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자 없이 끝난 9·18 총선, 슈뢰더는 누구와 손잡을 것인가
좌우 대연정 가능성이 가장 높지만 장애물 많아 재선거로 갈 수도
▣ 베를린= 강정수 전문위원 jskang@gmx.net
지난 9월18일 독일 총선이 치러졌다. 그 뒤 일주일이 지나도록 향후 4년간 누가 독일을 이끌어갈 것인지는 안개에 쌓인 채 수많은 질문들만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다.
누가 과연 이번 총선의 승자인가? 야당에서 제1당으로 올라선 보수 ‘기독민주·기독사회당 연합’(기민·기사당)일까? 기민·기사당에 최고 20%까지 뒤처졌던 지지율을 극적으로 1% 미만까지 끌어올린 집권 사회민주당(사민당)일까? 혹은 8.7%의 지지율을 획득한 신생 ‘좌파당’인가? 좌파당은 사민당의 우경화를 비판하면서 이탈한 좌파 세력과 노조 지도자들이 구동독 공산당 계열의 민주사회주의당(민사당)과 선거연합 형식으로 탄생한 정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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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민·기사당이 장악한 연방 상원
의원내각제를 취하는 독일의 정치제도에서 총선은 결국 정부 수반을 결정하게 된다. 그렇다면 누가 독일 정부를 대표할 총리가 될 것인가? 대다수의 독일인과 언론들이 독일 최초 여성 총리가 될 것으로 예측했던 기민당의 메르켈 당수가 낙제를 겨우 면한 총선 성적표에도 불구하고 진보적 녹색당을 끌어안음으로써 정권 교체를 이뤄낼 수 있을까? 아니면 원내 제2당이 된 현 집권 사민당 슈뢰더 총리가 자유주의 정당 자유민주당(자민당)을 설득해 정권 재창출에 성공할 것인가? 현 집권당인 사민당, 녹색당이 좌파당과 연합정부를 구성할 경우 총 51%의 지지로 원내 과반수 이상의 의석을 획득할 수 있음에도 왜 이들은 보수 정당들에 러브콜을 보내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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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스러운 독일의 현 정국을 이해하는 첫걸음은 왜 총선이 1년 앞당겨 진행됐는지를 들여다보는 것이다. 지난 5월 한 주정부 선거에서 사민당이 패배하자 슈뢰더 총리는 의회 해산과 재선거를 요구했다. 이는 독일 언론과 사민당 내부에서조차 ‘자살 행위’로 평가받았다. 당시 집권 사민당의 지지율이 바닥을 기면서, 야당 기민·기사당의 지지율 차이가 무려 20%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물론 슈뢰더 총리가 단지 지지율을 만회하기 위해 이러한 어처구니없는 모험수를 둔 것은 아니었다. 이는 야당 기민·기사당의 동의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껍데기 총리’ 처지에서 기인한다. 연방국가인 독일에서 각 주정부 대표가 모인 연방상원은 연방의회와 연방정부를 견제하는 강력한 기구다. 연방의회를 통과한 법률의 70%가량이 이곳 상원의 인준을 필요로 한다. 상원의 동의 없이는 연방 정부나 의회는 힘을 가질 수 없는 셈이다. 문제는 기민·기사당이 현재 연방상원을 장악하고 있고, 5월 사민당의 주정부 선거 패배는 이러한 힘의 역학 관계를 더욱 공고히 했다는 데 있다. 이 상황을 정면 돌파하고자 슈뢰더 총리는 재선거를 통해 국민적 재신임을 묻는 정치적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재신임을 받을 경우 국민 여론을 무기로 연방 상원을 장악한 기민·기사당에 압력을 가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그러나 선거를 한달여 앞둔 시점까지도 각종 여론조사 결과들을 보면 기민·기사당과 자민당에 의한 정권 교체는 기정사실화된 듯했다. 언론들도 영국의 대처 총리에 이은 독일 여성 총리의 탄생을 부지런히 예고했다.
