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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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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기와의 전쟁, 1번타자 이헌재

등록 2005-03-08 00:00 수정 2020-05-02 04:24

부인 투기 혐의로 정부정책에 대한 냉소감 극대화… “그래서 부동산세 강화 반대했나" 시선까지

▣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대체 이건 무슨 심보야! 경제라면 그래도 한가닥 안다는 사람이, 부동산 투기가 경제를 얼마나 좀먹고 멍들게 하는지 뻔히 아는 양반이 자신은 땅투기로 수십억을 꿀꺽 해먹고 이제 국민들은 하지 마라 이런 것밖에 더 돼?”(냉정하게 분노한 이)

“어떻게 서민들 생각은 않고 자신의 재산 증식을 위해 그런 정책을 펼 수 있다는 말입니까?”(강상훈)

‘투기와의 전쟁’ 대통령 선언 하자마자

이헌재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의 부인이 땅투기 혐의에 휘말린 데 따른 사람들의 분노와 절망감은 재경부 홈페이지 ‘자유발언대’에서 절절하게 드러났다. 이 부총리가 3월3일 기자회견을 통해 “재산 등록과 관련해 물의를 일으킨 데 대해 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사과의 뜻을 밝힌 뒤에도 비난 글은 끊임없이 폭주했다. “청와대에서 재신임을 한 만큼 이제 인정하자”(직장인)거나 “지난날의 과오를 들춰서 흔들기보단 앞으로 더 열심히 일하라고 촉구해야 할 것”(실업자)이라는 동정은 숱한 비난 글에 흔적 없이 묻혔다. 어쩌다 “부총리님, 힘내세요”(금종섭)라는 글이라도 실리면 “힘내서 부동산 투기 더 하라고?”(최영철)라는 비아냥성 댓글이 잇따랐다.

이 부총리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드셌던 것은 경제 수장이란 그의 직책에서 비롯되는 것만은 아닌 듯하다. 우선, 절묘한 타이밍(투기 혐의가 불거진 시점) 문제를 들 수 있다. 이 부총리 부인의 투기 혐의는 2월28일치 <한겨레> 보도로 처음 드러났다. 노무현 대통령이 2월25일 취임 2주년 국정연설을 통해 “투기 조짐이 있을 때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반드시 막겠다”고 한 직후였다.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 선언’이라고까지 치켜세워진 대통령 발언의 여운이 귓가에서 사라지기도 전에, 이 선언을 정책으로 옮겨야 할 경제부총리는 투기 혐의에 엮인 기묘한 부조화는 정부 정책에 대한 냉소감을 극대화하기에 딱 좋은 소재였다.

또 하나, 이 부총리가 1가구 3주택 양도소득세 중과세를 비롯한 세제 강화,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 등 주요 부동산 정책을 둘러싸고 청와대쪽과 대립각을 세워가며 반대 뜻을 밝혔던 이력도 그에 대한 비난의 농도를 높인 요인으로 꼽힌다. 사실 여기서 비롯된 반감이 무엇보다 컸던 것으로 보인다. 네티즌들로부터 “아, 이제 알겠다. 종합부동산세 도입과 3주택자 중과세를 반대했던 게 결국 자기 땅 때문이었구만” 하는 식의 조건반사적인 반응을 낳았던 것이다.

이 부총리는 지난해 2월 취임 뒤 땅과 집을 많이 가진 이들에게 세금을 무겁게 물리는 갖가지 조처에 불편한 뜻을 줄곧 밝혀왔다. 지난해 12월3일, 기자간담회에서 벌어진 파문이 한 예다. 이 부총리는 이 자리에서 “양도세 문제는 보유세 개편과 연관돼 있는데 아직 (보유세가) 국회에서 논의조차 안 되고 있다”며 “(유예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2003년 ‘10·29 대책’에 따라 1가구 3주택 이상 보유자에 대해 양도소득세를 차익의 60%까지 매기는 방안을 2005년 1월부터 시행한다는 정부 방침이 정해져 있던 때였음에 비춰 주요 정책의 방향 선회 가능성을 비친 셈이다.

이 부총리는 앞서 11월12일 기자간담회에서도 “부동산 거래가 끊긴 상황인 만큼 내년에 (양도세 중과를) 시행하는 것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며 “보유세 부담이 늘어나는 만큼 (매각) 기회를 한번 더 줘야 한다”고 말했다가 11월23일 청와대쪽(이정우 정책기획위원장)의 제동을 받은 바 있다.

