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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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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내 애인들의 역사!

등록 2005-09-15 00:00 수정 2020-05-03 04:24

[90년대의 추억_영화]

슬프고 유치하게 연애를 하던 시절의 시절의 <비트> <접속> <쉬리>…
<강원도의 힘>을 권한 그에게서 영원히 열망할 새로운 세계를 보다

▣ 남다은/ 영화평론가

1990년대, 나는 학생이었다. 중학생이었고, 고등학생이었고, 재수생이었고, 대학생이었다. 졸업과 입학의 지겨운 반복 속에서 나는 대체로 행복하지 않았다. 그런데 무엇을 추억하란 말이지?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가 그 시절 나와 도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물론 그때, 나도 영화를 봤다. 그러나 무슨 문화원 세대들처럼, 영화 자체의 아우라에 매혹된 적은 없었다. 90년대 내가 보았던 영화들을 돌이켜보면, 나는 영화 대신, 나의 슬프고 유치한 연애사만 떠오른다.

전태일? 그 사람이 누구야?

95년 입시로 지루했던 시절, 나에게는 착한 성품만 돋보이던 연인이 있었다. 나름대로 스스로를 삐딱하다고 자부하던 나는 내 삐딱함을 소화해내지 못하는 그에게 번번이 좌절하던 중,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을 보았다. 영화를 보는 내내, 엄청난 눈물을 소비했다. 물론, 그는 이 영화를 보지 않았고 나는 그에게 그 감동을 전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순진한 눈망울로 “그 사람이 누구야?” 따위의 말을 던지며 내 어린 가슴에 비수를 꽂았다. 얼마 뒤, 그와 헤어졌다. 그리고 재수를 시작했다. 그 황폐했던 시절, 내 곁에는 재수생 남자친구가 있었다. 그도 착했다. 게다가 그에게는 취향이 있었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실패한 자의 서러움과 우울함을 은밀하게 나눴다. 그때, 어두운 청춘의 상징이었던 정우성의 <비트>를 명동의 매우 어두운 비디오방에서 보았다. 허름한 명동의 비디오방과 우리의 처지와 정우성의 쓸쓸함은 심금을 울렸다. <접속>이 극장에 걸렸던 어느 날, 나의 마음을 흔들었던 또 다른 재수생(B)이 이 영화를 꼭 함께 보자며 내게 작업을 걸었다. B의 무취향적 냄새에 못내 질렸던 나는, 그를 속이고 수능 며칠 전, 그보다 덜 건전한 엄마와 이 영화를 보았다.

대학에 입학하고 <비트>의 그와 연애를 시작했다. 1998년, 그와 <쉬리>를 보고 <8월의 크리스마스>를 보고, <여고괴담>은 지긋지긋한 학교가 떠오를까 두려워 보지 않았다. 나의 연애가 어떤 영화보다 절절했기에, <약속> 따위의 최루성 연애담도 보지 않았다. 1년이 지나고 그는 내게 이별을 말했다. 그가 떠나던 날, 우리는 지금은 없어진 종로의 한 극장에서 <박하사탕>을 보았다. 영화를 본 뒤, 묘한 분위기의 커피숍에 앉아 나는 많이 울었다. 영화 때문에 운 게 아니었는데,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는 영호가 순임을 바라보듯 나를 보며 “너처럼 순수한 사람을 또 만날 수 있을까”라는 산통 깨는 대사를 남기고 사라졌다.

그와 헤어지고 나는 뒤늦게 <해피엔드>를 보고 <처녀들의 저녁식사>를 보고 <초록물고기>를 봤다. 비디오방도, 극장도 혼자 다니기 시작했다. 이별의 상처는 오래갔지만, 곧 또 다른 누군가가 혜성처럼 나타났다. 그와는 정말 연애를 하고 싶었으나 그에게는 애인이 있었다. 나는 그와 연애는 아니지만, 연애 비슷한 걸 했다. 그는 그야말로 취향의 결정체였다. 그때, 그는 내게 <강원도의 힘>을 권했다. 나는 거기서 내가 영원히 다가갈 수는 없지만, 영원히 열망할 그의 세계를 보았다. 그리고 그를 떠났다.

그렇게 90년대를 살았다. 나는 그때 영화를 본 게 아니라 내 앞의 사랑만 본 거였다. 이제 나는 스크린 앞에서 연애를 하려는 부질없는 꿈을 꾸지 않는다. 그 시절의 끝에서, 나는 비로소 영화보기의 그 절실한 고독을 배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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