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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교수들은 침묵하고 있을까

등록 2004-10-15 00:00 수정 2020-05-03 04:23

고교등급제 파문에도 양심선언 하나 없어…소수 통제 가능한 교수들만 평가 참여

▣ 강성만 기자/ 한겨레 사회부 sungman@hani.co.kr

지난 3년여 동안 소문과 의혹으로만 떠돌던 고교등급제의 실체가 확인되자 서울 강북이나 지방의 학생·학부모·교사들은 경악했다. 믿고 싶지 않았던 일부 사립대와 강남 그리고 특목고의 ‘검은 유착’이 한순간 그 정체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교육부식 표현에 의하면 “고교등급제를 일부 적용한 것으로 보이는” 이화여대와 연세대, 고려대는 물론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다. 출신 고교와 지역이 아니라 학생 개인의 학업 능력을 종합적으로 평가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 대학의 올 1학기 수시 합격생 수의 분포를 보면 항변은 설득력이 없다.

학교별 가이드라인 마련해 활용했다

교육부는 서초와 강남, 그리고 송파 등 서울의 3개 구 출신 합격생 비율과 강북·지방과 함께 비교한 자료를 내놓았다. 부동산업계쪽에서는 강동까지를 이른바 강남권역으로 치지만 대학쪽에서는 강동 지역 학교를 강남에서 제외한다는 게 교육부의 설명이다.

3개 구의 일반계 고교 학생 수는 전국 대비 5% 정도에 불과하다. 이 지역의 사회·경제적 수준과 이에 따른 교육열을 감안할 때 합격생 비율이 전국 대비 2~3배 정도 높지 않겠느냐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었다. 최대로 늘려 잡아도 20% 이상은 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같은 게 있었다. 실제 국감 자료를 보면 지난해 고려대의 수시 1학기 합격생의 9.5%가 서초와 강남 지역 학생이었다.

하지만 교육부 실태조사 결과 드러난 연세대와 이화여대의 올 수시 1학기 강남 학생 비율은 이런 상식을 여지없이 짓이겨버렸다. 이화여대와 연세대 입학생 가운데 36.1%와 35.3%가 전국 대비 5%에 불과한 강남 학생들이었다. 고교등급제를 하지 않았다는 이들 대학의 반박의 허구성은 실태조사 대상에 오른 서강대와 성균관대, 한양대 등 다른 대학의 강남 학생 비율을 살펴보면 확연해진다. 세 대학은 각각 11.4%, 8.3%, 12.6%의 비율을 보였다. 이대·연대의 강남 학생 비율과 3~4배의 차이를 보인다.

이들 대학의 부인에도 교육부는 왜 이대 등이 고교등급제를 적용한 것으로 보는 것일까. 평준화 체제에서 고교간 학력차가 존재하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래서 각 고교들은 2000년 이후 각 고교의 수능성적과 당해 대학 입학생 수 등 학교의 특성을 보여주는 각종 자료들을 축적해놓고 있다. 실제 이번 조사로 등급제 적용 의혹을 털어버린 한양대의 최재훈 입학관리실장도 “고교별 특성을 분석해놓은 자료를 모으고 있으며 입학제도개선 연구팀에서 참고자료로 활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즉, 자료를 가지고 있지만 수시 전형의 서류평가 등에 참여하는 교수들에게 직접 보여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화여대와 연세대는 고교별 학력차가 일목요연하게 드러나는 이런 자료들을 교수 평가위원들에게 직접 전달해 평가자료로 활용하도록 했다는 게 교육부 설명이다. 교육부는 이번 조사에서 고교 유형과 지역별로 서류 평가 때 각각 어느 정도의 점수 차이를 둘 것인지 명시하는 구체적인 지침 등을 찾아내지는 못했다. 하지만 교육부는 이들 대학이 학교별 점수 차이를 규정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활용했으리라는 점을 의심하지 않고 있다. 결과적으로 등급제 적용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에 “그것까지 까발릴 필요는 없겠다 싶어 더 이상 추적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이화여대의 경우 자기소개서 평가에서 특목고와 강남, 강북 등 학교 유형과 지역별로 일정한 점수대가 형성되어 있고 같은 학교 출신 지원자들 사이에서는 거의 점수차가 나지 않았다. 자기소개서는 학생별로 천차만별일 텐데 특정 특목고의 경우 지원자 모두 80점 이상을, 특정 비강남고 지원자는 모두 70점 이하였다는 것이다. 학교를 차별하라는 문서상의 지침이나 구두 지시가 없었다고 부인하더라도 실제 드러난 결과가 확증이 되는 셈이다.

