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의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 씨름… ‘연동제’ 고수하는 청와대와 당정협의 가능할까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여권 전체를 극심한 혼돈 속에 몰아넣은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 논란은 집권 여당과 청와대, 정부의 공약 및 정책 생산 시스템의 허약성과 의사소통 구조의 한계를 보여주는 표본실이다.
이번 논란은 표면상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6월9일 민주노동당 의원들과 만나 열린우리당의 총선 공약인 ‘분양원가 공개’가 시장원리에 맞지 않고 개혁적이지도 않다는 반대 소신을 밝히면서 촉발됐다.
하지만 분란의 근원은 총선을 의식한 열린우리당이 청와대나 건설교통부와 명확한 합의 없이 경실련 등 일부 시민단체의 압박에 밀려 분양원가 공개를 총선 공약으로 내걸면서부터 잉태됐다는 게 정설이다.
설익은 총선 공약이 몰고 온 후폭풍
지난 3월7일 경실련이 아파트값 거품 해소를 위해 분양원가 공개를 총선 공약에 포함시킬 것을 정치권에 요구하자 열린우리당은 곤혹스러워했다. 당정협의에서 건설교통부가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난색을 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민단체의 압박과 한나라당, 민주노동당, 민주당의 분양원가 공개 공약에 자극받은 열린우리당과 건교부는 “분양원가 공개 문제를 신중히 검토한다”는 어정쩡한 합의에 도달했고, 이를 토대로 공약을 제시했다.
우리당의 핵심 인사는 “당시 분양원가 공개 여론이 워낙 드세 당은 부담을 느꼈고, 건교부는 대통령도 입당하지 않은 상황에서 원내 3당에 불과한 우리당의 공약에 대해 ‘아니다, 맞다’를 명시적으로 얘기할 분위기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당정의 무책임하고 설익은 정책 제시가 분란의 싹을 움틔운 셈이다.
4·15 총선을 통해 열린우리당이 152석의 원내 과반 정상이 된 바로 다음날인 16일 이헌재 재경부 장관이 “분양원가 공개에 대한 정부 입장은 달라진 게 없다”고 부정론을 확인하면서 분란은 본격화됐다. 하지만 여권은 이 과정에서도 내부 의사소통의 한계를 드러내며 힘겨루기와 여론 눈치 보기에 급급했다.
4월26일 열린 건교부와 당정협의에서 정세균 정책위의장 등 당쪽은 분양원가 공개를, 건교부는 반대론으로 다시 맞섰다. 결국 공청회 등을 거쳐 상반기 중 최종 결론을 내린다는 원칙론에 합의했다.
그런데 당직개편에 따라 여당 정책위의 사령탑이 바뀌자 건교부는 다시 당정협의를 요청했고, 이에 따라 지난 6월1일 열린 당정협의에서 신임 홍재형 정책위원장은 ‘국민주택 규모(실평 25.7평) 이하 아파트에 분양원가연동제’를 도입하는 방안에 전격 합의했다. 이 과정에서 공약을 마련했던 전임자인 정세균 정책위의장과 사전 협의나 의견 청취도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열린우리당의 다른 한 관계자는 “당시 실무자들은 기존 당론에 따라 ‘공청회’ 등을 거쳐 분양원가 공개 문제를 검토한다’는 원론을 제시했으나, 홍 의원장 등이 다른 내용을 합의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여권 내부에서조차 충분한 의사소통 없이 진행된 이런 결정은 즉각 당 내부와 시민단체, 야당으로부터 ‘공약 백지화’ ‘개혁 후퇴’라는 호된 비판을 받았다. 이에 놀란 신기남 당 의장과 천정배 원내대표 등은 “분양원가 공개는 국민에게 약속한 것이므로 강력히 추진하겠다”며 서둘러 논란을 진화했다.
그러나 지난 9일 노 대통령의 원가공개 반대 발언이 돌출했고, ‘당-청간의 감정싸움’이라는 분석까지 덧씌워지면서 파문은 확산됐다.
결국 노 대통령은 11일 밤 언론사 경제부장들과의 만찬에서 “대통령의 의견 제시도 중요하긴 하지만, 정책 결정 그 자체는 아니다”며 ‘쑥스러운 후퇴’를 통해 퇴로를 열어줬다. 홍재형 정책위원장은 이날 오전 의원총회에서 “당정협의 효율화를 위해 정세균 전 위원장에게 경험담을 듣겠다”는 해법을 뒤늦게 제시했다.
대통령이 재협의 얘기했지만…
하지만 당 안팎에서는 노 대통령이 표명한 원가공개 반대라는 ‘정답’을 향한 형식적인 당정협의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등 여전히 뒤숭숭하다. 경제 문제에 정통한 열린우리당의 한 의원은 “정부쪽이 제시한 ‘원가연동제’는 사실상 정부가 고시가격을 정해주는 정책으로 원가공개보다 더 직접적인 가격 규제”라며 “결국 건설업체들은 큰 이익이 남지 않는 25.7평 이하 주택 공급은 줄이고, 규제를 받지 않는 중대형 아파트를 집중 건설해 서민 아파트의 가격만 올리는 악순환을 가져올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 인사는 “더 말하면 당-청, 당내 분란만 야기된다”며 “두고 보면 안다”고 입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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