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전 이후 최초의 고엽제 피해보상 청구소송… 미국 변호인단 도움으로 미국 법정에서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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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치민= 구수정 전문위원 chaovietnam@hotmail.com
베트남전 당시 미군이 대량 살포한 고엽제로 심각한 신체장애를 겪고 있는 베트남 피해자들이 고엽제 제조업체들을 상대로 미 연방법원에 제기한 피해보상청구 소송 첫 재판이 10월11일에 열릴 예정이다.
베트남인 3명이 소송… 변호인단이 비용 책임져
이번 재판은 전후 베트남과 미국 사이에 ‘뜨거운 감자’로 남아 있던 고엽제 문제가 30년 만에 최초로 법정 공방에 오르게 되었다는 역사적 의미를 가질 뿐만 아니라, 비록 단 세 사람만이 법정의 원고석에 서게 되지만 그 판결이 수백만 고엽제 피해자들에게 적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베트남과 미국은 물론 전세계의 주목을 끌고 있다.
“오랫동안 그랬던 것처럼, 나 자신을 위해 소송을 제기하고 싶지는 않다. 그렇지만 베트남에서 가장 가난하고, 비참하며, 차별받는 사람들이 고엽제 피해자여서 그들을 위해 이 일을 할 수밖에 없다”. 지난 1월30일, 판 티 피 피, 즈응 꾸윈 호아, 응웬 반 꾸이 등 세 사람은 베트남 전체 고엽제 피해자를 대표해서 미 뉴욕 브루클린 연방법원에 이른바 ‘에이전트 오렌지’의 최대 제조업체인 다우케미컬사와 몬샌토사를 포함한 37개 고엽제 생산업체를 상대로 미국이 베트남전쟁 기간 동안 사용한 고엽제에 의한 피해보상청구 소장을 제출한 바 있다. 이들은 소장에서 고엽제로 인해 300만명 이상의 베트남인들이 심각한 후유증을 앓고 있다고 지적하고 이에 대한 배상을 요구했다.
베트남 고엽제·다이옥신피해자협회는 이번 소송에서 베트남 피해자들의 권리를 보호하게 될 6명의 미국인 변호사를 고용했고, 지난 6월30일부터 7월14일까지 진 엘렌 미어를 단장으로 하는 미 변호인단(총 9명)이 소송 준비를 위해 베트남에 다녀갔다. 과거 미 베트남 참전 재향군인 고엽제 피해자들이 고엽제 생산업체들을 상대로 제기했던 손배소송에서 원고쪽 변호사들은 60만장에 달하는 증거서류들을 제출한 바 있다. 따라서 미 변호인단은 하노이, 하이퐁시, 타이빈 성, 트아 틴 후에 성, 호치민시, 동나이 성 등지를 방문하여 수백명의 고엽제 피해자들을 직접 만나 더 많은 증거 확보에 나섰다. 200만~300만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소송비용도 변호인단이 책임지며, 베트남쪽은 이 소송에서 승소하는 경우에만 이 비용을 지불하게 된다.
변호인단은 국제 여론의 지지를 끌어내기 위해 지난 6월 독일에서 개최된 세계민주변호사협회 회의에서 이번 베트남인 세명의 고엽제 피해배상 소송 문제를 거론하고 지지 선언을 제의했으며, 협회쪽은 이를 수락한 상태다. 베트남 최초의 고엽제 피해배상청구 민사소송의 첫 재판을 한달여 앞두고 있는 현재, 베트남쪽 피해자들의 권리 변호를 위해서 이번 소송에 참가 신청을 해온 변호사 수도 처음 소송을 제기한 때보다 2~3배 늘었다. 그들 대부분은 미국의 명성 있는 법률회사 소속의 변호사이다.
