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의 정치적 결정속에 ‘SKT와 KTF의 진흙탕 싸움’ 변질된 월드컵 응원
한쪽에 가담했다가 이용권 잃어버린 붉은악마도 순수성과 상징성 위협 위기
▣홍성태 상지대 교수
붉은 악마가 서울광장에서 응원을 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서울시가 서울광장의 이용권을 ‘SKT 컨소시엄’에 팔아버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서울광장의 이용권은 대체 무엇이고, 서울시는 그것을 왜 붉은 악마에게 거저 주지 않고 SKT 컨소시엄에 돈을 받고 팔았는가? 문제는 다소 복잡하다.
‘원형잔디광장’의 문화적 만행
서울광장은 서울시청 앞 광장의 공식 명칭이다. 2002년 6월에 이곳은 차들만 다닐 수 있는 ‘교통광장’이었다. 그런데 2002년 7월 이명박 시장이 취임한 뒤에 서울시는 이곳을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보행광장’으로 바꾸기로 했다. 2002년 6월 수많은 사람이 이곳에 모여 ‘붉은 악마’가 되었던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방법을 잘 알고 있는 이명박 시장은 이곳을 보행광장으로 만들어 서울시가 변했다는 것을 과시하고 싶어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그가 추진한 변화는 대단히 문제가 많은 변화였다. 서울광장은 신개발주의와 짝을 이룬 신권위주의의 사례가 되었다.
서울광장은 2003년 1월 설계공모 당선작이 발표되고, 2004년 5월1일에 지금의 모습으로 완공됐다. 그러나 완공된 서울광장은 서현 교수의 설계공모 당선작과는 전혀 무관한 것이었다. 이명박 시장의 서울시는 기껏 설계공모를 해놓고는 그 당선작을 쓰레기통에 처박는 무지막지한 문화적 만행을 저질렀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서울시가 만든 것이 지금의 원형 잔디광장이다. 더 큰 문제는 서울시가 조례를 제정해서 이 광장의 자유로운 이용을 철저히 막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광장을 서울시의 잔디마당으로 만들고 그 이용을 강력히 통제하는 서울시의 반민주적·반문화적인 행정으로 말미암아, 이제는 2002년 6월의 붉은 악마 현상이나 2003년 6월의 ‘효순·미선 1주기’ 행사 등을 모두 재연하기 어렵게 되었다.
서울시는 서울광장의 이용을 정치적으로 결정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런 시민사회의 비판을 피하기 위해 서울시는 공평한 접근권을 허용한다는 명분으로 2006년 월드컵 때 서울광장을 이용할 수 있는 권리를 공개입찰에 붙였다. SKT 컨소시엄(SKT·한국방송·SBS·조선일보·동아일보·서울신문), KTF 컨소시엄(KTF·붉은 악마·현대자동차), 그리고 문화방송 등 세 주체가 나섰다. 심사를 맡은 서울문화재단은 ‘공정한 심사’를 통해 오는 6월 독일월드컵 때 서울광장과 청계광장에서 응원을 할 수 있는 주체로 ‘SKT 컨소시엄’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두 광장의 사용료는 하루 521만원이다(서울광장 472만원).
이번 결정으로 순수한 열광의 뒤꼍에서 더 많은 이윤을 노린 치열한 ‘진흙탕 싸움’이 펼쳐지고 있다는 사실이 다시금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월드컵 마케팅’을 둘러싼 기업들, 특히 SKT와 KTF의 경쟁이 바로 그것이다. 기업들에게는 붉은 악마의 열광도 한낱 돈벌이 수단일 수 있다. SKT와 윤도현은 애국가도 그렇게 만들어버렸다. 사실 월드컵은 이 세상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는 운동대회이다. 그러니 더 많은 이윤을 추구해야 하는 자본주의의 기업들로서는 당연히 월드컵을 돈벌이 기회로 활용하려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붉은 악마와 같은 보기 드문 자발적 문화가 큰 상처를 입을 수 있다는 것이다.
