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창태 사장의 1억5천만원 소송으로까지 이어진 사태… 삼성 기사 삭제 이후 편집국장 사표수리에 기자들 반발, 아직도 분위기 험악
▣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서울 중구 충정로에 위치한 건물 6층 회장실. 지난 7월7일 오전 11시에 인터뷰를 약속한 금창태 사장은 30분이 지났는데도 얼굴을 보이지 않았다. 대신 바로 옆 사무실에서 그의 고성이 쉼 없이 벽을 때렸다. 기자들도 주눅들지 않았다. 기자들은 △사장 퇴진 △(삭제된 삼성 관련) 기사 게재 △이윤삼 편집국장의 복귀를 거듭 요구했다. 예순여덟의 노구인 금 사장은 절대 물러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영상의 큰 손해, 도덕적인 문제, 불법 등 경영진이 사퇴할 만한 3가지에 자신이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1시간30분 동안 고성을 주고받는 난타전을 끝내고 기자들은 5층 편집국으로 총총히 내려왔다. 편집국은 곳곳에 “독립언론이라야 은 살 수 있다” “거대 자본 삼성은 광고로 언론을 길들이려 하지 말라”는 대자보와 현수막이 붙어 있었지만, 다음주치 기사 마감을 앞둔 또 다른 긴장감도 감돌았다.
삼성과 그 연결고리, 삼성맨 금창태
지난 6월20일 이후 기자들의 투쟁은 이날도 계속되고 있었다. 기자들은 왜 사장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을까? 기자들은 “삼성의 압력에 굴복한 경영진은 책임지고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그들은 편집권을 사수하기 위한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발단은 이렇다. 6월19일 발행된 870호에 3쪽 분량으로 실릴 예정이던 삼성 관련 기사 하나가 증발했다. 금창태 시사저널 사장·발행인·편집인은 6월17일 새벽 1시쯤 인쇄소에 연락해 기사를 뺐다. 이윤삼 편집국장은 이 사실을 알 수 없었다. 문제가 된 기사는 “이학수 (삼성그룹) 부회장 권력, 너무 비대해졌다“는 제목으로 삼성그룹의 ‘2인자’인 이학수 부회장(전 전략기획실장)이 계열사 사장단 인사에 지나치게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이에 대해 반발하는 목소리가 삼성 내부에서 흘러나온다는 내용을 담았다.
기자들은 이 사건이 금 사장이 삼성의 압력에 굴복해 편집권의 독립을 훼손한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기자들은 사장이 아무리 편집인을 겸직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편집국의 총책임자인 편집국장의 동의 없이 한밤중에 기사를 들어낸 것은 편집권 침해라고 받아들였다. 사건이 벌어진 직후 항의 표시로 사표를 낸 이윤삼 편집국장의 사표가 수리됐다.
에서 편집권을 포함한 편집국 운영을 둘러싼 문제는 이미 지난해에도 한 차례 문제가 돼 홍역을 치렀다. 팀제로 조직운영을 바꾸려는 사장과 편집국이 대립했다. 당시 퇴진 요구에 부닥친 금 사장은 ‘ 정상화를 위한 확인서’를 통해 편집권을 포함한 편집국 운영을 문서로 보장했다. 금 사장은 편집권에 대해 “편집기획 내용이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회사에 손실을 끼칠 가능성이 있는 등의 특별한 경우가 아닌 한 편집권에 관한 국장의 권한을 존중한다”고 약속했다. 기자들은 이번 기사 삭제가 지난해 약속을 깬 것으로 본다.
기자들은 를 통해 문제의 본질이 “기사 하나가 게재되느냐 안 되느냐가 아니다. 삼성이라는 거대 자본이 독립 언론의 편집권에 영향을 미치는 메커니즘의 한 단면을 보여줬다는 데 심각성이 있다. 그 연결고리에는 지난 3년간 삼성을 대변하며 편집권 강탈에만 골몰해온 ‘삼성맨’ 금창태 사장이 있다”고 주장한다. 기자들은 금 사장이 여러 차례 편집국 기자나 간부들에게 “힘들 때 최후에 기댈 수 있는 데는 결국 삼성뿐이다. 그러니까 삼성에 대해서는 별것도 아닌 거 가지고 기사 좀 쓰지 말자”고 얘기했다고 증언했다. 지난해 삼성 특집을 다뤘을 때 편집국장과 몇몇 기자가 사장에게서 질책과 압력을 받았다고 얘기한다.