고엽제 피해보상 청구소송을 제기한 3인 중 한명인 판 티 피 피. 그는 항미전쟁에 참가하기 이전에 이미 정상적인 딸을 낳았다. 그러나 고엽제에 중독된 뒤 유산을 거듭했다. 남베트남 임시혁명정부 당시 보건부 장관으로 활약했던 즈응 꾸윈 호아 역시 이번 고엽제 소송의 당사자이다. 그는 타이닌 지역에서 활동할 때 수시로 고엽제에 피폭됐다고 한다. 첫아이의 경우 자주 경련을 일으켰으며, 몸을 뒤집고 자리에 앉고 하는 것이 다른 아이들보다 느렸고, 고개를 가누지도 못했다. 결국 아이는 생후 7개월 만에 죽었다. 1999년 검사 결과에 따르면, 그의 혈액 속의 다이옥신 농도는 20ppt(1ppt는 1조분의 1g)에 달했다. 이를 197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 추산하면 그 농도가 200~300ppt까지 올라갈 것이라는 의학적 보고도 있었다. 고엽제에 노출된 적이 없는 일반인의 혈중 농도 1.5~2ppt에 비하면 경악할 만치 높은 수치이다.
고엽제 환자들, 이번 소송에 마지막 희망
“내 평생을 살면서 그리 후회될 만한 일을 한 적이 없는데, 단 한 가지, 아내를 얻고 아이를 낳은 것만은 뼈에 사무치도록 후회스러워. 하지만 어쩌겠어. 그 애들도 배 아파서 낳은 자식이고, 남들처럼 이름이 있고, 나이가 있는 똑같은 사람인데….” 또 다른 소송 당사자 응웬 반 꾸이는 17년을 두 아이의 아비로 살아오면서 한번도 “아빠”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아무리 정성을 다해 돌보아도 귀머거리에 벙어리이고 온몸이 마비된 아이들은 언제나 넋이 나간 듯 멍한 표정만을 지을 뿐이다.
그는 16살이 되던 해(1971) 자원 입대를 했고, 제5군구 2사단 통신부대에 배치됐다. 그와 그의 부대원들은 1971년부터 75년까지 정글에서만 살았다. 숲의 샘물만 먹었고, 숲에서 나는 나물이 반찬의 전부였다. 베트남 통일 이후에도 그는 그곳에 남아 2년 동안 쿠앙남, 다낭 지역의 지뢰제거 작업에 종사했다.
미군은 베트콩의 은신처를 없애고 식량원을 고갈시킬 목적으로, 1962년부터 71년까지 10년간 총 2200만갤런(83.600kl)의 고엽제를 뿌렸다. 이는 4t 트럭에 실으면 약 2만3천대에 가득 채워야 하는 양이다. 각종 역학조사 결과에 따르면, 미국이 베트남전에 사용한 고엽제의 성분인 다이옥신제가 연조직 육종암, 후두암, 폐암 등 각종 암과 다발성 골수증, 면역결핍증, 생식기 발달 및 신경계통 장애, 사산아, 기형아 출산 등 수많은 질병을 야기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미국은 고엽제가 이들 질병과 연결되어 있다는 직접적인 증거는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베트남 정부는 베트남전 당시 400만~500만명 이상이 고엽제에 노출됐고, 300만명 이상이 고엽제 후유증을 앓고 있으며, 그 중 최소한 100만명이 심각한 신체장애를 겪고 있다고 주장한다. 또 베트남 적십자사의 자료에 의하면, 15만명 이상의 어린이들이 고엽제 후유증으로 고통받고 있으며, 다이옥신의 유전 독성으로 인해 5만명 이상의 기형아가 태어났다고 한다.
