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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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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에서 망신당하실래요?

등록 2005-06-09 00:00 수정 2020-05-03 04:24

하노이 호텔에서 체포돼 강제추방된 ‘운 나쁜’ 10명의 한국인
베트남 당국은 ‘매춘 일소’ 다짐하면서도 관광산업 위축될까 고민 중

▣ 호찌민=글 · 사진 하재홍 전문위원 vnroute@naver.com

“이야, 색깔 좋은데? 우리 팀은 영 색깔이 꽝인데 말이야.”
공항에서 막 빠져나오는 단체 관광객을 한눈에 훑어내면서, 한국인 가이드들이 계산기 두드리듯이 툭 말을 던진다. 여기서 ‘색깔’이란 ‘관광객들의 호주머니 사정’을 뜻하는 여행업계의 은어다. 0순위로 떠오르는 색깔은 단연코, 40~50대 남성들로만 구성된 골프 관광팀이다.

‘단속 강화’ 외치지만 매춘 증가 일로

물론 전부는 아니지만, 흔히 ‘골프 관광’은 ‘매춘 관광’을 대체하는 용어로 사용된다. 성매매 특별법 시행 이후 ‘해소책’을 갈구하던 ‘집념’의 사나이들이 골프채를 메고 베트남을 찾고 있다.

같은 동양 정서, 아담하면서도 늘씬한 몸매,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영계, 비행기표값이 전혀 생각나지 않을 만큼 한국의 절반도 안 되게 싼 가격. 이렇게 베트남 매춘 관광은 ‘경험자’들의 입에서 시작된 소문이 널리 나 있고, 이 소문의 진상을 확인하려는 사람들을 끌어들인다. 대부분은 아무 뒤탈 없이 한국으로 안전하게 복귀하지만, 1년에 한번 정도는 베트남 공안당국에 의해 굉장한 ‘스릴’을 느끼기도 한다. 만약 그 스릴의 주인공이 되는 날에는 ‘영구 추방’의 철퇴를 맞고 다시는 베트남에 발을 들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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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28일이 바로 그 스릴의 날이었다. 밤 12시30분을 기해 하노이시 공안원 120여명이 헤리티지 호텔, 바오선 호텔, 투이꾸인 호텔로 ‘동시다발 돌격 출동’을 했다. 열쌍의 남녀를 객실 현장에서 체포하고, 헤리티지 호텔 내의 한국인이 운영하는 ‘치어스’ 가라오케에서 종업원 38명을 연행했다. ‘운’이 ‘죄’보다 365배 나빴던 한국인 열명은 이틀 동안 더운 유치장에서 조사받고 벌금을 문 뒤 30일 강제출국당했다. 그들에게 매춘을 알선한 혐의를 받고 있는 가라오케 사장 ㄱ씨는 30일 1시 출국을 시도하다가 하노이 공항에서 체포 압송됐다.

‘치어스’ 가라오케에 대한 ‘돌격 출동’이 감행되기 3일 전인 5월25일에 판반카이 총리의 특별지시가 있었다. “유흥업소 관리감독을 담당하는 각급 기관들은 술집, 가라오케, 나이트클럽 등에 대한 신규 허가 발급을 당분간 중단하고, 기존 업소들의 영업실태에 대한 감찰, 조사, 단속을 강도 높게 실시하라. 그 결과를 바탕으로 유흥업소에 대한 정책을 다시 세울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베트남 정부가 마약, 강·절도와 함께 3대 사회악으로 규정한 매춘은 해마다 반복되는 ‘단속 강화’ 의지 표명이 무색할 만큼 오히려 증가 일로에 있다.

“정부의 단속 의지를 믿을 수가 없어요. 밤 9시경이 되면 응우옌티민카이 거리 가로수와 전봇대마다 매춘여성들이 서 있죠. 그 가까이 사거리에는 교통경찰들이 서 있어요. 관광객이 봐도 매춘여성인 걸 한눈에 알 수 있는데, 경찰이 모른다는 건 말이 안 돼요. 단속기간이 되면 길거리에 서 있던 경찰과 매춘여성들이 함께 사라졌다가, 단속기간이 끝나면 다시 함께 나타나요. 무슨 단속을 하고 있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어요.” 베트남 당국의 매춘 단속 의지를 의심하는 베트남 여대생 까오티옥하(22·호찌민 인문사회과학대)의 말처럼, 베트남 현지 한국 교민들의 눈에도 ‘단속’이라는 것이 일종의 짜고 치는 고스톱처럼 여겨지고 있다.

