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캡틴’의 100번째 A매치이자 고국에서의 마지막 경기인 멕시코전… 존경받는 에뜨랑제이자 축구계의 전설, 독일에서 한국과의 한판이 기대된다
▣ 파리 생드니 경기장=글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그가 경기장에 들어서자 관중은 ‘지주’(Zisou·지단의 애칭)를 외치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5월27일 오후 9시(현지 시각), 멕시코와 맞붙는 프랑스 대표팀을 기다리는 파리 생드니 경기장은 8만여 관중이 뿜어내는 열기로 이미 질식 직전이었다. 프랑스 18살 이하 청소년 리그 우승팀 스트라스부르 선수들이 ‘모두가 축구를 이야기 한다’(On parle tous football!)고 쓰인 유니폼을 입고 센터 서클 가운데에 자리잡자, 자국 국기를 앞세운 프랑스와 멕시코 선수들의 입장이 시작됐다. 이 경기는 지단의 100번째 A매치이자, 프랑스 대표팀 유니폼을 입은 지단의 고국 팬들에게 선보이는 고별 무대였다. 그는 경기가 끝난 뒤 “다음번에 생드니를 찾을 땐 선수가 아닌 팬의 입장이 되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상대에게 공을 7번이나 빼앗기다니…
로 알려진 일본 작가 시오노 나나미는 지단에 대해 “그는 로마 선봉 돌격 중대 지휘관인 1대대 제1백인대장으로 손색이 없는 사나이”라고 적었다. 로마 군대의 지휘자는 총사령관을 맡은 집정관이지만, 눈앞에 임박한 죽음을 무릅쓰고 적진으로 돌진하는 것은 ‘로마군의 등뼈’ 백인 대장들이었다.

그는 10년 동안 ‘뢰블레’ 유니폼을 입고 위기에 빠진 튀랑과 드사이를 구하기 위해 후방을 휘저었고, 비에라와 마켈렐레에게 공을 받아 앙리와 트레제게에게 공급했으며, 낭패에 빠진 동료들을 위해 이따금 직접 골을 터뜨리는 결정력을 보이기도 했다. 옆에 앉은 프랑스인 라마르노 마르셀은 기자를 보며 “그 지단이 오늘 은퇴한단 말이오”라고 소리쳤다.
장내 아나운서가 선수들의 이름을 크게 외치면 관중은 그의 성을 화답하는 방식으로 선수 소개가 이뤄졌다. “뉘메호 디즈, 지네딘!”(번호 10번, 지네딘) 아나운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기립한 8만 관중이 한목소리로 외쳤다. “지단!” 그리고 생드니는 ‘지주’를 외치는 프랑스 국기의 물결이었다. 관중은 서로 부둥켜안으며 10년 동안 변함없이 믿음직한 프랑스의 캡틴이 되어준 그들의 영웅에게 최대한의 경의를 표했다. 프랑스 국가 ‘라 마르세예즈’가 끝나자 경기장 북쪽에선 아디다스 마크와 FFF(프랑스 축구협회) 세 글자가 또렷이 새겨진 대형 프랑스팀 유니폼이 넘실대기 시작했다. 그 광경이 흡사 경기 시작 전 붉은 악마의 태극기 물결을 보는 것 같다. 경기장 북쪽과 남쪽에 설치된 LG의 대형 PDP 화면은 지단의 작은 동작 하나하나를 부지런히 뒤쫓고 있다. 선수 소개 때 야유를 받은 사람은 문지기 그레고리 쿠페와 갈등을 빚고 있는 감독 레이몽 도메네크뿐이었다.
그렇지만 ‘캡틴’의 경기 내용은 만족스럽지 못했다. 1972년생인 그는 이따금 보여준 날카로운 패스로 변함없는 클래스를 과시했지만, 상대에게 7번이나 공을 뺏기는 실수를 했다.
자주 되풀이돼온 얘기지만, 지단은 마르세유에서 알제리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난 ‘에트랑제’(이방인)로 프랑스 사람들이 가장 존경하는 프랑스인이 됐다. 그는 말수가 적은 수줍은 사람으로 이름났지만, 꼭 말해야 할 때 침묵하는 비겁한 사람은 아니었다. 2005년 말 프랑스에서 이주자들의 집단 저항이 벌어졌을 때, 지단은 “그들의 행동(방화와 파괴)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충분히 이해한다”고 했고, 2000년 프랑스 대선에서 극우파 르펜이 본선에 오르자 “나는 프랑스인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럽지만 요즘 일어나는 일은 전혀 만족스럽지 않다”고 말했다. 지단의 왼쪽에 자리잡은 프랑스의 젊은 피 플로랑 말루다(1980년생)가 지친 캡틴을 위해 자주 중앙으로 침투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캡틴은 후반 6분 비카슈 도라소와 교체됐다.