그런데 왜 사민당의 지지율은 바닥을 기게 되었을까. 사민당에 대한 독일 국민들의 차가운 시선이 사실상 이번 총선에서 기민·기사당이 예상 밖의 참담한 성적을 거둔 이유다. ‘어젠다 2010’으로 대표되는 집권 사민·녹색당의 경제·사회 개혁 프로그램은 ‘기업에 좋은 투자 환경, 노동자에게 더 많은 부담’으로 집약될 수 있다. 사회복지비의 부담 일부를 기업에서 노동자에게 재분배한 것이다. 물론 그 필요성과 시대적 절박성이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 여론조사에서도 독일 국민의 평균 70% 이상이 사회 시스템 개혁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문제는 국민들이 개혁 추진의 직접적 효과를 체감할 수 없다는 데 있다. 높은 실업률은 슈뢰더 정부의 갖은 노력에도 꿈쩍도 하지 않았고, 기업들이 해외로 공장을 이전하고 비용 절감을 위한 노동자 해고 소식들이 국민들의 불안감을 더해갔다. 독일은 유럽연합 국가 중 유일하게 지난 2년간 노동자의 실질임금이 줄어들었다. 독일 국민들은 일자리에 대한 불안감에 더해 실질가처분소득의 감소를 겪고 있는 것이다. 얇아진 국민들의 ‘돈 주머니’는 집권 슈뢰더 정부에 대한 지지 이탈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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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뢰더, 토론으로 메르켈을 누르다
한편 총선이 가까워지면서 기민·기사당의 선거 공약들이 점차 구체화돼갔다. 부가가치세 2% 인상안, 부자든 가난하든 모두가 25%의 세금을 내도록 하는 ‘조세단일화’안, 노동자 해고 조건 완화 방안, 원자력 발전소를 다시 허가하겠다는 에너지 정책, 유전자 연구 활성화를 골자로 하는 미래투자 방안 등이 주요 내용이다. 이러한 기민·기사당의 정책이 밝혀지자 여론은 동요하기 시작했다. 선거를 2주 앞둔 시점에서 슈뢰더 총리와 메르켈 기민당 총리후보간의 방송토론은 지지율 반전의 결정적 계기를 마련했다. ‘미디어 총리’라는 별칭을 가진 슈뢰더 총리는 “연설에는 강하고 토론에는 약하다”는 메르켈 후보를 맞아 여유 있는 한판승을 거두었다. “기민·기사당의 정책은 사회 불평등 그 자체”라는 사민당의 파상 공세가 효과를 보여, 마지막 2주간 사민당 지지율은 가파른 상승으로 이어졌다. 극적인 추격전이 펼쳐진 것이다. 지난 19일 오후 6시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되는 순간 기민·기사당은 예상치 못한 결과에 경악했다.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졌던 기민·기사당과 자민당의 의석 과반수 획득을 통한 정권 교체가 불가능해진 것이다.
선거가 끝나고도 정권 주체가 형성되지 않은 독특한 현 상황은 향후 독일 정국의 전망을 궁금하게 한다. 과반수 의석수에 기초한 차기 정부 구성을 놓고 여러 가지 조합들이 논의되고 있으며, 모든 정당간의 공식적인 대화가 시작됐다. 합종연횡의 시나리오는 다음과 같다. 1. 기민·기사당 + 자민당 + 녹색당 정부: 원내 1당을 차지한 기민·사민당에 정부 구성 대화를 이끌어나갈 1차 권한이 있다. 보수 정당들이 사민당보다 좌파 성향이 강한 녹색당과 함께 차기 정부를 구성하는 안이다. 그러나 이는 녹색당 일부 의원들의 말처럼 “녹색당 몰락”의 시작을 의미할지도 모른다. 2. 기민·기사당 + 사민당 정부: 좌우 대연정을 의미한다. 현재로서는 가장 가능성이 높으나 두개의 커다란 걸림돌이 있다. 슈뢰더 현 총리가 총리 자리를 양보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여러 차례 밝혔고, 제1당인 기민·기사당 메르켈 당수도 총리 자리를 양보할 리 만무하다. 결국 기민당과 사민당 내 권력투쟁을 통해 메르켈 당수와 슈뢰더 총리가 일선에서 물러날 경우에나 좌우 대연정이 가능할 수 있다.
또 사민당은 좌우 대연정의 경우 당의 보수화에 반발한 당원들과 지지세력의 급속한 이탈을 각오해야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좌파당에는 대연정이 자신들의 세력을 확대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때문에 좌파당은 최근의 선거 결과를 해석하면서 좌우 연정이 가장 현실적인 정부 구성안이라며 속내를 드러내고 있다.
‘사민당+녹색당+좌파당’ 가장 가능성 없어
3. 사민당 + 녹색당 + 자민당 정부: 현 정부 구성 정당에 자민당이 참여하는 형태로, 사민당이 현재 가장 선호하는 방안이다. 과거 1960, 70년대에도 사민당과 자민당은 연합정부를 구성한 경험이 있다. 하지만 현재 자민당은 당론으로 사민당과 녹색당과는 정부를 구성하지 않겠다고 결정하고 완강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따라서 현 자민당 대표가 당내 권력투쟁에서 이 방안을 지지하는 세력에 의해 물러나는 경우가 아니면 불가능해 보인다.
4. 사민당 + 녹색당 + 좌파당 정부: 가장 가능성이 없다. 좌파당에 참여하는 구동독 공산당의 후신 민사당은 독일 언론과 정계에서 좌우를 막론하고 왕따를 당하는 처지다. 또 좌파당을 이끄는 오스카어 라퐁텐은 과거 사민당 당수로서 슈뢰더 총리와는 정치적 숙적 관계다. 여기에 원칙을 강조하는 다수 좌파당 의원들은 비타협적인 노선을 요구하며 야당으로 좌파당을 일찌감치 자리매김하고 있다. 5. 재선거: 두 번째로 가능성이 높다. 어느 정당들도 정부 구성에 합의하지 못하는 경우 원내 제1당 기민당 대표는 의회 해산과 재선거를 요구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메르켈 기민당 당수가 이번 선거 결과에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것이 필연적이라는 데 전문가들의 의견이 모아진다.
사민·녹색당의 정치 노선에 대한 국민적 신임을 묻겠다고 1년 앞당겨 진행된 독일 총선은 아직까지는 지루하고 혼란스러운 정당들간의 합종연횡 시나리오만을 생산해내고 있다. 사용자 단체는 기민당이 참여한 정부, 노조는 사민당이 참여한 정부를 요구하면서 마치 선거전 2라운드을 치르는 듯하다. 모든 언론들은 분초를 다투며 다양한 시나리오들과 그 단서들을 보도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고, 독일 의회는 유례없이 세계 언론의 시선을 집중적으로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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