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감소로 애태우는 지자체들, 셋째아이 300만원 지원 등 처절한 전쟁
9월1일부터 ‘저출산·고령화사회 기본법’시행 들어갔으나 해답은 미지수
▣ 길윤형 기자charisma@hani.co.kr
“셋째 아이를 낳으면 300만원입니다. 저희가 오죽하면 이러겠어요?”
서울 남해군청 직원 박진평씨는 “한마디로 당혹스럽다”고 말했다. 한반도 남쪽 끝 작은 섬마을인 남해군은 지금 살아남기 위해 처절한 투쟁을 벌이는 중이다. 남해군의 현재 인구는 5만2593명. 군의 인구는 지난 1964년 13만7914명으로 최고점을 찍은 뒤 40년 동안 꾸준히 줄어들고 있다. 군의 지금 인구는 전성기 때의 3분의 1을 가까스로 넘기는 수준이다. 그동안 섬의 젊은이들은 푸른 꿈을 안고 도시로 향했고, 그들이 낳아 기른 젊은이들은 결혼·출산·양육에 딸려오는 삶의 고달픔을 이기지 못하고 아이 낳기를 포기했다.
남해군의 전체 인구 가운데 만 65살 이상 인구의 비율은 24.7%. 유엔이 정한 초고령 사회 기준(만 65살 이상 인구 비율 20%)을 훌쩍 뛰어넘은 지 오래다. 2004년 말 기준으로 남해군은 경남 의령군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가장 늙은 마을 1등을 차지했다. 정부는 우리나라가 지금 같은 출산율을 이어간다면 2026년께 초고령 사회에 접어들고, 2050년에는 세계 최고령 국가(노인인구 비율이 37.3%)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남해군은 30년 뒤 대한민국이 맞이하게 될 불길한 미래인 셈이다.
남해군, 결국 노인흡수 정책으로 선회
그렇지만 이 작은 어촌 도시가 인구 감소를 손 놓고 바라보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남해군은 지난 4월21일 ‘남해군 인구증대시책 지원에 관한 조례’를 만들어 군내에서 태어나는 아이들에게 신생아 예방접종을 무료로 놔주고, 셋째 아이를 낳는 가정에는 300만원의 출산장려금을 주기로 했다. 그렇지만 조례 시행 이후 9월 현재까지 300만원의 혜택을 받은 집은 9곳뿐이다. 박씨는 “좀더 기다려봐야 하지만, 젊은 사람들이 없어 정책이 어떤 효과를 가져올지 불확실하다”고 말했다. 군은 은퇴한 노인 인구를 흡수할 수 있도록 펜션 단지를 만드는 쪽으로 인구정책 방향을 바꿨다.
전남 강진군의 대책은 좀더 파격적이다. 강진군은 셋째 아이에게만 출산장려금으로 목돈 300만원을 내놓는 남해군과 달리 첫째 아이에게는 1년 동안 한달에 10만원, 둘째 아이에게는 한달에 15만원, 셋째 아이 이상에게는 한달에 20만원을 양육비로 지급하고 있다. 셋째 아이를 낳으면 군에서 주는 양육비와 전라남도에서 주는 출산장려금 40만원을 합쳐 400만원의 현금을 받게 된다. 군 관계자는 “군에서 태어나는 모든 아이에게 양육비를 주는 게 다른 지자체와 구별되는 특징”이라고 말했다.
자녀당 소득공제액 240만원-> 520만원
인구 감소로 골머리를 썩고 있는 지방자치단체들이 출산축하금·보육료 지원, 임산부·영유아 건강관리 시책 등 다양한 출산 장려 정책을 쏟아내는 모습은 생존을 위한 ‘소리 없는 전쟁’을 연상시킬 만큼 처절하다. 전라남도는 2001년부터 ‘농어촌 지역 신생아에 대한 양육비 지원’ 사업을 실시해 지난해부터 도 안에서 태어나는 아이 한명에게 30만~40만원을 지급하고 있고, 충남 태안과 경북 예천은 ‘농촌 총각 장가보내기’ 등 톡톡 튀는 아이디어를 들고 나왔다. 경남 진주시 등 2곳에서는 불임부부 검진·치료비 지원, 전남 완도군 등 4곳은 정·난관 복원 수술비를 지원한다. 액수는 적지만 경남 남해군같이 출산지원금을 지급하는 지자체는 105곳, 전남 강진같이 양육비를 지원하는 지자체는 부산 중구 등 6곳이다.
그렇지만 전문가들은 “지자체 차원의 노력으로는 떨어진 출산율을 끌어올리기 힘들다”고 입을 모은다. 지자체들의 대책은 인구에 따라 지급되는 지방교부금을 확보하기 위한 궁여지책의 성격이 강한데다, 지급되는 출산지원금이나 양육비의 액수가 출산을 유도할 만큼 많지 않다. 또 지역마다 지원 여부, 금액이 다르다 보니 지원이 약한 지자체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왜 옆동네에서는 돈을 주는데 우리 동네에는 없느냐”는 항의가 이어지기 일쑤다.
