 맑은 물에서만 산다. 계곡 둘레의 숲도 자연림 상태의 울창한 숲이 있는 곳에서만 산다. 그러니 이런 곳은 국내에서 가장 청정한 곳이요, 생태계에서는 아주 안정된 곳이다. 이런 곳이 바로 백두대간의 계곡이자 숲이다. 그래서 꼬리치레도롱뇽은 백두대간을 상징하는 양서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상낙원이 다른 것이 아니다. 바로 아침가리가 지상낙원이다. 무당개구리가 길가의 웅덩이에서 마음껏 사랑을 해도 방해받지 않고, 먹구렁이가 길바닥에서 숲 속을 헤치며 다니다가 나무를 타고 올라가 늘어지게 하품을 하는 곳. 우리 땅 어디나 다 인간 위주로 돼 있지만, 아침가리만은 인간이 아닌 뭇 생명이 주인인 곳이다. 가끔 인간들이 이상하고 요란한 차들을 끌고 와서 더 이상 맑기도 어려운 계곡물을 횡단하고 그것도 모자라 세차를 할 때도 있다. 이런 상식 이하의 짓거리를 하더라도 아직은 아침가리의 푸름을 위협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정부의 각별한 관리의 손길이 필요하다.
전기도 없고 물도 계곡물을 그대로 먹는 곳, 아침가리의 마을에는 3가구가 살고 있다. 과거 마을에는 분교도 있었고, 인구도 수십 가구를 헤아렸다. 다 떠나고 남은 집과 새로 들어온 집이 3가구다. 뜨거운 햇살이 비추고 등 뒤로 흘러내린 땀방울은 아침가리 계곡물처럼 옷자락을 적셔도 방동리 내려오는 발걸음은 한없이 상큼했다. 살아오면서 지금까지 등산로가 아닌 펑퍼짐한 길에서 하루 종일 숲 터널을 걸어본 적이 있었던가. 아침가리에서는 그것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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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산 북대사 관통도로는 족히 하루 걸음이다. 오대산국립공원 월정사 쪽으로 접근하려면 평창군 진부터미널에서 시외버스를 내려서 다시 시내버스로 갈아타고 월정사로 들어가야 한다. 하루에 5~8번 정도 버스가 있다. 월정사 근처에는 민박집과 식당, 여관이 즐비하다. 오대산북대사와 아침가리 모두 식량과 장비를 든든하게 준비해야 한다. 거의 지리산이나 설악산 등산에 준하는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그런 준비가 없다면 가지 말아야 한다. 비옷·핸드랜턴·지도 등을 준비해야 하며 기상 상태도 체크해야 한다. 오대산 월정사와 상원사 중간의 산장 근처에 야영장이 있으며 명개리의 공원구역 밖의 마을자락에서도 야영이 가능하다. 아침가리에는 아무것도 없다. 기린면 방동리 방동교 근처까지 나와야 민박집이 있다. 아침가리는 충분히 준비하고 찾아야 한다. 쉽게 들어가려 마음먹는다면 생애에서 처음 맛보는 감당키 어려운 시간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오대산국립공원 관리사무소: 033-332-6417
오대산 내면 분소(명개리 매표소) : 033-435-7440
평창군 진부터미널: 033-335-6307
홍천군 내면사무소: 033-432-6031
인제군 기린면사무소: 033-460-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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