지속적으로 세제 강화에 반대해온 이력

이에 대해 재경부쪽은 “3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중과 연기를 조건으로 걸어 종합부동산세를 반드시 도입하려고 했던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종합부동산세는 지방자치단체가 부과하는 종합토지세 외에 일정 기준을 초과하는 토지와 주택 소유자에 대해서 국세청이 별도로 누진세율을 적용해 부과하는 국세로 10·29 대책의 핵심 과제였다. 부동산 정책의 두 축 가운데 하나를 양보 카드로 삼아 나머지 하나를 관철하려는 협상 전략이었다는 것이다. 이 부총리도 지난해 12월 한 모임에서 “부동산 보유세 인상안 입법 과정에서 한나라당의 반대를 무마하기 위해 양도세 중과세의 시행 시기 연장을 협상 카드로 삼으려 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눈여겨볼 대목은, 이 부총리가 3주택자 양도세 중과세에 대해선 부정적인 뜻을 밝힌 적이 많았던 데 견줘 종합부동산세 도입에 대해선 이렇다 할 견해를 표시한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재경부쪽 설명대로 이 부총리는 종합부동산세 도입을 위해 양도세제 강화를 양보하려 했던 것일까?

이 부총리는 지난해 2월18일 국회 경제분야 대정부 질의에 대한 답변에서 “부동산 세제 문제는 별도로 시간을 두고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으며, 이틀 뒤인 20일 취임 뒤 첫 언론 브리핑에서는 “주택시장은 기본적으로 공급 능력을 높여 수요와 균형을 맞추고 가격을 안정시키는 게 옳다”고 밝힌 바 있다.

겉보기에 종합부동산세 도입을 연기한다거나 반대한다는 뜻이 뚜렷하게 담겨 있지는 않으나, 종합부동산세 도입을 둘러싼 논란의 와중이었다는 맥락에서 읽을 때 부정적인 메시지가 녹아 있다는 해석을 낳기에 충분하다.

김한기 국장(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정책실)의 설명을 들어보자. “종부세 도입을 비롯한 10·29 대책이란 게 비정상적으로 돼 있는 세제를 정상화하자는 것이었다. 세제의 긍정적인 면을 살리자는 것이었지, 세제를 강화해 수급 원리를 작동하지 못하게 하자는 게 아니었다. 우리나라 주택시장이 굉장히 비정상적이어서 시장기능이 작동하지 않는데도 이 부총리는 수급 조절을 통해 가격을 조절할 수 있다는 견해를 보여왔다.” 수급을 맞춰 가격을 안정시킨다는 원론적인 언급의 속내는 종합부동산세를 비롯한 세제 강화에 대한 반대였다는 설명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를 ‘땅을 많이 가진 이 부총리가 사적 이익을 위해 자신에게 유리한 정책 방안을 제시했다’는 식으로 이어가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 부총리의 부동산 보유 사실과 특정 사안에 대한 그의 발언을 직접 연결지을 수 있는 의혹의 고리가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부총리는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 논란 때 공개 반대쪽에 서고, 취임 직후 토지규제 합리화 방안(지난해 6월25일)을 내놓은 데서 엿볼 수 있듯 부동산 시장에서도 시장 자율 원칙을 강조해왔다. 종합부동산세 도입 및 3주택자 양도세 중과세에 대한 거부감 또한 이런 원칙과 맥이 닿는 것으로 여겨진다. 결국 주요 부동산 이슈에 대한 이 부총리의 발언은 사적 이해관계와 직결돼 나왔다기보다 개인적 소신(그게 옳든 그르든)을 드러낸 것으로 풀이하는 게 지금으로선 적절할 것 같다.

‘지도층’의 재산증식과정, 엄중하고 투명하게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경제부총리의 소신이 땅을 둘러싼 사회적 이해관계와 뒤얽히면서 특정한 사회 계층을 대변하는 것으로 읽힌다는 점이다. 이는 곧 전반적인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성 추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정책 불신은 설사 이 부총리가 사퇴하고 다른 누가 부총리직을 이어받더라도 쉽사리 해소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헌재 사태’는 우리 사회에서 이른바 ‘지도층’(사실은 기득권층)들의 ‘평균적인’ 재산증식 과정과 도덕 수준을 보여주는 것일 뿐 특이 사례로 여겨지지 않기 때문이다.

공직자의 부동산 정보를 투명하게 드러내고, 재산등록제도를 좀더 촘촘히 짜는 방안을 통해 정책 불신을 조금이라도 해소하는 신뢰 회복 방안이 필요해 보인다. 이 부총리의 부정적인 태도에도 불구하고 종합부동산세 도입, 3주택자 양도세 중과세 방안이 관철됐다는 사실로 위안을 삼기엔 우리 사회의 ‘땅 문제, 집 문제’가 엄중하기 때문이다.

한겨레 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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