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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경의선 타고 가겠습니다

등록 2004-09-24 00:00 수정 2020-05-03 04:23

철도 · 도로 연결 사업 마무리 단계… 개성공단 활성화와 중국 · 유럽 물류에 큰 희망

▣ 임을출 기자 chul@hani.co.kr

올 추석에도 어김없이 경기도 파주 도라산역에는 실향민들이 북녘 고향 땅을 향해 절을 올리는 망배행사가 열린다.

요즘 경의선 남쪽 마지막 역인 도라산역에는 실향민들의 발길이 부쩍 잦다. 추석이 다가오고, 경의선 도로·철도 개통이 초읽기에 들어가면서 더욱 가슴이 미어져서일까. 지난 6월 열린 9차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에서 올 10월 말 경의선 개통이 합의됐다. 9월13일에는 북한의 손하역과 판문역 등 경의선 북쪽 지역 역사 건설을 지원하기 위해 5명의 남쪽 기술자가 방북했고, 당분간 상주한다. 다만 철도는 이번에 개통돼도 몇 차례 더 시범 운행을 하면서 철로를 길들이는 절차를 남겨두고 있다. 신호와 통신 체계도 갖춰야 하는 탓에 정상 개통은 조금 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지난 1950년 경의선 운행이 중단된 이후 54년 만에 동강난 남북을 잇는 경의선 개통은 실향민들뿐 아니라 온 민족에게 벅찬 감동과 새로운 희망을 불어넣어주기에 충분하다. 서울에서 차를 몰거나 열차를 타고 베이징, 모스크바를 거쳐 유럽까지 갈 수 있다는 것은 상상만 해도 가슴이 트이는 일이다.

개성관광은 곧 이뤄질 것

이봉조 통일부 차관은 9월19일 언론 브리핑에서 “경의선 철도·도로 연결사업은 지난 2002년 9월18일 공사 착수 이후 꾸준히 진행해서 이제 마무리 단계”라며 “이미 남북간 합의대로 오는 10월 도로가 개통되고, 철도는 가능한 구간에서 시범 운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도로 개통에 앞서 남북간 군사보장 합의서의 채택이 필요하며, 이어 차량 운행 사무소의 설치 그리고 남북간 도로·철도 공동운영위원회 구성 등 후속 조처가 뒤따른다.

물론 아직은 경의선이 개통돼도 당분간 남쪽의 도라산역에서 북한의 개성공단까지만 오갈 수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경의선을 타고 평양을 거쳐 신의주를 지나 중국으로 갈 날도 멀지 않았다고 감격스러워한다. 실향민들에게는 그야말로 듣기만 해도 가슴 뿌듯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북한은 경의선을 우선 닥친 경제난을 타개하기 위한 요긴한 수단으로 여기고 있다. 따라서 일반 실향민들이 열차로 북녘 고향 땅을 밟기 위해서는 조금 더 기다려야 한다. 어쩌면 이런 꿈만 같은 날을 앞당기는 것은 남쪽 정부나 기업인들 손에 달려 있는지도 모른다. 개성공단에 입주한 남한 기업들이 밤낮으로 공장을 돌려 나온 생산품들을 가득 실은 트럭이나 열차가 경의선 도로·철도를 부지런히 오갈 때 북한도 실향민들의 고향 방문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당장은 북녘 고향 땅까지 구석구석 방문하지 못한다 해도 옛 고려의 도읍지인 개성까지의 관광은 곧 이뤄질으로 예상된다. 김윤규 현대아산 사장은 지난 6월 개성공단 시범단지 준공식 때 개성관광 추진 일정과 관련해 “개성은 최적의 관광지구로서 이르면 올여름, 늦어도 가을부터 개성관광이 시작될 수 있을 것”이라며 “개성관광이 본격적으로 추진되면 개성공단 조성사업도 더욱 탄력을 받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힌 바 있다. 따라서 경의선 개통이 순조롭게 이뤄지면 조만간 일반인들의 개성관광 일정이 나올 것으로 기대된다. 이봉조 통일부 차관도 “개성공단 건설이 본격화됨에 따라 개성관광도 머지않아 실현될 것으로 전망한다”고 밝혔다. 더 나아가 남북 관계가 잘 풀려가면 경의선 역사 인근에 이산가족 면회소도 세워질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나이 많은 이산가족들이 병든 몸을 이끌고 가기에는 여전히 힘든 금강산이 아닌 도라산역이나 판문역 가까이에서 북쪽 이산가족을 더 편하게 상봉할 수 있게 된다. 이산가족들에게는 꿈만 같은 현실이 펼쳐지는 셈이다.

