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darkblue">제작자와 배우들의 밥그릇 싸움처럼 비쳐진 최민식·송강호 실명비판 파문
애초 항의 대상은 ‘배우’가 아니라 수익 지분 요구가 과한 ‘매니지먼트사’</font>
▣ 김은형 기자/ 한겨레 문화부 dmsgud@hani.co.kr
“‘대한민국 배우들, 돈 너무 밝혀요’ 강우석씨가 이렇게 말한 게 분명합니까?” “이 자리가 청문회입니까? 반박에 집중해주세요.” “강씨가 실명 게재해서 실어달라고 부탁했습니까?” “배우들의 실명을 밝히면서 이 사안을 보도해달라고 했습니까?”
지난 6월29일 오전 한국언론회관에서 열렸던 배우 최민식(43), 송강호(38)씨의 기자회견은 이례적으로 회견 주체가 참석 기자에게 질문을 하면서 시작됐다. 질문을 받은 기자는 6월25일치 <조선일보>에 두 배우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나치게 높은 개런티 문제를 질타한 강우석 감독의 인터뷰를 쓴 기자였다. 방송사 카메라가 기자의 얼굴을 향하자 “아저씨, 카메라 치우세요” 고성이 오갔고 회견장은 어수선한 분위기가 됐다.
톱스타 개런티는 정말 많은가
6월23일 저녁 강우석 감독은 일간지 영화담당 기자들과 만났다. 공식 간담회가 아닌 술자리였으며 개런티와 제작사 수익 지분 요구에 대한 이야기를 강 감독이 꺼냈고, 이 이야기는 상당수 일간지와 방송에 보도됐다. 그런데 두 배우가 <조선일보>를 문제 삼은 건 이 신문에서만 두 배우의 이름이 등장해 “최민식이 <선생 김봉두>에서 개런티뿐 아니라 추가로 수익 지분까지 요구해 배우를 교체했다” “송강호는 (내가) 배우에게 제작 지분 안 준다는 걸 알고 있어 나를 안 만나려 한다”고 보도됐다. 또 강 감독은 이른바 ‘톱3’의 나머지 한명인 설경구는 셋 중 유일하게 지분을 요구하지 않는 배우라고 칭찬했다. 설씨는 <공공의 적> 1·2편, <실미도>를 강 감독과 찍었으며 차기작도 강 감독이 몸담고 있는 제작사 시네마서비스의 영화다. 사실확인이 대단히 어려운- 배우들의 출연료는 이면계약이 꽤나 많다- 강씨의 주장이 직설적으로, 그것도 동료 배우와 비교되면서 신문에 실린 데 대해 두 배우가 불쾌해하는 것은 당연해 보였다. 같은 날 밤 강 감독은 사과 내용을 담은 공개 서한을 언론사에 배포했다. 다음날 두 배우는 사과를 수용한다는 보도자료를 내면서 이 다툼은 일단락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자료는 “배우와 소속사, 팬들의 실망감을 추스르기에는 굉장히 미흡한 사과문”이라고 적고 있어 그 앙금은 지워지지 않았다는 뉘앙스를 짙게 풍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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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제작자와 스타 배우가 정면 대결을 하면서 언론은 일제히 배우 개런티 문제에 대해 대서특필하고 있다. 영화산업 규모는 나날이 성장하고 있지만 2002년부터 투자·제작부문의 수익이 마이너스 성장으로 떨어진 데는 배우들의 지나치게 높은 개런티가 큰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내용이 중심이다. 개런티 문제를 꺼내는 기사들에는 한국제작가협회(회장 김형준·제협)의 기자회견에서 일본 영화배우는 최고 스타라고 해도 개런티가 2천만엔을 넘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지적한 것이 자주 인용된다. 그러나 할리우드를 비교해보면 평균 제작비 1억달러를 넘는 대작 영화에서 톱스타들은 2천만달러 이상의 개런티를 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 배우들이 적게 받고 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배우들의 개런티 문제는 매우 상대적인 것이며 한국 영화 수익구조의 왜곡에 본질적 문제가 아님에도 강 감독의 배우 실명 거론 기사와 이로 인한 갈등으로 인해 마치 이 문제가 한국 영화 침체의 전부인 양 착각하는 비판과 주장들이 쏟아져나오고 있는 것이다.