지금까지 마련된 중앙정부의 저출산 대책은 자녀 1명당 소득공제액 폭이 240만원에서 520만원으로 늘어난 것을 포함해 △정·난관 복원 수술 보험 적용 △주요 산전검사 보험급여 확대 △자연분만 본인부담 진료비 전액 면제 △미숙아 의료비 지원 등이다. 안명옥 한나라당 의원은 “정부는 1996년까지 시대착오적인 산아제한 정책을 펴오는 등 저출산, 인구 고령화 문제를 간과해왔다”며 “출산율이 이 지경에 이른 것은 저출산·고령화 문제에 제대로 접근하지 못한 정부 책임이 크다”고 말했다.
△ 지난 9월10일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이 '오순절 평화의 마을'을 찾아 아이들과 '올챙이 송'을 부르고 있다. 김 장관은 만 "6살 미만의 어린이가 입원 치료를 받을 때 환자 본인부담금을 면제해주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어린이날 운동회 풍경. (오른쪽). 출산율이 지금 같은 추세로 이어지면, 앞으로 어린이날이 없어질지도 모른다.
결국 정부가 칼을 빼들고 나서기로 했다. 정부는 ‘저출산·고령화사회 기본법’을 만들어 9월1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법은 대통령을 위원장으로 하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를 만들어 5년에 한번씩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을 수립해야 한다고 못박고 있다. 정부의 기본계획이 나오면 지방자치단체도 그에 맞는 저출산 대책 시행계획을 수립·시행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정부는 이르면 9월 말 5개 분야 34개 과제로 구성된 ‘범정부적 저출산 대책’을 내놓을 예정이다(표 참조).
대책에는 유산·사산 휴가제(2006년부터·최대 45일) 도입, 출산휴가비 국고 지원 등이 확정됐고, 자녀를 세명 이상 낳은 가정에 국민임대아파트를 우선 공급하는 등의 대책이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보육료 문제 해결을 위해 영·유아의 보육료 지원을 대폭 늘리고, 엄청나게 커진 사교육 시장을 잡는 등 교육비 부담을 줄이기 위한 종합 대책을 세우기로 했다.
무엇인가를, 바로 시작해야 한다
또 일하는 엄마가 안심하고 아이를 맡길 수 있는 육아지원 시설을 크게 늘리고, 대규모 아파트 단지에는 보육시설 설치를 의무화할 방침이다. 이를 위해 대한주택공사와 여성가족부는 ‘주공 임대주택 보육시설 무상제공 협약’을 맺어 2017년까지 보육시설 1251곳(6만2550명 수용)을 지어 해당 지자체에 20년 동안 무상 임대할 계획을 발표했다.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도 “올해 안에 만 6살 미만 어린이가 병원에 입원할 때 환자 본인 부담금을 모두 면제해주는 방안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대책들로 1.16명까지 떨어진 합계출산율(한 여성이 15~49살의 가임기간 동안 낳는 아기의 수)를 끌어올릴 수 있을까. 해답은 여전히 미지수다. 그렇지만 분명한 게 하나 있다. 지금 무언가 하지 않으면 앞으로 상황은 더 나빠질 뿐이다. 김현진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한번 떨어진 출산율은 다시 올리기 힘들고, 정책 효과가 나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게 특징”이라며 “우리가 무엇인가 해야 한다면 지금 바로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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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나라의 출산지원 정책 |
-정·난관 복원수술 보험 적용
-기형아·풍진 검사 등 주요 산전검사 보험급여 확대
-자연분만 본인부담 진료비 전액 면제
-미숙아·선천성 이상아 본인부담 진료비 전액 면제
-미숙아·선천성 이상아 의료비 최대 700만원 지원
-자녀 한명당 소득공제액 520만원까지 확대
-저소득층 보육료·유아교육비 감면
지자체
-농촌총각 장가보내기 (충남 태안군, 경북 예천군)
-예비 신혼부부 건강검진 (서울시 중구 등 13개 지자체)
-불임부부 검진·치료비 지원(경기 안산시 단원구, 경남 진주시)
-출산지원금 지급(충남 천안시 등 105개 지자체)
-출산용품 지급(경남 고령군 등 50개 지자체)
-신생아 건강보험 지원(월 2만원) (충북 증평군, 전북 정읍시)
-도우미 지원 (대전시, 경남 진해시)
-보육료 지원 (서울시 등 50개 지자체)
-양육비 지원 (부산시 중구 등 6개 지자체)
도입 검토 중인 지원정책
-유산·사산 휴가제 최대 45일 도입(도입 확정)
-출산휴가비 국고 지원(도입 확정)
-세 자녀 이상 가정 국민임대 아파트 우선 공급
-보육료 지원폭 대폭 상향 조정
-육아시설 대폭 확충, 대규모 아파트 단지 보육시설 설치 의무화
-만 6살 미만 어린이 입원치료 본인부담금 면제
* 자료: 보건복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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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엄마에게 아동급여 주는 스웨덴 |
북유럽 출산정책의 성공은 다양한 가족형태 인정 결과
낮은 출산율은 경제 구조가 선진화된 대부분의 국가들이 겪고 있는 아픔이다.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각국 정부의 노력이 이어졌지만 나라마다 취하는 정책과 사회 여건에 따라 희비가 극명하게 엇갈린다.
