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darkblue"> 1999년 8월 국기·국가법 통과하자 히노마루·기미가요 강제 정책 확산
징계를 감수하고 불복종 전개한 교사들, 소송과 반대 시위로 봄을 맞다</font>
▣ 도쿄=황자혜 전문위원 jahyeh@hanmail.net
일제 침략전쟁의 상징인 히노마루와 기미가요는 1947년 평화헌법의 새 틀 안에도 완전 매장되지 못한 채, 공식 행사 때마다 얼굴을 내밀었다. 교사들의 반대투쟁은 그곳에 항상 함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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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들의 첫 시도는 낡은 군국주의의 상징물을 새것으로 대체하자는 운동이었다. 패전 직후 미군 점령하에서 일본교원노조(일교조)는 침략전쟁과 일왕을 상징하는 기미가요가 아닌 신국민가로서 ‘녹색의 산하’를 제정하려고 했다. 그러나 1940년대 말부터 한반도 상황이 급변하자 미연합군 사령부는 히노마루의 자유로운 사용을 허가한다.
1998년을 흔든 졸업·입학식 보이콧 사건
1950년대 들어 문부성 통달과 개정학습지도요령에 따라 학교 현장에 히노마루와 기미가요가 등장했다. 아픈 과거의 역사가 채 가시지 않은 교사들은 반대 투쟁을 전개했다. 1965년 오사카부립고교의 히노마루 게양 반대사건에 이어 1974년 가고시마현의 한 중학교 교장이 히노마루·기미가요 문제로 자살하는 등 저항의 물결이 거세졌다.
그러나 다나카 총리의 법제화 발언으로 학습지도요령안에서는 1977년부터 이미 히노마루를 ‘국기’라고 표기하기 시작했다. 반대 입장을 고수하던 일교조도 돌연 1995년부터 보수화 경향으로 돌아서 관련 투쟁을 철회한다고 선언하고 문부성과의 파트너십을 주창했다.
그 유명한 사이타마현립 도코로자와고교의 ‘졸업·입학식 보이콧 사건’이 일어난 것은 1998년이다.
“도코로자와고교는 학생회가 자치적으로 입학식과 졸업식을 운영하는 것으로 유명했지요. 학생들이 사회자를 직접 결정하는 등 프로그램을 주관했기 때문에 당연히 히노마루·기미가요는 설 자리가 없었습니다.”
사립학교 교원노조연맹 사이타마현 부위원장인 후지와라 사토시(46)는 교육위원회가 이런 학교 자치행사를 먼저 건드렸다고 말했다. 사이타마현 교육위는 인사권을 발동해 교장을 교체하고, 노조 가입 교사들을 하나둘 전근시켰다. 그 뒤 새 교장은 “학생 자치행사로서 치르는 졸업식은 인정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 처음엔 직원회의에서, 다음은 학생회에서 교장에게 면담을 요청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다. 교장이 면담에 응한 건 이 문제가 텔레비전을 비롯해 언론에 보도되고 난 이후였다.
그러나 도코로자와고교의 졸업식은 교장이 정한 식순에 따라 강행됐다. 그리고 아주 형식적으로 학생회가 주최하는 ‘축하회’가 히노마루·기미가요를 강제하는 졸업식과 별도로 진행됐다. 당시 학생회는 ‘교장 졸업식’에 참석하지 말 것을 호소했고 졸업식과 입학식은 반쪽 행사가 됐다. 후지와라는 “국기·국가법 제정 직전까지만 해도 도쿄와 사이타마현의 전체 초·중학교의 약 80%, 고등학교는 70%가 기미가요를 불렀다”며 “현재는 거의 100%에 가깝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자치의 기운은 쇠했고, 도코로자와고교의 2000년 입학식은 ‘전원 참여 전원 기립’의 장면을 연출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1999년 8월 국기·국가법이 국회를 통과한다. 히노마루를 국기로, 기미가요를 국가로 정식 채택한 것이다. 국기·국가의 법제화에 대한 국민적 토의가 필요하다는 공산당의 의견도 제시됐으나, 소수 의견이었을 뿐이다.
국기·국가법은 곧바로 이시하라 도쿄도지사를 위시한 도쿄 도교육위원회(도교위)에 정치적 후광으로 작용했다. 도교위는 호시탐탐 ‘비애국적’ 교사들을 노리기 시작했다. 군국주의 일본에 대한 노스탤지어를 풍기는 국기·국가법의 망토를 두르고, 2003년 10월23일 히노마루·기미가요를 ‘직무명령’(10·23 통달)으로 강제한다.
