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6위 생산국, 한국의 4강 진출에 필요한 새 패러다임
부품시장까지 흔드는 ‘미래형자동차 개발’ 이미 전세계가 시작했다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자동차는 더 이상 기계공업의 꽃이 아니다. 이제 에너지·신소재·정보기술(IT) 등을 기반으로 한 첨단산업의 꽃이고, 전자산업의 꽃이기도 하다.”(산업연구원 이항구 연구위원)
올해는 우리나라 최초의 국산 자동차가 탄생한 지 50주년이 되는 해다. 국제차량공업의 최무성 삼형제가 1955년 미군한테 물려받은 지프의 엔진과 변속기 등을 이용해 손으로 철판을 펴서 만든 최초의 국산차가 ‘시발(始發) 자동차’다. 1975년에는 현대자동차의 ‘포니’가 등장해 처음으로 우리 브랜드의 자동차를 생산하는 쾌거를 이룩했다. 1976년 포니 6대를 에콰도르에 첫 수출한 뒤 2004년까지 해외시장에 판 국산차는 1995만대. 현대자동차그룹은 세계 8대 자동차 메이커로 성장했고, 50년이란 짧은 역사 속에서도 국내 자동차산업은 2004년 생산대수 346만9천대로 미국·일본·독일·중국·프랑스에 이어 세계 6위의 자동차 생산 대국으로 떠올랐다. 수출에서도 지난해 182만대로 세계 6위의 명실상부한 자동차 선진국으로 발돋움했다.
기술도약 50년 “사람이 개를 물다"
1986년 현대차가 ‘엑셀’로 미국 시장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 “값은 싸지만 품질은 떨어지는 차”라는 이미지가 굴레처럼 씌워졌지만, 이제는 완전히 바뀌었다. ‘값이 싼 가격경쟁력 위주’라는 옛 이미지를 탈피하고 지금은 소형·중형·소형RV(레저용 차량) 부문에서 세계 최고의 품질경쟁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된다. 올해 미국의 자동차품질조사기관인 JD파워의 초기품질지수(IQS) 평가에서 현대차 ‘EF쏘나타’는 국내 브랜드로는 처음으로 중형 세단부문 1위에 올랐다. ‘싼타페’와 ‘엑센트’도 소형 SUV(스포츠 실용차)와 소형차 부문에서 각각 2위를 차지했다. 모든 브랜드를 종합한 메어커별 평가에서 현대차는 도요타에 이어 혼다와 공동 2위를 차지해 BMW, GM, 포드, 다임러크라이슬러 등을 눌렀다. 초기품질지수는 새 차를 구입한 뒤 석달간 타본 운전자를 대상으로 품질만족도를 조사하는 방식이다. 이런 조사 결과를 놓고 미국의 한 자동차 전문지는 ‘사람이 개를 물다’(Man bites dog)라는 말로 놀라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이는 고급 럭셔리 브랜드를 빼고 대중 브랜드만 놓고 보면 현대차와 일본차가 초기 품질에서 대등해졌음을 뜻한다(중장기 품질경쟁력을 나타내는 내구성 면에서는 국내 업체가 여전히 자동차 산업평균에 못 미치고 있다).
국산차의 대당 수출가격도 1998년 6355달러에서 2004년 1만107달러로 상승해 ‘저가 브랜드’는 이제 옛말이 됐다. 국내 메이커들은 2010년에 대당 수출가격을 1만5500달러로 올려 부가가치를 더 높일 계획이다. 이렇듯 품질경쟁력이 입증되고 있는 데 대해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 박홍재 소장은 “90년대 기아·대우차가 설비투자를 증가시켰지만 수출이 잘 안 되고 내수 과잉 상태에서 국내 자동차 산업이 위기를 맞았는데, 이제는 자동차산업이 통합되고 구조조정이 일어나면서 당시 투자했던 것들이 효과를 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그 뒤 미국·유럽 업체들이 고전할 때 중·소형 차량을 통해 국산 브랜드들이 해외시장에서 치고 올라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현재 자동차산업은 전세계적인 과잉 공급에 들어서 있다. 중국 등 신흥 자동차 생산국이 시장에 진입하고 글로벌화 전략에 따른 해외 생산거점 건설로 연간 2천만대 이상의 과잉 공급이 발생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전세계 자동차업체 중 40%만이 정상적인 수익을 내는 한계 상황에 와 있는데, 이런 때 국내 브랜드가 뚜렷한 성장을 이룬 건 주목할 만하다.
