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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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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한 단무지, 행동에 나서다

등록 2004-07-01 00:00 수정 2020-05-03 04:23

엄청난 피해입은 단무지 제조업체들, 방송사 상대로 정정보도 · 손해배상 청구할 계획


경찰의 성급한 수사와 언론의 선정적인 보도로 엄청난 피해를 입은 단무지 제조업체. 마침내 방송사를 상대로 정정보도와 손해배상을 청구할 계획이다.


최혜정 기자 idun@hani.co.kr

불량 만두 사건의 끝은 어디인가.

그동안 사람들 입맛을 잃게 했던 불량만두 사건이 차츰 가라앉고 있지만, 적어도 당분간 ‘깨끗한 마무리’는 어려워 보인다. 사건에 함께 얽혀 있는 단무지 제조업체들이 이번에는 ‘피해자’라고 주장하며 반격을 시작한 것이다.

20여개 단무지 제조업체들로 구성된 한국단무지제조협회는 이른 시일 안에 “잘못된 보도로 피해를 입었다”며 방송사들을 상대로 언론중재위원회에 정정 보도를 청구할 계획이다.

“경찰 참고자료를 짜깁기했다”

불량 만두를 보도하면서 내보낸 화면이 대부분 단무지 제조업체의 화면이고, 언론이 제조업체의 폐기물 관련 시설을 집중적으로 찍은 경찰의 촬영본을 확인 없이 그대로 내보냈다는 것이다. 버려야 할 단무지 자투리를 만두소 재료로 공급한 혐의로 온 국민의 ‘공적’이 되어버린 단무지 제조업체들이 이제는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대부분 영세업체인 단무지 제조업체들이 ‘한국단무지제조협회’라는 이름으로 공동 대응에 나선 배경에는 비전푸드 신영문 사장의 죽음이 자리하고 있다.

협회 회장을 맡은 ㅇ농산 오아무개 대표는 “시간이 지나면 잠잠해질 것 같아 처음에는 납작 엎드려 있었지만, 신 사장의 죽음을 접하면서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데 생각을 함께했다”며 “우선 정정 보도 청구를 한 뒤, 일부 방송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도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번 불량 만두 사건에는 크게 세 부분의 업계가 관련돼 있다. △자투리 단무지를 공급한 단무지 제조업체와 △자투리 단무지로 무말랭이 만두소를 만든 만두소 제조업체, △무말랭이 만두소를 납품받은 만두 제조업체 등이다. 숨진 신 사장이 운영한 비전푸드는 만두 제조업체이고, 이번 사건의 ‘핵심’이며 경찰이 구속영장을 신청한 으뜸식품과 형제식품, 맑은식품은 모두 만두소 제조업체다.

이번 사건의 ‘원인제공자’인 단무지 업체들의 혐의는 비교적 간단하다. 통단무지를 규격에 맞게 자른 뒤 남은 자투리 단무지를 만두소 업체에 공급해 폐기물 비용을 아꼈다는 것이다. 경찰은 만두소 업체를 수사하면서 자투리 단무지를 제공한 단무지 업체들을 참고인 자격으로 함께 수사했고, 양지식품만이 자투리 단무지를 “운반해준” 혐의(식품위생법 제4조 위반)로 입건됐다.

그러나 불량 만두 사건이 발표되면서 단무지 업체에 몰아친 충격은 예상을 뛰어넘었다. 사건의 직접적인 당사자가 아닌데도, 각 업체들은 매출 감소는 물론 납품계약 파기 등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경기도 파주시 ㅇ농산의 오아무개 상무는 “일본에 납품하기로 했던 200t 분량의 단무지를 계약 파기로 폐기 처분했다”며 “불량 만두 사건 이후 매출이 반 이상 줄어 한때 100명 가까이 되던 종업원들이 지금은 50여명으로 줄었다”고 털어놨다.