통달에 저항한 교사에게는 곧장 ‘처분’이 내려졌다. 처분 내용은 경고, 급료 삭감, 퇴직 후 재임용이나 강사 임용 취소 등이다. 제일 가벼운 경고는 관리직의 잔소리를 듣는 것으로 그쳤지만, 히노마루·기미가요 불복의 경우는 각 학기 보너스에서 30만~40만원이 삭감됐다. 급료에서 근무수당이 10% 삭감되고, 1년에 한 번 있는 승급 급여 시기가 3개월 더 연장됐다.
‘히노마루·기미가요 부당 처분 철회를 요구하는 피처분자의 모임’의 곤도 도오루(57) 사무국장은 “2003년 10월23일부터 2005년 4월까지 졸업·입학식에서 직무명령에 복종하지 않아 처분된 교사는 모두 311명”이라고 밝혔다. 징계 교사 가운데 90%가 고등학교 교사였고, 고교 학급회의 시간에 학생에게 양심의 자유를 언급하는 등 ‘부적절한 지도’를 했다며 ‘엄중주의’ ‘지도’ 등 사실상의 징계를 받은 교사가 72명이었다.
초·중학교에선 거부조차 못해
입학식의 순서는 대략 이렇다. 신입생이 입학식장에 입장하면 모두 일어나 박수를 친다. 그다음 모두가 기미가요를 부른다. 초등학교나 중학교의 입학·졸업식장은 이렇게 거부할 겨를조차, 거부하는 교사·학생조차 드물었다. 그러나 상황이 다른 고등학교에선 경관이 동원되고 도교위 간부가 배치되는 것은 물론, 관리직 교원이 졸업식 예행연습 때 “소리가 작다”며 세 차례나 학생에게 기미가요를 제창시키는 게 21세기 일본 교육의 현주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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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는 전쟁을 일으키지 않겠다는 ‘평화헌법’이 군국주의적 개악의 벼랑에서 위태해만 보이고, 우익 정치인들이 히노마루·기미가요를 거부하는 사람을 ‘비국민’(매국노)이라 공공연하게 비난하는 일본 정치의 구태의연한 속살. 학교 현장에선 강제를 거부하면 ‘비애국’ 교사로 취급되는 현실. 국가주의에 대해 ‘앉아서’ 저항하는 교사들의 몸짓은 3~4월 입학·졸업식에 회오리로 몰아칠 것이다. 이변이 없는 한 이시하라와 도교위 사단의 ‘애국적 처분’도 강행될 것이다.
하지만 민주교육을 갈망해온 교사들의 불복종은 계속되고 있다. 징계 교사들은 ‘국가 제창 의무 비존재 확인소송(예방소송)’으로 싸우고 있다. 교사들의 투쟁은 3월31일 ‘히노마루·기미가요 부당 처분에 반대하는 전국교사 총궐기’와 국회 앞 시위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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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성 아니면 처벌’의 전통</font>
▣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기미가요는 일왕의 만세에 이르는 치세를 찬양한 노래다. 원래 백제 출신 학자 기노쓰라유키가 905년에 편찬한 <고금화가(和歌)집>에 실려 있던 시다. 가사는 길지 않다. “임금의 세상이, 천 대까지 팔천 대까지, 작은 돌이 큰 바위로까지 되어, 그 바위가 이끼가 낄 때까지 계속되도록.”
히노마루(일장기)는 태양을 형상화했다. 태양 둘레에 이글거리는 햇살을 드러낸 욱일승천기는 2차 대전 당시 군국주의의 진두에 섰다.
1999년 논란 속에 제정된 국기·국가법은 ‘히노마루를 국기로 한다’ ‘기미가요를 국가로 한다’는 두 조항으로 이뤄져 있다. 단 국기·국가에 대한 존중 의무는 명시되지 않았다. 하지만 각 학교에서는 관행적으로 히노마루를 게양할 때나 기미가요를 제창할 때 자리에서 일어나 ‘예의’를 표시한다. 도쿄 도교위의 10·23 통달은 ‘예의’를 지키지 않는 자를 징계하겠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국기 경례를 거부하는 사람들은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 1970년대 초반 기독교계를 중심으로 수많은 학생과 시민들이 퇴학당하거나 징역살이를 한 데 이어 2003년 박준규(17)군이 경기 의정부 영석고에서 입학을 거부당하는 데까지 ‘충성 아니면 처벌’의 전통이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과거 제국주의와 식민지로 각기 상반된 경험을 했지만, 국기 경례(맹세) 거부권이 보장되지 않는 건 일본이나 한국이나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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