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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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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주하라 휠체어!

등록 2004-09-23 00:00 수정 2020-05-03 04:23

카리스마를 뿜는 아테네 장애인올림픽의 세계 스타들… “격렬한 운동이 내 삶을 자극한다”


“격렬함이 나를 자극했다.” 카리스마를 내뿜는 아테네 장애인올림픽의 세계 스타들을 만났다. 장애인과 한 몸이 되어 뛰는 비장애인들의 뭉클한 이야기도 함께한다.


▣ 아테네= 글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 사진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2004 아테네장애인올림픽이 지난 9월17일(현지 시각) 개막해 1500여개의 메달 주인공을 가리기 위한 본격적인 대장정에 돌입했다. 6천여명의 선수들이 메달을 향해 흘리는 땀은 ‘비장애인’ 선수들의 그것보다 값지다. 그들의 땀에는 장애를 넘어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려는 열정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신들의 땅 아테네에서 펼쳐질 휴먼 드라마의 주인공은 과연 누가 될 것인가. 이 만난 장애인스포츠의 ‘별’들은 저마다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려는 강한 의지를 보였다.

‘브누아 방어법’도 소용없을껄?

여자 휠체어 농구의 ‘마이클 조든’, 샹탈 브누아(Chantal Benoit)= 지난 9월16일(현지 시각) 오전 아테네올림픽 스타디움 인도어홀. 캐나다와 영국의 여자 휠체어 농구 대표팀 연습경기가 벌어진 보조 경기장은 아테네의 햇볕만큼이나 뜨거운 열기가 가득했다. 선수들은 실전을 방불케 하는 몸놀림으로 코트를 뜨겁게 달궜다. 그 중에서도 캐나다팀의 주장 샹탈 브누아(44)는 발군의 기량으로 단연 돋보였다.

샹탈은 여자 휠체어 농구계의 ‘마이클 조든’으로 불린다. 현란한 개인기와 코트를 압도하는 카리스마가 ‘농구 황제’ 조든과 많이 닮았기 때문이다. 그는 장애인올림픽에 5번 출전해 캐나다팀을 3차례나 정상에 올려놓았다. 그의 명성은 캐나다는 물론 휠체어 농구가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미국과 유럽에도 널리 알려져 있다.

캐나다 북부의 퀘벡주 벨로에에서 태어난 샹탈은 골수암을 앓기 전까지는 촉망받는 다이빙 선수였다. 주니어 대회 때부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그는 성인대회에서도 좋은 성적을 내면서 국가대표 상비군 명단에도 이름이 오르내렸다. 하지만 그가 다이빙 국가대표로 뛸 수 있는 기회는 영영 오지 않았다. 골수암이 늦게 발견되는 바람에 왼쪽 다리를 잘라야 했기 때문이다. 다리를 자르지 않으면 골수암이 온몸으로 번질 위험이 있었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되겠다던 그의 꿈은 잘려진 왼쪽 다리와 함께 사라지는 듯했다. 그의 나이 18살 때의 일이다.

“수술 뒤 한동안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게 두려웠습니다. 내가 아는 사람들을 만나면 다이빙 선수였던 아름다운 내 모습이 자꾸 생각날 것 같아서죠.” 그러나 그의 방황은 오래가지 않았다. 재활치료를 받던 중 우연히 접한 휠체어 농구가 그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휠체어에 앉아서도 그렇게 격렬한 운동을 할 수 있다는 게 그저 놀랍기만 했어요. 농구공을 잡는 순간 내 마음속에서 새로운 열정이 솟아나는 걸 느꼈습니다.”

그는 휠체어 농구에서 곧 두각을 나타냈다. 다이빙 훈련을 통해 다져진 체력과 꾸준한 연습 덕분이었다. 그는 1992년 바르셀로나 장애인올림픽에 출전해 캐나다가 강력한 우승후보 미국을 꺾고 우승을 차지하는 데 큰 활약을 했다. 다이빙에서 이루지 못한 올림픽 금메달의 꿈을 휠체어 농구에서 이룬 것이다. 샹탈은 96년 애틀랜타와 2000년 시드니에서도 연속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며 여자 휠체어 농구를 대표하는 스타로 떠올랐다. 완벽한 드리블과 스피드로 상대팀 수비를 무력화하는 그를 저지하기 위해 다른 팀들은 ‘브누아 방어법’을 고안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가 스타로서 대접을 받고 있는 것은 단순히 농구 기량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스포츠 선수로서뿐만 아니라 사회인으로도 당당하게 성공한 사업가다. 그는 바르셀로나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컴퓨터 웹 디자이너 공부를 시작해 1년 만에 자격증을 따냈다. 웹 디자이너 생활은 ‘비장애인’과의 경쟁에서 살아남는 법을 가르쳐줬다. 그는 지금 세계적인 휠체어 제조업체인 영국 RGK의 캐나다 지사에서 CEO로 활약하고 있다.

