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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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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P운용, FM대로 하라

등록 2005-06-28 00:00 수정 2020-05-02 04:24

중화기 무장과 변칙적 병력배치는 명백한 정전협정 위반
제2의 비극 막으려면 두루뭉술 넘어가지 말고 원칙대로 조정해야

▣ 서재철/ 녹색연합 자연생태국장

경기 연천 총기난사 사건은 대한민국을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국방부는 계속되는 여론의 파장에 고심하고 있다. 이번 사건으로 국민들은 생소한 단어 하나를 계속 접하고 있다. 바로 ‘GP’(GUARD POST·전방소초)가 그것이다. 사건이 났던 부대가 주둔한 곳을 일컫는 표현인데, 대부분의 국민들은 그 개념을 잘 모르고 있다. 일부 언론에서 GP에 대해 생활상을 중심으로 소개하고 있으나 진정한 실체를 정면에서 밝히지는 않고 있다.

본래 권총과 보총만 지닐 수 있게 돼

GP는 한국전쟁 결과로 생긴 공간이다. 전쟁이 끝난 1953년 7월27일 미국과 중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한국 군사정전에 관한 협정’(이하 정전협정)을 맺었다. 협정에 따라 남북은 군사분계선(MDL)을 중심으로 각각 2km씩 뒤로 빠져 남방한계선과 북방한계선을 설정하고 155마일(248km)의 공간을 비무장지대(DMZ)로 설정했다. 이후 남북은 남방한계선과 북방한계선을 중심으로 군사력을 경쟁적으로 집중시켰고, 비무장지대 안에도 각각 GP를 설치했다.

본래 정전협정에는 원칙적으로 비무장지대 안에서 권총과 보총(단발총)만 지닐 수 있게 돼 있다. 상주 인원도 남북을 합쳐 1천명 이내로 제한했다. 대규모 군사적 충돌을 막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1960년대 말 남북의 극단적 대립과 1970년대 냉전을 거치면서 남북은 GP에 자동소총(남은 K-1, 북은 AK소총)을 비롯해 수류탄·크레모아·50mm구경 기관포와 박격포 등 중화기를 배치했다. 병력도 1천명을 훨씬 넘는 3천~5천명가량을 상주시켰다. 이런 상황은 1990년대 이후에도 계속돼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를 남북 모두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번 사건의 전개 과정에서 일부에서는 정전협정 위반이 아닌지 논란이 일고 있다는 식의 주장을 폈는데 정확히 말하면 ‘논란’의 소지는 별로 없다. 명백한 ‘위반’이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만 어겼느냐”라는 점이 남는다. 북쪽도 GP에 상당한 무장력을 배치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GP는 고립무원의 폐쇄 공간이다. 철조망으로 둘러쳐진 전체 터가 대략 300평 안팎이고 성채처럼 둘러쌓인 콘크리트 블록의 벙커는 100평 안팎이다. GP 건물이나 시설은 중화기 정도는 웬만큼 버틸 정도로 견고하다. 그러나 전시에는 제1순위 타격대상이 되기 때문에 가장 먼저 피해를 입는 곳이다. 실제로 남북 모두 개전 즉시 포탄 세례의 집중점이 GP라고 한다. 통상 한개 소대 30명 안팎이 근무하다가 3개월마다 교체한다.

서부전선부터 동부전선까지 해당 지역의 여건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GP 터의 구조나 면적은 비슷하다. 남쪽에서 운용하는 것만 100개가 넘으며 북쪽이 운용하는 것까지 합하면 200개가 넘는다. 이번 사건으로 GP의 근무인원과 근무방식은 자연스럽게 세상에 알려졌다. 하지만 아직도 GP의 위치와 접근로로 들어가는 출입구 위치 등은 군사보안 사항이다.

