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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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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빠빠’를 아십니까

등록 2006-02-08 00:00 수정 2020-05-03 04:24

“황우석을 믿는다는 쪽을 믿는다”까지 등장할 정도로 식지않는 인터넷 공방
딴지일보 김어준 총수도 의심 반 가설 반의 ‘음모는 있다’ 줄기차게 주장

▣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

‘황빠’ ‘황까’ ‘황빠빠’…. 황우석 사단의 줄기세포 연구 문제가 검찰 수사로 넘어간 지 오래됐지만 인터넷상에서는 여전히 난리다. 호감·비호감 공방을 넘어서 ‘그래도 황우석을 믿는다’는 쪽(황빠)과, ‘그렇게 속였는데 이젠 무슨 말을 해도 못 믿겠다’는 쪽(황까), ‘황우석을 믿는다는 쪽을 믿는다’는 쪽(황빠빠)까지 가지치기하듯 세력이 나뉜다. 지난 1월10일 서울대 조사위 발표가 “애초부터 줄기세포는 없었다”는 쪽으로 무게가 실리면서 온갖 시나리오의 ‘음모론’도 등장했다. 말을 아끼던 문화방송 <pd>이 2월2일 시청자 게시판에 공지문을 띄워 “검찰 수사를 지켜보고 기다려주는 것도 미덕”이라며 호소하고 나올 정도다.

음모론 주요 뼈대는 “바꿔치기당했다”

〈PD수첩〉은 그동안 방송에 대한 몇 가지 의문점에 답변해왔다. 노성일 이사장을 인터뷰한 날짜가 틀리다거나 난자 매매자 한 명이 옷을 바꿔입고 두 명처럼 나왔다는 식의 ‘실수’와 ‘오해’에서 빚어진 일들은 곧바로 해명됐다. 하지만 최근 줄기차게 “제3의 제보자가 있다” “줄기세포 전문가로 인터뷰한 사람이 제보자다” “그가 서울대 문신용 교수다”는 식의 억측들이 난무하자 <pd>도 “줄기세포 전문가는 제보자가 아니며, 문 교수를 인터뷰한 적도 없다’는 공지까지 띄운 것이다.
인터넷에서 등장하고 있는 ‘음모론’의 큰 뼈대는 황우석 교수 모르게 어느 단계에서 환자 맞춤형 줄기세포가 미즈메디병원의 수정란 줄기세포로 ‘바꿔치기당했다’는 것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서울대 조사위도 인정했듯이) 황 교수팀이 배반포 단계까지는 해냈는데, 그 다음 어느 단계부터 미즈메디병원의 수정란 세포와 ‘섞어심기돼 배양됐다’는 뜻이다. 이를 황 교수가 알았느냐 몰랐느냐를 두고 ‘음모가 있다’고 믿는 쪽은 몰랐을 거라고 하고, ‘자작극이거나 적어도 공모극’이라고 여기는 쪽은 황 교수가 당연히 알았을 거라고 본다.


이 사안이 검찰 수사로 넘어가면서 여론은 대체로 황 교수가 어느 시점부터 알고 이를 숨겨왔을 거라는 쪽으로 향하고 있다. 왜 그랬는지에 대한 여러 분석도 나왔다. 황 교수가 마지막 기자회견에서 “누군가 바꿔치기한 사람이 있다면 미즈메디병원과 서울대 연구실을 오갈 수 있는 사람일 테고, 그 사람에 대해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며 자신은 몰랐다는 뜻을 거듭 피력했지만, 그는 이미 논문 뻥튀기 조작만으로도 신뢰를 상실한 뒤였다. 그러나 ‘음모가 있다’는 쪽은 황 교수의 이런 주장을 옹호하는 각종 정황 증거를 내놓는다. 이들의 주장은 이른바 ‘황빠’들의 맹목적인 ‘황우석 살리기’와는 차원이 달라 눈길을 끈다. 내놓고 ‘음모는 있다’고 주장하는 이 가운데 한 사람은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이다.
그는 1월17일 <딴지일보>에 올린 기사 ‘음모는, 있다(1)’에서 “이번 사건은 두 개이다. 하나는 ‘논문 조작’이고 다른 하나는 ‘줄기세포의 교체’”라고 말했다. 그는 후자가 있었기에 전자가 가능했다고 추론한다. 또 “황우석이 있지도 않은 줄기세포로 논문을 조작했다고 하기에는 앞뒤가 맞지 않는 게 너무 많다”면서 “그가 논문 발표 뒤 <사이언스>에 줄기세포주를 세 개로 최종 수정할 때까지는 적어도 줄기세포 2, 3번에 대해서는 확신했으리라 본다”고 말했다.

