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거점 간첩일당 7인’사건을 정신분석한 국가보안법 청문회
“겉으론 멀쩡한데, 자제력 잃으면 엽기적 범죄 저지르는 유형”
▣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
지난 9월12일 국회에서 열린 국가보안법 청문회는 1981년 발생한 일명 ‘진도 가족간첩단 사건’을 호명해냈다. 지난 5월 1차 청문회에 이어 두 번째다. 1차 청문회가 이적표현물 문제를 다뤘다면, 2차 청문회의 주제와 범위는 복합적이다. 부당한 국가 공권력에 의해 일상성을 송두리째 박탈당한 한 개인의 내면을 ‘공감’하고, 그 공권력의 무기였던 국가보안법을 정신분석학적으로 ‘진단’하는 자리였다. 아울러 국가보안법 개폐를 둘러싼 법리 논쟁 와중에 묻혀 있던 ‘사람’의 얘기, 특히 조작간첩 피해자들의 얘기를 하는 자리라고 사회를 맡은 송호창 변호사(민변)는 말했다. 국회의원 최재천·임종인·노회찬 의원과 정신과전문의 정혜신 박사가 청문관으로 참석했다. 진술은 당시 사건으로 18년간 복역했던 박동운(60)씨와 그의 고모부 허현(70)씨가 맡았다.
망치가 증거의 전부, 월북 알리바이도 안 맞아
1981년 3월7일 새벽 전남 진도에서 농협에 다니던 평범한 가장 박동운(당시 36살)씨는 아내와 잠을 자다가 느닷없이 들이닥친 안기부 수사관들에게 영문도 모르고 끌려갔다. 그 길로 서울 남산 안기부 취조실로 끌려와 63일간 불법 구금됐다. 같은 날 어머니 이수례(당시 57살)씨가 연행됐고, 동생과 숙부, 고모와 고모부, 숙모 등 나머지 가족들도 줄줄이 끌려갔다. 이들은 그해 봄 무시무시한 ‘진도 거점 간첩일당 7인’으로 둔갑했다. ‘수괴’ 격인 박동운씨의 혐의는 다섯살 때 헤어졌던 아버지를 만나 두 차례 월북하고, 국가 기밀을 누설했다는 것이었다. 그는 전쟁통에 아버지가 행방불명된 것으로 알고 자랐으나, 공안기관 자료에는 아버지가 월북했다고 돼 있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81년 공안기관의 발표를 보면, 유일한 증거는 통상의 간첩들이 지녔다는 난수표, 무전기, 라디오, 권총 같은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때려부쉈다는 망치가 전부였다. 월북 알리바이도 엉성했다. 65년 그가 1차로 월북선을 탔다는 목포의 ㄷ해안은 파출소도 있는 번화한 곳으로 간첩선이 드나들 장소가 전혀 아니었다. 71년 2차로 월북했다는 시기는 그가 대구의 한 제지회사에서 일할 때였다. 회사 사무실에서 국가 기밀을 복사해 넘겼다는 기밀누설죄도 앞뒤가 안 맞다. 그가 일하던 농협 사무실에 복사기가 들어온 건 84년으로 그가 구속수감된 지 3년이 지난 뒤였다. 아무 증거도 없고 정황도 안 맞는 가운데 오로지 당사자들의 ‘진술’만 있었다. 대체 안기부에서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의 항소이유서를 보면 그 이유가 짐작된다. “벽에 붙은 세면기에 성기를 올려놓게 하고 신발로 세차게 내리치고, 철창에 손목을 묶고 라이터 불로 온몸을 지지고 체모를 태우고, 발목에 족쇄를 채운 상태에서 무릎에 경찰 곤봉을 올려놓고 짓밟고, 발가벗겨 공중에 매달아 야전침대 몽둥이로 구타하는…” 잔혹한 고문을 통해 모든 시나리오가 짜인 것이다. 박씨의 증언이다. “이래도 만일 시인하지 않으면 옆방에 있는 어머니를 너와 똑같이 매달고, 그래도 말 안 들으면 집에 있는 만삭의 아내를 끌어다 매달고, 그래도 거부하면 아이들을 데려다 이 모든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협박에 ‘네, 네’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뒤이은 검찰 수사와 법원 재판에서 고문과 조작의 진상은 눈곱만큼도 규명되지 않았다. 오히려 안기부 수사에 법적인 권위를 부여해주는 요식 절차로 기능했다. 일사천리로 재판이 진행돼 1심에서 사형이 구형됐다. 2심과 3심에서는 무기징역이 내려졌다. 복역 중 감형돼 그는 지난 1998년 8월 대통령 특사로 18년 만에 풀려났다.