베트남 교도소에 복역 중인 한국인 업주도

호찌민시와 하노이시에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가라오케가 약 20여곳 있다. 대부분의 한국인 업주들은 이번의 치어스 가라오케 사건에 대해서, 단속 뒤에 숨겨진 ‘사고’가 있는 것이 아닐까 추정하는 분위기다. 이전 단속 또한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2002년과 2003년에 각각 호찌민시의 서울 가라오케와 메두사 가라오케가 단속·처벌됐다. 그때 메두사 가라오케 업주 ㅈ씨는 4년 실형을 선고받고 현재 베트남 교도소에서 복역 중일 뿐 그 외 다른 가라오케들은 별탈 없이 지금껏 운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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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정부의 이번 단속 의지는 예년과 다를 것인가. 지난 6월1일에 있었던 문화통신부 기자회견에서 팜꽝응이 장관은 기자들에게 착잡한 심정을 토로했다. “매춘 근절에서 정부가 국민의 기대치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정말 어수선한 상황입니다. 매춘 단속에는 확실한 증거가 확보돼야 하는데, 그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습니다. 게다가 단속에 총력을 기울여도 인력이 부족한 실정인데, 정작 단속에 나서야 할 관리들이 소극적으로 움직이고, 일부는 매춘업소의 뒤를 봐주거나 아예 업소 경영에 직접 나서는 경우까지 있습니다.”

베트남의 매춘방지법령에 따르면, 국가 관련 기관의 공직자가 매매춘을 하는 경우 1천만동(약 70만원)의 벌금과 함께 공직 면직 조치를 당하고, 영구히 공직에 오를 수 없다. 또한 매춘업소 운영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되면 벌금과 면직 조치, 형사처벌을 받게 된다. 그럼에도 일부 공직자들이 매춘업소 운영에 연루되는 까닭은 들어오는 수입 때문이다. 시장 개방의 높은 파고 속에 함께 스며든 황금만능의 유혹은 공직사회의 기강을 무너뜨릴 만큼, 매춘산업의 강력한 촉매제 기능을 하고 있다.

“아마도 한 두어달 정도 조심하면 되겠지요. 외국 관광객들이 지갑에서 꺼내놓는 돈의 약 30%가 유흥업소에 관련된 돈이고, 남성의 경우만 따져보면 50%를 넘는 것이 흔한 일입니다. 그런 돈들이 베트남 여행산업의 주요한 수입원인데, 무작정 단속만 하자니 분명 정부쪽으로서도 딜레마가 있을 수밖에 없지 않겠어요?”

베트남 현지에서 10년 넘게 여행사를 운영하고 있는 ㄹ지사장의 얘기다. 그는 또한 ‘골프’ 관광팀이 한국 여행사들의 주요한 수입원 중 하나이기 때문에, 베트남 현지의 10여개 한국 지사들 중에서 ‘골프’ 관광팀을 포기할 여행사는 단 하나도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베트남 관광총국의 자료에 따르면 관광산업은 베트남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12%를 차지하는데, 2005년 들어 베트남을 찾아오는 한국인은 한달 평균 15만명가량이다. 이는 전체 외국인 방문객의 10%, 국가별로는 중국, 미국, 대만, 일본 다음 가는 다섯 번째에 해당한다.

‘관광객 전담 보호 경찰단’의 역할은…

베트남 당국은 관광산업 활성화를 목적으로 현재 정기국회에서 ‘관광총국’을 ‘관광부’로 승격시키는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 또한 오는 10월에는 관광객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 ‘관광객 전담 보호 경찰단’을 출범시킬 예정이다. 관광객 대상 소매치기, 강도, 마약 판매, 매춘 등의 행위를 예방 및 색출해 처벌하고, 구걸이나 행상인들의 물건 판매 행위도 근절시킬 계획을 갖고 있다.

여행사들은 벌써부터 ‘관광객 전담 보호 경찰단’의 역할이 어디까지일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매춘 알선의 죄목으로 여행사가 처벌을 받는 경우도 종종 발생하기 때문이다. 물론 관광산업이 위축될까봐 베트남 당국이 외국 여행사를 처벌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3대 사회악을 추방하자’라는 구호가 쓰인 예전의 사거리 대형 선전판은 오늘날 음료수나 샴푸 광고판으로 대체됐다. 이런 거리 표정처럼 매춘 문제는 공중도덕과 시장 공세의 충돌 속에서 앞으로도 난제 중의 난제로 남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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