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을 넘어 절대권력을 개혁하라”… 공비처 신설과 중수부 폐지 카드로 검찰압박 2라운드
![]() | ||||
![]() |
|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노무현 대통령이 과거 정권의 최고권력자들처럼 검찰을 다시 자신의 손아귀에 쥐려는 유혹을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닐까.
노 대통령이 부패방지위원회 산하에 검사에 대한 수사권까지 갖는 고위공직자 비리조사처(공비처) 설치를 지시하고, 여권 내부에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중수부) 폐지가 논의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검찰과 야당 일각에서는 이런 의구심이 표출되고 있다.
“송광수 총장에 불만없다, 그러나…”
지난 6월14일 “검찰권 행사에 불만을 품은 세력이 검찰의 힘을 무력화하려는 의도로밖에 볼 수 없다”는 송광수 검찰총장의 초강경 발언의 밑바닥에는 대통령을 향한 검찰의 이런 불신인 깔려 있다는 게 검찰 안팎의 설명이다. 검찰이 지난 1년 동안 ‘금단의 영역’이던 현직 대통령의 대선자금까지 낱낱이 파헤치며 국민적 찬사를 받는 ‘독립 검찰’로 거듭난 상황에서, 여권이 ‘정치 검찰’ 논란이 거셌던 과거 정권에서 검토됐던 공비처 설치와 중수부 폐지 방안을 추진하는 진의가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여권의 핵심 인사들은 검찰쪽의 이런 의구심에 대해 강하게 손사래를 친다. 청와대 한 고위관계자는 “막말로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가 있어서 야당의 노 대통령 탄핵 의결도 있었고, 결국 열린우리당이 152석을 확보하는 총선 승리도 가능했던 것 아니냐”며 “여권 핵심부에서 누가 지금의 검찰과 송광수 총장에게 불만을 품을 수 있겠냐”고 말했다. 대선자금 수사를 통해 철창 신세를 지게 된 극소수를 제외하면 여권 전체가 검찰에 톡톡히 신세를 졌다는 것이다. 여권 관계자들은 오히려 “송 총장과 검찰이 최고권력자의 의중에 따라 검찰권이 흔들렸던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의 경험 때문에 과도한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것 같다”며 검찰의 과민반응을 경계했다.
그렇다면 노 대통령은 왜 지난 1년여 동안 대선자금 수사 등을 통해 어느 때보다 정치적 독립성이 강화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검찰의 강력한 저항을 감수하면서 공비처 신설을 추진하는 것일까.
여권은 노 대통령이 집권 이전부터 구상해온 검찰개혁 프로그램에 따른 조처로, 탄핵 기각 이후 노 대통령이 추진하는 고위공직자 비리 척결 및 정부 혁신 작업과 맞닿아 있다고 설명한다.

노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해온 여권 핵심 인사는 “노 대통령이 오랫동안 구상해온 검찰 개혁의 핵심은 최고권력자로부터 검찰 수사권의 독립과 검찰 권력에 대한 사정기관들 사이의 상호 견제 시스템 확립이라는 두 축으로 구성돼 있다”며 “노 대통령이 취임 이후 측근들의 반대와 대선자금 수사 과정에서 갖은 수모를 감수하면서도 일관되게 검찰에 대한 통제의 끊을 놓은 것은 이런 구상에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노 대통령은 특히 ‘검사동일체 원칙’이라는 전근대적 논리에 따라 검찰총장을 정점으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해온 검찰 내부의 중앙집권적 권력 집중 현상을 해소하고, 검찰이 사정 권한을 독점하는 폐해를 시정해야 한다는 신념이 확고했다”며 “이제 대선자금 수사를 거치며 더욱 막강해진 검찰 조직 내부의 이기주의와 권력 독점 현상을 바로잡는 작업을 추진할 때라고 판단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노 대통령이 오래 전부터 계획했던 검찰개혁 2단계 작업을 시작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 노 대통령은 당선 이후 자신의 이런 구상을 핵심 참모들에게 자주 언급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당선자 시절부터 검찰개혁 준비
그의 구상이 처음 체계적으로 표출된 것은 지난 2월7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정무분과 위원들과 가진 비공개 간담회였다. 당선자 신분이던 노 대통령은 “나는 절대 검찰을 정치적으로 이용할 생각이 없는 만큼 검찰 내부의 조직적 반발을 넘어 검찰을 강력히 개혁하겠다”면서 “법무부는 더 이상 검찰을 위한 법무부가 아니라 문민화돼야 하며, 검찰도 제도적 독립뿐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검사동일체 원칙’이 없어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 구상을 직접 들은 김병준(현 청와대 정책실장), 이은영(현 열린우리당 법제사법개혁단장), 박범계(전 청와대 민정2비서관)씨 등 정무분과 위원들은 극도의 보안을 유지하며 구체적 실천 방안을 모색했다. 그리고 문희상 청와대 비서실장 내정자 등 여권 핵심부조차 반대한 강금실 법무장관 발탁을 시작으로 서열파괴 검찰 인사, 대선자금 수사 용인 등 지난 1년간의 조치로 그 구상은 구체화됐다.