이처럼 베트남에는 수백만명에 달하는 고엽제 후유의증 환자들이 있지만, 이들 모두가 미 연방법원이 요구하는 수속과 절차에 따라 소장을 제기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베트남에는 각각의 병증이 고엽제에 의한 후유증이라는 절대적 증거를 입증할 만한 시설이나 수단이 턱없이 부족하다. 게다가 소장을 내는 데 드는 비용은 피해자 개인의 이력서, 병력 증명서, 기존 거주지와 고엽제 살포 지도 대비표 등을 포함한 각종 서류의 작성 비용에다 혈중 다이옥신 농도 검사 비용까지 합치면 1인당 1500달러 이상이 들어간다. 세계에서 여전히 가난한 나라에 속하는 베트남, 그 중에서도 가장 가난하고 비참한 삶을 연명하는 이들 고엽제 환자에게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액수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수백만 고엽제 환자들은 이번 소송에 자신의 마지막 희망을 걸고 있고, 미국을 상대로 하는 베트남 최초의 고엽제 손배 소송에 나서는 세 사람 역시 개별 고엽제 피해자가 아닌 이들 전체의 염원을 대변하는 상징적 소송인으로서 역사적 사명감으로 이번 소송에 임하고 있다.
미국인 재판장에 쏠리는 기대와 눈총
〈AP통신〉에 따르면, 전후 베트남과 미국 사이에 ‘뜨거운 감자’로 남아 있던 이번 고엽제 소송의 판결을 책임지게 될 잭 와인스테인 재판장은 이 재판을 통해 “인권과 전쟁범죄 그리고 인종말살의 문제를 건드리게 될 수도 있다”고 역설한 바 있다. 그럼에도 과거 미 재향군인들의 고엽제 소송을 담당했던 잭 와인스테인이 이번에도 역시 이 소송을 책임지게 되었다는 데 그의 노련한 경험에 쏠리는 기대만큼이나 적잖은 의구심의 눈총이 쏠리는 것도 사실이다. 그는 올해 초 베트남전 참전 미군들의 고엽제 추가배상 소송에서도 기각판정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미 재향군인들의 고엽제 소송은 1978년에 시작된다. 군인들이 ‘전장에서 입은 피해’를 이유로 정부를 고소할 수 없다는 ‘페레스’(Feres) 법에 묶여 그들은 결국 다우케미컬과 몬샌토 등 고엽제 제조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들 기업은 “정부의 명령에 응한 것에 불과한 기업이 고발될 이유는 없다”고 맞섰다. 대법정에서 본심리가 막 시작되기 직전, 기업쪽은 갑자기 기존의 태도를 바꾸어 1억8천만달러를 지불할 테니 화해하자는 제안을 웨인스테인 판사에게 내밀었고, 재향군인쪽 변호단은 승소의 확신을 가질 수 없다는 이유로 그것을 받아들였다. 기업쪽이 원한 것은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고엽제 문제를 한방에 해결하는 것이었다. 처음에 이 소송의 결과는 고엽제 피해자쪽의 승리로 비쳐지는 듯했으나 나중에 그 합의금을 나누고 보니 소송 군인들 개개인에게 돌아가는 돈은 ‘푼돈’에 불과했다. 불치의 암에 걸리거나 또는 죽거나 하는 최악의 경우에 받을 수 있는 액수가 겨우 3천달러 정도였다. 해병대 대위였던 남편을 간암과 췌장암으로 잃은 샤리 아이비 부인은 이 ‘푼돈’ 받기를 거부하고 1989년 다시 고엽제 제조사들을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이 소장은 “완결 사건”이라는 이유로 이번 베트남 최초의 고엽제 소송을 맡게 될, 바로 그 재판장인 웨인스테인에 의해 기각되고 말았다.
베트남에서는 이번 소송을 “개미가 큰 감자를 깨문” 것으로 비유한다. 만약 미국이 이번 소송에서 세명의 원고에게 보상 판결을 내리게 되면 고엽제의 폐해를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 되고, 그것은 또 수백만명에 이르는 나머지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 부담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그러한 이유 때문에 이번 소송이 단순한 법리 사건이 아니라 첨예하게 정치적인 사건이며, 그 해결 과정이 아주 험난하고도 지루한 싸움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베트남인들 스스로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바로 그 점 때문에 베트남은 또 희망을 잃지 않는다. 개미는 고독하지 않은 것이다. 수백만의 개미가 감자를 깨물고 또 깨물면 언젠가 아무리 큰 감자라도 부스러기로 사라지게 되리라는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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