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준론자들의 PISA 결과 깎아내리기… 정작 심각한 건 평가에 드러난 낮은 성장가능성과 학교간 학력격차
▣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학업성취도 국제비교연구’(PISA) 결과를 둘러싸고 해묵은 평준화 논쟁이 재연되고 있다. 평준화론자들은 이번 PISA(2003) 결과가 평준화 교육의 우월성을 입증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비평준화론자들은 평준화 정책의 문제점을 여전히 드러냈다는 반론을 펴고 있다.
>‘상위5% 성적 하향’은 과장 해석PISA를 주관한 OECD는 한국 학생(만 15살)들의 평가 결과가 좋게 나온 원인이 평준화 정책에 있음을 공식적으로 확인했다. 베르나르 위고니에 OECD 교육국 부국장은 지난 12월8일 한국을 방문해 PISA 결과를 설명하면서 “공부 잘하는 학생과 못하는 학생을 모아놓으면 성적이 많이 오르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한국도 평준화 정책으로 이같은 현상이 일어났을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이번 평가에서 유일하게 전 과목에서 한국보다 좋은 성적을 낸 핀란드는 학생들의 경제적 배경과 장애 여부 등을 가리지 않고 한 학교에서 함께 교육시키는 ‘원칙적인’ 평준화 정책을 펴는 나라다. PISA 결과는 공신력 있는 국제기구가 평준화 교육의 우월성을 인정한 것이어서 정부의 평준화 정책이 더욱 힘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광고

하지만 비평준화론자들의 기세도 만만치 않다. 이들은 상위 5% 학생들만 비교했을 때의 순위가 전체 참가 학생들의 순위보다 떨어진 것을 근거로 제시한다. 평준화 정책이 전체적으로 ‘하향 평준화’를 가져와 상위권 학생들의 국제 경쟁력이 OECD 선진국들에 비해 떨어진다는 논리다. 비평준화 진영의 대표적 언론인 는 “최상위권 학생들의 국제 경쟁력이 그 국가의 미래 경쟁력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볼 때 전체 등위는 한국보다 낮아도 최상위권 등위는 한국보다 높은 일본·홍콩·벨기에 등의 미래가 더 밝다고 할 수 있다”며 “한국의 평준화 교육에 일부 문제가 있음이 드러난 것”이라고 주장했다(12월8일치).
광고
그러나 이 주장은 실제 결과를 과장되게 해석한 측면이 있다. 한국의 전체 학생(5612명)의 학업성취도는 문제해결 능력 1위·읽기 2위·수학 3위·과학 4위였고, 상위 5%는 각각 3·7·3·2위로 나타났다. 최상위권 학생 순위가 뒤지는 것은 문제해결 능력과 읽기 항목뿐이고, 과학은 오히려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각 항목에서 모두 OECD 평균보다 월등하게 좋은 성적을 냈기 때문에 우려할 만한 수준이 아니다. 교육부 관계자는 “상위 5%의 성적은 지난 2000년 때보다 성적이 많이 올랐다”며 “전반적으로 우리 최상위권 학생들의 성적은 우려할 만한 수준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2000년 PISA(PLUS) 때는 상위 5%의 읽기는 21위였고 수학, 과학은 각각 6위였다. 읽기는 OECD 평균(653점)보다 적은 629점을 기록해 우리의 독서 교육에 큰 문제가 있음이 드러났다. 하지만 읽기는 독서량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이는 최상위권 학생들의 독서량이 부족한 탓이지 평준화 정책 때문이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또 명문 사립고가 많이 있는 미국과 영국은 이번 평가에서 전체 학생 순위는 물론 최상위권 학생들의 순위도 한국보다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최상위권은 OECD 평균에 훨씬 못 미치는 것으로 평가돼, 두 나라의 교육제도에 문제가 있음이 드러났다.

