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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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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 발언, 고이즈미도 못잡나

등록 2005-03-09 00:00 수정 2020-05-03 04:24

흔들리는 총리 리더십에 가시화되는 일본 우경화… 북핵 공조 한-일 동반자 관계는 어디로?

▣ 임을출 기자 chul@hani.co.kr

“북핵 공조냐, 아니면 독도 고수냐.” 노무현 정부가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북핵 문제가 뜨거운 현안으로 떠오른 지금 일본과의 공조는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는 게 정부의 시각이다. 그런데 돌연 ‘독도는 일본 땅’이라고 다카노 도시유키 주한 일본대사가 발언하는 등 북핵 공조 전선을 뿌리채 뒤흔들고 있는 것이다. 6자회담에 깊숙이 관여해왔던 외교부 고위 당국자에 따르면 정부는 그간 북핵 해결을 위한 6자회담 무대에서만큼은 일본과 돈독한 우의를 다져왔다. 미국이 북한에 너무 거칠 게 나올 때는 한목소리로 싸움을 진정시키기도 했고, 더 유연한 대응을 요구해 실제로 긍정적인 성과를 낳기도 했다. 그러나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망언이, 그것도 서울 한복판에 주재하는 일본대사의 입에서 흘러나오면서 정부는 당혹감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 독도 망언을 제쳐둔 채 북핵 공조만 외칠 수 없는 상황에 맞닥뜨리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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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정부는 2월10일 북한의 핵 보유 선언이 나오기 전부터 남몰래 속병을 앓아왔다. 일본의 집권여당인 자민당과 야당인 민주당 등 여야는 납북자인 요쿠다 메구미 등의 유골이 가짜라면서 북한 제재와 미국의 법안을 본뜬 ‘북한인권 법안’ 제정에 박차를 가해온 탓에 이전처럼 일본을 다독여 한 방향으로 나아가기가 쉽지 않게 된 상황이다.

극우파 반대 무릅쓰고 ‘평양 선언’끌어냈지만

이런 터에 불거진 북한의 핵 보유 선언과 일본의 독도 망언 등은 적어도 북핵을 둘러싼 한-일 공조의 틀을 깨뜨릴 위험성까지 내포하고 있다. 문제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 자신은 이를 결코 원하지 않았던 상황이라는 점에서 더 우려를 자아낸다는 게 정부의 시각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최근 일본의 우경화는 고이즈미 총리의 리더십 위기의 징표라고 조심스럽게 지적한다. 일본 우파들의 북한 때리기가 연일 계속되고 있지만, 그는 신중한 대응을 주문하며 버텨왔다. 그러나 그의 신중한 태도 고수는 갈수록 허물어지고 있다. 극우파에 포위된 외로운 우파의 신세로 전락한 꼴이다. 고이즈미는 자신의 임기 내에 북한과 정상적 관계를 맺겠다고 강한 의욕을 보여왔다. 다만, 일본인 납치와 북핵 문제 등으로 북-일 수교 교섭이 교착상태에 장기간 빠져 있는 걸 크게 아쉬워했다. 그러나 그는 북-일 수교 교섭의 장기 교착과 대북 제재 논의가 일본의 대한반도 및 동북아 외교 전체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래서 극우파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지난 2002년 9월에 이어 2004년 5월 두 번째로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 일본인 납치 피해자 가족의 귀환 등의 문제를 진전시켜놓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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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1차 방북 때 채택한 ‘평양 선언’은 북-일 관계를 한 단계 끌어올린 역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2002년 9월에 나온 이 선언은 일본이 과거 식민지 지배에 대해 사죄와 보상을 하고, 북한은 장거리 미사일 발사 시험을 보류한다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북한이 평양 선언의 이행을 약속하자, 일본은 식량 25만t과 1천만달러의 의약품을 제공하고 대북 경제 제재 관련법을 발동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고이즈미는 이런 지원에 대해 ‘피납자 가족 일본행의 대가’라느니 “북한에 너무 많은 것을 주었다”는 거센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나름대로 북한과의 약속을 지키려 노력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비슷한 맥락에서는 그는 6자회담장에서도 한국과 보조를 맞추며 가끔은 함께 미국의 등을 떼밀며 핵 문제의 조기 해결을 모색해왔던 것이다.

