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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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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여, 빼앗긴 축제여

등록 2004-08-12 00:00 수정 2020-05-03 04:23

테러 위협과 상업주의로 올림픽 정신 훼손… 시민들은 올림픽 없애자는 주장까지


‘신들의 도시’ 아테네에서 올림픽 축제가 시작된다. 정작 축제를 즐겨야 할 시민들과 관광객들은 불안하기만 하다. 테러 위협으로 ‘계엄령’을 방불케 하고 상업주의도 기승을 부린다.


▣ 아테네= 하영식 전문위원 youngsig@teledomenet.gr

‘108년 만의 귀향’은 과연 금의환향이 될 수 있을까. ‘올림픽 정신의 회복’을 외치며 의기양양하게 추진된 2004 아테네올림픽이 테러 위협과 지나친 상업주의로 삐걱거리고 있다. 아테네 시민들은 고대 올림픽 성지에서 다시 열리는 이번 올림픽의 역사적 의미를 부각시키고 있지만, 이라크 전쟁으로 인한 테러 위협과 무분별한 상업주의는 올림픽 정신을 더욱 훼손할 것이라는 우려까지 낳고 있다.

탱크만 등장하지 않은 계엄령?

지난 8월5일 아테네 국립박물관 앞. 덴마크인 배낭 여행객 부부가 박물관 출입문 앞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이유는 등에 짊어진 작은 배낭 때문이었다. 안전요원들은 가방 속을 검사한 뒤 별 이상이 없었음에도 입장을 허가하지 않았다. 박물관쪽에서는 배낭에 폭탄이 들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에 배낭을 출입문 밖에 두고 입장하라고 말했다. 하지만 배낭을 출입문 밖에 둘 경우 분실 위험이 있기 때문에 덴마크인 부부는 섣불리 입장을 결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몇몇 외국인 배낭여행객들은 입장을 포기하고 돌아갔다.

이날 아테네 제2의 중심가인 옴모니아는 청색 전투복에 베레모를 쓴 무장경찰들이 삼엄한 경비를 하고 있었다. 옴모니아 일대는 주로 서민들이 이용하는 상권이 형성돼 있는데, 특히 제3세계에서 들어온 불법 이민자들이 들끓는 곳으로 유명하다. 지금은 올림픽을 위해 거리 일대가 새롭게 단장됐다. 무장경찰들은 지나가는 시민들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바라봤다. 옴모니아 광장에 들어서자 무장경찰 수는 더 늘어났다. 곳곳에서 행인들의 신분증을 확인하면서 검문을 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와 함께 연두색 차림의 전투복을 입은 비무장경찰들도 순찰을 돌고 있었다. 이들은 아테네 시청 소속의 경찰관들이다. 수많은 무장경찰과 군복 차림의 안전요원들이 곳곳에 배치된 옴모니아는, 탱크만 등장하지 않았을 뿐, 거의 게엄령이 내린 것처럼 삼엄한 분위기였다. 이처럼 삼엄한 테러 경비 탓에 아테네 전역은 올림픽 개막이 임박했음을 전혀 느낄 수 없다.

이런 점을 감안해서 그리스 경찰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시민들이나 관광객들에게 혐오감을 줄 수 있는 기관총 대신 권총을 소지하고 있는 경우가 많고, 정복경찰보다는 사복경찰들의 수가 훨씬 더 많다. 무장한 전투경찰들도 처음에는 강압적이었지만, 최근에는 시민들을 대하는 태도가 훨씬 부드러워졌다. 그러나 이런 노력은 축제 분위기를 띄우기에는 역부족이다. 아테네 거리에는 만국기와 각종 홍보물이 나부끼고 있지만 시민들은 좀처럼 축제 분위기를 체감할 수 없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주로 이용하는 고급호텔 앞에서도 무장경찰은 진을 치고 있다. 호텔 내부에서는 투숙객들의 짐까지 검사하고 있다. 심지어 한 호텔은 밖에 천막을 치고 검색대를 차려놓고서 투숙객들의 짐을 검사한다.

이번 아테네올림픽은 역대 올림픽 중 가장 많은 ‘안전 대책’ 비용이 지출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의 50배 이상, 2000년 시드니올림픽의 5배 이상의 경비가 소요됐다. 이번 올림픽에서 안전 문제가 가장 중요한 이슈로 떠오르고 있고, 또 천문학적 비용이 소요된 이유는 바로 이라크 전쟁 때문이다. 이라크 전쟁으로 인한 테러 위협은 미국이 촉발했음에도 그 대가는 엉뚱하게 그리스가 치르고 있는 셈이다.