광고
OECD도 부정한 ‘사교육 영향론’
비평준화론자들의 또 다른 반론은 ‘PISA 흠집내기’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게 사교육의 영향을 은근히 강조하는 것이다. 한나라당 이주호 의원은 지난 12월9일 보도자료를 내고 “한국 학생들의 과외 시간은 주당 9.3시간으로 세계 3위 수준”이라며 “학교 수업에 비해 상당히 많은 시간을 과외에 쏟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의원은 “교육당국은 이번 결과를 학교 교육의 성과로 돌리기 이전에 문제점을 밝혀내고 이를 정책에 반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견해는 다르다. 평가원 관계자는 “9.3시간에는 개인 과외와 학원을 제외하고 기타로 분류된 4.2시간이 포함돼 있는데, 이는 과외 교사를 두고 하는 게 아니라 스터디 그룹 등 학생들의 자발적 학습 시간에 해당된다”며 “우리는 학교 교육도 세계 최고 수준인 30시간으로, 이번 결과는 공교육의 영향이 더 크게 작용했다”고 밝혔다.
PISA 성적과 사교육의 상관 관계는 OECD에 의해서도 부정됐다. 위고니에 부국장은 “사교육은 세계적 현상으로, 그리스·터키·러시아·멕시코·헝가리 등의 사교육이 한국보다 심하지만 학업성취도는 높지 않다”며 “한국의 높은 학업성취도에 대한 사교육의 영향은 크지 않다”고 밝혔다. 이 밖에 PISA의 표본집단 추출에 의혹을 제기하는 등 ‘PISA 흠집내기’는 다양하게 진행되고 있다. 평가원 관계자는 “국제회의에 나가면 외국의 교육 관계자들이 ‘한국 학생들은 PISA 시험을 너무 진지하게(seriously) 본다’는 둥 우리 학생들의 성적을 폄하하는 말을 자주 들어 속상한데,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현상이 벌어지니 어처구니가 없다”고 말했다.

한편, 평준화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이번 PISA 결과가 마냥 좋아할 일은 아니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이들의 지적은 학업성취도는 높게 나왔지만 성장 가능성을 나타내는 지표가 낮게 나온 것에 모아진다. 가톨릭대 성기선 교수(교육학)는 “학업에 대한 흥미도와 자신감이 있어야 지속적으로 학업성취도가 성장할 수 있는데, 이 지표가 다른 나라들에 비해 안 좋은 것은 우리 학생들의 경쟁력이 장기적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이번 PISA는 수학을 기준으로 이런 ‘정의적 태도’를 평가했는데, 한국은 모든 항목에서 OECD 평균에 크게 모자랐다. 반면 미국과 독일, 프랑스, 핀란드 등 유럽 선진국들은 이 점수가 높게 나왔다.
정의적 태도란 교과 흥미도·학습 동기·문제 해결에 대한 자신감, 협동학습 선호도, 평생학습에 필요한 자기주도적 학습 능력 등을 말한다. 전문가들은 우리 학생들이 정의적 태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중·고교 때는 우수하지만 대학만 가면 경쟁력이 떨어지는 현상이 나타난다고 지적한다. 성 교수는 “이는 입시 위주의 교육 탓으로, 학습 태도가 타율적이고 학습량이 지나치게 많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며 “만 15살 때는 학업성취도가 조금 낮더라도 학생들의 정의적 태도가 높게 나오는 게 오히려 더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흥미·자신감 등 ‘정의적 태도’ 낮아
전문가들은 이번 조사에서 학교간 학력 격차가 심하게 나타난 것도 우려하고 있다. 학교 안의 학력차는 평준화 교육으로 인한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학교간 격차는 교육에 부정적으로 작용한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한국의 학교간 학업성취도 격차는 OECD 28개 회원국 가운데 10위로 높게 나타났다. 반면, 이번 조사에서 세계 최고의 학력 수준을 과시한 핀란드는 학교간 격차가 아이슬란드에 이어 두 번째로 낮았다. 교육부 관계자는 “핀란드의 사례는 서울과 지방, 서울 강남·북의 학력차를 해소해야 하는 이유를 정확하게 말해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광고
한겨레21 인기기사
광고
한겨레 인기기사
임은정 검사 “즉시항고” 게시글, 검찰 내부망서 2시간 만에 삭제
헌법재판관 3명이 반대? 탄핵 선고 늦어지는 진짜 이유 [The 5]
[속보] 민주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43%’ 여당안 조건부 수용
삼가 고(故) 검찰의 72시간 명복을 빕니다
감사원장·검사 탄핵 기각됐지만 “윤석열 탄핵심판 영향 없을 것”
윤석열 탄핵 찬성 58%…중도층은 69% 찬성 [갤럽]
최상목, ‘명태균 특검법’ 거부…2개월 만에 8번째
조갑제 “윤석열 만장일치 파면될 것…기각은 ‘계엄령 면허증’ 주는 꼴”
[단독] 여인형, ‘위헌심판’ 신청 “군검찰 조서 증거능력 제한 안 둬”
국민연금, 삼성전자 전영현 이사 선임 반대…“기업가치 훼손 이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