우파, 북한인권법·교과서·북한산 게 불매…

그러나 애초부터 고이즈미의 독주는 위태롭게 보였던 것도 사실이다. 대북 정책과 관련해 그의 권위나 리더십에 도전하는 목소리는 이전에도 적잖게 흘러나왔다. 고이즈미가 “평양 선언을 준수하는 한 경제 제재 조치를 발동하지 않겠다”고 밝혔으나 자신의 소속당인 자민당 납치문제대책본부는 북한 선박의 일본 입항 규제를 겨냥한 특정선박입항금지법을 국회에서 제정하기로 합의했다. 또 지난 해 5월 정상회담을 계기로 북한과 수교 협상을 재개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으나 호소다 관방장관은 “수교협상 재개를 서두르지 않겠다”고 엇박자를 치기도 했다. 이처럼 고이즈미의 내각 혹은 당 장악력은 탄탄해 보이지는 않았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은 ‘2005년 일본 정세’를 전망하면서 “고이즈미 총리는 임기 중에 (북한과의 수교를 추진함으로써) 일본 외교 과제를 해결하였다는 업적을 남기고 싶어할 것”이라면서도 “(일본인 납북자 가짜 유골 사건으로 악화된 여론으로) 대화를 지속해 북-일 수교를 앞당기고자 하는 고이즈미 총리를 포위해나가는 정치인들의 비판 수위가 높아져 이것이 북한 압박 정책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북한도 최근 일본을 비난하면서도 고이즈미가 아닌 다른 특정 극우파 인사를 겨냥한 비난들을 내놓고 있다. 특히 대북 제재론을 강하게 펴온 아베 신조 자민당 간사장 대리는 주요 표적이다. 3월1일에도 북한의 <민주조선> 논평은 그를 겨냥해 “최근 아베는 입만 벌리면 대북 경제 제재에 대해 떠들고 있다”며 “아베의 체질화된 반공화국 히스테리는 정치적 야심 실현을 위한 인기 획득을 노린 것”이라고 비꼬기도 했다. 주한 일본대사 등의 독도 일본 영토 주장도 정치적 인기에 영합한 고삐 풀린 각료나 정치인들의 망언으로 보는 전문가의 견해가 많다. 전문가들의 우려는 이제 고이즈미가 극우파의 압박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거나, 그도 국내 정치적 인기를 노려 아예 극우파의 등에 올라탈 경우 사태는 겉잡을 수 없이 흐를 수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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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극우파들의 준동을 보여주는 최근의 사례는 이제 일일이 세기도 어려울 정도다. 일본 정부는 과거사를 미화한 우파 성향의 역사 교과서 채택을 적극 장려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들의 북한 때리기도 갈수록 도를 더해가고 있다. 일부 극우단체는 북한산 게 등 수산물 불매운동을 벌이는가 하면, 당국은 북한 선박 운항도 규제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일본 정부는 100t급 이상 모든 선박에 대해 해상 석유 유출과 기타 환경피해 사고에 대비해 고액보험 가입을 의무화했다. 해상보험 가입률이 극히 낮은 북한 어선들의 입항을 막기 위한 조처다. 이에 따라 북-일 관계는 최악으로 흐르고 있다. 북한은 3월2일 외무성 비망록을 통해 북-미·북-일 합의에 따라 유예한 미사일 발사 실험도 재개할 수 있음을 내비쳤다. 중장거리 미사일은 미국보다는 일본을 겨냥하고 있다는 점에서 양쪽 사이의 긴장도를 잘 보여준다.

미국과 손잡고 중국을 ‘가상의 적’ 삼나

일본 극우파들은 전선을 확대해 중국과도 일전을 불사하겠다는 호기를 부리고 있다. 중국의 동북아 지역 패권 부상을 사전에 막으려는 미국의 부시 행정부와 일본 극우파들은 전례 없는 밀월을 즐기고 있다. 이제는 노골적으로 중국과 각을 세우며 긴장을 부추기는 형국이다. 2월19일 미-일 국방·외교 장관의 이른바 ‘2+2’ 회담 공동성명에서 ‘대만 해협의 안보 문제’를 두 나라의 ‘공동 전략목표’로 명시한 것과 미-일 신방위지침은 중국을 ‘가상의 적’으로 삼으면서 중국의 거센 반발을 샀다. 또 중국과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겨냥한 미사일방어(MD) 시스템 구축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미국의 지원을 등에 업고 헌법 개정과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최근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이 일본의 군국주의를 부추긴 미국에도 책임이 있다는 견해를 내놓기도 한다. 일본이 ‘이성’과 ‘합리’에 기대기보다는 브레이크 없는 우경화의 길을 걸으면서 독도 영유권 주장쯤은 우습게 하게 됐다는 지적이다. 일본의 우경화는 북핵 문제 해결에도 어두운 그림자를 짙게 드리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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