펜타곤이 파견한 유엔사가 관할

그러나 우리쪽 GP에 대해 우리 군 당국만 알고 있는 건 아니다. 북쪽에서도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 북쪽 GP에 대해서 우리 군이 다 파악하고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남북 양쪽은 서로의 GP에 대해 비교적 상세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 다만 서로의 내부에 보안을 요구할 뿐이다. 통상 GP는 물론이고 비무장지대 경계철조망 주변 ‘OP’(Observation Post·고지관측소)의 기본 임무 가운데 하나가 상대쪽 GP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는 일이다. 155마일 모든 철책사단의 GP와 OP 관측소에서 관측장교가 고성능 일제 망원경으로 북쪽 GP를 비롯한 철책선 일대의 초소를 아주 꼼꼼히 감시하고 있다. 실제로 맞은편 병사가 GP의 초소에서 졸고 있는지, 담배를 피우는지, 농담을 하며 놀고 있는지 등까지 관찰한다.

GP는 분단이 낳은 극도로 폐쇄적인 공간이다. 물리적으로 GP 주변은 철조망을 벗어나서 한 발짝 앞을 갈 수 없는 미확인 지뢰지대로 죽음이 문 밖에 널린 공간이다. 정치·군사적으로 북한군과 유엔군의 합의가 없으면 공식적으로 어떤 행위도 할 수 없다. 그러나 종전 이후 GP 주변에서 무수한 충돌과 도발, 침투행위가 있었고, 이 때문에 싱싱한 청춘들이 피흘리며 비무장지대를 뒤덮은 풀꽃의 거름이 됐다.

GP는 비무장지대 경계인 남방한계선상의 철책선 라인의 통문에서 들어간다. 이 통문이야말로 GP와 외부로 연결된 유일한 통로다. 다만 통로의 출입에 관한 최종 결정권은 유엔사(미군)에 있다. 이번 사건도 그렇고 GP로 연결된 통문을 출입하는 모든 인원과 병력에 대한 통제는 유엔사에서 하며, 모든 출입시에 유엔사에 통보하도록 돼 있다. 비무장지대 철책을 따라 이동하다 보면 비무장지대 안의 GP를 멀리서도 식별할 수 있다.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유엔사 깃발이 나부낀다는 점이다. 요즘엔 태극기와 유엔기가 동시에 걸려 있다. 이것은 GP가 유엔사의 시설이라는 의미다. 실제로 GP는 유엔사 관할구역이며 주변 구역, 즉 비무장지대 내 군사분계선 이남 지역에 대한 배타적 결정권도 유엔사가 지니고 있다. GP는 법적인 엄밀성만으로 따지자면 대한민국 주권 지역이 아니다. 물론 군사적으로는 우리 군이 실질 관리하고 있지만, 정전협정에 따라 유엔사의 실질적 주축인 미군에 관할권이 있다. 유엔사의 주축은 미 펜타곤에서 파견 나온 미군이다.

GP에 관한 내용은 군인들 사이에서도 일부만이 경험하거나 이해하고 있다. 사병들은 물론이고 장교나 부사관으로 근무한 이들도 GP의 기본적인 지형과 형태, 근무방식은 제한적으로 알고 있다. 직업군인들도 잘 모르는 공간인 셈이다. 장교들도 소대장-중대장-대대장-연대장까지 근무하는 과정에서 직접 투입됐거나 지휘선상에 있는 경우가 아니면 제대로 된 이해가 어려운 곳이다. 비무장지대를 지키는 철책사단에서 근무했더라도 작전·정보 업무를 담당하는 참모부서나 진입로 정비 등의 공병부대 등에서만 제한적으로만 이해하고 있다. 다만, 기무사의 관련 업무 담당자들 정도가 소상히 알고 있는 정도다.

GP 기능과 운용 대폭 축소해야

이처럼 20~30년 군대 생활한 직업군인들도 직접 업무로 연결된 경우가 아니면 이해가 어려운 공간이 GP다. 지금까지 민간인 중에서 공식적으로 GP에 출입한 경우는 이번 총기난사 사건과 관련된 유가족, 기자단, 국회의원 등이 처음은 아니었다. 2000년 8월 경의선 공사를 위해 건교부와 환경부가 공동으로 조직한 경의선환경생태조사단 10여명이 공식적으로는 처음으로 기록된다. 당시 생태조사단은 해당 사단 수색대의 경호 아래 서부전선 사천강 평야의 비무장지대 안에 있는 GP를 방문해 약 1시간 동안 주변 생태계를 조사했다. 민간인의 GP 출입이 거의 없었던 것은 유엔사의 허락이 있어야 가능했기 때문이다. 이번 총기난사 사건의 조사와 확인을 위해 출입한 것은 극히 예외적인 경우다. 국방부가 신속히 유엔사에 통보하고 조치했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은 군의 역사에 한획을 그을 만한 사건으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사건 뒤 철책사단뿐만 아니라 후방 부대까지도 병사들에게 소원수리나 면담을 대폭 강화해 비슷한 징후에 대비하는 상황이다. 장교들도 어떤 의미든 사건의 파장이 어디까지 갈지 촉각을 세우는 분위기다.

