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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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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은 망했다?

등록 2004-08-06 00:00 수정 2020-05-03 04:23

를 통해 보는 신문산업의 위기… 내부 혁신 · 외부환경 개선 안 나서면 진짜로 다 망한다


기자들이 월급을 못 받았다. 공룡신문의 불패신화도 이제 깨지는가. 내부 혁신과 외부환경 개선에 안 나서면 신문도 망한다는데….


▣ 조준상/ 전국언론노동조합 교육정책국장 cjsang21@hanmail.net

“신문시장은 없다. 대부분의 신문은 이미 ‘망한’ 지 오래다. 그런데 대부분의 종사자들이 이 사실을 모른다. 아니 외면한다. 특히 기자들이 그렇다.”

신학림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 기자)은 틈날 때마다 이런 우울한 ‘잿빛’ 화두를 직설적으로 꺼낸다. 신문업 종사자들이 비상한 각오를 하지 않으면 미래가 없음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그는 노동조합 위원장으로 있던 1999년 7월, 라스베이거스 카지노에서 1996년 2월과 3월 도박으로 186만달러를 날린 장본인인 ‘장존’이 장재국 당시 회장임을 고발했던 인물이다. 도대체 신문시장이 어떤 상황이기에, 언론 노동자의 생존권을 앞장서 지켜야 할 그가 ‘신문은 망했다’고 공공연히 외치는 걸까.

족벌 일가의 회사 자산 빼돌리기

를 보자. 전체 구성원들은 지난 7월분 급여를 받지 못했다. 상여금을 못 받는 일은 이전에도 있었지만, 급여가 체불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러자 편집국 기자들까지 발끈했다. 편집국 기자들의 경우 극히 일부를 빼곤 노조 조합원이 아니다. 2000년 5월 연봉제로 임금 형태를 바꿔 임금을 50%(총급여 기준) 인상하는 대신에 노조를 탈퇴하라는 회사쪽 조건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런 그들까지 지난 7월27, 28일 긴급 논의를 거쳐 회사쪽을 강하게 성토했다. 회사가 휘청거리자, 편집국 기자들은 가장 먼저 움직였다.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아 떠난 것이다. 올 들어 등 다른 신문사로 옮긴 이들만 20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진다.

가 이렇게 몰락하게 된 과정은 그 자체로 한국 신문시장의 역사이기도 하다. 는 1989년 7월부터 국내에서 처음으로 일요판 신문을 제작했다. 91년 12월부터는 하루에 신문을 두번 내는 조·석간 체제를 30년 만에 다시 도입해 신문시장에 경쟁의 불을 댕겼다. 89년 44만4259t이던 신문용지 소비량이 94년 87만3825t으로 늘어난 것만 봐도, 이 기간 동안 신문사간 경쟁이 얼마나 치열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가 댕긴 무한경쟁의 풀무질을 더욱 부추긴 것은 였다. 중앙은 95년 4월 석간에서 조간으로 변경하면서 섹션 발행과 가로 편집 등을 통해 대대적인 물량공세에 나섰다. 와 의 치열한 경쟁은 살인사건으로까지 이어졌다. 중앙의 이런 물량 공세가 가능했던 요인으로는 삼성그룹을 배경으로 막강한 자본력을 동원할 수 있었던 점이 꼽힌다. 가 열독률을 높이고 와 수위 다툼을 벌이는 지금의 위치에 올라서기까지 몇조원의 돈을 퍼부었다는 게 신문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실제로, 85년 475개에 불과하던 지국은 2004년 2월 1007개로 급격히 증가했다. 같은 기간에 는 1118개 → 1357개, 602개 → 1015개, 1085개 → 737개로 나타났다. 그만큼 의 공세가 엄청났던 셈이다.

이렇게 판이 커진 돈싸움에 밀린 가 내리막길을 걸은 것은 당연하다. 급기야 99년부터는 엄청난 부채에 허덕이면서 경영권을 보장받는 대신 채권단의 관리를 받는 ‘사적 화의’ 상태에 놓이게 됐고, 2002년 9월부터는 구조조정촉진법에 따라 은행관리를 받게 됐다. 하지만 의 몰락 원인이 이런 ‘돈싸움’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장씨 족벌 일가의 무책임하고 무자비한 회사 자산 약탈은 의 몰락을 가속화한 요인이었기 때문이다.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두 가지가 꼽힌다.

하나는 회사 자산 빼돌리기다. 2003년 12월 말 현재, 장재구 현 회장을 포함한 장씨 일가가 아무런 조건 없이 쌈짓돈처럼 에서 갖다쓴 ‘주주단기대여금’은 281억원이 넘는다. 이 액수 역시 실제보다 적게 잡혀 있다는 게 안팎의 통설이다. 다른 하나는 원칙 없는 방만한 경영이다. 현 장재구 회장이 대주주로 있는 의 경우, 지난 30여년 동안 콘텐츠를 무료로 사용해왔다. 계약서가 따로 존재할 리 없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관행은 장재구 회장이 의 경영을 맡은 2002년 1월 이후에도 바뀌지 않았다. 채권단이 묵인한 것이다.