“캐나다는 장애인 생활체육이 잘 발달돼 있습니다. 정부가 공공기금에서 재원을 마련해 장애인스포츠를 지원하고 있기 때문이죠.” 샹탈과 그의 대표팀 동료들은 여자휠체어농구협회(CWBA)로부터 1년에 1만5천달러를 지원받는다. CWBA는 캐나다 정부로부터 재정적 지원을 받고 있다. 하지만 장애인스포츠 선수들이 무조건 정부의 지원에만 기대고 있지는 않다. “내 동료들 중에는 헬스클럽이나 생활체육 시설 등에서 장애인들을 위한 스포츠 강사로 일하고 있는 친구들이 많아요. 그들은 비장애인 못지않게 경제적으로 넉넉하게 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마음속에 각자의 열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열정을 실현시키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느냐가 중요하죠. 나는 나의 열정을 실현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했고, 지금도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는 한국의 휠체어 장애인들은 생활체육은커녕 이동권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는 기자의 설명을 듣고 이렇게 말했다. “도움이 필요할 때마다 떳떳하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필요하죠. 하지만 스스로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조금이라도 들면 과감하게 도전하세요. 그 대가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값진 것이니까요. 비장애인들 눈에 많이 띄어야 그들이 우리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습니다.”

의족으로 밟는 사이클 페달

장애인 사이클의 ‘암스토롱’, 폴 마틴(Paul Martin)= 일반 사이클에 ‘투르 드 프랑스’ 5연패에 빛나는 랜스 암스트롱(미국)이 있다면, 장애인 사이클에는 폴 마틴(37·미국)이 있다. 마틴은 장애인올림픽에서는 아직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했지만, 일반 선수들도 힘들어하는 트라이애슬론(수영·마라톤·사이클)에 출전해 장애인 부문에서 두 차례나 우승을 차지한 경력이 있다. 비록 장애인 선수들끼리 경쟁했지만, 기록은 일반 선수들 못지않았다. 그는 1998년 콜로라도에서 열린 도로 사이클 대회에서 일반 선수들과 경쟁해 당당히 동메달을 목에 거는 기염을 토했다.

지난 9월16일 오후 아테네올림픽 스타디움 벨로드롬 경기장에서 만난 마틴은 현지 적응 훈련에 여념이 없었다. 그는 왼쪽 다리가 절반 가까이 없기 때문에 카본으로 만든 의족을 이용해 사이클 페달을 돌린다. 그가 왼쪽 다리를 잃게 된 것은 25살 때 당한 교통사고 때문이다. “사고를 당하기 전에는 방황을 참 많이 했는데, 다리를 잃고 나니까 (오히려) 신중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틴이 사이클을 시작한 것은 순전히 트라이애슬론에 출전하기 위해서다. 트라이애슬론이야말로 새로운 삶을 시작한 그에게 도전할 만한 가치가 있는 스포츠였다. “수영과 마라톤, 사이클 모두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좋은 기록을 낼 수 있죠. 그 싸움은 남과 경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습니다.” 그에게 이번 대회는 각별한 의미가 있다. 이번 대회가 그의 은퇴 무대이기 때문이다. 그는 운동을 그만두고 로스쿨에 진학해 변호사가 되는 게 꿈이다. “장애인에 대한 차별은 어느 곳에나 있게 마련이죠. 미국도 예외는 아닙니다. 대표적 소외 계층인 장애인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요.”

“휠체어 레이싱, 너무 근사해요”

휠체어 마라톤의 ‘신화’, 어니스트 반 딕(Ernst van DYK)= 어니스트(31)는 휠체어 레이스 선수들에게 신화와 같은 존재다. 그는 휠체어 마라토너 중 유일하게 1시간20분 벽을 깨뜨린 기록을 갖고 있다. 뿐만 아니라 휠체어 레이싱 400m와 800m, 1500m의 세계 신기록 보유자이고 2001년부터 4년 연속 보스톤 마라톤에 참가해 휠체어 부문을 4연패했다.

그러나 그가 휠체어 레이싱 선수들의 존경을 받고 있는 진짜 이유는, 그가 오른손 손가락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성적을 냈기 때문이다. 어니스트는 오른손 두개의 손가락이 없는데, 이는 휠체어 레이서들에게는 치명적 약점이다. 속도를 내기 위해서는 바퀴를 단단히 잡아 굴려야 하는데, 손가락이 없으면 바퀴에 힘을 제대로 전달할 수 없다. 휠체어 100m에 출전하는 한국 대표팀의 홍석만(30) 선수는 “손가락에 장애가 있는데도 그런 기록을 낼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연습을 많이 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9월15일 선수촌을 향한 셔틀버스 안에서 우연히 만난 어니스트는 큼직한 체구에 걸맞게 넉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오른손과 두 다리에 장애가 있었다. “몸이 불편했지만 바깥에 나다니는 것을 좋아해서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자마자 휠체어 레이싱을 시작했죠. 두 다리로 뛰는 것보다 훨씬 빨리 달릴 수 있어서 매우 기뻤습니다.” 특히 국제대회 참가를 위해 전세계를 돌아다닐 수 있는 것이 더욱 큰 기쁨이었다. “휠체어 마라톤은 세계적인 도시의 거리를 마음껏 달릴 수 있게 해주니까 얼마나 근사한 스포츠입니까. 속도감을 즐기고 싶어하는 장애인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운동이죠.” 그는 이번 대회에서 마라톤을 제패하는 게 꿈이다. ‘클래식 코스’라 불리는 마라톤 성지에서 우승하는 것은 그에게 또 다른 희열을 느끼게 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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