한때 대기업을 포함해 30여곳에 단무지를 납품하던 ㅇ식품도 지금은 거래처가 모두 계약 취소를 통보해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단무지 업자들은 이 모든 책임을 언론에 돌리고 있다. 방송사들이 사실 확인이나 직접 취재를 하지 않고 경찰에서 참고자료로 건네준 화면을 짜깁기해 ‘왜곡 보도’했다는 주장이다. 한 업자는 “원료 단무지의 염도를 6~7%로 낮추는 탈염 과정과 단무지의 껍질을 벗겨내는 탈피기 모습, 공장 바닥에 떨어진 폐단무지, 폐기장에 버린 단무지 쓰레기 등 단무지 업체 관련 화면을 보여주면서 마치 만두소 제조업체인 것처럼 보도했다”며 “특히 폐기물 관련 시설을 집중적으로 찍은 경찰의 촬영본을 아무 여과 없이 내보내면서 마치 단무지 공장이 매우 불결한 것처럼 매도해 큰 피해를 입혔다”고 주장했다.

뉴스를 통해 방송된 화면이 온 국민의 분노를 자아낸 원인인 만큼, ‘화면의 진실’이 쥔 파급력은 크다.

경찰은 문제가 되는 단무지 업체의 촬영화면은 참고자료로 언론에 제공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특히 단무지 업체의 혐의 사실이 4월 말, 5월 초까지인 반면, 경찰이 ‘증거’로 제시한 사진은 5월20일께 촬영해 증거능력에 의문을 제기했던 기사(514호 ‘경찰은 뻥튀기를 했을까’ 참조)에 대해서도 “증거라고 말한 적은 없다”고 거세게 항의했다.

방송사들 “경찰이 제공한 화면을 사용했을 뿐”

수사관계자는 “우리는 경찰청 공보관실에 관련된 화면을 모두 넘겼을 뿐이고, 언론사가 필요한 화면을 골라쓰면서 참고자료로 촬영한 화면까지 모두 내보낸 것”이라며 “경찰이 증거자료로 화면을 제공한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경찰 발표 당시 브리핑에 참여했던 기자들은 “경찰로부터 구체적인 설명을 듣지 못했다”고 반박한다.

한 방송사 기자는 “기자 생활을 하면서 경찰로부터 화면을 제공받을 때 참고자료, 증거자료라는 단어 자체를 들은 적이 없다. 참고자료는 줄 필요도, 받을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관례적으로 당연히 증거자료로 생각했다”며 “경찰에게 받은 CD에도 ‘으뜸식품’과 ‘기타’ 두 가지 항목으로 나뉘었을 뿐, 증거자료니 참고자료니 하는 설명은 듣지 못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불량 만두소의 유해성 논란이 불거지면서 담당 형사가 작성해 기자들에게 제공한 ‘불량 만두소의 유해성에 관한 보고’에서도 경찰 스스로 단무지 업체의 사진을 ‘증거자료’로 명시한 대목을 찾을 수 있다. 이 보고서는 자투리 단무지의 비위생성을 강조하면서 “…양지식품 및 맑은식품 등 원료공급 업체인 단무지 공장의 감독, 확인 결과 이렇게 버려진 폐자투리 무가… 마대자루 포대 및 플라스틱 박스 등에 담겨 수일간씩 그대로 방치되어… 그러한 보관장소에서 마대자루 포대 등에서 시커멓게 병들고 부패한 무, 짓이겨진 무 등을 확인하여 본건의 ‘증거자료’로 사진촬영하였고…”라는 대목이 있다. 지난 5월20일께 촬영한 양지식품과 맑은식품의 화면을 증거자료로 제공했음을 경찰 스스로 인정하는 셈이다.

불량 만두 사건에 대한 경찰청과 식약청의 대응과 관련해서는 국무조정실에서 따로 조사를 진행 중이다. 국무조정실 관계자는 “워낙 큰 사건인 만큼, 이들이 적절히 대응하고 발표했는지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단무지 업체들은 지난 15일, ㅇ농산을 찾은 열린우리당 식품안전정책기획단(단장 김선미 의원) 소속 의원들에게도 협회 명의의 ‘해명서’를 전달하는 등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

불량 만두 사건의 ‘실체적 진실’은 으뜸식품 등 만두소 업체에게 있다. 그리고 이 부분은 법정에서 가려질 예정이다. 그러나 불량 만두 사건의 ‘유탄’을 맞은 단무지 업체들의 하소연에 메아리가 있을지는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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