오히려 채권단은 전국언론노조 한국일보지부(전민수 위원장)가 회사 경영 정상화의 일환으로 제시한 ‘콘텐츠 사용료 회수’에 대해 “대주주 및 경영진의 과거사에 대한 추궁이 이제 와 무슨 소용이냐”며 ‘과거사 털기’를 주장하고 있다. 또 본지로 승부를 걸지 않고 스포츠신문을 함께 끼워 배포해온 것도 의 경쟁력을 갉아먹는 경영전략으로 꼽혀왔다.

, 또 하나의 도박

김영호 언론개혁국민행동 상임공동대표(전 편집국장)는 신문산업의 현실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돈 놓고 돈 먹기’ 판으로 변해버린 현재의 신문시장에 대한 책임은 를 비롯한 조·중·동에 70%의 책임이 있다. 30%는 나머지 신문사의 책임이다. 문제는 각 신문사들이 아무리 내부 개혁을 한다고 해도, 지금의 신문시장이 그대로 유지되는 한 별다른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내부 개혁을 하지 말라는 게 아니고, 외부 환경 변화를 위한 노력이 병행되지 않으면 내부 혁신 역시 일시적인 진통제밖에 안 된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신문사간 무한 경쟁은 배보다 배꼽을 더 크게 만들었다. 신문 유통망이 바로 그것이다. 신문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판촉 경쟁을 위해 지국에 해마다 수백억원 이상을 쏟아붓고 있다. 광고로 조달하는 이런 판촉 비용은 한마디로 ‘밑 빠진 독’에 퍼붓는 물이나 마찬가지다. 판촉을 통해 늘린 독자는 1년을 가지 못한다. 홍석현 회장이 올해 3월 의 연간 독자 이탈률이 48%에 이른다고 고백한 것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떨어져나가는 독자를 붙잡아두기 위해 막대한 비용을 들여 판촉을 해야 하고, 판촉 비용을 조달하려면 광고 수주에 혈안이 돼야 한다.

이는 지금까지 경쟁에서 그나마 이겨온 승자까지 집어삼켜 버리는 ‘구조적 악순환’이다. 내수 침체와 함께 찾아온 2004년 경기 불황은 그동안 곪을 대로 곪은 악순환이 터져나오는 계기였다. 그 하나가 가 지난 2월 한달 구독료를 1만4천원으로 올린 것이다. 이는 광고를 싹쓸이하던 역시 한계에 봉착했다는 방증이었다. 하지만 얼마 뒤 는 95년에 이어 또 한번의 도박을 벌였다. 한달 구독료를 1만원으로 낮춘 것이다. 여기에는 95년 이후 자신이 만든 한계 상황을 더 극단적인 한계 상황으로 만들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당시 신문업계에서는 의 행태에 대해 ‘구독료를 낮춰 독자를 유인하고, 이를 통해 광고 수주액을 늘려 를 제치고 1등 신문 자리를 굳히려는 속셈’이라고 평가했다.

신문 유통망에는 얼마의 돈이 들어가나

하지만 의 구독료 인하는 ‘자구책’의 성격도 강하게 갖고 있다. 구독료를 온라인으로 받을 경우 독자 정보를 지국이 아닌 본사에서 확보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지국에 투입하는 막대한 간접 판촉 비용을 절감하려는 목적이 있었던 것이다. 엄청난 돈을 집어삼키는 지금의 신문 유통망에 대한 식 해법인 셈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신문 유통망에는 얼마의 돈이 들어가는 것일까. 이를 밝히기 위해서는 신문 1부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원가를 알아야 한다. 가 밝힌 바에 따르면, 용지 가격과 잉크비, 시설투자비, 인건비, 관리비 등을 감안한 신문 1부의 원가는 가 1만6천원 정도다. 다른 신문들 역시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하면, 월 구독료를 1만2천원으로 할 때 신문 1부당 월 4천원의 손실을 보는 셈이다. 하지만 실제 손실은 훨씬 더 크다. 1만2천원이 모두 신문사에 입금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국이 신문사 본사에 ‘지대’로 납입하는 돈은 1만2천원 가운데 4천~6천원밖에 안 된다. 결국 신문사 본사는 신문 1부당 1만~1만2천원의 손실을 보는 것이다. 발행부수가 40만부라고 하면, 월 40억~48억원의 손실을 보는 것이다. 이런 손실을 메우려면 광고 수주에 목을 맬 수밖에 없다. 의 2003년 광고매출액은 약 3200억원이다. 역산하면, 적어도 이 정도의 광고를 유지해야 가 신문 발행에 따른 손실을 메우고 인건비도 올려주면서 흑자를 기록해 신문사를 유지할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신문사를 둘러싼 외부 환경은 이른바 ‘무료신문’의 등장으로 더욱 악화했다. 아직까지는 스포츠신문의 가판시장을 빼앗는 수준에 그치고 있지만, 무료신문이 종합일간지 시장에 주는 영향은 근본적이다. 광고의 일부를 빼앗아간다는 측면도 있지만, 무엇보다 ‘신문은 공짜’라는 인식을 독자들에게 깊숙이 심어주고 있는 게 핵심적인 문제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 신문사가 독자적으로 구독료를 원가 수준으로 올린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구조적인 해결책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신문유통공사 설립, 조 · 중 · 동 극력반대