경의선 이용해 시베리아횡단철도로

남북간 도로·철도 연결은 인적·물적 왕래의 물꼬를 트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특히 당장은 물류비를 크게 낮출 수 있게 되어 남북 교역이 늘어날 전망이다. 또 시베리아횡단철도(TSR)와 중국횡단철도(TCR) 등과의 연계를 통해 한반도가 명실상부한 새로운 물류축으로 부상한다. 이런 탓인지 정부는 경의선 개통에 흥분을 감추지 않고 있다. 이 차관은 “남북철도 연결이 마무리되면 북한의 철도 재건, 대륙철도 연계와 관련해 관계국과의 활발한 논의가 예상된다”면서 “정부는 남북철도 연결 이후 역내 국가와 협력해 이 사업을 평화 번영의 동북아 시대 실현을 위한 선도사업으로 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이를 위해 국제 협력 네트워크도 구성하고, 중장기적으로 동북아 철도협의체 구성까지 나아가겠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다.

정부의 다른 고위 관계자는 “동해선 연결 공사는 강릉에서 북쪽 연결구간까지 134km의 선로를 잇는 대공사로 최종 완공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리므로, 당장은 경의선을 이용해 평양에 가서 다시 원산을 거쳐 시베리아횡단철도로 연결할 수도 있다”면서 경의선 연결이 불러올 큰 변화를 예고했다. 이처럼 동해선 연결은 시간과 돈이 많이 든다는 이유 때문에 조기 완공은 기대하기 어렵다. 따라서 남북 실무자들 사이에서 경의선-시베리아횡단철도의 우회 연결이 설득력 있게 논의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북한은 여전히 동해선과 시베리아횡단철도 연결에 매우 적극적이다. 지난 7월에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북-러시아 양쪽 실무자가 국경철도위원회를 열고 라진과 하산간 56km 구간에 시베리아횡단철도와 같은 궤도인 광궤로 바꾸기로 합의했다. 이는 라진항과 시베리아횡단철도 러시아쪽 기점인 하산을 철도로 연결해 한국이나 일본쪽 화물을 러시아나 유럽쪽으로 운송하기 위한 목적이다. 현재 일본이나 한국쪽 화물은 부산과 니카타에서 각각 나진항으로 운송되고 있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훗날 동해선이 이어지기 전까지는 화물 운송이 경의선을 이용해 평양∼원산∼나진항∼하산을 거쳐 시베리아횡단철도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한다. 북한 지도부로서는 남북철도 연결에 특별한 애착을 보일 만하다. 국내 연구기관들은 이런 연계 수송이 미래에 본격화될 경우 북한은 연간 1억5천만~2억달러의 통과운임 수입을 얻게 되리라고 추정한다.

경의선은 당장 개성공단 개발을 촉진하는 구실을 톡톡히 할 것으로 보인다. 박경섭 현대아산 개성사업단 차장은 “철도 개통은 실질적으로 물류 측면에서 상당한 효과가 있다”면서 “현재 수출화물의 90% 이상을 소화하고 있는 광양항과 부산항까지 개성공단 생산제품을 실어나르는 데는 철도만큼 좋은 게 없다”라고 말했다. 시범단지 입주예정 업체 가운데 ‘살 빼는 신발’을 개발해 나라 안팎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삼덕통상은 본사가 부산에 위치하고 있다. 개성공단에서 신발 가피를 생산하고, 부산 공장에서 밑창을 붙이는 등 최종 제품을 만든다. 부산과 개성을 부지런히 오가야 하는 이 업체는 경의선 철도 개통에 따라 가장 큰 혜택을 누릴 수 있다. 이처럼 경의선 철도의 개통은 개성공단의 가치를 한 단계 높이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핵 먹구름은 여전히 드리워

다만 경의선 철로 뒤에 길게 드리워져 있는 핵 먹구름이 여전히 눈엣가시이다. 경의선 개통이 갖는 경제적·민족사적 의미가 깊고 넓음에도 개통식이 축제 분위기로 치러질지가 벌써 관심거리다. 정부는 노무현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개성공단 개발과 남북한 철도·도로 연결을 중점 과제로 밝힌 만큼 성대한 개통식과 더불어 각종 축하 문화행사까지 연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그러나 11월2일 미국 대선을 코앞에 둔 상황인데다, 북-미간의 가파른 대치가 이어지는 터라 얼마나 폼나게 개통식을 치를 수 있는지는 두고 봐야 할 듯하다. 당장은 북한이 남한 정부의 탈북자 대규모 입국이나 김일성 주석 10주기 조문 불허, 그리고 최근에 불거져나온 우라늄 분리 및 플루토늄 추출실험 등으로 날선 눈초리를 보내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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