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치민시 뜨쥬 산부인과 병원에서 운영하는 ‘평화마을’의 어린이들
▣ 호치민= 구수정 전문위원 chaovietnam@hotmail.com
“평화마을의 밤은 고요하다. 이곳에 온 지도 어느덧 10년이 되었다. 졸업시험 가운데 어제 국어와 물리 과목을 치렀고, 이제 나머지 두 과목이 남았다. 시험공부를 하고 있는데, 아주 친숙한 그림자가 언뜻 스쳤다. 나는 내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엄마, 힘들게 뭐 하러 여기까지 왔어? 많이 아프다면서!’
엄마가 말했다. ‘이번 시험이 네 인생에 얼마나 중요한 시험인데…. 시골에서 사람들이 제 자식 시험이라고 학교에 데려다주는 걸 보니, 앉으나 서나 어디 마음이 편해야 말이지.’ 그날 밤 엄마는 12시가 넘도록 내 곁을 지켰고, 나는 모처럼 엄마 품에서 단잠을 잤다. 다음날 나는 시험을 보러 학교에 갔고, 엄마는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 온종일 맘을 졸이며 나를 기다렸다.
엄마! 엄마는 내게 힘을 주셨어요. 오늘 졸업시험과 그리고 앞으로 내 인생에 닥칠 온갖 시험을 이겨낼 수 있도록….”
쩐 티 호안(18)은 선천적으로 두 다리와 한쪽 팔이 없는 기형 장애를 안고 태어났지만, 초등학교 시절부터 중학교 3학년인 지금까지 한번도 우등생 자리를 내놓은 적이 없다. 이번에도 호안은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시험을 통과했고, 내년 봄이면 부이 티 쑤언 여자고등학교에 입학한다. 호안의 일기장 첫 장에는 “취미: 동식물 세계 발견. 희망직업: 의사, 컴퓨터 기사, 번역가. 가족: 내 인생의 안식처, 집을 떠나 있는 게 가장 슬프다”라고 써 있었다.
평화마을은 호치민시 뜨쥬 산부인과 병원에서 운영하는 장애아 시설이다. 그래도 호안에게는 가족이 있지만, 이곳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의 대부분은 태어나자마자 병실에서 버려졌다. “쟤는 별명이 타조고요, 얘는 펭귄, 두 손이 없잖아요. 그리고 또 저어기 쟤는요, 게, 옆으로 엉금엉금 기는 게 말이에요.” 아이는 친구들을 이렇게 소개하면서 키득거리지 않았다. 이곳 평화마을에서만큼은 저마다의 장애가 호박이니 사과니 참외니 하는 단지 그런 ‘차이’에 지나지 않는다. ‘건강, 교육, 인격, 직업’을 원훈으로 삼고 있는 평화마을의 응웬 티 떤 원장은 신체 장애 유형에 맞게 연필을 잡도록 하는 훈련에 중점을 둔다. 연필을 잡을 수 있어야만 학교에 갈 수 있기 때문이다.
팜 티 투이 린(11)은 팔이 없다. 세살 때부터 아주 작은 발가락을 꼬무락대며 연필과 씨름했다. 수없이 연필을 떨구고 나서야 발가락이 고분고분 주인 말을 들을 만큼 유순해졌다. 그때부터 색칠하기 연습에 들어갔다. 처음엔 동그라미, 네모, 세모… 나중엔 꽃, 인형, 집…. 5살이 되어서야 능숙하게 연필을 잡게 되었다. 린을 위해서 의자와 책상의 높이가 똑같은 특별한 책걸상이 제작됐고, 린이 국민학교에 들어갈 때, 그 책걸상도 함께 따라갔다.
쩐 민 안(9)은 식탐이 많다. 아이들에게 사탕을 골고루 나누어주는데, 하나만 더 달라고 조른다. 식도협착증을 앓고 있어 사탕을 먹을 수 없는데도 말이다. 안은 식사 시간이면 호스로 음식물을 주입해야만 하고, 갑자기 숨이 안 쉬어지는 호흡곤란 장애도 겪고 있다. 나는 연신 ‘헤헤’거리며 벙실대는 녀석이 좋았다. 사탕 때문에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데 옆방의 신생아실이 소란스럽다. 안이 잽싸게 달려나갔다. 울지도 못하고 가느다란 신음 소리만 토해내는 아기 앞에 앉아서도 여전히 ‘헤헤’거리는 안의 모습을 보고서야 그 웃음이 심한 구순열(언청이) 증상과 언어장애 때문이라는 것을 눈치챘다. “누가 아프기라도 하면 꼬박 저러고 앉아서 지킨답니다.” 부모 대신 린에게, 그리고 안에게 이름을 지어준 원장 선생의 눈가가 어느새 벌겋다.
그 다음다음날, 내가 그 아기의 장례식에 참석했을 때 녀석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영상] 거부권 쓴 한덕수 “헌법정신 최우선으로 한 결정”
권성동·한덕수, 롯데리아 ‘권’모술‘수’ 세트 [그림판]
김병주 “선관위 30명 복면 씌워 납치하는 게 정보사 HID 임무”
[속보] 국정원 “파병 북한군 최소 100명 사망, 1천여명 부상”
[영상] 김문수, “내란공범” 외친 시민 빤히 보면서 “경찰 불러”
‘야당 비판’ 유인촌, 결국 사과…“계엄은 잘못된 것”
[속보] 한덕수 ‘거부권’ 행사…양곡법 등 6개 법안
민주 “탄핵 기간 빈집에 통지서”…‘이재명 재판 지연’ 주장 반박
‘윤석열 내란 이첩’ 심우정 검찰총장 “절차 논란 빌미 없어야”
‘결격 대통령’ 박근혜·윤석열 연속 배출하고도…국힘은 반성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