구조적인 해결책으로는 두 가지가 꼽힌다. 하나는 신문시장에 대한 포상금제 도입이고, 다른 하나는 신문유통공사 설립이다. 신문고시 위반 사례를 신고하면 신고금액의 일정 배수를 포상금으로 지급하는 이 제도가 도입될 경우, 단기적으로 모든 신문사가 타격을 받게 된다. 조·중·동뿐만 아니라, 이들의 공격적인 물량 공세에 맞서 버티기 위한 방어적인 판촉에 나서온 군소 신문사들도 타격을 받는다. 하지만 중기적으로는 약탈적인 불공정 거래가 바로잡힌다. 광고를 싹쓸이해 엄청난 비용이 들어가는 기존 유통망을 유지하는 관행이 존립할 수 있는 근거가 사라진다. 극단적으로 말해, 신문시장 포상금제가 정착되면 시장을 약탈해 생존해온 조·중·동 역시 내부적으로는 인건비 삭감 등 비용 절감 압력을 강하게 받을 수밖에 없어 저비용 유통망 확립에 관심을 갖게 된다.

신문유통공사 설립 역시 마찬가지다. 이 기구는 정부가 출자하고 공동배달제에 관심 있는 일부 신문사들이 출연해 설립할 수 있다. 정부 참여가 관건이다. 설립될 경우, 배달망이 취약한 신문에 대한 독자들의 접근권이 향상되고, 신문 이외에 잡지와 정부 홍보물 등이 유통되는 기반시설로도 구실할 수 있다는 이점이 생긴다. 문제는 자신들이 장악하고 있는 유통망의 이점을 상당 부분 없애는 유통공사 설립에 대해 조·중·동 등 거개 신문들이 극력 반대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하지만 유통공사 설립 역시 불가피하다는 게 정연구 한림대 교수(언론학)의 설명이다. 언론개혁시민연대 신문법제정TFT에 참여하고 있는 정 교수는 “기존 유통망은 조·중·동 등 거대 신문사까지 잡아먹는 리바이어던(괴물)으로 바뀌었다. 1~2개 신문사가 신문 판매시장과 광고시장을 싹쓸이할 경우 기존 유통망을 유지할 수 있겠지만, 여론의 다양성 차원에서 접근한다면 유지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탈법·불법 판촉을 배경으로 하는 기존 유통망을 유지할 것이냐, 공익적 인프라로서 구실할 수 있는 신문유통공사를 설립할 것이냐는 선택의 문제만이 남아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신문사들에 남는 문제는 무엇일까. 신학림 전국언론노조 위원장은 내부 혁신과 외부 환경 개혁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내부 혁신은 방만한 조직과 경영을 가다듬는 것이다. 종이신문들이 인터넷 종합포털에 콘텐츠를 헐값에 넘겨온 관행을 바로잡는 것도 여기에 속한다. 이미 스포츠신문들이 이런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의 경우, 족벌 사주 일가가 약탈한 회사 자산을 되찾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한국일보지부 전민수 위원장은 “수십년간 무료로 사용해온 콘텐츠에 대한 최소한의 대가를 받고, 장씨 일가가 빼돌린 회사 자산을 다시 확보해야 경영 정상화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일부 신문의 경우 방만한 조직과 인력을 가다듬을 필요성이 제기된다. 하지만 언론계에서는 ‘이미 망했다’는 전제 아래 군소 신문사의 조직 기풍을 확 바꿔야 한다고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신문시장 정상화 이후를 대비해 좀더 치열하게 자기 신문의 색깔을 찾기 위한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직도 배가 덜 고픈가?

신문업계에 닥친 절체절명의 과제는 이런 내부 혁신과 함께, 외부 환경 개선을 위해 나설 수 있느냐다. 이용성 한서대 교수(언론학)의 지적은 새겨들을 만하다. “방송의 경우 종사자들이 자기들의 문제에 대해 열심히 싸운다. 하지만 신문의 경우 상황이 이 지경인데도 움직이지 않는다. 기자들의 한계인지, 아니면 아직도 배가 덜 고픈 것인지 이해가 안 된다.” 국정홍보처가 발행하는 공보잡지를 만들 인재를 구한다는 모집 요청을 보고 수십명의 신문 노동자들이 몰린 현실이야말로 오늘날 신문의 현주소다. 문제는 그런 ‘탈출구’가 극히 적을 뿐만 아니라, 탈출 역시 해결책이 아니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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