강우석은 투자자 입장에서 말했다
제협은 6월28일 기자회견을 열어 ‘매니지먼트사들의 특별한 기여 없는 공동제작과 제작수익 지분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취지의 결의문을 발표했다. 제협은 최근 몇년 간 스타배우들이 대거 소속된 매니지먼트사를 중심으로 공동제작과 지분 요구가 많아지면서 이에 대한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하기 시작했다. 얼마 전에 만난 한 제작자는 영화 두편의 주인공으로 출연하면서 인기가 오른 대형 매니지먼트사 소속 젊은 여배우가 멜로 영화에 출연하면서 “출연료 4억원에 수익 지분 20%를 요구했는데 말이 되는 이야기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제작자들의 모임은 높게는 50%까지 지분을 요구하는 매니지먼트사들의 주장에 대한 성토장으로 자주 바뀌었고, 제작자들은 이를 제동하기 위한 논의를 올 초부터 준비해왔다.
개런티와 수익 지분 요구는 제작자 입장에서 엄밀히 다른 문제다. 구체적으로 말해 개런티는 제작비에 포함되기 때문에 사실 그 부담은 제작자가 지는 게 아니라 투자사의 몫이다. 제작자는 영화 개봉 뒤 비용을 빼고 남은 총수익에서 극장이 가져가는 돈의 나머지를 투자사와 나눈다. 대형 제작사의 경우 6:4(투자사:제작사)의 비율로, 힘없는 군소 제작사는 8:2의 비율로 이익을 챙긴다. 여기에서 최종적으로 제작자에게 남는 몫을 매니지먼트사가 나누자고 하는 것을 제작자들이 문제 삼고 있는 것이다. 또 제작자들은 주연 캐스팅을 조건으로 매니지먼트사가 조연들의 ‘끼워팔기’를 하는 것이나, 시나리오 수정에서 홍보, 마케팅까지 제작자의 고유영역과 위상이 매니지먼트사로 인해 흔들리는 것도 심각한 문제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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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감독이 술자리에서 두 배우의 개런티 문제를 짚은 건 차라리 투자자 입장에서 말했다고 보는 게 더 정확하다. 강 감독이 대주주이며 실질적인 경영을 하고 있는 시네마서비스는 제작과 투자·배급을 함께 하고 있다. 그러나 기사가 제작자의 스타배우 개런티에 대한 문제제기식으로 나가면서 문제의 본질이 모호해진 셈이다. 강 감독은 24일로 잡혀 있던 제협의 임시총회와 관계없이 기자들과 술자리를 가져 이야기를 꺼냈다. 강 감독으로서는 선배 제작자로서 총대 메는 심정으로 문제를 제기했겠지만, 25일 <조선일보>의 실명 보도가 나간 뒤 제협은 발칵 뒤집어졌고 서둘러 긴급 회의를 열었다. 제협 회원사인 한 제작자는 “문제의 본질은 영화 제작에서 거대 매니지먼트사들의 과도한 개입과 지분 요구인데, 실명 보도를 통해 제작자 대 스타 배우들의 ‘밥그릇 싸움’처럼 비쳐질 가능성이 높아 재논의가 필요했다”고 말했다. 특히 강 감독이 거론한 두 배우는 작품을 선택하고 출연하는 데 매니지먼트사의 입김이 거의 작용하지 않는 배우임을 감안할 때 공격 방향을 잘못 잡았다는 게 몇몇 제작자들의 의견이다. 28일 기자회견을 여느냐 마느냐까지 갔던 논의는, 강 감독이 기자회견 때 두 배우에게 공식 사과하고 제협 본래의 주장을 이어가는 것으로 결정됐다. 두 배우는 공식 사과 약속을 받고 대응에 나서지 않았지만, 결국 강 감독이 끝내 함구하자 반박 기자회견을 열게 된 것이다. 28일 제협 기자회견을 끝내고 나오면서 몇몇 제작자들은 강 감독의 함구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제작자-매니지먼트사 1차합의 끌어내
제협의 결의는 주요 매니지먼트사 대표들의 모임을 통해 “긍정적인 입장에서 수용할 것”이라고 받아들여졌고, 제작자들은 매니지먼트사들과 이제 본격적으로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테이블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강 감독의 돌출 발언과 이로 인한 두 배우와의 다툼은 제작자와 매니지먼트사의 의미 있는 합의를 가렸고 영화계에 골 깊은 불신을 남겼다. 그리고 언론은 여전히 이 문제를 제작자와 배우들의 밥그릇 싸움으로 연일 보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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