“왜 사기죄에 살인죄까지 덮어씌우나”

그 이유로 황 교수팀이 줄기세포를 국내 다른 기관과 미국 뉴욕의 메모리얼 슬로언-캐터링 암센터에 분양했다는 것을 꼽는다. 미즈메디의 수정란 줄기세포인 줄 알았다면 주기적인 DNA 검사를 통해 뻔히 논문에 실린 체세포 DNA와 다른 게 들통날 텐데 미쳤다고 분양을 시켰겠느냐는 것이다. 그는 이어 황 교수팀이 애초부터 의도를 갖고 바꿔치기했다면 굳이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장성분소에 DNA 검사를 보낼 때 2, 3번만 줄기세포와 체세포 시료를 한 쌍씩 보내고, 4번 이하는 체세포만 둘로 나눠 보냈겠느냐고 덧붙였다. 그의 주장에 앞서 브릭(BRIC) 게시판 등에 오른 ‘진짜 드레퓌스는 누구인가!’란 제목의 글도 외부 연구기관 분양을 주요 근거로 황 교수가 논문 발표 뒤까지 줄기세포가 바꿔치기된 것을 몰랐으리라고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황 교수가 〈PD수첩〉팀의 검증 요구에 계속 발을 빼다가, <pd>팀이 국내 두 곳에 분양한 것을 검사하자고 하자 (실험을 하지 못하게) 회수해버리고, 이어 <pd>팀이 그렇다면 뉴욕 암센터에 분양한 것이라도 검사하자고 나서자 뒤늦게 당시 프랑스에 머무는 중에도 부랴부랴 검사 샘플을 제공하겠다고 나선 것은 “2, 3번이 있다고 확신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무리라는 것을 방증한다. 확신했다면 <pd>의 검증 요구에 선선히 응했어야 옳기 때문이다. 또 서울대 조사위 보고서에도 나와 있듯이,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분소에 의뢰했던 세포주 DNA 지문 분석 가운데 4번부터 12번까지야 같은 체세포를 둘로 쪼개 보낸 것이니 당연히 일치하겠지만 2, 3번의 지문 분석이 어떤 경로로 체세포 지문과 동일하게 나타났는지는 미궁이다. “관련자들의 진술이 엇갈리는” 탓이다.
이런 반론에 대해 김어준 총수는 “‘황우석 사이드’에서 보면면 충분히 해석이 가능하다”고 반박한다. 〈PD수첩〉팀의 검사에 선선히 응하지 않은 것은 취재 의도나 제보 내용을 파악하고 ‘혹시 모르니’ 일단 먼저 검사해보려고 시간을 번 것일 수 있고, 국과수 분소에 2, 3번의 줄기세포와 체세포 시료를 한 쌍씩 보낸 것은 적어도 그때(논문 제출 전인 2월 시점)까지는 “연구 결과를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사기를 쳤다면 사기죄만 단죄해야지 지금의 몰아치기 여론은 (황 교수에게) 살인죄까지 덮어씌우는 양상이므로 이를 의심해보자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황우석에 대한 열광 속에 성찰과 비판 의식이 결여됐다면, 지금 황우석에게 모든 것을 덮어씌우는 분위기 역시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충격이 너무 컸더란 말이냐

많은 사람들이 황 교수의 거짓말이 거짓말을 부르는 행태를 지켜본 마당에, 이런 정도의 정황 증거로 황 교수가 전혀 몰랐다는 말을 믿지 못한다. 또 연구에 얽힌 이들이 100% 결백하다고도 여기지 않는다. 지금까지 드러난 바로는 황 교수가 만들었다는 줄기세포는 어디에도 흔적조차 없기 때문이다. 가장 그럴듯한 추론 가운데 하나는 “배양이 잘 되지 않아 줄기세포와 수정란 세포를 섞어서 배양해봤을 수 있다”는 정도다. 그 결과 줄기세포는 모두 죽고 수정란 세포만 살았으리란 것이다. 이 정도는 연구원들이 성과를 내기 위해 이런저런 실험을 해보는 가운데 가능한 경우의 수다. 이를 황 교수가 지시했는지, 지시하지는 않았지만 알고는 있었는지, 끝까지 몰랐는지는 ‘섞어심기’ 당사자의 ‘실토’나 객관적인 ‘물증’ 없이는 확인할 길이 없다.


드러난 사실에 대해 상반된 견해를 수용하고 여러 각도에서 의심해보는 것은 ‘회의론’에 속한다. 하지만 가설을 세우고 시나리오를 짜맞추는 것은 ‘음모론’으로 넘어간다. 황우석 교수가 ‘찬양과 경배’를 받을 때 우리 사회에 절실히 필요했던 덕목은 ‘회의’였다. 과학계와 언론계에 이런 회의주의자들이 있어야 옳았다. 하지만 검찰 수사 결과를 지켜봐야 할 지금 단계에서 제기되는 ‘음모’는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누군가 의도적으로 줄기세포를 바꿔치기했고 이를 전략적으로 〈PD수첩〉에 제보했고 그 모든 이유가 ‘황우석 죽이기’를 위한 것인데, 황 교수와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이는 누구누구이므로 그들의 주도적인 ‘범행’이 의심된다는 것은 상식적인 회의 수준을 넘어선다. 논문 조작의 진실이 만천하에 드러나고도 여러 각도의 음모론이 횡행하는 것은 황우석 사태의 충격이 그만큼 컸기 때문일까? 황우석도 우리를 속였는데 다른 관련자들도 우리를 충분히 속일 수 있다는 일종의 좌절 혹은 자기 합리화를 위한 안간힘 같은. 아니면 지나친 열광에 대한 지나친 반성일까?</pd></pd></pd></pd></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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