노 대통령은 집권 초반 사정기관들 사이의 상호 견제를 통해 검찰의 사정권 독점을 해소하려는 의지도 강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민정수석실과 법무부가 집권 초반 △대검 산하인 감찰부의 법무부 이관 및 외부인사 참여를 통한 검찰에 대한 감시와 견제 △검사동일체 원칙 완화 △평검사협의회 강화 △고검장 중심의 자문기구인 검찰인사위원회의 심의기구화 및 외부 인사 참여 △대선 공약인 공비처 설치 방안 등을 집중 논의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하지만 검찰은 “검찰 조직과 분리된 별개의 사정기구에 수사권을 부여하는 것은 검찰권을 이원화하는 것”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노 대통령은 결국 지난해 6월29일 열린 전국 검사장과의 청와대 만찬에서 “검찰 스스로도 항상 누군가로부터 감시받고 견제받는다는 것을 알아야만, 내가 잘한다는 것을 바깥으로 자랑할 수 있고, 더 잘할 수 있다”며 검찰권에 대한 견제 정책에 대한 강한 의지를 표명했다.
노 대통령은 이후 민정수석실과 부방위에 반부패 시스템에 관한 실태 조사, 반부패관계기관협의회 구성을 지시하는 등 자신의 구상을 좀 더 구체화했다. 내부적으로는 부방위에 공비처 설치 가능성을 검토하라는 지시가 내려지고, 중수부 폐지 문제도 연구·검토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의 다른 한 인사는 “노 대통령이 직접 중수부 폐지를 언급한 적은 없지만, 지난 1년여간의 논의를 통해 법무부와 청와대 내부에서는 중수부 폐지에 대해 이미 상당한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검찰의 계속된 저항과 대선자금 수사로 이런 논의는 사실상 중단됐다. 대선자금 수사에 영향을 미치려 한다는 정치적 오해를 우려한 노 대통령이 실천단계까지 나가지 못한 것이다.

노 대통령의 한 측근 인사는 “검찰이 안희정과 여택수 등 대통령의 최측근을 구속하자, 내부에서 ‘검찰을 이대로 두어서야 되겠냐’는 항의와 함께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빗발쳤다”며 “노 대통령은 ‘이렇게 한 발짝, 한 발짝씩 나가는 겁니다’라는 원칙론과 ‘나도 검찰을 어쩔 수 없다’는 얘기만 되풀이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여권 안에서는 검찰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을 갖고 있는 노 대통령이 지난 1년 동안 검찰의 행태를 보면서 검찰권에 대한 견제 필요성을 더욱 절감했고, 지난 5월24일 부방위 산하에 공비처 설치 지시로 견제장치 마련 작업이 구체화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노 대통령의 측근들 사이에는 지난 1987년 부산지검 공안부(부장검사 주선회 현 헌법재판관)가 인권변호사인 노 대통령을 대우조선 노동자 이석규씨 사망사건에 개입했다는 ‘제3자 개입’ 협의로 구속시키기 위해 하룻밤에 3차례나 판사와 법원장 집을 찾아다니는 탈법적 형태를 직접 겪은 뒤 검찰 조직에 대한 불신과 개혁 소신이 굳어졌다는 게 정설이다.
이런 노 대통령에게 대통령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조차 보이지 않는 검찰의 무소불위적 권력 행태는 결코 좋은 인상을 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노 대통령의 다른 한 측근 인사는 “검찰은 이제 과거와 같은 권력의 시녀가 아니라, 대통령 위에 앉아서 대통령도 우습게 보는 권력”이라고 불신감을 표출했다. 이 인사는 “‘검찰 인사권은 대통령의 헌법상 권한’이라는 노 대통령의 거듭된 설명에도 불구하고 인사권을 넘겨달라는 주장을 거듭하고, 지난 검찰 인사 때 지방으로 발령받은 검사들 가운데 ‘그렇게 충성했는데 이런 자리에 보냈다’는 불만까지 내뱉고 있다”며 “그들은 권력자로부터 독립을 넘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오만한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송 총장의 발언은 사실상 대통령을 우습게 알고 도전할 정도의 상황에 이르렀음을 증명하는 사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고, 무소불위의 검찰 권력에 대한 견제와 조정이 필요하다는 여권 내부의 정서가 있다는 것이다.