미국 무기와 안전기기 사들이다

현재까지 공식적으로 발표된 안전 대책에 쏟아부은 돈은 이미 15억달러를 넘어서고 있다. 애초 3억달러 정도로 예산이 책정됐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미국과 유럽의 강대국들이 올림픽 안전 대책에 대해 압력을 가하는 바람에 비용이 점차 늘었다. 올림픽이 무사히 끝나기를 가장 가슴 졸이며 바라는 국가는 이라크에서 전쟁을 치르고 있는 미국이다. 아테네 올림픽의 안전 대책은 바로 미국 선수단들의 안전 대책이라는 등식이 성립한다. 한때 미국에서 400명의 무장군인을 그리스로 파견해 미국 선수들을 경호할 것이란 계획이 에 기사화되면서 큰 논란이 일기도 했다. 무장한 외국 군대의 주둔은 독립국가인 그리스의 헌법에 배치된다는 반대여론이 거세지면서 그리스 정부의 카라만리스 총리가 직접 나서서 기사 내용을 공식 부인했다. 미군들의 무장경호 문제가 논란이 되자 그리스 정부는 나토군에 그리스 영해나 영공 밖을 통제해달라는 요청을 공식적으로 했고 나토에서도 수락한 바 있다.

그럼에도 미국 선수들을 위해 그리스는 미국에서 개발한 각종 안전기기를 사들여야 했다. 차량을 조사하는 검색기에서부터 고성능 카메라와 전자통신 장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제품을 구입했다. 대공방어 체체를 구축하기 위해 패트리엇 미사일 수십대와 최신형 무기들도 미국의 군수업체에서 사들여 아테네 전역에 배치해놓은 상태다. 그리스 정부는 아테네의 특정 구역을 올림픽 기간 중 비행금지구역으로 지정해 이곳에 들어오는 비행기는 무조건 격추할 것임을 밝혔다. 이 조치는 9·11 테러와 같은 유형의 공격에 대비한 것이다. 그리고 올림픽 경기장에서 각 호텔까지 경찰과 군, 민간업체에서 선발된 경호요원 7만여명을 훈련시켜 배치했다. 경호원들을 선발하고 훈련시키는 프로그램은 경호산업에서 노하우를 가장 많이 축적한 이스라엘의 한 업체가 맡았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라크 전쟁의 미국 파트너인 영국도 선수들 안전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영국 선수단도 미국과 같은 수준의 경호를 받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난 1972년 뮌헨올림픽에서 팔레스타인 무장단체의 테러 공격을 받았던 이스라엘은 올림픽 개최국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무장한 이스라엘 경호팀을 운영해왔다. 올림픽의 안전 문제를 책임지고 있는 그리스 내무부의 데스피니투 여대변인은 지난 8월5일 인터뷰에서 “미국과 영국, 이스라엘 선수단이 움직일 때마다 헬기가 떠서 하늘을 보호하고 무장경호 차량들이 선수단의 차량들을 앞뒤에서 보호하게 된다”며 “이번 대회는 역대 가장 안전한 올림픽이 될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이라크 파병을 감행한 한국도 테러 위협에 노출돼 있기는 마찬가지다. 한국 선수단은 올림픽 기간 중 안전 문제로 인해 사전에 계획했던 행사를 대폭 축소했다. 아테네 중심가에서 개최하기로 했던 대형 문화행사와 한국 홍보관 프로젝트도 축소되거나 폐지됐다. 또 선수단은 그리스 경찰의 강력한 경호를 받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처럼 삼엄한 테러 경비로 아테네 시민들은 큰 불편을 겪고 있다. 시민들은 “보름만 참으면 된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젊은이들은 올림픽에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고 있다. 아테네 중심가에서 만난 아테네대학원생 코프차스(25)는 “누가 테러리즘을 그리스에 끌어들였나? 바로 미국과 유럽의 강대국들이다. 이들은 올림픽을 구실로 그리스에 무기를 팔고 있다”고 울분을 토했다.

