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일말의 의구심을 남겨야 했나

등록 2005-07-19 00:00 수정 2020-05-02 04:24

[대통령 한겨레 발전기금 논란]

독립언론의 ‘촌지 거부’는 편집증적으로 지켜야할 원칙
대통령이라는 중요한 취재원의 기부는 사려 깊게 거절했어야

▣ 임현우/ 경영컨설턴트

1988년 <한겨레>의 창간 과정은 일반적인 언론사의 창립과는 사뭇 달랐다.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참언론’이라는 기치를 내세운 <한겨레>는 수만명의 소액주주들이 십시일반으로 창간기금을 쾌척해 신문사를 설립하는 초유의 방식을 선택했다. 그리고 최근 <한겨레>는 경영난을 돌파하기 위한 방안으로 또다시 <한겨레>다운 특이한 방법을 선택했다. 국민성금을 통해 발전기금을 마련하겠다며 시민들에게 직접적인 지원을 호소했다. 그런데 기금 모집에 노무현 대통령이 1천만원을 쾌척하겠다고 나서면서 언론계 안팎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한겨레>의 구성원 모두가, 그리고 분별 있는 대부분의 언론인들이 다 인정하듯, 취재원이 언론인에게 제공하는 금전적이거나 비금전적인 모든 특혜는, 당장의 반대급부를 요구하지 않더라도, 잠재적으로 언론의 독립성을 훼손할 수 있다. 과거에 ‘널리 행해지는 관행’이었던 촌지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제동을 걸고 나선 것 역시 독립언론을 표방한 <한겨레>의 의식 있는 기자들이었다. 그런데 애정을 갖고 이해해주려고 아무리 애를 써봐도, 나로선 대통령의 발전기금이 바로 그 “촌지”가 아닌 다른 것으로 규정하기 어렵다. 이제 누군가 <한겨레>에 대해서, 부단한 감시대상인 최고권력으로부터 1천만원이라는 특혜를 받은 언론이라고 비판할 여지가 생긴 셈이다.

이에 대한 <한겨레>의 해명은 다음과 같다. “<한겨레>의 창간 정신에 공감해 창간 당시에도 주주로 참여했던 노 대통령이 자신의 저금을 헐어 발전기금을 내겠다는데, 단지 대통령이라는 이유만으로 거절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대통령 역시 발전기금 모금에 참여한 많은 국민 가운데 한 분일 뿐이라는 의미”에서, 따로 기사화하지 않고 추후에 발전기금이 어느 정도 모여 기탁자 명단을 실을 때, 대통령의 이름을 거기에 포함시키려 했다고 밝혔다.

대통령이라는 이유만으로

거두절미하고 결론부터 말하자. ‘단지 대통령이라는 이유만으로’ 대통령은 <한겨레>의 창간 정신에 대한 공감 여부와 무관하게 기금을 내지 않았어야 했고, 또 ‘단지 대통령이라는 이유만으로’ <한겨레>는 대통령의 지원을 거절했어야 했다. 언론의 비판을 무디게 하려는 권력의 시도라는 비판에 도대체 어떻게 답하려고 하는가? 노무현 대통령은 그런 분이 아니라고, <한겨레>는 그런 신문사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으로 충분할까? 권력자의 돈이 언론에 지원이라는 이름으로 전달되어도, 이것이 80년대 독재자의 수구언론에 대한 회유와 다르다고 <한겨레>는 반론하고 싶겠지만, 그 각각의 경우의 차이를 구별하고 정당성을 판별하는 온전하게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기준은 없다. 객관적인 기준이 없을 때 택할 수 있는 방법은 본래의 원칙을 글자 그대로 준수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사안에서 <한겨레>가 취한 모든 행동에 대한 평가는, 모든 취재 대상으로부터 어떤 특혜나 지원도 받지 않겠다는 <한겨레>의 공식적인 규정과 그 규정에 대한 편집증적인 준수 여부에서 시작될 수밖에 없다.

대통령은 단 하루도 빠짐없이 신문에 등장한다. 그는 정치, 경제, 사회, 안보의 모든 중요한 정책 집행의 최종 책임자이다. 대통령이라는 취재원에 대해 <한겨레>는 독립된 시각에서 보도해야 할 의무가 있으며, 그러한 독립성에 대해 일말의 의구심이라도 갖게 하는 모든 행동은 사려 깊지 않다. 대통령의 발전기금 지원 의사가 전달됐을 때, <한겨레>는 정중히 사양했어야 마땅하다.

독립언론으로서 <한겨레>에 큰 기대를 갖고 있는 독자들이 실망하지 않도록 <한겨레>가 현명한 판단을 하길 기원하면서, 최근 <한겨레>에 대한 성한표의 당부를 인용한다. “<한겨레>가 지켜야 할 초심은 무엇인가? 도덕성과 독립성이다. <한겨레>는 창간 당시 윤리강령을 채택하고, 언론계의 고질적 관행이었던 촌지 거부를 선언했다. 독립이라고 말할 때, 권력과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은 물론이고, 기자와 편집자의 무식과 게으름에서부터 언론 및 기자가 누리는 ‘권력’에 안주하는 타성, 신문사 내부의 비민주적이고 반지성적인 분위기에 이르기까지 지면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모든 장애물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한다.”




[표지이야기] 푸껫 귀신 이야기 …30
쓰나미가 휩쓸고 간 푸껫에 희생자들의 귀신이 출몰하고 있다. 목격자들을 찾아다니며 공포의 현장을 생생하게 담는다. 가족과 얼마 안 되는 재산마저 잃어버린 푸껫 주민들의 공포가 귀신을 더욱 활개치게 한다.

[도전인터뷰] “우리는 안티 정연주 아니다” …24
현재 대립구도는 상업방송형 자본 논리로 경영 위기를 일시적으로 돌파하려는 경영진과 공영성 강화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자는 노조가 대립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직종간 갈등으로 단순화하고, ‘친 정(연주)-반 정(연주)의 대립’으로 모는…


[특집] 청소년들 약물치료에 취한다…62
정신장애 진료를 받는 청소년들 중 많은 수가 약물 치료를 받는다. <한겨레21>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의뢰해 분석한 자료에서도 최근 원외처방 약품비가 급증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자살 충동, 건강 악화 등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사람과 사회] “한국 한센인에게 사죄드린다”…84
일본 변호사 도쿠다 야스유키씨는 자신을 “평범한 시골 변호사”라고 소개했다. 그는 지난 2001년 일본 총리를 한센인들 앞에 무릎 꿇린 ‘구마모토 판결’을 이끌어낸 당사자다. 한 걸음 나아가 그는 한국 한센인을 위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초점] 대통령 한겨레 발전기금 지상논쟁…21
노무현 대통령이 ‘한겨레 발전기금’ 1천만원 기탁 의사를 밝힌 뒤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공무원의 사생활을 존중하자는 박노자 교수와 독립언론의 ‘촌지 거부’ 원칙을 지키자는 임현우씨의 찬반 논쟁을 실었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