여권의 다른 한 관계자도 “노 대통령은 기본적으로 지난 40년 동안 정치권력과 결탁하며 조직 이기주의적 행태를 보여온 검찰을 최고권력자의 눈치를 보지 않도록 만드는 게 중요하지만, 검찰에게 무작정 권한을 주는 것은 아주 위험하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대선자금 수사에 대해 “소름이 끼친다”는 등의 부정적 감정을 표출했던 노 대통령은 실제 지난 2월 말 청와대 핵심 참모들에게 검찰 비리와,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으려는 검찰의 태도 등을 언급하며 검찰권 견제 필요성을 언급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한 핵심 인사는 “탄핵 사태가 벌어지기 한달 전쯤인 지난 2월 노 대통령이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된 검찰이 국민 위에 올라서는 것은 안 된다’며 ‘내가 지금은 (대선자금 수사의) 당사자이기 때문에 검찰에 대해 뭐라고 말할 수 없지만, 수사가 마무리되면 검찰개혁을 지속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 인사는 “당시 노 대통령이 대선자금 수사에 압력을 행사한다는 오해를 살 것을 우려해 침묵하고 있었지만, 수사가 끝나면 검찰권에 대한 견제가 진행할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전했다.
“권위주의와 부패를 척결하라”
실제, 지난 5월14일 헌법재판소의 탄핵 기각 결정으로 업무에 복귀한 노 대통령은 다음날인 15일 회견에서 부패 척결과 정부 혁신을 강조했다. 이어 지난 5월24일 부패방지원회 업무부고를 받으면서 검찰이 가장 반발하는 부방위 산하에 공비처 설치 문제를 전면에 꺼내들었다. 노 대통령은 당시 공비처에 △수사권 부여하고 △검찰은 공비처에 대한 형식적인 지휘권만 행사할 것 △검찰이 기소하지 않을 경우에 대비한 보완장치 마련 등 검찰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수사 지휘권 제약 의지를 분명히 했다.
송광수 총장의 반발로 촉발된 여권과 검찰의 대결은 6월16일 강금실 법무장관의 진화성 기자회견 뒤 일단 물밑으로 가라앉았다. 하지만 청와대와 여권 핵심 인사들 사이에는 중수부 폐지, 부방위 설치 등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는 정서가 자리잡고 있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견제 장치가 없는 검찰은 권력기관화될 수밖에 없고, 그 중심에는 권위주의 시대에 기획 수사의 본산이었던 중수부가 존재한다”면서 “그 자체가 기형인 만큼 바로잡아야 한다”이라고 말했다. 공비처 설치 문제에 대해서도 “고위공직자에 대한 부패 척결 의지와 정부 혁신 의지가 담겨 있다”며 강행할 뜻을 밝혔다.
다른 한 관계자는 “검찰 개혁이 필요했지만, 지난해에는 검찰 수사에 힘을 부여해 정치자금 비리 수사를 잘하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며 “이제 검찰도 많은 일을 했으니 너무 과도한 권력을 가지는 것은 견제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정권이 검찰을 독립시켜준 만큼 이제 검찰도 내부의 독점적 권력을 내놓고 강자들 사이에 견제와 균형 논리에 따른 ‘용쟁호투’를 벌이라는 요구인 셈이다.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영상] 변론의 품격…장순욱 “오염된 헌법의 말, 제자리로 돌려놓자”
최상목의 침묵…한덕수 탄핵심판 선고 임박해 마은혁 임명할 듯
‘하필’...3·1절 연휴 내내 전국 많은 눈·비
‘명태균 특검법’ 가결…국힘에선 김상욱만 찬성
법원 “‘윤석열 별장 방문’ 윤중천 보고서, 허위 작성으로 볼 수 없어”
이재명 “조기 대선 낙관 못 해”…임종석 “이 대표와 경쟁할 분 지지”
이수지 돌풍에 한가인도 주목…‘대치동 극성맘’ 솔직 해명
‘빌라에 불’ 12살 중태…지원 못 받은 생계지원 대상 가정이었다
헌재 “마은혁 불임명은 위헌…최상목, 국회 권한 침해”
명태균 USB 받은 조선일보 기자마저…김건희 격분에 “이해 안 돼”