아테네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위협하는 또 하나의 복병은 상업주의다. 장기간의 경기 침체를 올림픽으로 만회해보겠다는 과도한 상혼이 올림픽 정신을 훼손할 것이라는 우려까지 낳고 있다. 아테네올림픽 지원 업무로 파견된 한국대사관 직원은 최근 호텔을 옮겨야 했다. 애초 숙박비가 50유로였는데, 호텔쪽에서는 지난 8월1일부터 100유로로 올렸고, 올림픽 기간 중에는 250유로로 올리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이 직원은 호텔쪽에 강하게 항의했지만 소용없었다.

특급호텔 숙박료 세배 이상 뛰기도

특급호텔은 올림픽위원회가 아예 객실 예약을 점령해놓은 상태다. 올림픽 기간 중 대부분의 호텔방 가격은 비밀에 붙여졌다. 숙박비를 공개한 아테네 힐튼호텔의 경우 올림픽 기간 중 하룻밤 1인 보통실이 750~900유로(약 112만5천∼135만원)라고 밝혔다. 이 호텔은 평소에는 하루 200~300유로를 받았다. 보통 때보다 세배 이상 올려 받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나치게 값을 올리다 보니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별 3개짜리 호텔인 프레지던트호텔의 경우, 100유로에서 650유로까지 값을 올렸지만 투숙객이 없자 다시 400유로까지 내렸고, 앞으로 더 내릴 전망이다. 이런 호텔은 수도 없이 많다. 아크로폴리스 부근의 30~40유로 하던 호텔은 올림픽 기간 중에는 240달러의 방값을 부르고 있다. 그러나 호텔은 투숙객이 없어 낭패를 보고 있다.

그리스인이 운영하는 민박집들은 담합해 1인당 200유로로 가격을 정했다. 그러다 투숙객이 끊어지자 다시 100유로로 내렸다. 재작년부터 올림픽 기간 중 수백만이 아테네에 몰려들어 북새통을 이룰 것이라는 기대 때문에 숙박업자들이 담합해 숙박료를 엄청나게 올려놨다. 최근 아테네에서는 숙박료가 너무 큰 폭으로 껑충 뛰면서 예약이 취소되는 사태가 발생하고 있다. 현재 6천개 이상의 방이 비었다는 얘기가 심심찮게 나돌고 있다.

응원단이나 관중들을 실어나르거나 언론의 취재를 위해 필수적인 차량의 대여비도 두배 이상 껑충 뛰었다. 지난해 100유로이던 12인승 미니버스의 하루 대여비가 250유로로 올랐다. 카페의 커피값도 덩달아 올랐다. 이전에는 2유로나 3유로 하던 커피가 7유로로 올랐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3천~4천원 하던 커피가 갑자기 1만원으로 올랐다는 얘기가 된다.

아테네 상인들의 지나친 상혼은 아테네의 물가를 높여 외국 관광객들의 발길을 다른 곳으로 돌리게 만들고 있다. 그리스 관광업계는 연일 울상을 짓고 있다. 올림픽 준비에 투자한 돈 이상으로 수익을 올려야 한다는 조급한 상업주의가 오히려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에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신들의 나라’ 그리스의 출혈

그동안 올림픽의 상업화에 앞장서온 국제올림픽조직위원회(IOC)와 다국적 기업들은 이번 대회에서도 천문학적 액수의 스폰서십을 진행하고 있다. 올림픽 유치 국가와 공식 후원사를 결정하는 권한을 가진 IOC는 그동안 엄청난 로비자금으로 행복한 비명을 질러왔다. 올림픽 공식 후원업체로 선정되기 위해 기부금을 얼마나 납부해야 하는지는 공개되지 않는다. 이번 대회는 11개의 공식 후원업체가 선정됐다. IOC는 이들에게 기부금 액수를 비밀로 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따라서 어느 업체도 기부금액수를 밝히지 않고 있으나, 조직위원회 홈페이지에는 약 2억7천만달러의 기부금이 들어왔다고 적혀 있다. 하지만 이 액수는 사실과 크게 다르다.

그리스 국민들은 이번 올림픽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IOC와 다국적기업들의 잔치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올림픽 준비에 쓰인 천문학적인 국고는 결국 국민들의 세금 부담으로 돌아올 것이다. 올림픽 정신과 완전히 배치되는 현대의 올림픽 개최 방식에 식상한 그리스의 지식인들 중에서는 아예 올림픽을 없애자는 주장까지 제기되고 있다. “차라리 올림픽을 개최하지 않았더라면”이라고 후회하는 목소리도 일부에서 터져나올 정도로, 인구 1천만의 작은 나라 그리스가 이번 올림픽을 위해 쏟아내는 ‘출혈’은 만만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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