2003년 사장 임명 때부터 우려
물론 금 사장의 얘기는 다르다. 그는 “내가 거기() 있을 땐 거기 기자였지만 여기() 와선 여기 기자다. 왜 내가 거기(삼성) 눈치를 보냐? 여지껏 내가 온 뒤로 삼성 기사가 빠진 적이 있냐”고 말했다. 결정적으로 금 사장은 이번에 빠진 기사가 명예훼손의 우려가 있어서 내린 결정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기자들은 “애초 기사 삭제를 요구할 땐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없다. 삭제를 한 뒤 책임을 피하고 논리를 만들기 위해 그런 말을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어쨌든 그는 오랫동안 삼성과 특수관계였던 에 기자와 경영인으로서 수십 년을 일해왔다. 기자들은 일찍이 2003년 4월 그가 사장으로 임명되자 출신이라는 점을 우려해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의 한 기자는 편집권 침해에 대해 “편집인이 편집권 갖고 있다는 것을 우리도 존중하지만 그렇다고 편집인이 자의적으로 기사를 빼도 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편집인들이 얼마든지 기사를 삭제할 수 있을 것이다. 편집인의 권리도 편집국장을 통해서 행사돼야 한다”고 말했다. 아직 우리 언론학계에선 편집인의 권한이 어디까지인지 통일되고 명확한 해석이 나와 있지 않은 상태다. 금 사장은 편집권 침해 여부에 대한 문제를 지적한 등 3곳을 상대로 명예를 훼손했다며 7월6일 민·형사상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언론계에 편집권 침해 논란을 가져온 이번 사건은 본질적으로 언론과 자본의 관계를 재조명해볼 기회를 던져주고 있다. 고재열 기자는 “이번 사건은 광고주인 재벌로부터 독립되지 않은 한국 언론의 자화상을 보여준다. 청와대가 나섰더라면 이렇게 기사를 뺄 수 없었을 것이다. 삼성이니까 뺄 수 있었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사건이 뿐 아니라 언제든 모든 언론의 문제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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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지난 7월7일 기자들로부터 퇴진 요구를 받고 있는 금창태(68) 사장을 만났다. 금 사장은 “사장 겸 편집인으로서 법적으로 모든 편집 권한이 나에게 있다. 사내 편집국의 지휘·감독 권한도 있다”며 기사를 뺀 것이 정당한 편집권의 행사라고 말했다.
기자들은 정당한 편집권 행사가 아니라고 하는데.
언론사에서 어떻게 하다 보니 관행상 (편집장에게) 편집권을 위임하고 편집인은 단지 관리·감독만한다. 평소 문제가 없을 땐 그런 게 보장된다. 그러나 편집권이 잘못 행사되면 편집인이 편집장을 지휘·감독하게 돼 있다. 결국 이번 사태도 편집장과 편집인의 의견 통일이 안 돼 편집인으로서 직무상 권한을 행사했던 정당한 것이다.
지난해 편집국 기자들에게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회사에 손실을 끼칠 가능성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곤 편집권에 관한 편집국장의 권한을 존중한다고 약속했다.
빠진 기사가 명예를 훼손하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본 건가.
명예훼손이 분명했기 때문에 일단 보류했다. 취재 대상(삼성)이 강력히 사실이 아니라는 근거자료를 제시했다. 기사에 사진이 나오는 4~5명의 코멘트(언급)가 하나도 없었다. 기사가 사실이 아닌데 편집인으로서 내보낼 수 있나. 마감 시간이 다 돼 급하게 임원회의를 열어서 결정한 뒤 기사를 뺐다.
삼성 기사이기 때문에 누락된 것 아닌가.
에서 삼성 기사를 쓴 게 한두 건이 아니다. 이번 사건 외에 빠진 적이 있었나? 한 건도 없다. 그렇지 않은 근거로 얘기한다면 내가 할 말이 없을 것이다. 홍보실에선 기사가 나갈 때마다 잘 봐달라고 얘기한다. 그러나 그것을 압력으로 느낀 적은 없다. 지난해 통권 기사로 삼성을 다뤘지만 다 나갔다. 왜 이번만 삼성이기 때문에 뺐다고 보는가.
기사를 다시 내보낼 생각은.
기사를 못 나가게 하는 게 아니다. 검증해서 이의 제기를 못하도록 근거를 제시하고 당사자 반론을 듣고 하면 지금이라도 내보낼 수 있다.
기자들이 퇴진을 요구하는데.
적어도 사장이 탄핵당하려면 경영상 큰 손실이나 도덕적 큰 하자, 실정법 위반 정도가 있어야 한다. 물러나라는 건 납득이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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