억만금이 있어도 갚고 싶지 않은 돈
7년간 복역한 숙부 박경준씨는 이런 기록을 남겼다. “(안기부 수사가 끝날 무렵이었다) 관제 간첩을 만들어놓고 수사관들이 하는 말, 이번 일 잘해냈으니 누구는 표창 받고 누구는 승진하고 누구는 포상금 받겠네. 때는 봄이라 화전놀이 가는데 아무개는 차를 준비하고 아무개는 뭘 준비하란다. 이게 고문으로, 그것도 지들 손으로 저지른 고문으로 만신창이가 된 사람을 옆에 두고 할 수 있는 말인가.” 숙부는 고문 후유증으로 고생하다 몇년 전 세상을 떠났다. 집행유예로 8개월 만에 풀려나왔던 고모부 허현씨를 비롯해 박씨보다 일찍 출옥한 고모, 숙모 등은 감옥 밖이라도 감옥 안과 전혀 다를 바 없이 지냈다. 밤마다 집에 돌이 날아왔고, 공동우물가에 가면 사람들이 모두 말을 뚝 그쳤다. 80년대 초반 간첩이라는 천형이 씌워진 이들에게 세상은 거대한 감옥이었다.
남편을 비롯해 시가 식구들이 떼로 끌려갈 때 만삭이었던 박씨의 아내는 홀로 셋째 아이를 낳았다. 누구 하나 들여다보는 이 없었다. 진도의 한 교회 신도가 와서 쌀 한되를 건네며 위로한 걸 계기로 아내는 교회에 매달렸다. 4년 동안 면회를 오던 아내는 어떤 이유인지 그 뒤로 14년간 발길을 끊었다. 편지 한장 애들 사진 한장 보내오지 않았다. 주변 따돌림을 감당하고 혼자 힘으로 먹고사느라 오죽 고통이 심하면 그랬을까 짐작하지만, 아내는 그 이유를 한번도 설명해준 적이 없다. 그가 출소했을 때 아내의 첫마디는 “당신 기독교 믿냐”는 것이었다. 안 믿는다고 했더니 “그럼 이별이다”는 말이 돌아왔다. 아이들은 그를 독사 보듯 피했다. 아들들 방에 이부자리를 갖고 가면 화들짝 놀라 방을 나가버렸고, 길에서 마주치면 골목길로 도망쳤다. 한집에 살아도 같이 사는 게 아니었다. 아이들과 유일하게 얘기를 나눠본 것은 해남에서 우연히 딸을 만나 진도까지 버스 타고 내려갈 때였다. 그가 거듭 한 말은 “미안하다. 하지만 아비는 간첩이 아니었다”는 것이었다. 딸은 가타부타 말없이 그의 얘기를 듣기만 했다. 딸의 생각을 그는 아직도 모른다. 아내는 수년 전 한 언론 인터뷰에서 남편이 간첩이라고 보냐는 질문에 고개를 끄덕거리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한 일이 있다.
출옥 뒤 보니 가계는 빚더미에 올라 있었다. 아이들까지 줄줄이 신용불량이었다. 그는 그 빚을 다 자기 앞으로 옮겼다. 가족 부양을 제대로 못한 자신이 죄인이라는 생각에서였다. 8천만원이던 원금이 1억원이 훨씬 넘었지만, 그는 그 빚을 갚을 생각이 없다고 한다. 억만금이 있어도 갚고 싶지 않은 돈은 또 있다. 할아버지가 남긴 임야 800평 때문에 매달 2만원가량 부과되는 건강보험료이다. 국가 공권력이 그를 간첩으로 만들지 않았다면 세금 한푼 밀리지 않고 빚 한푼 지지 않고 살았을 그이기 때문이다. 물론 갚을 길도 막막하다. 몸이 망가져 막노동도 어렵다. 4년 복역하고 나온 어머니가 공양주 노릇하며 사는 절에 가서 스님에게 양봉 일을 배웠다. 4년 일하고 200만원 받아 나와 그 돈으로 벌을 샀다. 360통으로 늘어난 벌통이 그의 생계원이다. 3년 전부터는 아내의 요구로 별거 중이다. 원망보다는 안타깝고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가해자는 멀쩡한데 피해자가 이중삼중의 죄의식을 지는 게 바로 57년간 우리 사회를 옭죄온 국가보안법이 낳은 기형적인 정서이다.
정혜신 박사는 이날 청문회에서 국가보안법을 휘두른 국가 공권력에 대해 ‘사이코 패스’(psychopath)라는 진단을 내렸다. 사이코 패스란 유영철 같은 연쇄살인범에게 붙이는 정신과적인 진단명이다. 이들의 특징은 겉으로 보기에 멀쩡하고 일상생활도 잘해 가족조차 알아차리지 못하지만, 사소한 충동으로 자제력을 잃게 되면 잔인하고 엽기적인 범죄를 저지른다. 또 다른 특징은 자기가 한 잔혹한 행위에 대해 아무런 죄의식이 없다는 것이다. 정 박사는 “끔찍한 범죄를 저질러놓고 국가가 책임, 사과, 후회, 죄의식을 갖지 않는다면 사이코 패스와 다를 바 없다”고 잘라 말했다.
공동체가 피해자의 이야기를 들어주자
81년 한해 국가보안법 위반 기소·구속 사건만 해도 234건이다. 박동운씨들이 234명이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수치만은 아니다. 그 고통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민가협 송소연 총무는 “박동운씨가 정혜신 박사를 만나 몇 차례 상담을 하며 아주 밝아졌는데, 누군가 진심으로 내 얘기를 들어줬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닐까 싶다”면서 “조작간첩 피해자들은 84명 정도 꼽히는데 국보법 폐지가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아니 그것을 위해서라도, 공동체가 피해자들의 얘기를 제대로 집중해서 들어주는 게 절실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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