정치권이나 언론은 조심스럽게 GP의 근무형태에 대한 대책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대책과 처방은 근본적으로 검토돼야 실효가 있다. 지금 방식대로 GP를 운용하는 것은 명백히 정전협정을 위반한다는 점을 두루뭉술하게 넘어가서는 안 된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어설프게 근무방식이나 첨단 관측장비의 도입을 논할 것이 아니라 남북의 고위급 군사회담을 통해 GP의 기능과 운용을 대폭 축소하거나 정리해 정전협정의 원칙대로 조정할 일이다. 그것이 휴전 이후 여태껏 GP와 그 주변에서 죽어간 병사들에 대해 살아 있는 이들이 감당해야 할 몫이다.



GP는 징병제 폐지의 딜레마?

GP-GOP 경계는 왜곡된 군 구조의 일등공신이자 이론적 바탕

GP는 분단의 상징이다. 남북 대치의 상징을 넘어 실제로 가장 첨예하게 대적하는 공간이자 군사적 거점이다. 그래서 징병제의 상징이기도 하다. 실제 사회 일각에서 활발히 제기되고 있는 징병제에 관한 대안적 검토 때마다 군의 반론에 공간적 상징으로 거론되던 것이 GP-GOP에 관한 경계임무였다.
국방부나 합참의 고위 관계자들은 사회에서 논의되는 대체복무제나 모병제 얘기가 나올 때마다 이렇게 말한다. “아직은 우리 군의 여건에서 징병제가 어쩔 수 없다. 전방의 철책을 누가 지킬 것이냐가 문제다. 우리도 모병제가 시대 추세에 맞다는 것은 알고 있다. 이미 내부적으로 검토도 하고 있다. 하지만 직업군인들로 155마일을 지키려면 그 예산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 정부나 국민이나 답이 있어야 한다.”
실제로 국민 정서도 이 부분에 관해서는 아직도 자유롭지 못한 게 사실이다. 많은 이들은 징병제가 상당히 낙후된 군대 시스템이라는 사실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모병제 전환의 실현 가능성 부분에서는 주춤하게 된다. 왜냐하면 단박에 나타나는 물리적인 철벽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GP와 GOP로 상징되는 비무장지대 철책의 방어와 경계 문제다. 육군 중심으로 비대해진 왜곡된 군 구조의 일등공신이자 이론적 바탕이 바로 GP-GOP의 경계였다.
징병제가 우리 군의 발전을 저해한 측면은 분명히 존재한다. 특히 장교들과 부사관들이 병사를 사병화하는 시대착오적인 낡은 시스템에 젖어들게 해 군의 체질과 효율성을 사회의 흐름과 동떨어진 것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이것을 극복할 현실적인 답에서 아직도 징병제는 우세에 있다. 바로 예산의 문제에 부딪히기 때문이다. 다만, 한 가지 짚고 가야 할 것은 징병제냐 모병제냐 하는 일체의 논의를 군에서 사회로 확장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정말 예산이 어느 정도 더 들어가는지 그래서 국민의 세금 부담이 얼마나 늘어나는지 합리적인 논의를 할 때가 된 것이다.
이번 GP 총기난사 사건이 이런 논의의 밑거름으로 작용할 것은 분명해 보인다. 세상 모든 일이 한번에 변화하기보다 우연으로 보이는 여러 일들이 쌓여서 필연으로 넘어가기 마련이다. 어쨌든 이번 사건은 국민들의 뇌리에 징병제의 아픔을 극단적으로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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