평가위원 교수의 수도 밝혀내지 못해

지난 8월30일 의 ‘고려대 고교등급제 적용 시사 파문’ 기사가 나가면서 물 위에 드러난 ‘고교등급제’를 취재하면서 가장 큰 의문은 “왜 교수들은 침묵하고 있을까”였다. 대입 전문가들이나 교사들은 연세대와 이화여대 등의 고교등급제 적용을 확신하고 있었다. 이 분야에 오래 종사했고 전문가일수록 그 확신의 강도는 셌다. 그런데도 연세대 교수사회 안에서는 어떤 양심선언이나 제보도 없었다. 서류 평가 등에 상당수 교수들이 참여하기 때문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항의하는 교수들이 몇명은 있지 않겠느냐는 상식적 판단이 배반당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교육부쪽은 나름의 판단을 제시했다. 학교별 차이를 일사분란하게 적용한 이화여대의 경우 자기소개서 평가에 전·현직 입학처장이나 대학의 통제가 가능한 교수 몇명 등 핵심 소수만이 참여했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연세대의 경우도 이화여대에 비해 다소 많지만 다른 대학들에 비해서는 현저히 적은 교수만이 참여했을 것이라는 게 교육부 판단이다. 이화여대에 비해 많을 것이라는 예측은, 같은 고교 지원자 가운데도 서류 평가 점수차가 나는 등 일부 평가위원들은 자료를 일률적으로 활용하지 않고 재량을 발휘한 흔적이 보이기 때문이다. 교육부쪽은 아울러 두 대학이 각기 축적해놓은 자료를 공유했을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교육부는 이번 조사에서 평가위원으로 참여한 교수의 수조차 밝혀내지 못했다. 물론 구체적인 교수 명단도 확보하지 못했다. 대학쪽에서 대외비라는 이유로 접근을 막았기 때문이다.

실태조사 발표 뒤 뒷말이 가장 많이 나온 학교는 고려대다. 이 대학의 수시 1학기 강남 학생의 비율 18.2%가 말해주듯, 이화여대와 연세대에 비해 ‘학교 차별’의 정도는 현저히 낮았다. 하지만 연대·이대와 비슷한 수준의 제재를 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이 대학은 서류와 내신 석차 백분위 평가 때 최대 2점까지 학교에 따라 다르게 가산점을 준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가산점의 규모가 크지 않아 실제 강남이나 특목고 학생들을 끌어모으는 데 위력을 발휘하지는 못했지만 학교에 따라 차등 배점한 증거는 세 대학 가운데 가장 구체적이다. 이를 두고 교육부의 한 관계자는 “고대스럽다”는 표현을 썼다. 반면 자료를 주고 교수들 재량에 맡긴 연세대를 두고는 “지능적”, 빈틈없이 학교를 차별한 이화여대에 대해선 “단순하다”는 수식어를 달았다.

교육부는 애초 세 대학의 재정적 제재 수위를 거론하면서 ‘수도권 대학 특성화’ 지원금 20% 삭감안을 제시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2년 전 한양대가 본고사형 지필고사를 치른 사실이 적발됐을 때 지원금의 15%를 삭감했다. 20%면 올해 이화여대의 특성화지원금 36억원 가운데 7억2천만원이 삭감되는 것이다. 사회를 뒤흔들어놓은 중대 사안이었음을 감안하면 왠지 액수가 초라해 보인다. 교육부는 실태조사 발표 뒤 “여론의 추이를 지켜본 뒤 추후 결정하며 전액 삭감도 가능하다”는 태도를 보였다.

가장 큰 책임은 거짓말 방조한 교육부

이번에 적발된 세 대학은 교육부 발표 이후 “고교간 학력차가 엄존하는데 그 차이를 무시할 수 있겠느냐”는 판에 박은 항변을 제기하고 있다. 일부 대학에선 본고사 불가피론까지 제기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들 주장의 정당성은 제쳐놓더라도 이번 조사 결과는 이른바 명문 사학이 수험생을 상대로 ‘앞과 뒤가 다른 행태’를 보였다는 점에서 사회적 지탄을 피하기 어려울 듯하다. 연세대는 수시 전형 요소로 내신(60%)과 서류(20%) 그리고 면접(20%) 등 세 가지를 내세웠다. 내신은 지역별로 큰 차이가 나지 않음을 감안할 때 외형적인 요강만으로는 강북 학생들이 불이익을 당해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 하지만 연세대는 은밀히 고교별 자료를 활용해 학생들의 서류 평가를 왜곡함으로서 강북이나 지방 학생들을 차별한 것이다. 구체적인 전형 기준 등을 비공개로 했기 때문에 대학쪽에선 “거짓말한 적이 없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강북·지방 수험생 입장에서는 “보이지 않는 실체에 속수무책으로 당해 시간과 돈을 탕진하는” 피해를 입었다. 아울러 고려대는 명시적으로 거짓말을 했다. 가 이 대학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고교간 학력차 자료를 수시 전형에 활용해왔다고 보도하자 며칠 뒤 이를 전면 부인하고 자료만 축적했을 뿐이라고 반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장 큰 책임은 교육부에 있다. 고교등급제와 본고사, 기여입학제를 금한다고 말만 했을 뿐 이를 강제하기 위한 어떤 실효적인 노력도 해오지 않았다. 언론과 전교조 등의 문제제기로 쟁점화하자 뒤늦게 칼을 빼든 교육부에 긍정적인 시선을 보내기 힘든 것도 이 때문이다. 고려대의 등급제 시행 의혹이 제기되자 교육부는 고려대쪽에 사실 여부를 먼저 확인해야 함에도 손을 놓고 있다가 뒤늦게 부인하는 해명 자료를 내놓도록 재촉했다. 결과적으로 거짓말을 유도한 셈이다. 학수고대하던 해명 자료가 나오자 흡족한 미소를 지었던 교육부 당국자의 모습이 떠오른다. 대학의 사회적 신뢰를 땅으로 내팽개쳐버린 고교등급제 파문은 그동안 ‘사회적 합의’로 간주해온 대학의 학생선발권에 대한 진지한 재검토 논의로 이어져야 한다는 게 교육계 안팎의 대체적인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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