성공 사례로 꼽히는 국가는 스웨덴이다. 스웨덴은 1939년부터 모성보호를 위한 육아휴직제도를 도입해 부모 모두 최대 480일 동안(유급 390일·무급 90일) 육아휴직을 할 수 있다. 1960년대부터 공공보육 부문에 대규모 투자를 시작했고, 1982년부터는 세 자녀 이상을 둔 가족에게 특별급여를 제공하고 있다. 2001년부터는 아동급여를 만들어 엄마쪽에 한달에 85유로(약 11만원)를 지급한다. ‘가족’이 아닌 ‘엄마’쪽에 돈을 주는 것은 혼외출산율이 높아 한 부모 가정이 보편화돼 있기 때문이다. 스웨덴 등 북유럽에서 1980년대 이후 출산율이 이전보다 크게 늘어난 것은 양성평등적 정책을 일찍부터 도입하고 다양한 가족 형태를 인정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이와 대조적으로 스페인·이탈리아·그리스 등 남유럽에서는 출산율이 80년대 이후 급속히 하락해 2002년 현재 합계출산율이 1.2명 수준에 머무른다. 이들 국가는 전통적 가족제도가 유지되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육아에 대한 사회적 책임도 낮은 편이다. 일본도 엔젤플랜(1995~99), 신앤젤플랜(2000~2004) 등을 통해 △보육시설 확충 △가족지원센터 확대 △방과후 보육서비스 도입 등의 지원책을 쏟아부었지만 떨어진 출산율을 끌어올리기에는 역부족이다. 조남훈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원은 “다양한 출산 지원 대책이 마련되지 않았으면, 일본의 출산율은 지금보다 더 나빠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산 체제의 붕괴 과정에서 사회적 혼란을 겪은 옛 소련과 동구권 국가들의 출산율도 매우 낮다. 체코와 폴란드의 합계출산율은 80년대만 해도 2명을 넘었지만, 2002년 현재 1.1~1.2명으로 떨어졌다.
미국은 1990년대부터 출산율이 상승해 현재는 서구 국가들 가운데 예외적으로 2명 이상이다. 미국의 출산율 상승에는 1990년대 클린턴 행정부 시절 장기 호황이 중요 요인으로 꼽힌다. 그렇지만 저소득 계층인 흑인들의 출산율이 높아 백인의 출산율만 놓고 보면 유럽의 평균 정도에 머무른다는 연구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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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왕에게 혼수 비용 타 쓰다 |
결혼 장려로 출산 장려 시도했던 조선시대
조선시대에도 출산율 장려 정책은 있었다. 콘돔과 같은 발달된 피임 방법이 없었던 그 시절의 ‘출산 장려’ 정책은 곧 ‘결혼 장려’ 정책이었다. 조선시대에는 나이가 차도록 결혼하지 않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불효 가운데 후손이 없는 일이 가장 큰 불효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자식을 낳아 대를 이어야 한다는 관념이 어느 시대보다 강했으므로 아무리 가난해도 남자건 여자건 사람 구실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결혼해야 했다.
여성학자 정성희씨는 1998년 펴낸 <조선의 성풍속>에서 “조선시대에는 양반 사족의 딸로서 서른살이 넘도록 가난해 출가하지 못하면 국가에서 혼례 비용을 보조해주었다”고 적고 있다. 또 집안이 궁핍해 서른살이 넘도록 시집보내지 않으면 그 집 가장을 중죄로 다스렸다.
조선의 중흥기를 이끈 정조의 노력은 좀더 적극적이다. 정조는 혼기를 넘긴 미혼자를 조사해 2년마다 한번씩 짝을 지워 결혼시켰고, 성종 때에도 전국의 25살이 넘도록 시집 못 간 처녀들을 조사해 쌀·콩 등을 혼수로 지원했다.
가난해 결혼을 못하는 늙은 총각과 처녀가 있을 경우 해당 지역의 고을 수령은 왕에게 혼수 비용을 요청했다. 자신의 관할지에 노총각·노처녀가 늙도록 있으면 정부로부터 문책을 당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토정비결>로 유명한 이지함(1517~78)도 수령 시절 자신이 다스리는 고을에 60살이 넘도록 장가들지 못한 불쌍한 노총각이 있다고 왕에게 선처를 호소하기도 했다.
얼마 전 보건복지부가 출산 장려 정책의 하나로 “미혼인 직원들의 중매를 서겠다”고 말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결혼이 ‘선택’이 아닌 ‘강요’가 되는 사회 분위기는 바람직하지 않겠지만, 아이 울음소리 없는 사회에 미래가 없다는 사실도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엄혹한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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