고유가·규제강화… 2010년 키워드 ‘친환경’
이제 한국 자동차산업은 중·소형차 경쟁력을 등에 업고 2010년 세계 4위를 넘보고 있다. 한국 자동차산업의 제2기 성장신화를 연다는 것인데, 2010년 국내외 생산능력 650만대, 수출 250만대로 미국·일본·독일에 이어 프랑스를 제치고 세계 4강국으로 부상한다는 목표다. 또 2012년에는 국내 완성차업체 중 한곳이 전세계 100대 브랜드에 진입한다는 계획도 세워놓고 있다. 지금은 세계 자동차업체 7개사가 100대 브랜드에 포함돼 있고, 국내 업체는 유일하게 삼성전자만 들어가 있다. 그러나 세계 4강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최고 수준의 기술 개발과 브랜드 파워 육성 등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특히 시장이 급속히 변동하면서 승용차와 SUV·버스·트럭 등 모든 차종을, 또 경차에서부터 최고급 럭셔리까지 풀 라인업을 구축해 전세계에 판매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초대형 글로벌 기업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그러나 선진국 자동차업계를 추격해온 단계를 넘어 어느 한 분야에서라도 주도권을 행사할 수 있으려면 무엇보다 미래형 자동차에서 승부를 걸어야 한다. 한국자동차공업협회 구희철 과장은 “앞으로는 친환경 미래형 차를 누가 얼마나 빨리 갖추느냐가 전세계 자동차업체들의 생존을 판가름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양적인 생산 대수를 넘어 질적인 도약이 관건이고, 무엇보다 친환경 자동차(하이브리드차·수소연료 전지차 등) 기술 개발 여부가 국산 브랜드의 세계 4위 부상을 결정짓는다는 것이다. 산업연구원 이항구 연구위원은 “국내 자동차산업에서 엔진은 거의 100%, 트랜스미션은 90∼95% 선진국 메이커 수준에 도달해 있다”며 “그러나 미래형 자동차 기술에서는 일본 업체 등에 비하면 30% 수준에 그치고 있다”고 말했다. 범용기술 경쟁력의 격차는 축소되고 있지만, 미래형 자동차와 첨단기술 경쟁력의 격차는 계속 확대되고 있다. 초기품질지수 1위에도 불구하고 내구성을 따지는 선진국 중고차 시장에서 국내 업체는 일본차에 비해 크게 밀리고 있고, 특허출원(미국) 건수로 첨단자동차 기술 경쟁력을 따져보면 일본 업체는 4곳이 100위권에 등재됐지만, 한국은 한곳도 들지 못하고 있다.
사실 기존 차량만으로는 유럽 등 해외 시장을 공략하기 어렵다. 자동차산업의 패러다임이 바뀌면서 국제경쟁력이 환경·에너지·안전 분야의 신기술에 좌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이제는 하이브리드차·연료전지차·지능형 자동차 개발이 자동차업체의 생존 조건이 되었다. 선진국을 중심으로 환경 규제가 강화되면서 전세계 메이커들은 무공해 환경차 기술을 선점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휘발유·디젤 엔진과 전기모터를 함께 구동해 에너지를 절감하는 하이브리드카 개발 경쟁에서는 일본 업체들이 가장 앞서고 있는데, 세계 하이브리드차 시장의 대부분은 도요타와 혼다가 장악하고 있다. 1990년대 말에 이미 하이브리드카 ‘프리우스’를 출시한 도요타는 연간 30만대 생산 체제를 구축했다. 혼다도 ‘이마스’라는 소형 하이브리드차를 선보이면서 ‘1ℓ에 40km를 달리는’ 세계 최고의 연비를 내세우고 있다. 특히 도요타와 혼다가 개발한 하이브리드차는 고유가 시대를 맞아 수요가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
현대 클릭, 내년 말 하이브리드 양산
GM 등 미국 ‘빅3’와 유럽 자동차 메이커들은 상대적으로 연료전지차에 승부를 걸고 있다. 수소 연료전지차는 자동차 안에 장착된 연료전지에서 수소와 산소를 반응시켜 전기를 얻은 뒤, 이것으로 동력 모터를 움직여 주행하는 방식이다. 연료전지차는 배기가스 대신 수증기가 나오는 무공해 자동차다. 친환경 자동차의 최종 목표는 이런 수소 연료전지차다. 연료전지차도 양산 단계에 이미 들어서고 있다. GM은 픽업트럭인 ‘시보레’를 개조해 만든 연료전지차를 일찌감치 내놓았고, 2010년이면 연료전지차가 본격적인 양상 체제에 들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BMW도 올해 수소 연료전지차인 ‘750hL’을 양산할 계획이다. 앞으로 세계 자동차업계의 순위를 바꿀 친환경 자동차는 하이브리드카보다는 연료전지차가 될 공산이 크다.
물론 현대·기아차도 연료전지차 개발에 나서고 있다. 2001년에 싼타페와 스포티지 연료전지차를 개발했는데, 싼타페 연료전지차는 시범 운행 때 연비가 가솔린에 비해 100% 이상 우수한 것으로 평가됐다. 하이브리드차의 꿈도 조금씩 일궈가고 있는데, 현대차는 1995년부터 베르나 하이브리드전기차 등을 개발해왔다. GM대우는 지난해 쇼카(Show Car) 개념의 하이브리드 SUV 자동차 ‘S3X’를 선보이고 주행 테스트를 성공적으로 실시한 바 있다. 지난해에는 현대차가 클릭 하이브리드차 50대를 환경부에 제공해 시범 운행을 했다. 클릭 하이브리드는 연비 18km/ℓ로 기존 가솔린 차량(연비 12.1km/ℓ) 대비 50% 정도 연비가 향상됐다. 내년 말에 본격적인 하이브리드 자동차 양산에 들어갈 계획이다.
자동차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뀌면서 자동차 부품 역시 “처음부터 새로 시작해야 할” 정도로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국내 자동차에서 전자부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현재 25%인데, 미래형 자동차의 등장으로 갈수록 비중이 커질 전망이다. 특히 수소연료 자동차가 등장하면 내연기관(엔진)이 더 이상 필요없게 된다. 센서로 작동되는 지능형 자동차가 등장하면 브레이크 장치도 필요 없어진다. 센서가 앞, 뒤, 옆 차량 사이의 간격을 체크해 자동 주행을 해주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국내 자동차산업이 기존 ‘기계’ 중심의 인력과 의사결정 구조에서 탈피해 전자 분야의 발언권을 강화하는 쪽으로 빨리 전환해야 국제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 박홍재 소장은 “포드 생산방식, 도요타 생산방식처럼 우리나라도 자동차 경쟁력을 체계화해 독자적인 생산 시스템을 구축해야만 글로벌 자동차대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도요타는 ‘환경’, 혼다는 ‘안전’, BMW는 ‘고급차’의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는데, 국산차도 특유의 비교우위를 창출해 고유 브랜드 이미지를 갖춰야 한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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