붉은 악마는 축구 국가대표의 공식 응원단을 가리킨다. 그러나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치르면서 붉은 악마는 축구에 대한 사람들의 순수한 열광을 상징하는 문화적 아이콘이 되었다. 국가주의나 민족주의의 그늘이 드리워져 있기도 하지만, 그래도 붉은 악마의 열광은 순수한 축제의 그것에 가깝다. 이 점에서 붉은 악마는 그 자체로 또 다른 순수한 문화적 열광의 대상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운영 경비를 마련하는 방식에서 심각한 문제가 다시금 드러났다. 2002년 SKT 후원, 2006년 KTF 후원으로 붉은 악마의 순수성이 크게 훼손돼버린 것이다.
순수한 후원 조직했어야 했다기업들의 경쟁이 본질인 상황에서 서울시가 ‘공정한 심사’를 통해 높은 점수를 받은 주체에게 광장 이용권을 주는 것은 대단히 공정해 보인다. 그러나 서울광장의 공공성과 붉은 악마의 상징성을 고려하면, 서울시의 형식적 공정성은 대단히 무책임한 것이다. ‘문화 시장’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이명박 시장의 ‘희망’을 생각하면, 이 무책임성의 문제는 더욱더 크게 느껴진다. 붉은 악마가 운영의 문제를 지녔다고 해도 붉은 악마를 일반 기업과 같은 존재로 다루는 것은 잘못이다. 서울시가 월드컵과 관련한 서울광장과 붉은 악마의 세계적 의미에 대해 조금이라도 제대로 알고 있었다면, ‘월드컵 마케팅’에 혈안이 된 기업들의 요구가 아무리 거세도 이런 식으로 서울광장 이용권을 팔아버리지는 못했을 것이다.
서울시와 붉은 악마가 함께 힘을 모아 기업들의 순수한 후원을 조직했어야 하지 않을까? ‘월드컵 마케팅’에 눈먼 대기업들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서울시나 붉은 악마의 행태도 대단히 실망스럽다. 특히 붉은 악마는 이번 결정을 중대한 ‘사건’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이번 ‘컨소시엄’에서처럼 스스로 하나의 기업과 비슷한 존재가 되려고 한다면, 붉은 악마의 순수성과 상징성은 안개처럼 사라지고 말 것이다. 순수한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로 운영되는 붉은 악마가 아니라면, 붉은 악마의 사회적 의미는 사라지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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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축제는 자본이 촘촘히 짜놓은 일상에서의 일탈이자 익숙했던 것들에 대한 전복이다. 그러나 그 틈새를 비집고 자본의 이윤 논리와 국가의 정치 논리가 들어온다. 이는 사실 2002년부터 암시됐는데, 기억해보라. 월드컵 거리응원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커지자, 광화문 주변의 신문사와 대기업은 재빨리 응원도구를 제공하는 기민함을 보였다.
당시 2천만 장이 팔리며 노점상의 호주머니를 두둑하게 해줬던 ‘비더레즈’(Be the Reds) 티셔츠는, 이제 붉은 악마와 정식 계약을 맺은 한 의류업체의 1만9900원짜리 정품 티셔츠로 바뀌게 될 전망이다. 최근 선풍을 일으키고 있는 ‘꼭짓점 댄스’에도 기업들은 눈독을 들이고 있다. 꼭짓점 댄스를 ‘월드컵 공식 응원 춤’(물론 누구도 공식 춤을 지정할 권한도 없고, 그런 제도도 없다)으로 지정하자는 네티즌 청원 서명자가 6만 명에 이르렀는데, 월드컵 거리응원 때 이 춤이 거리응원의 핵으로 등장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주)다음커뮤니케이션은 ‘월드컵 06 김수로 꼭지점 댄스 공식카페’를 대신해 “3월1일 앙골라를 상대로 한 한국 국가대표 평가전을 꼭짓점 댄스로 응원한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언론사에 뿌리기도 했다. 이날 행사에 들어간 응원복 1천 벌과 현수막, 음향기기 등도 이 회사가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비슷한 규모의 꼭짓점 댄스 카페는 싸이월드에도 있는데, 자칫 월드컵을 앞두고 기업 간 대리전으로 번질지도 모를 일이다.
대대적인 월드컵 마케팅이 축제 참여자와 자본의 윈윈게임이 될지, 혹은 축제의 순수성을 떨어뜨리는 트로이의 목마가 될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기업이 거둬가는 경제 효과는 생각보다 크다. 재정경제부의 2002 경제백서에 따르면, 월드컵으로 인해 기업 이미지를 제고한 마케팅 효과는 14조7600억원에 이르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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