멕시코 관객들, 경기전부터 취하다
지단의 부진에도 프랑스는 강팀이었다. 파트리크 비에라(유벤투스)와 클로드 마켈렐레(첼시)가 지킨 중원은 멕시코 공격수들의 돌파를 허용하지 않았다. 송종국·조원희와 마주치게 되는 왼쪽 윙백 에리크 아비달(올랭피크 리옹)과 미드필더 플로랑 말루다(올랭피크 리옹)의 왼쪽 돌파도 인상적이었고, 이영표와 맞서게 되는 오른쪽 윙백 사뇰의 움직임도 좋았다. 그렇지만 티에리 앙리(아스날)가 빠진 프랑스 투톱 다비드 트레제게(유벤투스)와 지브릴 시세(리버풀)는 이렇다 할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이날 부진에도 프랑스 사람들의 믿음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프랑스인 지라드 기는 50대임에도 얼굴에 프랑스 3색기를 그려놓았다. 그는 “한국은 만만치 않은 상대지만, 여전히 승리는 우리 것”이라며 웃었다. “한국은 2002년 이후 성장세에 있다. 일본보다 훨씬 잘하는 것 같다. 그렇지만 우리에게는 지단이 있고, 앙리나 리베리 같은 좋은 선수들이 있다.”
멕시코인들에게도 이날은 축제였다. 월드컵을 위해 지구 반대쪽에서 몰려온 멕시코인들은 경기가 시작되기 전부터 생수통에 프랑스산 와인을 부어놓고 취해 있었다. 알레한드로 산체스는 “이 경기를 위해 어제 뉴욕에서 출발해 오늘 파리에 도착했다”며 “오늘은 무조건 멕시코가 2-0으로 이긴다”고 말했다. 파리 2대학에서 국제관계학을 공부하는 후안 카를로스는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때 한국팀을 상대로 3-1 승리를 거둔 멕시코팀 얘기를 꺼내며 “그때 에르난데스는 정말 훌륭한 선수였다. 그렇지만 지금 팀도 뛰어나다”고 말했다. 그는 멕시코의 16강 진출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아무리 뛰어난 선수라도 결코 시간을 이길 순 없다. 지단이 A매치에 첫 출장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12년 전인 1994년 8월17일 보르도에서 열린 체코와의 경기였다. 유리 조르가에프를 대신해 그라운드에 나선 지단은 0-2로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두 골을 연달아 넣어 팀을 수렁에서 구해냈다. 1998년에는 축구 천재 호나우두가 버티고 있는 ‘무적’ 브라질을 맞아 머리로만 연거푸 두 골을 넣어 프랑스에 월드컵을 안겼고, 6년 뒤 포르투갈에서 열린 ‘유로 2004’ 개막전에서는 종료 2분 전까지 잉글랜드에 0-1로 끌려가던 프랑스를 위해 다시 한 번 2골을 몰아넣어 승패를 뒤집었다. 그땐 지금과 달리 머리숱도 많았다.
그의 활약은 한국에겐 재앙이 되리니…
후반전 중간을 넘어가자 경기는 소강 상태에서 저물어갔다. 비에라와 튀랑이 그라운드를 떠나고 마켈렐레가 그라운드를 떠난 뒤 후반 6분 ‘캡틴’도 그라운드를 떠났다. 선배들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말로다는 전보다 더 많이 뛰었고, 지단의 후계자로 평가되는 프랑크 리베리(마르세유)가 관중의 환호에 답하듯 멕시코 수비진을 휘저으며 빠르게 돌파해나갔다. 영국의 축구 칼럼리스트 롭 휴스는 경기가 끝난 뒤 “우리는 지단을 통해 성실하고 훌륭한 선수는 언젠가는 우승한다는 진리를 몸으로 느꼈다”고 썼다. 지단의 승리가 한국에는 재앙이 되겠지만, 전세계 축구팬들은 살아 있는 축구계의 전설로 남을 그가 독일 땅에서 다시 한 번 힘찬 포효를 보여주길 두 손 모아 간절히 기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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